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일부 설정오류가 있을 수 있으나 문학적 허용입니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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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크벨트는 급히 재의 귀인을 불러세웠다.

"잠깐 기다리시게, 귀공. 장작의 왕, 거인 욤은 그야말로 고강한 존재... 나에게 생각이 있다네."

그러더니 지금껏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등짐을 풀어냈다.
그것은 붕대에 쌓여있었기에 정체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길쭉한 형상으로 보아 검의 종류라는 것만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
"귀공. 이것이야말로 욤에게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오. 또한 욤과 나의..."

마지막 약속이기도 하지.
뒷말은 조용히 삼켰다. 굳게 마음을 먹고 재의 귀인을 뒤쫒아왔으나 지금 당장이라도 마음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재의 귀인의 발목을 붙들 수는 없을 뿐더러... 더는 지크벨트 자신에게도 시간이 없었다.
오랜 여정과 사명의 무거움에 지크벨트의 정신도 부스러기가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욤은 홀로 자신의 옥좌에 앉아 있을 것이오. 그가 우리를 발견한다면..."

지크벨트는 그의 붕대 더미를 굳게 쥐었다.

"나에게 조금만 시간을 벌어줄 수 있겠소?"

재의 귀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등짐에서 거대한 방패를 꺼냈다.

마침내 문을 열어젖히고... 거대한 왕궁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한때 번영했던 도시를 나타내는듯 무수한 재보들이 왕궁 전체에 그득했다. 전부, 이 멸망한 도시의 주민들의 물건이었다.

그러나 지크벨트도 재의 귀인도, 그런 부수적인 것들은 눈에 담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는 오직 이 거대한 왕궁의 끝, 왕의 옥좌에 앉아 있는 거대한 존재만이 담겨있었다.

장작의 왕,
죄의 도시의 고독한 군주,
거인 욤.

그는 소름끼치도록 무덤덤한 눈빛으로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욤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쟁의 군주.
녹슬고 이가 빠진 상태였지만 그의 거대한 도끼는 충분히 폭군의 형상이었다.

재의 귀인은 잔뜩 긴장한 상태로 그의 방패를 내세우고 전투의 준비를 했다.

저벅- 저벅-

그러나 재의 귀인 앞으로 지크벨트가 먼저 나섰다.
지크벨트의 눈에는 지금, 오직 욤만이 들어와있었다.

"욤, 내 오랜 벗이여."

지크벨트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은 상태로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떨림은 두려움 탓이 아니었다.
폭발하기 직전, 임계 상태의 화약이 그러하듯이, 그의 목소리에는 온갖 감정들이 잔뜩 억눌려있었다.

==========

아주 오래전,
욤이 장작의 왕이 되기 전,
이 파괴된 도시가 번창했던 시절의 어진 군주이자,

지크벨트의 최고의 벗이었던 때.

장작의 왕이 되기 위해 불의 계승식을 준비하던 욤은 비밀리에 지크벨트를 불러냈다.

"나의 오랜 벗, 지크벨트여, 나와 한가지 약속을 해주게나."
"나에게 왕위 계승이라도 부탁하려는겐가, 허허."

지크벨트는 이 농담을 모르는 벗이 무슨 장난이라도 치려나 싶어 호탕하게 웃었다.

"반드시 자네여야만 하는 부탁이네. 또한 자네만이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이라네."
"무엇이기에 이리도 진지하단 말인가. 들어나봅세."
"이것을 받아주시게."

욤이 건네준 것은 형편없는 상태의 대검이었다.
검신은 부러진듯 균형이 안 맞았고, 대검의 중간에는 뾰족한 패링훅 같은 돌기가 돋아있었다.
손잡이에 감긴 가죽에서는 곰팡내가 났고, 검받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끔찍한 물건이었다.

"...?"
"그 검의 이름은 스톰 룰러. 폭풍을 두르고 거인을 베어넘기는 신기이자 마검이라네."
"거인을... 말인가?"

순간 섬뜻한 생각이 지크벨트의 머리속을 스쳐지나갔다.

"친우여, 내가 지금부터 부탁하려는 것은 너무나도 무겁고, 너무나도 잔인한 의무라네."
"그만, 그만! 듣고 싶지 않다!"

