언젠가 보았던 동경도 검붉게 물들고

아무도 기다리고 있을 리 없는 끝을

홀로 올려다볼 뿐일 터였다.





늘 있는 일상과 약간의 비대칭. 그것의 감내.

우리는 서로를 기억할까요.

지하의 냄새는 편안하다. 제자리를 찾은 양 심신을 안정시키는 무언가를 나는 이 곳에서 맡는다. 꿉꿉한 습기조차 달아오른 열기에 사라져 따뜻할 뿐이다. 이 곳이, 이런 장소가, 내가 있을 자리인 걸까. 광채와 영광과 기쁨의 연단이 아니라, 어둡고 어두운 구렁텅이가.

떨어졌다. 끝없이 떨어졌다. 함께할 사람 없이, 빛 들지 않는 지하를, 죽음과 절망의 선율에 둘러싸인 채 떨어졌다. 관과 천막, 시체와 악기. 잔불. 처음에는 분명 그 자리에 있었을 희망을 땔감 삼아 불을 피우고 또 피웠을 그들은 결국 성녀의 노래만을 남기고 절규하며 죽어갔다. 나는 그 틈새를 헤치고 떨어지며 숨이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가슴이 떨려왔다.

그리고 드디어, 앉았다.

종막이다. 머리가 어지럽다가도 편안해진다. 막다른 길이다. 결말이다. 갈림길의 가지들이 하나둘 떨어져나간다.

나는 옳은 선택을 내리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점점 지워져간다. 그런 질문이 떠오를 틈조차 없다.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돌고 또 돌며,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내린 결론이다. 나는 실수하는 것이 아니야. 이것은 필연이다. 나에게는 이 길 뿐이다.

그렇게 믿을 수밖에는 없다. 분명, 분명히...

울분도 상냥함도 함께했을 터인데, 왜 여기 있는 걸까. 복수하고 싶은 걸까. 무엇에. 비탄을 쏟아내고 싶은 걸까. 어디에.

나는 모두 받아들이러 온 것인데. 많은 마음을 이 몸으로 끌어안으러 온 것인데. 그저 마음 먹은 대로 행하고자 온 것인데. 단지 처음이라 그런 것일까. 몇 번이고 더 반복되면, 그 때는 망설이지 않을 수 있을까.

부분의 합이 전체보다 클 리가 없는데, 대단한 굴곡도 내리막도 없다고 스스로 느껴왔던 나의 이 목숨은 어느새 여기까지 굴러떨어졌다. 이대로는 매달릴 곳도, 끌어내릴 무언가도 없다.

조금 더, 아주 조금만 더 나아가고 싶었다. 절벽을 잡은 손을 놓고 싶지 않았다. 오기 때문에라도 포기하기 싫었다. 나를 부정하던 사람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한 걸음 더 내딛고 싶었다. 지고 싶지 않았다.

조롱과 멸시도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시간과 망각의 더께가 덮여도 상처는 낫지 않았고, 베일 대로 베여 피 흘리던 살은 이제 검게 굳은 흉터로 변해버린 채 너무 지쳐버린 탓에 고통이 무엇인지 제대로 기억하지조차 못한다.

죽어버렸으면 좋았을 걸. 오래 전에, 그저 볼품없이, 이름도 의미도 없이, 스러져버렸다면 좋았을 것을. 괜히 못내 아쉬워 내딛은 몇 걸음에 너무 많은 것이 고여 쌓이고 말았다.

무엇이 그리도 아쉽고 무엇이 그리도 두려운 것일까. 너는, 이유를 알고 있을 텐데.

아직, 조금 더 떨어질 수 있다.

아직, 갈 길이 아주 조금 더 남았다.




저 앞에 신의 아이가 있다. 버려진 아이가 있다. 날 때부터 버려져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한 이가 있다. 나의 가련한 사도가 있다. 죽지 못하는 전령이자 죽고 싶어하는 자가 있다.

무녀는 말했다. 생명이 없는 세상에 선 왕 따위 왕이 아니라고.

