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카가 고드프리 만나기 이전의 프리퀄 ㅈㄴ 보고싶은데 아무도 안써오길래 걍 내가 써옴
이 한편짜리 단편으로 끝날수도, 더 이어질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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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내는 글 - 귀하의 탐구가 장차 별처럼 빛나기를 바라며.

때로 사랑은 죄가 된다.
그것이 달콤한 연정이든, 거룩한 경애이든.

때로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흐린다.
하여 과히 일선을 넘게 만들고는 하는 것이다.
연정은 집착이, 경애는 광신이 된다. 하물며 이러한 죄악이 드높으신 영원여왕께 향하는 것임에랴.

물론 필자 또한 황금의 학문에 몸담은 이로서 이 서적을 갓 손에 들었을 귀 학사들의 열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대들이 지닌 탐구심과 영원여왕께 대한 깊은 경외야말로 그대들이 짊어진 "학사"라는 이름의 증명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기에 그대들은 더욱 조심하며 삼가야만 한다. 부디 귀하의 탐구가 광신이 되지 아니하며 경외가 맹목이 되지 않도록, 그리하여 돌아올 수 없는 해안을 건너지 않기만을 바랄 따름이다. 

모든 서적이 스승인 것은 아니며 금지된 탐구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니, 부디 그대의 무구한 지적 여로가 금단에 의해 얼룩지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대보다 먼저 이 길을 걸었던 이들의 위대한 족적만으로도 그대가 탐구에 목마를 일은 없을테니.]

- 도읍 니시아 공의회 제 11석 고위학사 아르텝, [초등 황금률 개론], 황금력 1072년, 서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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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 어느 소녀가 있었다.
고민이래봐야 손톱에 금륜초 물이 고루 예쁘게 들지 않는 것이 전부일, 그런 나이의 소녀. 그리고 소녀를 둘러싼 세계는 잔혹했다.  


--소녀의 마을에는 가끔 한밤중에 시끄러이 경종이 울리곤 했다. 이윽고 마을 어귀로부터 큰 길을 따라 벌어지는 소동은 비명소리, 그릇깨지는 소리, 음험하게 웃고 떠드는 소리 등 셀 수 없는 소음들을 두르고 집집마다 문을 두들긴다.

그것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그럴적이면 소녀는 늘 다른 아이들과 대모님의 품에 안겨 온 힘을 다해 귀를 막곤 했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소리는 오히려 선명하게 소녀의 마음을 후벼팔 뿐이었다. 그렇게 말없이 대모님의 품에서 한참을 흐느끼고 있노라면 어김없이-그것도 소름끼치도록 갑작스러운-적막이 찾아온다. 

마치 방금 전까지의 소란이 그저 소녀의 착각일 뿐이라며 비웃기라도 하는 듯 온 마을을 가득 채우던 소음이 한 순간에 귀가 먹먹할 정도의 고요함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럴때면 늘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떨렸다. 

언젠가부터 소녀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마을에서 사라진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는 것으로 간밤의 소란이 꿈이었는지 가늠해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것들이 다녀가는 밤에는 어김없이 누군가 사라지는 까닭에 부디 어젯밤의 그것이 각별한 사람의 차례가 아니었기를 기도하며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경종이 울리지 않는 날에는 친한 마을 언니들과 함께 꽃을 꺾고 그것을 잘 다듬어 조그맣게 화관을 만든다. 서로 몇번이고 씌워줬다 바꿔썼다 하며 장난치다보면 그제야 마을 앞 들판에는 그 풍광에 걸맞게 까르륵거리는 웃음보가 가득 찬다. 물론 그러다가도 대모님이나 다른 언니들이 자신들을 부르면 얼른 마을 귀퉁이의 널찍한 바위로 달려가야 한다. 새로 새겨진 이름에 지금껏 열심히 만든 화관을 바치고 손을 모아야 하므로.

가끔은 특별한 일도 있다. 이따금 대모님이나 언니들이 처음 보는 갓난아이를 포대기에 싸 들고 오는 것이다. 그럴때면 소녀는 조심스레 손끝으로 아기의 뺨이나 한번 쓸어보곤 했다. 물론 아이에 대해 물으면 언니들은 늘 마을 어귀에서 주웠다며 말문을 흐렸고 소녀는 군말없이 다시 들판으로 뛰어가 손장난에 열중하곤 했다. 소녀가 몇 번이고 물어본들 대모님은 물론이고 언니들조차 절대 대답해주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그간의 경험으로 잘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만 소녀는 간밤의 악몽으로부터 꼭 열 달 정도가 지날 적이면 마을에 새로운 아기가 들어온다는 사실만은 대강 알았으나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소녀가 깨닫게 되는 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였다.

이외에도 가끔 소녀는 대모님의 앞에 앉아 또래들과 함께 손을 잡고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대모님이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읊는 문장들은 소녀가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유독 좀이 쑤시던 어느 날 곁눈질로 힐끗 쳐다본 대모님의 표정은 더없이 경건해보였다.

어느 날 소녀는 기도가 끝나고 대모님께 물었다.

"대모님, 대모님, 저희가 드리는 이 기도는 대관절 어느 분께로 향하나요? 언니들이 그랬어요. 기도라는건 위대한 분께 소원을 비는 거라고요. 열심히 기도하면 뭐든 이루어진대요. 그런데 제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어째서 밤에 찾아오는 것들을 막아주시지 않는 건가요?"