지크벨트는 귀를 막았다. 욤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잔인할지 깨닫고 말았다.
그러자 욤이 몸을 숙여 지크벨트와 시선을 맞추었다.

너무나도 순박한 시선.
이 커다랗고 미련한 친구는, 그저 사람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이 도시의 군주가 되었다.
그리고 그 어진 마음씨로 백성을 돕고, 외적으로부터 도시를 지키는 방패이자 검의 역할을 해냈다.

지크벨트는 자기도 모르게 귀를 막고 있던 손을 내렸다.

"...말해보시게."
"내가, 이 욤이 만일 천의 하나, 혹은 만의 하나의 경우라도 백성을 위하지 못한 경우가 생긴다면...!"

그리고는 자신의 가슴을 강하게 퉁- 하고 쳤다.
충격파에 지크벨트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그 검으로 나의 육신을 베어주시게."

너무나도 아픈 말이 지크벨트의 마음을 찔렀다. 지크벨트는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내 손으로 말인가?"
"그렇다네."

욤을 허리를 일으켰다. 자연히 지크벨트의 시선도 하늘로 향했다.

"불의 계승을 준비하면서 때때로 환상을 본다네. 장작의 왕이 되어 이 도시로 돌아오는 환상을. 그러나 나는 잘 모르겠네. 그때도 나는 어진 군주인 욤일 것인가?"
"..."
"그러니 자네에게 부탁함세. 나를 죽여 재앙을 막아주시게."
"...알겠네."

지크벨트는 무거운 마음으로 대답했다. 그의 마음을 아는지, 욤이 호탕하게 웃어보였다.

"너무 걱정은 하지 말게나, 친우여. 내가 만의 하나라고 하지 않았나. 이 욤이 선군이 아닐리가 있겠는가!"

...
그랬을 터였다.
분명 그랬을 터였다.

지크벨트는 억겁과도 같은 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욤이 그 자신의 말대로 장작의 왕이 되어 돌아온다면, 욤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고 그와 반가운 재회를 하거나... 혹은 쓰러뜨리기 위해.
지크벨트의 사명은 오직 그뿐이었다.

마침내, 세상의 끝이 도래하기 직전, 기적처럼 장작의 왕들 중 일부가 살아돌아왔다.
그의 벗, 욤도 그 중의 하나였다.

욤이 부활했다는 소식을 듣고 지크벨트는 욤의 행적을 수소문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풍문은 선군 욤이 아닌, 폭군 욤에 대한 내용뿐이었다.

때문에 지크벨트는 찢어지는 마음으로 여로에 올랐다.
그리고 지금, 마침내 그의 사명의 끝에 도달했다.

==========

"욤, 내 오랜 벗이여..."

지크벨트의 말이 왕궁을 울리자 욤이 그 방향없는 시선을 지크벨트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의 거대한 도끼를 딛고 그의 옥좌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욤 또한 그의 오랜 벗을 맞이하겠다는 것일까.

"나, 카타리나의 기사, 지크벨트. 약속을 다하고자 여기 왔다네."

그리고는 붕대에서 나와있는 손잡이를 잡았다.

그랬다.
이것이야말로 스톰 룰러.
그의 벗, 욤과 맺은 약속이자, 지크벨트의 사명 그 자체였다.

"장작의 왕에게 태양 있으라!"

기함성과 동시에 붕대가 터져나가며 낡은 검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전과 다른 점은, 그 낡은 검신에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의 바람이 모여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귀공, 내게 시간을!"

동시에 재의 귀인이 지크벨트의 앞으로 뛰어들었다.

쾅-!
공성포가 성문을 후려친듯한 소리와 함께 재의 귀인이 튕겨져 나갔다.

아무리 재의 귀인의 기량이 뛰어나다 한들,
아무리 대방패가 단단하다 한들,
욤의 도끼는 그 길이만도 10여 미터에 이르렀다.

때문에 재의 귀인이 방패를 비스듬하게 받쳐 충격을 최대한 완화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도끼의 여력에 날아가고 말았다.
왼팔이 부러진듯 했으나, 불사자답게 재의 귀인은 곧바로 자세를 회복하고 욤에게 달려들었다.

