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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이고 위험한, 진득한 독 늪으로 가득한 병자의 마을 밑바닥, 그 중에서도 후미진 곳에 위치한 동굴이 있었다.
온통 거미줄로 뒤덮힌 그 동굴 안에서 '공주님'을 모시는 주술사 엔지는 요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공주님은 본디 이자리스의 마녀의 딸들 중 하나였으나 이자리스의 마녀가 야심에 불타 만든 혼돈의 불에 휩쓸려
이형으로 변한 존재였다. 그녀는 언니 쿠라그와 함께 폐허가 된 이자리스를 탈출하여 병자의 마을까지 도달하였으나,
병자들의 끔찍한 모습을 보고 연민을 느껴 그들을 도와주고자 독과 질병들을 흡수하여 굉장히 쇠약해지고 말았다.
지금까지는 쿠라그가 있어 그녀를 보호했지만 쿠라그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아마 늘 그랬듯이 침입자를 물리쳐다가 되려 당하고 만 것이겠지. 그리고 상대는 아마도...
엔지는 어떤 불사자를 떠올렸다. 그는 공주님의 시종을 자처하며 그녀와 대면하였다.
늘 그녀를 볼 때마다 슬픔과 연민, 죄책감에 괴로워했고 그녀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인간성을 바쳤다.
그런 그도 요즘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큰일이었다. 이단의 술법을 연구하다 주술사들의 고향인 늪에서
쫓겨난 엔지는 강력한 주술사였지만 지금은 몸에 커다란 알이 붙어있는 신세인지라 혼자서 공주님을 보호하기에는
여의치 않았다. 쿠라그의 부재는 공주님의 안위에 있어서 중대한 문제였다.
혹시나 발생할 미연의 사태에 전전긍긍하던 엔지의 우려는 아무래도 현실이 될 것 같았다.
동굴의 입구 쪽에서 누군가가 걸어오고 잇었다. 긴장해서 본인도 모르게 움켜쥔 손아귀에 땀이 맺혔다.
과거 그 불사자를 맞이할 때는 쿠라그가 무사하다고 생각했기에 경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오로지 혼자서 공주님을 지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엔지는 조영히 주술을 준비했다.
만일의 경우가 일어났을 때 철저하게 상대방을 물리쳐야 할 것이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잔뜩 긴장한 엔지 앞에 등장한 자는 예상치도 못한 이였다. 전신을 어두운 로브로 감싼 여인이었다.
로브의 허리춤을 감싼 금의 장식이 눈에 띄었다. 가려진 얼굴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후드 밑으로 살짝 드러난 얼굴선은 굉장히 아름다웠다.
"신기한 모습을 하고 있구나. 그 아이의 종복이냐?"
"당신은…?"
"나는 이자리스의 쿠라나. 네가 지키고 있는 그 아이의 자매다."
자신을 쿠라나라고 밝힌 여인의 목소리는 감미로웠지만 강인한 힘이 느껴졌다.
아니, 인간이 아닌 마녀라 불러야 정확할까. 엔지는 주술의 시조인 이자리스의 계보를 잇는
그녀에게 경외감을 느꼈다. 비록 이단일지라도 엔지 또한 주술사. 원초이자 강대한 주술사인 그녀는
엔지에게 잇어 선망의 대상이었다. 쿠라나는 자매를 지키기 위해 그녀의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엔지에게
따스한 말을 건넸다.
"나는 자신의 안위만을 보전하며 어머니와 자매를 버린 겁쟁이였다. 그 사실이 부끄러워
그동안 감히 다른 자매들을 찾을 생각도 하지 못했지. 비록 천 년이나 지나버렸지만
지금에서라도 자매의 곁을 지키고 싶구나. 나를 안내해 주겠느냐?"
"예, 쿠라나님. 당연하지요"
엔지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쿠라그는 사라졌지만 공주님의 또 다른 자매인 쿠라나가 찾아왔다.
공주님 또한 기뻐할 것이다. 공주님이 좋아하실 거라 생각하니 엔지는 그것이 무엇보다 행복했다.
그리고 혹시 쿠라나가 자신에게 주술을 가르쳐 줄지도 모른다. 방금까지 온갖 걱정에 골머리를 앓던
엔지였지만 지금은 기쁨만이 가득했다.
그 때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 온 몸이 거미줄 투성이구만…. 이 안에는 있으려나."
엔지는 깜짝 놀라 쿠라나의 뒤 편을 바라보았다. 쿠라나도 예상치 못한 상황인 듯 당황해하며 몸을 돌렸다.
이제 막 동굴의 입구에 도달한 남자는 늪의 주술사가 갖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손에 쥐어진 도끼는
어찌나 휘둘렀는지 독과 피로 진득하게 범벅이 되어 있었고 이도 성하지 못했다. 손에서 빛나는 주술의 불꽃은
기이할 정도로 밝은 빛을 뿜어대고 있었다. 엔지는 발작적으로 몸을 뒤틀며 경계했다. 이 시점에서 늪의 주술사라니!
