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혹시 들어본 적 있나?”
“아니, 없습니다. 무슨 심연의 감시자들 사이에서 내려오는 특별한 비기 같은 겁니까?”
“뭐...... 딱히 틀린 말은 아니군. 불 꺼진 재들이 쓰는 기술이긴 한데, 그들 대부분이 불사대의 입단 의식을 통과했으니 말이야.”
“무슨 기술이길래 그러십니까? 혹시 저 계단 아래에서 싸울 때 도움이 될 만한 기술인가요?”
“음..... 확실히 자네가 그 어비스 슬래쉬를 쓸 수 있다면 저곳에서 싸울 때 살아남을 확률이 좀 비약적으로 상승할 것 같기는 하군.”
“어떤 기술입니까? 아니, 그 기술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게 날 닦달한다고 배울 수 있는 기술은 아니야.”
“그럼 어찌 해야 배울 수 있습니까? 저 밑에서 그냥 개죽음 당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배울 수도 없지. 그냥 이 세계의 시공간이 좀 많이 뒤틀리면 일어나는 자연 현상이거든.”
“예?”
“이곳의 시공간이 뒤틀린건 자네도 알지 않나?”
“네. 그 덕분에 저희도 이렇게 만날 수 있던게 아닙니까?”
“그렇지. 어비스 슬래쉬는 그냥 그 시공간이 뒤틀림이 좀 심해지는 바람에 자네가 칼을 휘둘렀는데 그 검격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상대방에게 도달하는거라네. 칼이 닿을 거리가 아닌데도 공격이 닿거나, 아니면 칼질이 시간차를 두고 상대방에게 들어가거나 하는거라네. 뭐 쓰고 싶다고 쓸 수 있는 그런 숨겨진 비장의 술법 같은건 아니란걸세.”
“그럼 왜 그 이야기를 꺼낸 겁니까? 괜한 희망 고문을 당한 기분입니다.”
“그냥 긴장 좀 풀라는거지. 재의 귀인이 싸움을 앞두고 그렇게 쫄아 있어서야 쓰나? 자네가 이곳 이루실 까지 온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저 사내가 죽으면 자네 차례가 머지 않았어. 준비하게.”
마치 양파처럼 생긴 갑옷을 입은 남자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이 말을 듣고는 다시 계단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을 보았는데, 그 끔찍한 광경에 절로 소름이 끼쳤다.
저 밑에선 노예 두건을 쓴 사내가, 차마 말로 형언할 수 없게 생긴 괴생물체와 싸우고 있었다. 그 사내는 도적의 단검을 들고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괴생물체의 공격을 모조리 회피하고 있었지만, 이 싸움을 보고 있노라면 그 사내가 우세에 있다고는 전혀 생각치 못 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그 사내와 싸우고 있는 괴생물체의 그 끔찍한 생김새에 다시 한 번 몸서리치며 시선을 돌려버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노예 두건의 사내는 오래 살지 못 할 것 같다. 그리고 아마 자신도 곧 그리 될 것만 같다는 우울한 생각에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도저히 싸울 의욕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양파 갑옷을 입은 남자가 다가와서 내 어깨를 두드리고는, 불꽃을 피워 올리고는 그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나보고도 옆에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불꽃 앞에 앉으니 그 따스한 느낌이 정신력을 회복시켜주는 기분이 들었다.
양파 갑옷의 남자가 지크의 술을 건내며 말했다.
“하하하! 두려운가 보군. 하지만 걱정 말게. 혹시 모르나? 자네가 이길 수도. 이거 한 잔 더 하고 근심 걱정은 다 잊어버리게나.”
“한 차례 이겨봤자 그 다음에 덤벼든 괴물에게 찢겨 죽게 될 겁니다. 영원히 이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술은 마실 때마다 부족해서 항상 감질맛이 났는데,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이 구하신 겁니까? 구하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던데요.”