카드드드득
도끼가 방패를 훑고 지나갔다. 방패가 움푹움푹 패여나갔다.
몸이 직접 닿지도 않았음에도 재의 귀인의 온 근골과 내장도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쉽게 방패가 뚫리지 않자, 욤이 양손으로 도끼를 잡았다.
동시에 재의 귀인의 머리에는 죽음의 이미지가 스쳐지나갔다.

우직-
마치 유성이 떨어지는듯한 기세와 함께 도끼가 대방패를 두토막치고 바닥으로 떨어져내렸다.
동시에 먼지와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먼지 구름 속에서 빛나는 한 쌍의 붉은 눈, 거인 욤은 그야말로 폭군이었다.

재의 귀인은 어찌어찌 죽지는 않았지만, 방금의 일격으로 큰 충격을 받은듯 아직 자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욤이 그를 마무리하기 위해 도끼를 들어올린 그 순간,

"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욤이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폭풍을 감은 스톰 룰러와 지크벨트가 있었다.

순간 욤과 지크벨트의 시선이 마주했다.
저 끔찍한 붉은 눈은, 절대 저래서는 안 될 터였다. 세상에서 가장 순박했던 눈일 터였다.
지크벨트는 욤을 향해 스톰 룰러를 내리쳤다.

그리고 세상의 소리가 멈추었다.

곧이어 스톰 룰러에서 해방된 거대한 폭풍의 칼날이 욤을 덮쳤다.

연약한 풀은,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폭풍을 견뎌낸다. 바람에 순응하여 버틴다.
그러나 거목은, 거목은 폭풍에 맞서다가 그 커다란 몸통이 통째로 꺾이고 만다.

때문에 이 검의 이름이야말로 스톰 룰러.

거인 살해자이자, 폭풍의 왕.

콰과광-!!
욤을 베어내고 남은 폭풍의 여세가 왕궁의 천장까지 뻗어 구멍을 내고, 왕궁 전체를 휩쓸었다.
곳곳에 쌓여있던 금은보화가 무너지는 소리가 멀게 느껴졌다.
순간적인 기압 변화가 청각에 문제를 일으킨 모양이었다.

마침내 먼지가 가라앉고, 거대한 인영이 무릎을 꿇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왼쪽 허리까지, 거대한 짐승이 활퀴고 지나간듯 흉하고 싶은 상처가 생겨났다.

결판이 난 것일까.
지크벨트는 무릎을 꿇고서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오오, 욤... 아아..."

타닥... 타닥...
그런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이 소리는 뭘까.
흡사 나무를 불에 태우는듯한 소리.

그때 재의 귀인이 지크벨트에게 달려들었다.
철이 부딪히는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두 남자가 볼성사납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귀공, 이게 무슨 짓..."

재의 귀인이 지크벨트의 머리를 누르는 것과 동시에 불길이 그들을 휩쓸었다.
장작의 왕, 거인 욤.

스톰 룰러의 일격에 숨이 끊어지지 않은 그는, 이제 몸에 장작의 왕의 권능을 둘렀다.
잔불이 온 몸에서 피어오르며 스톰 룰러로 인해 생긴 거대한 상처를 매꾸기 시작한다.

-크르르르르...

선홍빛 죄의 불꽃과 주홍빛 최초의 불꽃이 어지러이 뒤섞이며 사방으로 흘러나갔다.
지크벨트와 귀인은 기둥 뒤로 도망쳐 불꽃을 피했다.

"귀공, 내가 다시 한 번 시도해보겠소."

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로써도 저 거대한 괴물을 어찌 상대해야할지 감이 안 잡히던 바였다. 특대검을 들더라도 욤에게 생채기나 낼 수 있을 것인가?

카드드득
그 순간 기둥이 절단나며 파편이 뿌려졌다.
욤의 도끼가 기둥을 통째로 부수면서 그들에게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귀인은 잠깐 지크벨트를 바라보고 욤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검이 거칠게 움직이며 욤의 다리를 긁었다.

캉!
그러나 바위에 검을 내리친듯 제대로 검격이 들어가지 않았다. 고룡의 바위비늘에 버금가는 엄청난 방어력이었다.
그래도 귀인은 당황하지 않고 욤의 다리 사이로 굴러들어갔다.
어차피 그는 미끼, 지크벨트가 그 특수한 기술을 준비할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된다.
욤도 자신의 바로 밑은 공격하기 어려운지 큰 공격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으아아아!!

