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절대선과 절대악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선과 악은 각자의 도덕관에 따라 정의되는 상대적인 개념이며, 이를 절대적인 것으로 맹신하고 타인에게 그 기준을 강요하는 것은 우매한 행위라 여긴다. 도덕이란 인간사 전반에 걸쳐 시대와 문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왔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도 세대 간 도덕관의 차이는 여전히 크다.

예를 들어, 4대 성인이라 불리는 공자, 소크라테스, 석가모니, 예수조차도 현대의 도덕적 기준에 어긋나는 행위를 저질렀으며, 심지어 자신들이 설파한 윤리관과 모순되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자신의 깨달음을 위해 아내와 자식을 떠나 방치한 석가모니의 출가, 사랑과 자비를 강조한 예수가 성전을 더럽힌 상인을 채찍으로 내쫓은 행위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근대 철학에서조차 계몽시대의 보편적 이성 추구 역시 유럽 중심주의라는 한계에 부딪혔으며 칸트의 정언명령조차 노예제 폐지와 같은 현대적 도덕과 충돌하는 측면을 지녔다.

그렇기에 나는 ‘도덕’이라는 개념 자체가 실체가 아닌 허상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위선’이란, 도덕이라는 허상을 좇는 자들에게 찾아오는 모순적 숙명이며, 그들은 모든 행위를 자신들이 세운 도덕의 틀에 끼워 맞춰 확증편향적 합리화를 시도해왔고, 그 결과로 지금의 윤리관이 만들어졌다고 본다. 그렇기에 그들의 절대적 도덕은 결국 자신조차 지키지 못하는 위선적 구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이처럼 상대적이고 유동적인 선악의 기준을 고정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모순을 낳는다.

앞서 말한 ‘위선’이란 개념 역시, 주체가 설정한 도덕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행위를 일컫는 말에 불과하다. 즉, 절대악이 존재하지 않기에, 나는 ‘위선’ 또한 그들의 도덕관 내에서만 악행으로 규정되지, 나의 상대적 도덕관에서는 단지 하나의 행위로 간주한다. 아니, 나아가 선과 악, 그리고 그것을 판단하는 도덕적 기준이란, 모두 공동체의 질서 유지를 위해 인간이 창조해낸 규칙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도덕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긴다면, 결국 모순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흔히 선과 악의 기준을 자신의 이익 여부에 따라 정하기도 한다. 전쟁을 예로 들어보자. 자국의 군인이 적국 병사를 사살했을 때, 그는 악한 살인자로 간주되는가? 아니다. 그는 국가를 위한 영웅으로 칭송받는다. 그러나 그에게 가족을 잃은 적국의 유족들에게 그는 분명 절대악의 범주에 들 것이다. 이처럼 선과 악은 상대적이며, 이를 절대화하려는 모든 시도는 본질적으로 모순을 내포한다.

또한, 선악의 기준을 설정하고 이를 맹신하며 타인에게 강요하는 행위는 오늘날 인터넷 문화를 통해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람들은 권력가들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제정한 성문화된 도덕법칙, 즉 ‘법률’을 절대적인 도덕관으로 오해하고, 그 허점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피해 가능성을 간과한다. 그 결과, 그들은 법적으로 규정된 ‘악인’에게 극단적으로 냉혹한 태도를 취하며, 그의 모든 행위를 악행으로 간주하고, 자신들의 윤리관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를 빌리자면, “도덕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 만든 허구일 뿐이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러한 도덕관은 목적과 수단이 전치된 형태로, 비난을 위한 비난이라는 도구로 악용된다. 그들의 도덕은 집단 내 도덕적 순응을 강요하며, 비난과 학대를 정당화하고, 도덕적 회의를 불허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결국, 그들의 윤리관은 비판을 거부하고 일치를 강요하는 닫힌 체계로 고착되며, 도덕의 본질적 불완전성을 스스로 드러내게 된다.

그냥 밤에 심심해서 써봤는데 세줄 요약하자면

1. 선악의 기준 즉,도덕은 사회 규범 유지를 위해 창조된 환상이다
2. 고대부터 근대 철학이 주장해온 윤리관은 가변적이고 상대적인 도덕을 규정하려 했기에 모순을 지닌다
3.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너무 고착화된 도덕관을 비판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 같아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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