대모님은 소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 영민한 아이야, 너는 그동안 간밤의 그것들이 찾아오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거니?"

"네. 마야 언니 말로는 모르긴 몰라도 아마 대모님께서 올리시는 기도도 같은 내용일거랬어요. 저는 가끔 졸기도 하고 딴짓도 하지만 대모님께서는 엄청 열심히 기도하시잖아요. 그런데 어째서 저희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나요?"

대모님은 빙긋이 웃고는 대답했다.

"아가. 잘 들으려무나. 그건 말이다, 그동안 내가 올린 기도는 저들이 찾아오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기 때문이란다. 잠시 앉아보거라. 이제 네게 어느 정도는 이야기를 해줄 때가 된 것 같구나."

대모님이 자세를 고쳐앉으며 옆에 앉아보라는 듯 손으로 가볍게 바닥을 두드리자 소녀는 대모님 곁으로 다가앉아 마치 다함께 기도를 올릴 때 하던 모양으로 무릎을 꿇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모님의 표정은 기도할 때만큼, 아니 그보다 더 진지했기 때문이다.

"우리 일족의 이름이 무엇인 줄 아느냐?"

"무... 무녀 일족이요."

전에 없이 진지하다 못해 엄하기까지 한 대모님의 목소리에 소녀는 자기도 모르게 말을 더듬고 말았다. 

"그래, 그럼 그 이름의 의미도 알고 있니?"

"...언니들한테 무녀가 무슨 뜻인지 물어봤는데 언니들이 무녀는 위대하신 분을 모시는 사람이라는 뜻이랬어요."

소녀가 기억을 더듬어 간신히 건넨 대답에 대모님은 잠시간 아무 말도 없이 침묵을 지켰다. 이윽고 대모님이 다시 입을 연 것은 소녀가 자신이 무언가 잘못 대답한건가 싶어 슬슬 불안해질 즈음이었다.

"...틀렸단다. 하지만 무리도 아니지. 그 아이들에게는 한번도 제대로 이야기해준 적이 없으니."

"...?"

"마리카야, 잘 듣거라. 무녀란-" 
'...내림받는 자, 위대한 분의 그릇.'

마리카는 먼 땅을 거닐던 시절의 꿈을 꾸었다.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곳. 부디 할 수만 있다면 천번이라도 밟아 조각내어버리고 싶은 땅. 그러나 그 마을에서의 기억만큼은 그녀의 생에 있어 몇 안되는 소중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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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상념에 잠겨있던 마리카는 규방을 감싼 베일 밖의 기척을 느끼자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뒤 베일을 걷어젖혔다. 알현실과 규방을 나누던 베일이 여인의 의지와 손길을 따라 천천히 풀어헤쳐지자 그 앞에는 황금 자수가 놓인 흰 망토 차림의 전령이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고 있었다. 남성이 목을 가다듬자 마리카는 살짝 손을 들어 됐다는 듯 그를 저지했다.

"말하라."

"...짐승사제께로부터의 서신입니다."

마리카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신을 받아들어 대충 훑어보는 듯 하더니 이내 그 얼굴만큼이나 감정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전언은 없었느냐?"
"발톱만으로는 부족하다, 라 말씀하셨습니다."

남자의 눈 앞에 서있는 여인의 얼굴은 그 아름다움에 더해 일말의 표정변화도 없는 것이 마치 가장 뛰어난 조각가가 빚어낸 작품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 고고한 시선의 움직임이 어느 지점에서 멈추어있는 것을 깨달은 남자는 눈앞의 고귀한 존재가 무언가 깊이 생각하고 있음을 알아보았다. 이윽고 시간이 지나 남자의 무릎이 조금 뻐근해질 즈음 여인의 목소리가 긴 정적을 깨고 알현실에 울려퍼진다.

"상급기사들에게 출정을 준비하라 일러라. 날이 밝는 대로 국경으로 향할 것이다."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한번 숙인 뒤 뒷걸음질로 알현실을 빠져나갔고 이내 어두운 복도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다만 알 수 없는 얼굴로 다시 규방에 돌아와 베일을 걸어닫은 마리카의 시선만은 여전히 서신에 고정된 채였다. 서신을 가득 채운 단어들 중에서도 유독 한 구절이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

"(전략)미개한 땅의 왕, 그 도끼에 황야를 거니는 온 부족의 염원을 짊어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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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아올 무렵 이미 규방에 여인의 기척은 없었고 다만 그 손을 거친 편지만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이윽고 아침 햇살을 받아 부드러운 황금빛으로 빛나는 도읍의 고탑 사이를 노닐던 산들바람 중 한줄기가 규방으로 스며든다. 호기심 많은 바람은 사뿐히 규방을 한 바퀴 돌며 바닥의 편지지를 몇 번 놀리는가 싶더니 이내 싫증이 난 듯 다시 햇살을 찾아 고탑 사이로 돌아간다.

홀로 남은 편지지는 천장 위로 은은히 빛나는 석등에 제 마지막 구절을 조용히 내어보인다.

"-마리카여, 그의 도끼날은 넓고 견고하다. 어쩌면 그대의 염원 또한 그의 도끼 위에 그 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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