“뭐 영원히 이길 순 없지. 하지만 그건 자네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세. 자네와 싸우는 자들도 무적은 아니야. 놀랍게도 쟤들도 때리면 죽어! 뭐 때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긴 하지만. 그리고 그 술은 그냥 이리저리 다니다보니 쌓이더군. 이번에 신입이 들어왔다길래 그동안 꿍쳐둔걸 푼거지. 자네가 싹수가 좋아보이길래 아껴둔걸 주는거야! 그러니까 마음이 꺾이지 않게 하세.”
이 때 노예 두건의 사내가 괴생물체의 공격을 받고는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경기 종료를 의미하는 엘레오노라의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초록 옷을 입고 양 눈의 색이 다른 괴생물체는 노예 두건 사내의 시체에 똥 폭탄을 던지며 춤추고 있었다. 점점 사라져가는 노예 두건 사내의 분홍색 피부 시체에 갈색 똥 폭탄이 겹쳐져 만들어진 색 조합을 보니 아까 먹은 에스트가 도로 올라올 것만 같았다.
“저렇게 패자를 능욕하는건 예의가 아니지 않습니까?”
“뭐 저건 저 캐릭터의 컨셉이니까. 만약 라프 갑옷을 입고 와서 책형을 들고 번화를 쏘며 가드스팸을 하면 논란거리가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시라의 옷을 입고 그러고 있으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저는 저 괴생명체가 뭐 하는 생물인지 아직 이해하지 못 했나봅니다.”
“뭐 사실 모르는게 더 좋아. 모든 지식이 안다고 다 이득이 되는건 아니니까.”
승리의 춤을 추고 있는 괴생물체에 맞서 대형 낫을 든 여자가 내려갔다. 하지만 수녀복 모자 사이로 언뜻 비치는 얼굴은 역시 괴상하기 그지없었다.
“저 괴상하게 생긴 얼굴들을 보면 다리가 후들거려서 맞서 싸우기는 커녕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것 같습니다.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돼요. 그동안 봐온 몬스터들이 귀여워질 지경입니다. ”
“사실 쟤들 생김새는 나도 잘 적응이 안 되긴 해.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흑수정을 쓰고 돌아갈 수도 없지 않나? 저 흉측한 것들을 이 세계에서 없애버리겠다는 구제업자의 마음가짐으로라도 용기를 내어보게.”
“듣자 하니 스스로 저런 모습을 원해서 변했다고 했습니다만은, 도대체 어떤 사고방식을 거쳤길래 다들 자의로 저렇게 변했다는 겁니까? 제가 자고 일어났는데 저런 얼굴을 가지고 있다면 아마 바로 자결하고 말 겁니다.”
“그래봤자 자네는 불사자가 아닌가? 자결해도 부활하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고 해도 로자리아에게 찾아가서 환생하면 그만일세. 만약 혓바닥이 부족하다면 내껄 뽑아가도 뭐라 안 하겠네. 혀가 뽑혀서 뭐라 할 수가 없을테니 말이야. 헣헣헣헣”
경쾌한 소리가 들리더니 괴생물체가 오른손에 든 거대한 송곳처럼 생긴 창을 낫을 든 여자의 복부에 정통으로 꽂아넣었다. 또 한번의 승리를 거머쥔 괴생물체는 가죽끈을 말아쥔 왼손을 치켜들고 다시 한번 똥 폭탄을 이리저리 뿌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이번에는 특대검을 사내가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사내가 쓴 고깔 모자 사이로 언뜻 보인 눈매 또한 역시 꿈에 나올까 두려운 모양이었다.
“으음..... 방금 실수는 좀 치명적이었군. 그래도 빨리빨리 회전하니 금방 때가 왔구만. 바로 다음이 자네 차례일세.”
“저도 내려가자마자 저렇게 비참하게 죽게 될까 두렵습니다.”
“역시 자네는 아직 죽음에 대한 미련을 덜 떨쳐냈나보군.”
“죽는게 뭐가 좋습니까?”
“좋을 건 없지. 하지만 나쁠 것도 없다네. 적어도 불사자들에겐 말이지. 자네는 화방녀가 왜 때려도 반격하지 않는지 알고 있나?”
