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욱한 안개 너머로 갓태어난 자신들을 안아든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황금빛 베일이 내린 침실, 그곳에서 이제 막 출산을 끝낸 마리카가 온화하게 웃으며 쌍둥이 아기 둘을 품에 안고 있었다.

주변의 가신들 모두 미소가 만연한 표정이었고 첫 왕 고드프리 또한 세로시의 갈기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기쁜 분위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보자기에 감싸져 있던 아기들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아름답던 그 미소가 마리카의 얼굴에서 사라지고 창백하게 질려 이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고 마리카의 변화를 감지한 고드프리 또한 미소를 거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고드프리가 예상한 대로, 마리카는 보자기로 감싸인 두 아기를 벽으로 힘껏 던져버렸다. 다행히 사태를 예감한 고드프리와 세로시 덕에 무사히 아기들을 받아들 수 있었지만, 고드프리는 무시무시한 얼굴을 한 채로 마리카에게 고함을 질렀다.

아기들이 울음을 터뜨렸고 세로시의 명으로 시종들이 서둘러 아기들을 받아들고 규방을 나섰다. 방 안에선 여전히 고드프리와 마리카의 고함소리가 울려퍼져나왔다.

아기들은 그렇게 세상의 빛을 처음 내리쬔 그 순간 버려졌다.



장면이 전환된다.

로데일 지하대수로의 입구.

수 많은 가신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육중한 문이 열렸다.

어린 모그는 울고 있었고 그 모그의 손을 꼭 잡은 어린 모르고트는 슬픈 눈빛으로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고드프리를 바라보았다.

고드프리는 무릎을 꿇고 모르고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미안하다, 모르고트… 나의 아들아. 내 힘으로는 네 어머니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모르고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살살 가로저을 뿐이었다. 그에 고드프리는 힘겹게 웃었다.

”넌 언제나 자신이 아닌 상대만을 생각하는구나… 가엾은 나의 아들.“

”…“

모르고트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태생을, 끔찍한 흉조의 운명만을 저주할 뿐이었다.

”부디 알아주었으면 하는게 있다, 모르고트. 네 어머니에겐 그럴만한 사정이 있고 그 이유를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것이 오히려 너를 더 힘들게 할 뿐이라는 사실을 네가 알아주었으면 한다. 그러니 부디 원망과 증오의 화살은 어머니가 아닌 내게 돌려주었으면 한다.“

모르고트는 또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참고 있던 눈물이 뿔이 자라나기 시작한 뺨 위로 흘러내렸다.

이윽고 육중한 문이 다시 닫히기 시작했고 그 냄새나는 지하수로 앞에 위태롭게 서 있는 쌍둥이 형제에게 고드프리는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네가 어디에 있든, 네가 누구든 너는 나의 아들이다. 그 사실을 잊지말거라.“



다시 장면이 바뀌었다.

옥좌에 턱을 괸 채로 앉아있는, 이제는 늠름한 모습을 한 모르고트와 그 앞에 모그 그리고 그를 따르는 가신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기묘한 것은 모르고트는 옥좌에 어울리지 않는 허름한 망토 하나만을 걸치고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고 반면 모그는 그와 대비되는 황금빛 장식이 달린 화려한 옷을 입고 있었다.

“폐하, 주어진 명을 해냈나이다.”

그 말에 모르고트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진다.

“모그… 보는 눈이 없을 땐 분명 폐하라고 부르지말라 했을텐데. 나는 그저 섭정일 뿐이다.”

“하하… 폐하 아니 형님. 온 세상이 형님을 위대한 축복왕이라 칭송하고 있소. 그럼에도 형님께선 아직도 그 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외까?”

“그래, 그건 분명 기쁜일이다. 허나 왕이라는 역할은 어디까지나 이 전쟁을 이기기 위한 계책일 뿐, 인정받지 못한 자가 왕이 될 수는 없다.”

모그는 눈을 날카롭게 치켜뜨며 모르고트를 올려다보았다.

“왕은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하는 것이오, 형님. 일찍이 우리의 아버지신 선왕 폐하께서 그리하였듯… 형님께선 왕이 되실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되오.”

“그만, 그만하자꾸나. 이 자리는 너의 공을 치하하기 위한 자리지 논쟁을 하기위한 자리가 아니다.”

모르고트는 애써 자신에게 답답함을 호소하는 모그의 눈길을 피했다.

”어찌하였든 모그, 이번 너의 계략을 통해 연합군이 쉽게 와해되었다. 그 공을 치하하는 의미이자 사전에 약조했던대로 너의 왕조건립과 더불어 자치권을 인정해주겠다.“

”형님, 그런 약조가 아니었어도 저는 형님을 도왔을 것이오. 우리는 같은 운명을 타고난 쌍둥이 아니외까.“

모르고트는 물끄러미 모그의 얼굴에 흉측하게 자라난 뿔들을 쳐다보았다. 