무녀는 말했다.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 이 앞의 문으로 가라고.

진정한 왕이 되려 한다면 불씨 된 소녀 대신 스스로를 태워라. 그 말은 내 마음에 닿지 못했다. 나의 힘이자 인도 된 자는 이미 각오를 마쳤었다. 그 눈을, 결의를, 지금도 기억한다.

그럼에도 이 무덤에 이끌려왔다. 누군가의 원망, 누군가의 사명, 누군가의 절망, 누군가의 복수, 누군가의 목숨, 누군가의 비탄. 그 모든 것들이 뭉개지고 짓물러 섞여들어간 곳에 피어난 무언가가 나를 이 곳으로 불렀다.

어느 길을 택하든 누군가 죽는 결과가 남는다면, 하다못해 갈증이나마 축일 수 있는 길을 택하겠다. 그것이 바닷물일지라도. 그 바다가 모든 것을 삼킬지라도.

오랜만에 맨살을 스치는 공기의 감각에 오싹한 전율이 인다. 임박한 무언가에 대한 공포, 설레임, 그리고 포기.

...눈가리개도, 풀어야 한다. 이 눈을 마지막으로 떴던 것이 대체 언제였던가. 어두운 지하에서이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이런 세상 따위, 보고 싶지 않았다. 어느 한 쪽이 옳다면 어느 한 쪽은 글렀어야 할 터인데, 매번 둘로 나누어지지 않는 꼴이 기이했다. 기댈 곳도, 믿을 곳도 없는 그 모습이 우스웠다. 보기 싫었다. 도저히 지켜볼 수가 없었다. 그 속에서 노리개로 전락해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끝에 결국 구석자리에 기대어 주저앉은 내가 싫었다.

이제 와서 그 모습을 다시 보게 만드는 너는, 참 잔혹해.

저 까마득한 위조차 황금 나무에게는 땅 속 깊숙한 심연일 터이고, 이 안에 산 채로 묻혀 천천히 죽어간 이들의 고통을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 끝이 나지 않는다는 무력감.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터이다. 내가 부서졌듯이 나 이전에도 망가졌고 내가 꺾였듯이 나 다음에도 스러질 것이다. 영원히, 영원히. 언제까지고, 끝없이.

모든 것이 토씨 하나 달라지지 않고, 똑같이, 변함없이, 거듭 되풀이될 것이다. 우리는 이 피 흘리며 죽어가는 고리 속에 갇혀 공포에 질린 채 비명 지를 뿐이다. 차양을 친 채 안에 틀어박혀도 결국 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조금 일찍 부서져도 괜찮지 않을까. 지금 망가지나, 그 먼 미래에 타버리나, 뭐가 다를까. 구분되지 않을 것이라면, 차라리 합쳐져버려라.

가자.




석문에는 어떤 틈도 보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열리지 않을 것을 전제하고 만들어진 이 문은 문이라기보다 벽에 가까워보인다.

양 손을 가져다 댄다. 그 누구의 살에도 닿아본 적 없는 이 손에는 차라리 더 익숙한 감각이다. 딱딱하다. 차갑다.

뜨겁다. 달아오른다. 빛나고 불타오른다. 투두둑, 빠득. 그래. 열린다. 벽이 벽이 아니게 된다. 변해간다. 두 석판이 조금씩 기울어진다. 왜인지 두 팔에는 힘이 빠져 후들거린다. 하지만 문은 이미 열렸다. 서서히 밀려간다.

다녀왔어.




노란 불이 바닥을 파내어 무언가 적고 있다가 멈춘다. 손가락이 이내 넓게 펴진다.

마치, 반가워하는 듯 해.

세상을 부술 「옛 왕」을 탄생시키고서 죽을, 가련한 이형. 손가락이라면 죽지 아니하며 산 자의 마음을 꺾어 부려야 할 터이다. 허나 이 아이는 너무나도 연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고, 죽은 자의 육신만을 움직일 수 있다. 원래는 이 세상에 오지도 못할 샛노란 불은,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아이의 존재 덕분에 유일한 사도를 얻고 규율이자 규율 아닌 혼돈이 될 수 있었다.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생명.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아이. 운명은 변덕스럽고, 시간은 붙잡을 수 없다. 그 사실이 잔인하다고 생각한다.