“그야 뭐 약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무기도 없지 않습니까.”
“공격 능력이 없어도 반격은 충분히 가능하다네. 화방녀는 소울을 통해 불 꺼진 재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것을 도와주지 않는가? 우리가 뭐 옛날 옛적에 살았다던 화방녀의 도움 없이도 혼자 레벨업이 가능했다는 그 전설의 선택받은 불사자도 아닌데, 죽이면 무기 강화를 안 해주는 대장장이 할아범처럼 레벨업을 안 해주겠다고 배째고 나서면 화방녀를 죽이는 사람들이 싹 없어질텐데 왜 그렇게 안 하고 그냥 가만히 있는 것 같나?”
“불의 계승이라는 사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협력하는 것 아닐까요?”
“뭐 그렇게 볼 수도 있지. 하지만 화방녀의 태도를 보면 뭔가 죽었다 살아난 것 치고는 너무 무덤덤하지 않나?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일세.”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내 생각에는 화방녀가 반격하지 않는 이유는 화방녀가 불사이기 때문인 것 같네. 그냥 평범한 불사자는 아니지. 우리 같은 불사자들은 마음이 꺾이면 망자가 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불사라고는 보기 어려워. 하지만 화방녀는 아무리 죽여도 망자가 되지 않아.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불사자라고 볼 수 있지. 죽어도 죽어도 끝없이 되살아나는데 죽음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불이 자연적으로 꺼질 때까지 주구장창 화방녀를 죽여대도 화방녀는 다시 살아날테지. 불 꺼진 재들의 공격은 화방녀의 존재성에 전혀 위협이 될 수 없어. 그러니 고통도 그녀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을테고. 왜 이러냐는 질문은 이따위 쓸데없는 짓거리 할 시간에 빨리 가서 불계승이나 하라는 뜻이겠지. 뭐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는거야.”
계단 아래에서 괴생물체와 고깔 모자의 투사가 피가 튀기며 공방을 주고받는 모습이 보였다. 무기를 휘두르는 묵직한 소리와 신음 소리도 들려왔다.
“그래서 저도 죽어도 부활할테니 죽음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겁니까? 저희 같은 불사자들은 진정한 의미의 불사는 아니라고 방금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뭐 그래도 자네가 마음이 꺾이지 않는 이상 끝없이 부활할 것 아닌가? 그래서 별 문제가 되지 않을거라는 뜻이지. 저 밑에 내려가면 죽을 수도 있지, 아니 분명 죽겠지. 하지만 그게 자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개죽음은 아니라는거야. 자네가 여기에 온건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싸우기 위해서가 아닌가? 승리나 실패에 연연하기보단 싸움 그 자체를 즐기라는거지. 왜 일반 인간들 신화에선 진정한 전사는 죽고 나서 끝없이 싸울 수 있는 영원한 전쟁터로 간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실력이 한참 부족한 제가 싸움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까요? 오히려 너무 못 해서 끼면 안 되는게 아닐지 걱정스럽습니다.”
“이게 랭크 제도가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인가? 여기서 실력이 부족해서 깎일건 자네 멘탈밖에 없다네. 그리고 실력이 부족하다 해도 제사장에 누워있는다고 실력이 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일단 싸워야 실력이 늘던 말던 하지. 자네도 보스 몬스터들을 상대로 싸워보면서 느낀 점이 있을 것 아닌가?”
“으음.........”
“뭐 여기 갤기장 망자들이 너무 부담스러우면 여기가 아닌 일반 설기장에 가거나, 아니면 다른 세계로 침입을 시도해봐도 된다네. 하지만 요즘은 다들 싸움 그 자체를 즐기기보단 그저 이기는데에만 집착해서 일반 투기장도 실력 늘리는데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어. 뭐 거기선 비슷한 실력의 사람을 만나길 기도해야지. 뭐 그것도 그것들 나름의 재미가 있기도 하고. 계속 꽁무니만 빼는 놈을 쫓아가서 혓바닥을 뽑는데 성공했을 때의 기분도 엄청 좋거든.”