그러다 성질이 났는지 욤이 포효하며 다리를 크게 들어 땅을 굴렀다.

쿵-
지진과도 같은 충격이 왕궁을 휩쓸며 귀인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귀인이 죽음을 떠올리는 순간.
동시에 욤의 주먹이 귀인의 몸에 적중했다. 압축된 불꽃이 폭발을 일으키며 왕좌 쪽으로 귀인이 튕겨져 나갔다.

"귀공!"

지크벨트가 소리쳤다. 귀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설마 죽었나?
자신이 이 스톰 룰러의 힘을 과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흐압!

지크벨트가 기압을 넣었다. 그리고 마침내 폭풍이 검신을 타고 요동쳤다.

내리친다.
대기를 갈갈이 찢어놓으면서 폭풍의 칼날이 다시금 욤에게 작렬했다.
그러나 지크벨트는 보았다.
그 거친 폭풍 속에서 욤은 폭풍의 왕을 몸으로 버텨냈다. 폭풍이 잔불을 거의 꺼뜨릴 기세였지만 그럼에도 욤은 무덤덤하게 공격을 받아냈다.

"방법이... 없는겐가..."

가라앉는 폭풍 사이에서 욤의 붉은 두 눈만이 흉흉하게 빛날 뿐이었다.
지크벨트는, 마음이 꺾였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서 오는 절망감 따위가 아니었다.
친우와의 마지막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과, 때문에 욤에게 드는 죄책감 뿐이었다.

"미안하네... 미안하네, 내 벗이여... 미안하네..."

지크벨트는 공허한 말투로 미안하다는 말만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의 마모된 정신이, 마침내 완전히 붕괴되기 시작하였다.

욤은 지크벨트를 양손으로 잡아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갑옷째로, 눌러 짜부라뜨리기 시작했다.
온몸이 산산조각나는 고통 속에서 지크벨트는 욤과 눈을 마주쳤다.

"혹여 이것이 약속을 다하지 못한 나에 대한 원망이라도 좋네."

지크벨트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불사자가 된 이후 울었던 적이 있던가?

"자네의 나라가, 백성이 전부 없어져 얼마나 슬펐겠는가... 난 전부 이해할 수 있네. 그러니 여기서 날 죽여 그 울분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게나."

누구보다도 선했던 욤이다. 그가 느꼈던 슬픔이, 절망감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조차 안 갔다.

"난 죽어 망자가 되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더라도,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자네 곁에 있겠네."

욤의 악력에 내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올듯 하였다. 지크벨트는 핏물을 삼키며 마지막 말을 뱉었다.

"그러니... 이제 더 이상 외로워하지 말게나."

그리고 폭발이 일어났다.

지크벨트는 튕겨나가 바닥을 굴렀다.

'뭐지...?'

그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자 욤의 뒤편, 왕좌 쪽에서 스톰 룰러를 든 재의 귀인이 눈에 들어왔다.

생각해보면, 이 왕궁 전체에 쌓인 물건들은 전부 도시 주민들의 유품이었다.
누가 이 물건들을 가져왔겠는가.
바로 욤이, 백성들을 사랑했던 욤이 자신의 백성들을 기리고자 온 도시에서 끌어모은 것들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이 자기 백성에게 주었던 약속과 믿음의 증표를 다시 가져오지 않았을 리가 없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자기를 죽일 수 있는 검을 건네주었다.
자기가 혹 왕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언제든 목을 치라고.
욤은 그런 사내였다.

멸망한 도시에서, 그 스톰 룰러를 보며 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필시 후회하고, 또 후회하며 사고가 정지할 때까지 죽은 자기 백성들에게 사죄했으리라.

그리고 지금 그 스톰 룰러는 욤이 바라던대로, 그를 베기위해 폭풍을 발했다.

욤의 거신이 크게 흔들리고 잔불이 일순간 꺼졌다. 지크벨트는 자신의 스톰 룰러에 몸을 기대어 간신히 일어났다.

"귀공..."

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지크벨트도, 무엇을 해야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
검신에 폭풍이 둘러지고, 검이 부서질듯이 요동쳤다. 검에서 흘러나오는 극히 일부의 바람조차 서있기조차 힘들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욤은 고함을 지르며 불꽃을 일으켰다. 죄의 불과 장작의 불이 섞인 불길이 그의 몸을 보호하듯 뒤엉켰다.