잔인함. 그래. 나는 그 모든, 온갖 잔인함에 질렸다. 질려버린 것이다. 그 웃음과 울음과 무감정에.

어린 아이의 순진함일까, 나는 온 세상을 불태우고자 하는 존재가 사람의 마음조차 함부로 꺾지 못하고 죽은 이의 껍질만을 움직이기로 했다는 점이 뭔가 우스워 입꼬리를 올린다. 그것은 모욕일까. 돌벽과 바닥에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그리고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글을 휘갈겨 쓰고 계속 타들어온 이 손가락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이 길의 끝에서 나는 알 수 있을까.

세 손가락이 있는 힘껏 뻗쳐진다. 나는 그 속으로 조용히 걸어간다. 아이는 쭉 편 손가락이 떨리도록, 사력을 다해 나를 맞이한다. 다가오는 마지막. 그것은 으레 체념과 알 수 없는 기대감, 두려움의 예감이다.

너는 무감정한 학살자가 아니야. 무지한 희생자도, 무력한 피해자도 아니다. 너는 그저 살고 싶었을 뿐이야.

눈물이 흐른다. 곧 죽을 존재가 살고 싶었다는 사실을 통감한다니.

이런 모습은 두 번 다시 보기 싫다.

아이는 나를 꽉 껴안았다. 존재하는 모든 시간을 통틀어 단 한 번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아이는 그러나 나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반가웁게 맞이한다.

아아. 너는 이런 존재였구나. 그래. 보잘것 없고 이름도 없이 떠돌며 아무것도 감히 바라지 못했던 내가, 다만 이 엎드린 무릎이나마 펼 수 있도록 너는 나에게 그 유지를 넘기는구나. 나에게서 네가 연속되기를 바라는구나.

그 몸이 스러지도록, 부서지고 망가진 것이 없어지도록, 고통과 공포와 절망이 불타버리도록. 너의 첫 포옹, 나의 첫 포옹. 그리고 우리의 마지막. 당신은 마지막으로 이걸 느끼고 싶었던 것이로군요.

뜨겁지 않다. 죽고 싶다. 떨어진다. 살고 싶다. 올라가지 않는다. 죽는다. 아프지 않다. 무섭다. 즐겁지 않다. 후회는 없다. 아프다. 살아있지 않다. 뜨겁다. 죽고 싶지 않다. 차갑지 않다. 살아있다. 떨어지지 않는다. 후회한다. 즐겁다. 차갑다. 살고 싶지 않다. 죽지 않는다. 무섭지 않다. 올라간다.

수고했어요. 이제 놓아줘도 될 것 같아요. 가자, 충분히 했잖아. 여기까지였던 거예요. 여기까지 하고 놓아주자. 이만 끝내게 해주세요. 그만.

녹아내린다.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를 무언가 채워간다. 뱃속이 달아올라 뜨거우리만치 불타오른다. 욱신거린다. 기분이 좋다. 약간의 일그러진 미소. 눈이 뒤집히고 조금의 신음이 입술의 틈을 뚫으며 새어나온다. 쾌감, 그리고 환희. 기쁨.




늘 있는 감내와 약간의 일상. 그것의 비대칭.

비명과 신음에 정신을 차린다. 어느새 나는 옷을 갖춰입고 다시 무녀 앞에 서있었다. 이 사람의 눈도 타들어간다. 분명 고통이어야 할 터인데, 이 사람은 왜 기뻐하는 걸까.

어깻죽지부터 등까지, 상반신을 감싸고 도는 시원함이 느껴진다. 눈이 상쾌하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그 기이한 감각이 그러나 썩 나쁘지는 않다.