“침입한 암령을 어찌어찌 물리쳤을 때도 뭔가 보람차긴 하더군요.”
“그러다보면 언젠가 자네에게도 땅바닥에 납석을 그어놓거나, 눈동자의 힘을 사용하거나, 아니면 제사장의 화톳불에서 왕의 뼛조각을 불태우며 하염없이 기다릴 시기가 올 수도 있지. 그럼 그 때 기다리는 막간을 이용해 그동안 겪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 관련 썰이나 좀 풀어보게나. 정 사람 상대하는 대인전이 취향에 안 맞으면 회차를 뛰면서 보스를 잡을 때 불러서 같이 잡거나 하는 식으로 해도 나눠준 지크의 술 값은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네.”
괴생물체가 단말마의 비명을 내질렀고, 승리한 사내는 사라져가는 괴생물체의 시체에 의례를 해 이를 추모했다.
“이제 자네 차례일세. 어서 내려가게. 새로 소환된 암령들이 기다려야 쓰겠는가?”
양파 기사가 바닥에 새겨진 보라색 문구를 만지작거리며 이야기했다. 아까 피워올렸던 따스한 불꽃의 빛을 받아, 양파 투구에 새겨진 가느다란 틈 사이로 형광빛이 반짝거렸다.
“아니, 없습니다. 무슨 심연의 감시자들 사이에서 내려오는 특별한 비기 같은 겁니까?”
“뭐...... 딱히 틀린 말은 아니군. 불 꺼진 재들이 쓰는 기술이긴 한데, 그들 대부분이 불사대의 입단 의식을 통과했으니 말이야.”
“무슨 기술이길래 그러십니까? 혹시 저 계단 아래에서 싸울 때 도움이 될 만한 기술인가요?”
“음..... 확실히 자네가 그 어비스 슬래쉬를 쓸 수 있다면 저곳에서 싸울 때 살아남을 확률이 좀 비약적으로 상승할 것 같기는 하군.”
“어떤 기술입니까? 아니, 그 기술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렇게 날 닦달한다고 배울 수 있는 기술은 아니야.”
“그럼 어찌 해야 배울 수 있습니까? 저 밑에서 그냥 개죽음 당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배울 수도 없지. 그냥 이 세계의 시공간이 좀 많이 뒤틀리면 일어나는 자연 현상이거든.”
“예?”
“이곳의 시공간이 뒤틀린건 자네도 알지 않나?”
“네. 그 덕분에 저희도 이렇게 만날 수 있던게 아닙니까?”
“그렇지. 어비스 슬래쉬는 그냥 그 시공간이 뒤틀림이 좀 심해지는 바람에 자네가 칼을 휘둘렀는데 그 검격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상대방에게 도달하는거라네. 칼이 닿을 거리가 아닌데도 공격이 닿거나, 아니면 칼질이 시간차를 두고 상대방에게 들어가거나 하는거라네. 뭐 쓰고 싶다고 쓸 수 있는 그런 숨겨진 비장의 술법 같은건 아니란걸세.”
“그럼 왜 그 이야기를 꺼낸 겁니까? 괜한 희망 고문을 당한 기분입니다.”
“그냥 긴장 좀 풀라는거지. 재의 귀인이 싸움을 앞두고 그렇게 쫄아 있어서야 쓰나? 자네가 이곳 이루실 까지 온 이유가 있을 것 아닌가? 저 사내가 죽으면 자네 차례가 머지 않았어. 준비하게.”
마치 양파처럼 생긴 갑옷을 입은 남자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이 말을 듣고는 다시 계단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을 보았는데, 그 끔찍한 광경에 절로 소름이 끼쳤다.