"약속을 지키겠네, 나의 오랜 벗이여."

그리고 두 개의 검이 동시에 폭풍을 쏘았다.

그렇다. 본래 폭풍은 2번 치는 법.

장작의 불도, 죄의 불도 폭풍의 왕에 밀려 꺼지고 말았다. 동시에 왕궁이 충격파에 휘말려 무너졌다.
태양의 창도 우습게 보이는 어마어마한 위력에 욤이 무릎을 꿇으며 피를 토했다.

"욤..."

지크벨트가 나지막히 친우의 이름을 불렀다. 친우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니 가슴이 미어졌다.

재의 귀인이 그 틈에 욤의 등을 타고 올라갔다. 그의 스톰 룰러에는 어느새 폭풍이 감돌고 있었다.

그때 욤이 입을 열었다.

"...! ...!"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뭔가를 말하려는듯 연신 입을 뻐끔거렸다. 지크벨트는 급하게 재의 귀인을 불렀다.

"기다리시게, 귀공! 잠시만, 잠시만 시간을 주시게!"
"거절한다. 놈을 죽이려면 지금 말곤 기회가 없다."

어느새 욤의 몸에선 꺼졌던 죄의 불꽃이 다시 일어나고 있었다. 그의 갈라진 피부틈으로 선홍빛 불빛이 조금씩 세어나왔다.
분명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욤이 힘겹게 손을 뻗었다.
지크벨트는, 그 손길에 적의를 느낄 수 없었다.

"욤..."

지크벨트가 애타는 목소리로 그의 벗을 불렀다.

그리고 차갑고 무감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장작을 회수한다."

귀인의 검이 폭풍을 쏘았다.
영거리에서 내리쳐진 폭풍의 왕.
그것은 욤의 목덜미를 파고들어 그 두꺼운 가죽을, 근육을, 뼈를 끊어냈다.

그리고 그 거대한 머리가 굴러떨어졌다.
참수.

지크벨트에게 닿기 직전이었던 그 커다란 손도 움직을 멈추었다.
그리고 재가 되어 흩날려 사라졌다.

"...세번째 장작의 왕, 거인 욤의 장작을 회수했다."
"..."

곧이어 귀인이 황금빛 섬광과 함께 욤의 머리를 들고 사라졌다.

지크벨트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미안하네. 미안하네 욤. 그대의 숨통을 끊은 것이 내가 아니여서 정말 미안하네.
나는 끝까지 무엇하나 제대로 하는게 없구먼...
이 못난 나를 용서해줄 수 있겠나...?

초점을 잃은 그의 눈이 허공을 보았다.
사명을 잃은 그의 몸이 조금씩 재가 되어 바람과 함께 하늘로 쓸려나갔다.

=========

"이보게, 욤."
"무슨 일인가 벗이여."

지크벨트와 욤은 번창한 도시 가운데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지크벨트가 가문의 비전 양조법으로 담구어낸 비장의 술이었다.

"자네는 이제 무엇을 하려는가?"

강고한 전사였던 그의 친우는 성군이 되어 도시를 다스렸다. 지크벨트는 친구의 앞으로의 모습이 궁금했다.

"글쎄, 백성들을 안전하고 편하게 살게 하려면 할 일이 무척 많겠지. 앞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쁠걸세."
"역시 그런가?"

지크벨트는 조금 툴툴거렸다. 친구가 왕이 된 것까지는 좋으나, 너무 바쁜 탓에 이렇게 술 한 잔 하기도 힘들어졌다.
그의 불만을 알아챘는지 욤이 호방하게 웃었다.

"너무 그러지 말게 친구여, 하하하!"

그리고는 커다란 잔을 들어올렸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하더라도, 이 욤은 언제나 자네의 벗이라네!"

그 말에 지크벨트의 얼굴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자신의 친우는 이런 녀석이었다.
지크벨트도 자신의 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나 또한 언제까지고 그대의 벗이라네. 건배하세!"
"건배!"

잔이 부딪히며 술방울이 튀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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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대무기는 쓰레기였다. 
부직과 비슷한 존재였다. 
아니, 하다못해 부직은 방패와 같이 들면 대쉬뒤잡이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특대무기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