무녀는 입을 열었다. 그것은 유언이었다. 마지막으로 남겨진 마음이자 의지, 그리고 불꽃이 벼려낸 말이었다.


모든 것은 큰 하나에서 나뉘었다. 구분되고 태어나 마음을 가졌다. 하지만 그것은 위대한 뜻의 과오였다. 고통, 절망, 그리고 저주. 온갖 죄의 괴로움. 그것들은 모두 과오로 인해 생겼다. 그러니 되돌려야 한다. 노란 혼돈의 불로 전부 태워 녹이고, 모든 것을 큰 하나로.


...다들, 말없이 외쳤다. 결코 태어나고 싶지는 않았다고.

존재하는 한, 고통받아야 한다. 기뻐할 수 있는 한, 슬퍼해야 한다. 웃을 수 있는 한 울어야 한다.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있어야 하기에 저것이 있어야만 한다.

가혹하지 않은가. 그런 것이 원칙이라니. 미소 지으려면 눈물부터 흘려야 한다니. 언제까지고 미소 지을 수는 없다니.

그렇다면 차라리 지금 눈물을 흘리겠다. 언젠가 모두 불사른 끝에서 뱃속 깊숙히 웃을 수 있게. 그 날이 오면 나는 마음 속에서 꼬여들어간 응어리를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태초의 혼돈, 큰 하나란 조화였으리라. 그것을 깨뜨리고 구분짓고 갈라놓아 서로를 멀리하자 마음이 생겨났고, 그렇게 미움이 태어났다.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저지르는 존재야말로 악의일 수밖에 없다. 거대한 의지의 뜻은, 처음부터 증오로 점철된 과오였다. 처음부터, 모두 잘못되어 있었다.

타인의 악의를 막으려는 시도는 부질없다. 그럴 바에는 헛된 노력을 관두고 벽을 허물고서 전부 그대로 받아들여 끝없이 부숴지고 한없이 죽는 편이 낫다. 그 마지막에서 나는 쓰러진 채 짓이겨진 덩어리로 전락할 것이다. 비산한 파편을 뭉치고 다시 쌓아올려 새로이 태어날 것이다. 어디까지고 무너지며 끝없이 떨어져 내리고서, 전부 끌어내릴 것이다.

무녀는 불에 휩싸여 죽어갔다.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

부러웠다.

...그래요. 아무것도 갈라지지 않고, 또 태어나지 않도록. 아픔이 영영 사라질 때까지, 비존재의 평온이 다시 모두를 축복하는 그 날까지, 나는 나아가겠어요.








나는 로데일에서 살아왔다. 나는 한때 예언자였다. 그 사실 말고는 머리에 남아있는 것이 없다.

그 과거의 나날들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상할 일도 아니다. 정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상호의 보완, 서로를 고양시키고 충족시키는 관계, 이상향을 본 자들의 미소. 그런 것은 나와 천 리는 넘게 떨어진 이야기였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존재한다 믿었다. 쌓아올리고 싶었다. 모두가 상냥한 세상이 보고 싶었다. 그것에 가닿고 싶었다.

불가능했다.

하나의 우주, 하나의 세계라는 개념은 허상일 뿐이다. 살아숨쉬는 자들의, 의식을 가지고 주변을 인지하며 땅을 걷고 계절을 거듭하여 나는 자들의 수만큼, 무수히 많은 세계가, 서로 다른 우주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탄생의 순간부터 죽음까지, 그 자신만의 세계에, 우주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한다.

어렴풋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능동적으로 타인에게 다가가본 적이 없다.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식물보다도 못한 언행이었으니, 그렇기에 언제까지고 약자일 것이다. 너무나도 작고 부족하고 추악한 나는, 그러므로 다른 이를 품지 못할 것이다. 타인도 나를 품을 수 없으리라. 그런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고, 언제까지나 늘 그래왔다.