저 밑에선 노예 두건을 쓴 사내가, 차마 말로 형언할 수 없게 생긴 괴생물체와 싸우고 있었다. 그 사내는 도적의 단검을 들고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괴생물체의 공격을 모조리 회피하고 있었지만, 이 싸움을 보고 있노라면 그 사내가 우세에 있다고는 전혀 생각치 못 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그 사내와 싸우고 있는 괴생물체의 그 끔찍한 생김새에 다시 한 번 몸서리치며 시선을 돌려버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노예 두건의 사내는 오래 살지 못 할 것 같다. 그리고 아마 자신도 곧 그리 될 것만 같다는 우울한 생각에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도저히 싸울 의욕이 나지 않았다.
그러자 양파 갑옷을 입은 남자가 다가와서 내 어깨를 두드리고는, 불꽃을 피워 올리고는 그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나보고도 옆에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불꽃 앞에 앉으니 그 따스한 느낌이 정신력을 회복시켜주는 기분이 들었다.
양파 갑옷의 남자가 지크의 술을 건내며 말했다.
“하하하! 두려운가 보군. 하지만 걱정 말게. 혹시 모르나? 자네가 이길 수도. 이거 한 잔 더 하고 근심 걱정은 다 잊어버리게나.”
“한 차례 이겨봤자 그 다음에 덤벼든 괴물에게 찢겨 죽게 될 겁니다. 영원히 이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술은 마실 때마다 부족해서 항상 감질맛이 났는데,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이 구하신 겁니까? 구하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던데요.”
“뭐 영원히 이길 순 없지. 하지만 그건 자네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세. 자네와 싸우는 자들도 무적은 아니야. 놀랍게도 쟤들도 때리면 죽어! 뭐 때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긴 하지만. 그리고 그 술은 그냥 이리저리 다니다보니 쌓이더군. 이번에 신입이 들어왔다길래 그동안 꿍쳐둔걸 푼거지. 자네가 싹수가 좋아보이길래 아껴둔걸 주는거야! 그러니까 마음이 꺾이지 않게 하세.”
이 때 노예 두건의 사내가 괴생물체의 공격을 받고는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경기 종료를 의미하는 엘레오노라의 종소리가 울려퍼졌다. 초록 옷을 입고 양 눈의 색이 다른 괴생물체는 노예 두건 사내의 시체에 똥 폭탄을 던지며 춤추고 있었다. 점점 사라져가는 노예 두건 사내의 분홍색 피부 시체에 갈색 똥 폭탄이 겹쳐져 만들어진 색 조합을 보니 아까 먹은 에스트가 도로 올라올 것만 같았다.
“저렇게 패자를 능욕하는건 예의가 아니지 않습니까?”
“뭐 저건 저 캐릭터의 컨셉이니까. 만약 라프 갑옷을 입고 와서 책형을 들고 번화를 쏘며 가드스팸을 하면 논란거리가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시라의 옷을 입고 그러고 있으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저는 저 괴생명체가 뭐 하는 생물인지 아직 이해하지 못 했나봅니다.”
“뭐 사실 모르는게 더 좋아. 모든 지식이 안다고 다 이득이 되는건 아니니까.”
승리의 춤을 추고 있는 괴생물체에 맞서 대형 낫을 든 여자가 내려갔다. 하지만 수녀복 모자 사이로 언뜻 비치는 얼굴은 역시 괴상하기 그지없었다.
“저 괴상하게 생긴 얼굴들을 보면 다리가 후들거려서 맞서 싸우기는 커녕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것 같습니다.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돼요. 그동안 봐온 몬스터들이 귀여워질 지경입니다. ”
“사실 쟤들 생김새는 나도 잘 적응이 안 되긴 해.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흑수정을 쓰고 돌아갈 수도 없지 않나? 저 흉측한 것들을 이 세계에서 없애버리겠다는 구제업자의 마음가짐으로라도 용기를 내어보게.”
“듣자 하니 스스로 저런 모습을 원해서 변했다고 했습니다만은, 도대체 어떤 사고방식을 거쳤길래 다들 자의로 저렇게 변했다는 겁니까? 제가 자고 일어났는데 저런 얼굴을 가지고 있다면 아마 바로 자결하고 말 겁니다.”