이단으로 몰려 늪에서 추방된 엔지는 갑자기 등장한 불청객에게 격렬한 적대감을 느꼈다. 혹시 자신을 제거하러
늪에서 파견된 인물일 지도 몰랐다.
그 때 쿠라나가 그 남자에게 다가갔다. 주술사는 모습을 드러낸 쿠라나를 보고 깜짝 놀라 어쩔 줄을 몰라했다.
되려 당황해하는 그 모습에 경계심을 낮춘 쿠라나는 주술사에게 물었다.
"너는 누구냐?"
"아…저는 늪의 로렌티우스입니다. 주술의 시조인 이자리스의 마녀님의 원초의 주술을 접해보고 싶어서…이 곳을 찾아왔습니다
당신은 주술사십니까? 혹시…."
"나는 이자리스의 쿠라나다."
쿠라나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자 로렌티우스는 뛸 듯이 기뻐하였다. 아니 실제로 펄쩍 뛰면서 흥분을 금치 못했다.
"아, 역시! 당신이 쿠라나님이시군요! 만나서 영광입니다! 저는 쿠라나님을 뵈러 왔습니다! 제게도 이자리의 주술을 알려주십시오!"
잔뜩 흥분한 로렌티우스를 유심히 바라보던 쿠라나는 미심쩍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럴 리가 없는데?
"기묘하구나. 너는 언짢을 지도 모르지만 너의 소양은 이 곳을 견뎌낼 정도로 강하지 않다. 그런데 어찌 망자가 되지 않고 이곳을 찾아왔을까?
게다가 내가 이 곳에 들어서면서 주술로 이 동굴의 가시점을 이지러 놓았거늘 네가 그 것을 간파했단 말이냐?"
천 년에 달하는 방황의 나날 속에서 쿠라나는 주술로 모습을 감추고 다녔다. 그런 그녀를 볼 수 있었던 자는 오로지 두 명.
주술왕이라 칭송받는 첫 번째 제자 살라만과, 최근에 가르침을 내려준 두 번째 제자 뿐이었다.
그런데 이 보잘 것 없는 자질을 지닌 주술사가 자신을 찾아내다니?
"…에, 그 것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이 곳이 제 주술로 감당할 수 없는 곳임을 알고 있습니다만,
어느 순간 갑자기 제 주술이 강력해졌지 뭡니까?"
"…주술이 강해져?"
"네, 같은 주술인데…갑자기 엄청나게 강력한 불꽃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도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똑같은 주술인데 갑자기 위력이 천양지차가 되었으니까요. 어쨌든 그 덕에 위험을 벗어나 이 곳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뚱딴지 같은 말이었지만 쿠라나는 허투로 듣지 않았다. 대신 감각을 집중했다. 불꽃이 타올랐다. 쿠라나의 내부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외부에 타올린 불꽃과 맞닿아 서로 섞였다. 쿠라나는 즉시 이변을 알아챘다. 불꽃의 힘이 강해졌다. 마치 최초의 불이 그 모습을
처음 드러냈을 때처럼. 그리고 천년 전 그 때처럼.
"세상에 소울이 흘러 넘치는구나. 마치 천년 전 대왕 그윈이 최초의 불을 다시 지폈을 때와 같다. 분명히 누군가 불을 계승했음이야."
"그게 정말입니까?"
"최초의 불이 되살아나고 다시금 세상에 소울이 충만해진다. 사람과 자연에 생명력이 채워지기에 불꽃이 더욱 강력해 진 것이다.
로렌티우스, 운이 좋았구나. 누군가 불을 계승하지 않았다면 너는 도중에서 망자가 되었을 것이다."
"진짜로 운이 좋았군요…!"
의외의 사실에 경악했던 로렌티우스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마치 그의 눈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했다. 쿠라나가 물었다.
"무엇을 생각하느냐?"
"…혹시 누군가가 불을 계승했다면 그것은 제가 잘 아는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로렌티우스는 멋쩍은 듯 턱을 긁으며 말했다. 생각나는 사람은 자신을 구해준 은인이었다. 불사의 사명을 걸어가던 그는 왠지
남들과 다르게 느껴졌다. 만약 누군가가 불을 계승했다면 그 사람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하구나 나도 누군가를 떠올렸다. 만약 불을 계승하는 자가 있다면, 그 녀석 밖에는 없겠지."
쿠라나는 자신의 제자를 떠올렸다. 폐허도시 이자리스를 돌파하여 쿠라나의 어머니 이자리스의 마녀를 해방시킨 제자. 왕의 소울을 지니고 돌아온 그 아이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었다. 불을 계승한 것은 그 아이일까. 끝까지 올곧은 아이였다. 자신의 무리한 부탁마저 들어주더니 결국에는 불을 계승한 것일까.