다른 이에게 매달리지 못했고 매달리는 이를 잡아줄 수도 없었다. 괜히 타자들 사이에 엮여들어가 폐를 끼칠까봐, 또 나 자신이 상처 입을까봐, 그것이 두려워 홀로 걷는 길을 택했다. 그 때 떨림을 이겨내고 손을 뻗었더라도 무언가 크게 달라졌으리라고는 이제 생각할 수 없다.

그 공포와 주저는 연역이 아니라 귀납이고, 또 개연이었다. 이상은 경험에 발목이 잡혀 입 밖으로, 또 손가락의 끝에서 날아오르지 못했다.

있지도 않은 것을 기대하고 역시나 없었던 것에 실망했다. 어쩌다 타인에 닿을 때마다 새로운 고통이 새로운 모습의 꽃망울을 피워내며 나를 조롱했다. 나에게 상기시켜주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말라고. 혼자 있으라고.

결국 나는 타인에게, 타자는 나에게, 언제나 변함없는 무관심을 던질 뿐이었다. 반복과 회귀. 간격은 좁혀지지 않았고 언젠가 보았던 기시감도 아득하리만치 셀 수 없을 정도로 거듭 되풀이되었다. 그리고 이내 온 주변이 하얗게 물들어갔다. 허무, 공허. 그저 무의미한 시간들이 시간을 채웠다.

그 누구와도 진정 마음을 나누지 못했기에 무엇을 잃었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했다. 해가 지고 달이 뜨는 동안 나는 그 사실을 서서히 통감해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 두 번 다시는 오지 못할 공간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나는 그 삶의 방식이 빼앗긴 것에 왜 분노했던 걸까. 무엇에 분노했던 걸까. 텅 비어버린 시간을 이제야 깨달았다는 사실에, 실존하는 나를 이룰 벽돌이 없다는 점에? 아니면 어렴풋이나마 그 세월이 소중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본질은 없고 해석만이 존재한다면, 생명은 결국 전부 같고 기억만이 개성을 구성할 것이다. 그렇다면 기억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나는, 대체 무엇일까. 정보의 결절점에서 탄생한 무언가가,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스러져가고 있다. 내가 살아있었다는 존재의 증거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있었다.




정확히 무엇이 계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은 사건이었던가, 아니면 광경이었던가. 하지만 나는 어느 날 나 자신의 비참함과 이질성에 계몽되었다. 내 인생이, 그 존재가, 정말 터무니없을 정도로 왜소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나는 나의 수많은 모습 중 하나씩만을 택하여 내어 보여주는 식으로만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공존이었다.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곧 기만이었다. 내가 나로서 온전히 존재할 수는 없다. 적어도 나에게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마음은 꺾였다.

여기가 한계점이고 이 곳이 막다른 길이라는 절망. 이제 나의 가진 모든 것을 드러내놓아 보여주고 마음 속 밑바닥까지 전부 꺼내어 부딪히고 또 다가가도 바뀌는 것이 전혀 없을 것이라는 무력감.

밀어내고 밀어낸 끝에 다가오는 자가 사라지자 막대기가 필요없어졌고 곧 끈으로 누군가 끌어당길 필요도 사라졌다. 타자를 바라고 또 소망했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는 결핍.

그리고 무언가 부러졌다. 이제는 어디까지고 떨어져도 될 것 같았다. 아니, 되는 곳까지 가능한 한 낮게 떨어지고 싶었다. 더 망가지고 더 더러워지면, 그래서 지금은 거대해 보이는 이 흉터가 무수한 상처들 사이에서 별 것 아닌 기억이 된다면, 지금은 역겨워 보이는 이 마음이 형용할 수 없는 오물들의 틈새에서는 오히려 깨끗한 것이 된다면.

그 때는, 아픔이 사라질 수 있을까.

진정 무력한 자신을 배우고 깨닫고서 뇌리에 새긴 채 시체처럼 살아가며 아무렴 좋다는 식으로 좌시하는 것이다. 제삼자가 되어 수수방관할 수 있기에. 그 모든 아픔이 나와는 처음부터 아무런 상관 없었던 척 할 수 있기에. 애쓰고 힘들어할 필요가 사라질 수 있기에.