“그래봤자 자네는 불사자가 아닌가? 자결해도 부활하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고 해도 로자리아에게 찾아가서 환생하면 그만일세. 만약 혓바닥이 부족하다면 내껄 뽑아가도 뭐라 안 하겠네. 혀가 뽑혀서 뭐라 할 수가 없을테니 말이야. 헣헣헣헣”
경쾌한 소리가 들리더니 괴생물체가 오른손에 든 거대한 송곳처럼 생긴 창을 낫을 든 여자의 복부에 정통으로 꽂아넣었다. 또 한번의 승리를 거머쥔 괴생물체는 가죽끈을 말아쥔 왼손을 치켜들고 다시 한번 똥 폭탄을 이리저리 뿌리며 춤을 추고 있었다.
이번에는 특대검을 사내가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사내가 쓴 고깔 모자 사이로 언뜻 보인 눈매 또한 역시 꿈에 나올까 두려운 모양이었다.
“으음..... 방금 실수는 좀 치명적이었군. 그래도 빨리빨리 회전하니 금방 때가 왔구만. 바로 다음이 자네 차례일세.”
“저도 내려가자마자 저렇게 비참하게 죽게 될까 두렵습니다.”
“역시 자네는 아직 죽음에 대한 미련을 덜 떨쳐냈나보군.”
“죽는게 뭐가 좋습니까?”
“좋을 건 없지. 하지만 나쁠 것도 없다네. 적어도 불사자들에겐 말이지. 자네는 화방녀가 왜 때려도 반격하지 않는지 알고 있나?”
“그야 뭐 약해서 그런 것 아닐까요? 무기도 없지 않습니까.”
“공격 능력이 없어도 반격은 충분히 가능하다네. 화방녀는 소울을 통해 불 꺼진 재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것을 도와주지 않는가? 우리가 뭐 옛날 옛적에 살았다던 화방녀의 도움 없이도 혼자 레벨업이 가능했다는 그 전설의 선택받은 불사자도 아닌데, 죽이면 무기 강화를 안 해주는 대장장이 할아범처럼 레벨업을 안 해주겠다고 배째고 나서면 화방녀를 죽이는 사람들이 싹 없어질텐데 왜 그렇게 안 하고 그냥 가만히 있는 것 같나?”
“불의 계승이라는 사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협력하는 것 아닐까요?”
“뭐 그렇게 볼 수도 있지. 하지만 화방녀의 태도를 보면 뭔가 죽었다 살아난 것 치고는 너무 무덤덤하지 않나?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일세.”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내 생각에는 화방녀가 반격하지 않는 이유는 화방녀가 불사이기 때문인 것 같네. 그냥 평범한 불사자는 아니지. 우리 같은 불사자들은 마음이 꺾이면 망자가 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불사라고는 보기 어려워. 하지만 화방녀는 아무리 죽여도 망자가 되지 않아.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불사자라고 볼 수 있지. 죽어도 죽어도 끝없이 되살아나는데 죽음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불이 자연적으로 꺼질 때까지 주구장창 화방녀를 죽여대도 화방녀는 다시 살아날테지. 불 꺼진 재들의 공격은 화방녀의 존재성에 전혀 위협이 될 수 없어. 그러니 고통도 그녀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을테고. 왜 이러냐는 질문은 이따위 쓸데없는 짓거리 할 시간에 빨리 가서 불계승이나 하라는 뜻이겠지. 뭐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는거야.”
계단 아래에서 괴생물체와 고깔 모자의 투사가 피가 튀기며 공방을 주고받는 모습이 보였다. 무기를 휘두르는 묵직한 소리와 신음 소리도 들려왔다.
