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빛으로 빛나는 신이 미디르에게 말하였다.

”고룡의 마지막 후손이여. 너는 앞으로 영원토록 저 깊은 어둠을 삼키거라. 그것이 널 살려둔 이유일지니.”

어린 용은 그것을 잠자코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머나먼 이국의 땅, 어둠의 시초라 불리던 고리의 도시에서 미디르는 자신조차 헤아리지 못할만큼 길고 긴 세월동안 무저갱의 심연을 집어삼켜갔다.

어둠을 먹어치울 수록 미디르의 마음 속에서도 축축하고 기분 나쁜 심연이 뿌리내려 갔지만 미디르는 그저 주신의 명령에 따를 뿐이었다.
그렇게 점차 미쳐가던 미디르였으나 그가 간신히 이성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이따금씩 자신을 찾아오는 가련한 소녀 덕분이었을 것이다.

주신의 명령으로 어둠의 왕과 혼약을 맺은 불쌍한 소녀. 그녀는 어둠을 먹어치우는 고룡 미디르를 가여이 여겨 이제는 아무도 가까이 하지 않던 고룡의 둥지를 홀로 방문하곤 했다.

미디르는 처음엔 적개심을 드러내었지만, 곧 그녀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어둠이 세상으로 뻗어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가족 하나 없는 이 머나먼 땅에 유폐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미디르는 그녀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소녀는 고향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아노르 론도는 정말 멋진 곳이야! 그곳에는 늘 지지 않는 태양빛이 내리쬐었지. 아바마마도, 오라버니와 언니 모두 그 태양빛에 감사하며 기도를 올리곤 했어.”

그 이야기를 할 때면 소녀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마치 태양처럼.
지지않는 태양의 도시라니, 평생을 어둠 속에서 지내온 미디르에겐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언젠가, 언젠가 아바마마께서 나를 데리러 돌아오실 거야. 그때가 되면 너도 나랑 함께 가자.”

소녀는 부드럽게 미디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내게는 사명이 있어, 라고 미디르가 작게 중얼거리자 소녀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왜냐하면 너에게는 내가 기사의 작위를 내릴테니까.”

기사… 기사가 뭐지?
미디르가 고개를 갸우뚱 하자 소녀는 자세를 고쳐앉았다.

“기사란 주인을 모시는 자, 주인을 위해 싸우는 자야. 아바마마께서도 기사들을 거느리고 있었어. 자, 이렇게.”

그러더니 소녀는 미디르의 이마에 손을 올리고 장난기 넘치던 목소리를 거두고 어울리지도 않는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흠흠, 미디르여. 훌륭히 사명을 완수해내었구나. 그 공로를 인정하여 그대를 나의 기사로써 임명하노라.”

그 말투는 마치 그 위엄넘치던 주신과 비슷하였다. 물론, 앞서 말했듯 전혀 안어울렸지만.
소녀는 곧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어때? 아바마마를 따라했는데, 비슷했어?”

전혀, 미디르가 단호히 대답하자 소녀는 볼을 부풀렸다.
하지만 미디르는 생전 처음으로 마음 속에서 작은 환희를 느꼈다.

“… 그때가 되면 같이 아노르 론도로 돌아가자. 함께 도시 위를 날면서 여기저기 구경하는 거야. 좋지?”

물론 그것이 내게 허락된다면…
미디르는 그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끝내 하지 못했다.


함께… 같이…
그리고 다시 기나긴 시간이 흐르고 미디르는 끝내 자신이 누구인지 조차 완전히 잊게 되었다.
몸 속에서 비늘을 뚫고 나온 검은 결정들이 서로 부딪히며 삐걱이는 소리를 냈다. 미디르는 날개를 퍼덕였지만 날 수 없었다. 협곡에서 마주한 정체불명의 기사에게 공격당한 탓이다.

미디르는 침을 질질 흘리며 비틀비틀 둥지에서 일어섰다. 그에게 남은 기억이라고는 같이 돌아간다, 그것 뿐이었다.
돌아가기 위해선 무언가를 지켜야만 한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미디르는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때 둥지의 동굴에 고인 물 웅덩이가 작은 파란을 일으키더니 누군가 어둠 속에서 천천히 미디르를 향해 걸어왔다.

미디르는 곧 그가 자신을 상처입힌 자라는 것을 확인하곤 증오를 내뱉으며 포효했다.

지킨다, 기사는 지켜야만 한다.
미디르는 목적을 잃은지 오래였지만 그것을 홀로 되내이며 자신에게 적의를 내보이는 기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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