완벽에 금이 갔으니 이제 의미는 없는 것이다. 온전하던 것이 깨졌으니 이제 어디까지고 더럽혀지고 떨어져도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과거를 봉하고 숨기고 그 유산을 손수 부숴 모두 거짓일 뿐이었다 되뇌이는 것이다. 그래야 지금이 버틸 만한 것이 될 수 있기에.

선한 자가 이런 아픔을 겪을 리 없으니, 믿음을 바꾸느니 차라리 악한 사람이 되기로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믿음을 지킬 수 있기에. 그 어떤 상처도 그저 악한에 대한 응징이라는 사필귀정의 발현이 될 수 있기에. 그렇게 받아들이고 믿을 수 있기에.

깨끗해야 한다는 공포로부터 해방될 방법은 깨끗함에 이끌리는 마음을 죽이는 것뿐이다. 구원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로부터 해방될 방법은, 구원에의 열망을 버려버리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실 자신이 있을 자리는 처음부터 이 곳이었다 믿어버리는 것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더는 발버둥치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편해질 수 있다. 내려가고자 하는 갈망, 혹은 포기, 그것조차 특별할 수 없는 세상이라면 더는 시도할 가치도, 믿을 가능성도 없는 것이다.

이제는 선하지도 상냥하지도 않고, 천부의 아름다움도 잃었다. 아니, 버렸다. 더는 끌어당길 필요가 없다. 손을 뻗지 않아도 된다. 공포에서, 아픔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죽음과 파괴에의 의지, 열망과 선망, 그리고 갈망을, 이해할 수는 없어도 이제 납득할 수는 있다. 너무나도 부서지기에, 고통도 울분도 땔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두려움이자 갈망이고, 환희이자 포기다.

무기력, 쓰라림, 절망. 공포를 알고 그 너머로 오르고 반대편으로 건너가도 희망은 없다. 공포를 거쳐서 길은 폐허의 도시로 향했다. 여기 용기는 없다. 나는 보았다. 그저 영원히 존재할 뿐이니까.

그래서 대신 수많은 관념들을 늘어놓고서 요 삼아 누웠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것은 내가 원했던 길이라고. 그 끝에 후회는 없을 거라고.

아무래도 좋았다. 이제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아. 그저 분노하고 울고 비명 지르며 태울 수만 있다면 괜찮았다.

그래, 이 불이라면 가능하다. 내가 온전한, 진정한 나 자신으로 있을 수 있을 때까지, 그리고 그 너머에 있을 경치에, 내가 나 자신이 아니게 될 세상에 닿을 때까지, 나는 나로서 실존하겠다.

달려나가겠다. 웃으며, 울부짖으며, 가슴이 터져라, 목이 타오를 지경까지, 달려나가겠다. 언젠가, 저 피안에 닿겠다.

그것은 묘한 쾌감이었다.

알 수 없는 해방감이었다.

아아, 드디어 부서졌다.




나는 왜 태어났는가, 왜 여기 숨을 쉬며 살아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찾을 수 없었다. 그 부재는, 실존의 이유의 공백은 이윽고 절망이 되었다.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하염없이 어두운 날일 것이라는 공포. 나는 사라지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는 분노가 남아있었다. 너무나도 꼬여있기에 풀려 하느니 잘라버리는 편이 낫고, 설령 정말 잘라낸다 해도 제대로 풀리지 않는 실타래같은 그런 분노가, 악의와 증오가, 나에게 속삭얐다. 그것은 분명 나의 목소리였다.

그 날부터였을까, 어디에서나 같은 사람들이 풍기는 그 삶의 냄새라는 것이 도저히 견딜 수 없게 싫어졌던 것은. 아마 나는 그 족속들에게서 당연히 기대했던 무언가를 찾지 못했던 것 같다. 이제 나는 내가 기대했던 바를 스스로 찾겠다.