“그래서 저도 죽어도 부활할테니 죽음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겁니까? 저희 같은 불사자들은 진정한 의미의 불사는 아니라고 방금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뭐 그래도 자네가 마음이 꺾이지 않는 이상 끝없이 부활할 것 아닌가? 그래서 별 문제가 되지 않을거라는 뜻이지. 저 밑에 내려가면 죽을 수도 있지, 아니 분명 죽겠지. 하지만 그게 자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개죽음은 아니라는거야. 자네가 여기에 온건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싸우기 위해서가 아닌가? 승리나 실패에 연연하기보단 싸움 그 자체를 즐기라는거지. 왜 일반 인간들 신화에선 진정한 전사는 죽고 나서 끝없이 싸울 수 있는 영원한 전쟁터로 간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실력이 한참 부족한 제가 싸움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까요? 오히려 너무 못 해서 끼면 안 되는게 아닐지 걱정스럽습니다.”
“이게 랭크 제도가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인가? 여기서 실력이 부족해서 깎일건 자네 멘탈밖에 없다네. 그리고 실력이 부족하다 해도 제사장에 누워있는다고 실력이 늘지는 않을 것 아닌가? 일단 싸워야 실력이 늘던 말던 하지. 자네도 보스 몬스터들을 상대로 싸워보면서 느낀 점이 있을 것 아닌가?”
“으음.........”
“뭐 여기 갤기장 망자들이 너무 부담스러우면 여기가 아닌 일반 설기장에 가거나, 아니면 다른 세계로 침입을 시도해봐도 된다네. 하지만 요즘은 다들 싸움 그 자체를 즐기기보단 그저 이기는데에만 집착해서 일반 투기장도 실력 늘리는데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어. 뭐 거기선 비슷한 실력의 사람을 만나길 기도해야지. 뭐 그것도 그것들 나름의 재미가 있기도 하고. 계속 꽁무니만 빼는 놈을 쫓아가서 혓바닥을 뽑는데 성공했을 때의 기분도 엄청 좋거든.”
“침입한 암령을 어찌어찌 물리쳤을 때도 뭔가 보람차긴 하더군요.”
“그러다보면 언젠가 자네에게도 땅바닥에 납석을 그어놓거나, 눈동자의 힘을 사용하거나, 아니면 제사장의 화톳불에서 왕의 뼛조각을 불태우며 하염없이 기다릴 시기가 올 수도 있지. 그럼 그 때 기다리는 막간을 이용해 그동안 겪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 관련 썰이나 좀 풀어보게나. 정 사람 상대하는 대인전이 취향에 안 맞으면 회차를 뛰면서 보스를 잡을 때 불러서 같이 잡거나 하는 식으로 해도 나눠준 지크의 술 값은 충분히 하고도 남는다네.”
괴생물체가 단말마의 비명을 내질렀고, 승리한 사내는 사라져가는 괴생물체의 시체에 의례를 해 이를 추모했다.
“이제 자네 차례일세. 어서 내려가게. 새로 소환된 암령들이 기다려야 쓰겠는가?”
양파 기사가 바닥에 새겨진 보라색 문구를 만지작거리며 이야기했다. 아까 피워올렸던 따스한 불꽃의 빛을 받아, 양파 투구에 새겨진 가느다란 틈 사이로 형광빛이 반짝거렸다.
뉴비들의 많은 갤기장/갤투 참가를 기원하는 글입니다
근데 같이 닼소하던 친구가 군대 간 뒤로 나도 닼소 키는 빈도가 확 줄어서 좀 찔림 ㅎㅎ
불사대야 추하다
너무 띵작인데??
뭐 처음엔 이루실화톳불에서 좃이랑 지크벨트가 이루실다리 짐승이랑싸우는 그레이렛 구경하는줄알앗는데 갤기장망자 괴생물체 똥폭탄에 의례 ㅋㅋㅋㅋㅋㅋㅋㅋㅅㅂ
특머가 불사대였다고? 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무서워서 뉴비도 도망가는 설기장 문학 추
현실성이 너무 살아있다
형광빛 소름끼쳤다 시벌 ㅋㅋㅋㅋ
양파기사도 망자네 미친
괴생물체가 뭔가 했더니 참1피커마 망자ㅋㅋㅋㅋ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