"너와 나는 같은 사람을 떠올린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로렌티우스는 대답없이 그저 씨익 웃어보였다. 신기한 기분이었다. 쿠라나도 왠지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는 죄에서 해방되었고 자신은 자매를 만나러 왔으며 불이 계승되었다. 천년 전 정체되어 그저 썩어가던 세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것도 어떤 운명일지도 모르겠구나. 자매를 만나고자 한 날, 새 시대의 준동과 함께 새로운 만남을 얻었다.
네가 나의 주술을 배울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따라오너라."
"…쿠라나님!"
쿠라나에게서 허락의 말이 떨어졌다. 로렌티우스는 벅찬 감동으로 온 몸을 떨었다. 쿠라나에게서 가르침을 받는다 한들
로렌티우스가 이자리스의 주술을 사용할 수 있을지 없을 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로렌티우스는
로망에 그쳤을 자신의 소망을 이루어낸 것이다. 그 다음이야 정진만이 있을 뿐.
"어이, 너"
"옛? 엇, 으아아악!? 사람 몸에 알이 달려있잖아!?"
"그렇게 사람을 쳐다보면서 소리 지르지마라, 무례한 녀석!"
그제서야 로렌티우스는 엔지를 발견했다. 등에 커다란 알을 달고 땅을 기어다니는 엔지의 모습에 로렌티우스는 놀람을 금치 못했다.
"무례한 애송이구만…. 쿠라나님은 너를 받아주겠다고 하셨지만 조심해라! 내가 늘 지켜볼테니까!
쿠라나님과 공주님께 예의를 지키지 않으면 내 주술로 혼쭐을 내주겠어!"
"엣…? 당신도 주술사…십니까?
"나는 엔지다! 네놈도 늪의 주술사라면 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겠지!?"
"옛!? 당신 엔지…! 이단의 주술사 엔지란 말씀입니까!?"
엔지는 로렌티우스를 쏘아보았다. 자신을 이단이라 규정하고 매몰차게 쫓아낸 늪의 주술사에 대한 적개심은
쉽사리 해소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로렌티우스의 반응은 엔지가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엔지님 만나뵙게 되서 영광입니다! 이 감격! 이자리스의 쿠라나님과 이단자 엔지님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니!"
"뭣…!? 아니, 나…경멸스럽다거나 혐오감이 든다던가 그렇지 않냐? 이단의 추방자라고?"
의외의 반응에 엔지는 당황했다. 자신을 추방한 늪의 주술사이니 당연히 자신에게 반감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야 늪의 늙은이들은 그렇겠지만 애초에 주술이란게 그렇지 않습니까? 애초에 우리는 모두 이단자라구요?
그걸 또 뭐 늪에서조차 이단이다 뭐다…웃기지도 않은 소리죠."
"뭐야 너…. 제법 괜찮은 녀석인걸."
엔지는 흐뭇하게 로렌티우스를 바라보았다. 자신 또한 로렌티우스와 같은 생각이었다. 늪의 몰지각한 늙은이들과는
다른 그의 생각에 단숨에 호감이 갔다.
"엔지님, 등에 있는 알은 이단의 주술의 일각입니까?"
"아니 이건…, 공주님께 대한 내 충성심의 증거다."
"공주님이요?"
"그래, 병자의 마을을 돌보신 마음 착하신 분이시지. 여기계신 쿠라나님의 자매님이시다.
"에엣? 쿠라나님의 자매님이요? 그럼 그분도 원초의 주술의 계보를 잇는 분 아니십니까? 오옷 꼭 뵙고 싶군요"
호들갑을 떠는 로렌티우스를 보며 쿠라나는 실소를 흘렸다. 천 년의 세월동안 그녀를 짓누른 것은 오직 죄책감 뿐이었다.
때문에 오늘이 더욱 각별하게 느껴졌다.마치 어머니와 자매들과 함께 살아가던 그 때와 같았다.
"그럼 다 같이 그 아이를 만나러 가도록 할까. 나도 오랜 세월이 흘러 만나는 것이니 어서 보고 싶구나."
쿠라나와 엔지, 로렌티우스는 동굴의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술의 시초인 이자리스의 마녀의 딸들과 이단의 주술사, 늪의 주술사는 그렇게
새로운 시대의 그늘 속에서 그들만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엔지님, 그런데 그 알이 충성의 증거라면 저도 역시 그 알을 달아야 될까요
-아니, 그러면 꼴이 우습잖냐. 넌 굳이 그럴 필요없어.
-굉장히 친절하구나 엔지. 겉보기와는 전혀 다른 걸.
***
다음으로 그릭스, 지크마이어, 기타캐릭터들, 솔라3 으로 마무리될 거...인데 망했어
1. 다른 곳에 올리고 링크를 단다. 2. 이렇게 많이 분할하지 말고 적당히 2~3개로 분할한다. 3. 그렇게 될 분량이 아니면 다른 곳에 올린 글을 전체캡쳐해서 그 사진을 올린다
개재밌다 후속편 써줘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