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 남은 잔불과도 같은, 저주받은 불사가 죽어서 남긴 재.

이를 품는다는 것은 그 어느 불사자도 경험 할 수 없는 오직 제사장의 시녀만이 가진 축복이니라.

시녀는 오늘도 재의 귀인이 가져다줄 누군가의 재를 생각하며, 제사장 한켠에 가만히 앉아 발만을 동동 굴리고 있었다. 시녀로써의 삶은 비록 적막하고 지루하기 짝이없는 나날이지만, 재의 귀인이 모험길에 오를때면 그가 가져다 줄 차갑게 식은 재를 생각하며 지루함을 지워나갈 수 있었다.

사실 제사장에서의 삶이 그렇게 적적한것은 아니었다. 가끔이지만 재의 귀인이 여행길에서 돌아올때면 종종 신기하고 우스꽝스러운 인물 들을 종자로 삼아 함깨 제사장으로 돌아오기에, 시녀는 자신의 말벗도 여럿 얻게 되었다.


그래이렛은 그런 그녀의 말벗중 하나로, 언제나 자신의 도둑질을 무용담 말하듯 늘어놓고는 했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그가 안보이는군... \"

혼잣말을 지껄이고 나서아 시녀는 그래이렛이 얼마전 그 위대하신 도둑질을 하러 로스릭 성으로 향한것을 생각해냈다.

그놈의 헛소리도 막상 안들리게 되니 적적하구만... 이런 생각이 들때쯤, 화톳불에서 한순간 불이 일더니, 안개와 함깨 재의 귀인이 나타났다.


\"오랜만이오 시녀. 네 급한일이 있어 여행길 도중 찾아왔소\"

격렬한 전투의 흔적을 온몸에 두른 재의 귀인은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시녀에게 말했다. 그가 입은 갑옷은 구겨지고 찢어져 걸레가 되어있었고 군데군데 화살이 박힌 흔적도 보였다. 필시 로스릭성을 지키는 적들의 맹공을 받아냈으리라


\"잘왔네 재의귀인. 허나 지금 귀인에게 필요한건 내가 가진 재의 양식이 아니라 안드레이의 손길로 보이네만, 안드레이는 뒷편에서 자네를 기다리니 얼른 가보는것이 좋을걸세\"


\"허튼소리 그만하고, 얼른 이거나 받아가시오\"


시녀의 물음에 재의 귀인은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고통으로 덜덜 떨리는 손으로 뒷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내줬다.


\"....! 귀인...이건..?\"


그가 꺼낸것은 시녀가 바라 마지않던 \'재\'임은 분명했다. 허나 그것은... 꺼진지 얼마안된, 아직 불꽃이 머물러있는 따끈따끈한 재였다. 도대체 그는 이 재를 어디서 주운 것일까


\"아아 이건... 방금 살아있었던 것 마냥 따끈따끈 한 재구나, 아니지 아니야 귀인 만큼은 그런 일을 저지를 리 없지 ...\"


시녀의 소감을 들은 귀인은, 갑자기 미친듯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시녀. 지금 뭐라고 그랬소? 설마 이 나를 의심하는 것이오?\"


이제서야 말실수를 했음을 깨달은 시녀는 자세를 고쳐잡고 그를 달랠말을 골랐다.

\"아닐세 귀인. 자네가 그런..일을 할 리가 없지 않는가? 다만 그저 재에서 온기가 느껴졌기에 약간 놀랐을 뿐이네만, 귀인을 의심하는 것으로 들렸으면 내 사과하지\"


시녀의 사과를 들은 귀인은 웃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떨어뜨린채 한숨을 푹 쉬었다. 그는 가느다란 눈을 길게 치켜띄운후 입을 열었다.