어떻게든 저주의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던 자신과는 달리 하나뿐인 소중한 동생은 그 저주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그로써는 차마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원죄와도 같았다. 그 시선을 느낀 것인지 모그는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형님께선 아직도 증오하고 있는 것 같소. 흉조를!”

“그래 모그, 흉조는 저주다. 끔찍하고 뒤틀린 죄악과도 같다. 무엇보다 황금나무에 반하는 그것을 나는 용납할 수 없다.”

모르고트의 말을 끝까지 들은 모그는 참고 있던 분노를 터뜨렸다.

“또 그 빌어먹을 황금나무 이야기군. 형님께선 언제까지 우릴 버린 황금나무를 찬양할 작정이오? 어째서 흉조가 저주란 말이오!!!”

“모그, 언성을 자제하거라.”

“애초에 형님의 마음이 나약하지 않았다면 이 틈새의 땅은 물론 그 위대한 엘든링을 손에 넣고 수복하는 것 또한 시간문제였을 거요! 어째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오, 우리!!! 흉조를!!!”

“입닥쳐라!!!”

모르고트의 눈빛이 번쩍이며 무시무시한 고함이 장내를 강타했다. 그 분노의 외침에 폭풍처럼 몰아붙이던 모그가 움찔하며 기세가 팍 깎여나갔다.

“두 번 다시 내 앞에서 황금나무를 모욕하지 말 거라. 부디 내 손으로 사랑하는 동생을 처벌하지 않게 해다오. 부탁한다…”

“…”

모그는 뭐라 더 말하려 했으나 이내 방을 빠져나갔다.

모르고트는 이마에 손을 짚고 몰려오는 두통을 잠재우려 노력했다.

“죄송합니다, 모르고트님. 저의 주군께서 그만 무례를 저질렀나이다. 부디 용서를…”

그때까지 잠자코 무릎을 꿇고 있던 모그의 가신이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모르고트는 그 가신을 바라보았다.

“그대가 대신 사과할 필요는 없다. 나의 아우는 원래부터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했으니…”

“그 넓은 아량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나이다.“

그 말엔 한치의 가식도 느껴지지 않았다. 모르고트는 그에게 묘한 호감을 느꼈다.

”그대는 안스바흐… 였던가.“

안스바흐라 불린 가신은 더욱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위대하신 데미갓께서 저같은 일개 노병의 이름을 기억해주시다니… 그저 황송할 따름이옵니다.“

”겉치레는 되었다. 그대의 무훈은 익히 알고 있지. 그대의 활약 덕에 이 전쟁의 승기를 가져올 수 있었네.“

”당치도 않사옵니다. 그저 저의 주군께서 이 쇤네를 적재적소에 활용해주신 덕분이지요.“

”하하하 그대는 정말로 겸손하군…“

모르고트로써는 정말로 오랜만에 지어보인 진실된 미소였으리라.

”그대가 있다면 모그도 안심이겠군. 부디 나의 못난 동생을 잘 부탁하네, 안스바흐 경.“

안스바흐는 다시 한번 깊이 고개를 조아린 후 방을 나섰다.

“부럽구나 동생아…”

작게 중얼거린 모르고트는 옥좌에서 일어나 그 위에 자리잡은 거대한 황금나무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인정받고 싶은 순간도 사랑받고 싶은 순간도 분명 있었다. 그러나 이제와선 모르고트는 그 모든 희망과 기대를 잊기로 했다.

그저 이것이면 되었다. 그 찬란한 황금나무를 지킬 수만 있다면, 그저 이렇게 가만히 올려다볼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이 흉조의 몸뚱아리에겐 그것마저 과분한 것이니.



“으음…”

모르고트는 이윽고 잠에서 깨어났다. 그의 앞엔 날카롭게 자라난 거절의 가시가 펼쳐져 있었다.

“하하… 이건 꿈이 아니로구나.”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가시에 살짝 손을 대었다. 손가락에서 피가 베어나왔다.

그때 그리 낯설지 않은 기척이 옥좌의 방으로부터 느껴졌다. 모르고트는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일어섰다.

손님인가,

아니 이건 다르군.

모르고트는 옥좌로 이어진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며 실로 오랜만에 잠들어있던 투지를 일깨웠다.

거절의 가시 틈 너머에서 뿜어져나오는 황금빛이 그의 볼품없는 망토를 비추고 있었지만 모르고트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 dc official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