끝까지 내 곁에 남으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이, 그런 사람마저 그러나 나를 버리고 떠나기를 바라는 마음.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적인 소망. 당신마저 나를 포기해야, 당신마저 등을 돌려야, 그제서야 완전히 떨어지고 오롯이 부서질 수 있다는 갈망. 말조차 제대로 꺼내지 못한 채 마지막 모습도 눈에 담지 못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혐오한다. 원망한다. 그리고 그린다. 나를, 그리고 당신을.

그래서 이 환희에 몸을 맡겼다. 응보로써, 수단으로서. 이 절망을, 고통을, 공포를, 후회를, 무력감을, 보여주기 위해서. 사라지고 무너지고 으스러지는 그 모습을 모두의 눈에 새겨주기 위해서. 너무나도 뜨거워 아직도 눈 뒤의 눈을 떠나지 않고 있는, 언젠가 보았던 그 끝의 경치를 보여주기 위해서.

왜 잠시라도 잊었던 걸까. 이것은 운명이자 천부의 섭리다. 그러니 포기하자. 나의 모든 것을 온전히 긍정해줄 수 있는 자는 없다. 필요 없는 존재는 아무런 변화도 일으킬 수 없다. 내가 사라져도 내일 사람들은 잠에서 깨어나 밥을 먹고 땅 위를 걷겠지. 바다 위에 떨어진 한 점 물방울만도 못한, 가련한 왕. 그 왕을 위해 눈물 흘리겠다. 그러니 목이 쉬어라 호곡하고 쓰러져 몸을 비틀자.

고통은 달콤하고 부패는 혐오스러웠다. 부정하는 자들을 부정하라. 부정한 자들을 녹여 없애라.

같음은 투쟁을 낳고 투쟁은 분열을 낳고 분열은 죽음을 낳고 죽음으로써 그렇게 모두는 다시 같아질 것이다. 언젠가 있을 불가피한 운명을 그 손으로 끌어당겨라. 그래, 목숨은 결국 같다는 것을 보여주어라. 닿아라. 직접, 먼저 보여주는 거다. 이 세상을, 생명을, 오롯이 받아들여 품고서 같이 불타올라라. 잿더미조차 남지 않도록.

모든 것을 부정해라.

자아, 함께 무너지자꾸나. 너희는 아직 내가 아닐지니. 너희는 아직 부서지지 않았나니.




나는 목전에 선 벽을 본다. 그것은 한계다. 나의, 그리고 너의. 그것을 부정하겠다. 조금도 변하지 않겠다는 세상을 향해 나는 절규하겠다. 그런 건 긍정할 수 없겠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없는 게 낫다고.

고통이 없는 이상향 속에 나는 온 세상을 가져다 놓겠다. 왼쪽으로 돌며 내려가는 나선 속에 만물이 층층이 쌓여가리라. 아직은 망망해보이는 그 끝에서 나는 그러나 내가 바라는 신과 마주하고 내가 바라는 형상을 빚어 바라보겠다. 그 때 다시 이 눈을 뜨겠다. 흐르는 눈물은 이내 대해가 되리라.

그리고, 온 세상을.

그것은 구원이다. 구원일 수밖에 없다.

이 정도면 많이 온 것이겠지. 이 곳이 나의 불역이겠지.

마지막을 기다린다. 공포와 안도가 혼재된 종막을 그저 바라고 있었다. 나는 서서히 밀려갔다. 눈 뒤의 눈을 감았다.

날지도 못하고 꺾인 봄은 이내 여름이 되고 다시 가을이 되었다. 곧 단풍도 지고, 너무나도 이른 겨울이 올 것이다.

새빨간 눈이 내린다. 새하얀 눈이 내린다.

샛노란 불씨가 오른다. 새하얀 불씨가 오른다.

그리고 서로를 안는다.

부디 봄이 돌아오지 않기를. 부디 우리가 다시 만날 일이 없기를.

나를 잊어주세요. 나를 지워주세요. 나를 없애주세요. 나를 죽여주세요.

늘 있는 비대칭과 약간의 감내. 그것의 일상.

나는 근근히 차대하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