\"이보게 시녀. 그때가 생각나는군, 내가 이 텅 빈 제사장에 홀로 왔을때가 말이지.\"

\"갑자기 옛 이야기라니, 귀인은...\"

\"이 빌어먹을 제사장에 홀로 와 나선검으로 톳불을 밝혔지... 그후 로스릭의 높다란 성벽을 누비며 미친 광견을 잡았소... 정신나간 파수꾼들과 챙이 넓은 모자를 쓴 할망구들에게 쫒겨도, 그 빌어먹을 호드릭이 내 목숨을 노려도, 난 굴하지 않았지\"


\".....\"


\"온통 독으로 들끓는 역겹기 짝이없는 늪지대를 지났지. 시녀여. 당신은 생전 그런 불사자를 본적이 있소? 우스꽝스런 꼬깔모자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는 자신들을 장작의 왕이라 칭하는, 형편없는 가죽옷만을 입고 한손으로 특대검을 휘두르는 정신병자들 말이오... \"

\".......\"

시녀는 귀인이 도대체 왜 이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과거사를 혼자 떠벌거리는지 이해 할 수 없었지만, 격분하고 있는 그를 상대하려면 잠자코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무수한 쓰레기들을 도살하고나니, 어느세 거인 욤까지 제 자리로 돌려놓게 되었소. 그리고 이제는 그 로스릭성에 도달했지. 시녀여. 난...난말이오... 당신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른것이오. 알겠소? 단순히 힘의 격차를 말하는것이 아니오... 당신은 몰라... 그냥 이 평화로운 제사장 한켠에서 한가롭게 죽음을 기다리는 당신은...알 수가 없는 것이오... 그 공포를... 알겠소..?\"

\"...귀인...?\"

\"닥치시오...! 닥치란 말이오!!....\"

점차 격한 숨소리와 함깨 부들부들 떠는 귀인이 걱정되 시녀는 침묵을 깨고 말을 걸어봤지만, 귀인은 단박에 말을 끊었다.


\"당신은 몰라... 그 미친 광령들을....그건 사람의 생김세가 아니야...
심연...그래. 심연 그 자체가 목 위에 달려있지...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그런것들이, 내 잔불을 쫒아 달려온단 말이오....!  그 어떤 장작의 왕을 마주해도 이런 공포는 느끼지 못했소.  그 어느 저주받은 고성을 가도, 죽고 남은 뼈다귀가 넘실거리는 지하묘를 가도, 벌받은 불이 휩쓸고간 옛 나라의 폐허를 가도, 그것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난...어쩔수가 없었소...어쩔수가....\"


\"...귀인...? 이제 그만 진정하게. \"


이내 닭똥같은 눈물을 두 눈가에서 줄줄 흘리는 귀인. 시녀는 그런 그의 모습에 그저 당혹감을 감추고 위로 해줄 수 밖에 없었다.


\"그냥...그렇게 쫒기고 있을때... 무언가가 내 앞길을...  그래...! 쓰레기같은 복면을 뒤집어쓴 노예...! 그것이 내 앞길을 가로막고 있었소... 난 그걸... 롱소드로 한번 배어냈을 뿐이오. 딱 한번... 어.. 어차피 노예는 다같은 노예 아니겠소??  복면을 썻다는건, 곧 자신은 죽어야 할 존재라고 말하는것과 같은 뜻이오...  거기다, 그곳은 로스릭 성이었소. 사람 잡아먹는 로스릭성 말이오. 이곳에 오는 모든 미물은 영원한 죽음을 각오하고 온단 말이오...! \"


\"...귀인...? 지금 무슨 말을...?\"


광분하며 뜻모를 헛소리를 마구 지껄이는 귀인을 보다못한 시녀는 그의 말을 가로막고 그 뜻을 물어봤다. 그러자 그는 부르르 떨던 몸을 부여잡고 파르르 떨던 고개를 일으켜 세운뒤, 가슴을 피고는 다시 떠벌거리기 시작했다.


\"이보게 시녀. 아직도 내가 무슨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난 말이오. 하루빨리 왕의 목을쳐 불의 계승을 해야할 재의 귀인이란 말이오. 용사는 하루아침에 강해지는것이 아니오. 수많을 고난과 역경을 딛고 무수한 희생을 치루고 나서야 비로서 달성할 수 있는 위업이지. 그러니 얼른, 잔말말고 내가 준 재를 양식으로 삼으라 이말이오. 알겠소?? \"


결국 별거아닌 평소의 부탁이었군...  다만 로스릭 성에서의 전투로 인해 잠시 광분한 것이리라. 그리 판단한 시녀는 잠자코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귀인의 뜻이 그러하다면 그리하지. 귀인이 준 재를 양식으로 삼겠네. 잠시 기다리게...\"

그가 준 재를 양식으로 삼는 제사장의 시녀. 그리고 그녀의 소울에 깃든것은, 유혹하는 해골과 벼락항아리, 그리고 폭렬볼트와 파열볼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