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점자성서에는 플레이어 빛 바랜 자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플레이어 빛 바랜 자와의 행적의 차이는 의도된 바입니다.

고어, 보어, 료나 및 정신적 붕괴를 비롯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독성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


  "사기네," 카냐가 단언했다.

  그녀 앞에 쪼그려 앉은 대머리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
다. "믿는 건 네 맘이지, 뭐. 후회하지나 말라고."

  카냐는 이미 스스로를 '깨끗한 상인'이라 자칭하는 건달, 패치에게 몇 번이고 속아왔다. 그녀가 입고 있던 하얀 천 옷은 쓰레기 같은 단검과 맞바꿨고, 미안하다며 받은 방어구 역시 시체 썩는 내가 진동하는, 채워넣은 솜이 다 빠져나간 누더기 갑옷일 뿐이었다.

  그나마 그가 실제로 룬을 받고 파는 것들은 비싸긴 해도 대부분 쓸모가 있었기에 차마 목숨으로 변상하라 하진 못했지만, 이제 와서 그가 푸는 정보를 믿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까, 레아 루카리아 학원 밑 바닥에 사람을 썰어먹는 인형이 있고, 그 인형 안에서 죽으면 도읍으로 전송된다고?"

  "그렇다니까, 아가씨는 사람을 참 못 믿는단 말이지. 나처럼 믿을 수 있는 정보상이 또 어딨다고 그래?"

  카냐는 어깨에 걸친 클레이모어를 꽉 쥐어보였다. 패치는 힘줄이 도드라진 그녀의 손에 슬쩍 눈길을 주면서도 능청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내가 지금 널 속일 이유가 어디 있겠어? 마술학원에 들어갈 수도 없으니 그 소문이 가짜라 해도 네 물건을 가져갈 방도도 없다고.

  게다가 이제 와서 생긴 패치 상점의 단골 손님을, 내 손으로 그리 쉽게 사지로 내몰 것 같아?" 패치의 능글맞은 웃음이 그날따라 한 대 갈기고 싶게 생겼다 생각하는 카야였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하, 뭐. 틀린 말은 아니네. 이번은 믿어줄게. 그래도 말야..." 카냐의 얼굴이 짜증으로 일그러졌다.

  "만약 이번에도 사기여봐, 니 그 반짝이는 머리를 뽑아다 티비아의 사공한테 던져 줄 테니까.," 카냐가 으름장을 놓았다.

  죽어서도 살아날 수 있는 그녀였기에 망정이지, 목숨이 하나뿐인 자들이 패치에게 상담을 받고 있는 걸 보게 된다면 캬냐는 눈도 깜짝 않고 바로 패치의 목을 그으라고 조언했을 터였다.

***

  레아 루카리아의 밑바닥은 음침하기 그지 없었다. 학원의 엄격한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학생들은 수차에 실어 보이지 않는 밑바닥에 버린다, 라고 패치가 일러줬다. 패치답게 진위 여부는 안개 속이었지만, 분위기를 보니 소문이 틀린 것 같진 않았다.

  절거덩절거덩, 하고 무언가 굴러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공 위에 아이를 안은 여성의 조각상을 올려놓은 듯한 기계가 나타났다. 조각상에 새겨진 팔과는 별개로 사람 몸뚱이만한 원형 톱이 달린 두 팔이 인상적인 작품... 이라기보단 고문기구였다.

  저 흉물이 패치가 말한 인형임을 직감한 카냐는 다가오는 인형에게서 거리를 두며 클레이모어를 양손으로 고쳐쥐었다. 조각상의 배 부분이 문처럼 열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톱니를 피해가면서 저 문을 열도록 해야 함이 자명했다.

  카냐는 몸을 풀 듯 검을 어깨에 얹은 채 인형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일단은 녀석이 어떻게 움직일 지부터 볼까.

  인형은 대적자를 바라본 채 천천히 움직이더니 순간, 앞으로 몸을 기울여 두 톱날을 땅에 박았다. 돌진인가. 원래라면 달려드는 적은 궤도에서 벗어나는 식으로 회피하는 게 그녀가 선호하는 방식이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상황이기에 예상 궤도를 따라 뒤로 물러났다.

  아니나 다를까, 행운은 금세 찾아왔다. 한참을 달리다 카냐 앞에 멈춰선 인형이 복부의 문을 열고 그녀를 붙잡으려 했다.

  그녀가 상상하지도 못한, 살점으로 이루어진 손들이.

  순간의 망설임은 한 빛 바랜 자를 집어 삼켰다.

***

  "씨발, 씨발, 씨발!!!" 카냐는 쌍욕을 내뱉었다.

  그녀가 손들에 붙잡히는 순간, 클레이모어를 놓아버렸다. 이대로라면 나가기는 커녕, 전송된다 해도 맨손으로 보내질 터였다.

  카냐는 애써 발버둥쳤다. 몸은 뒤집힌 채 여전히 고기 손들에 붙잡혀있었고, 그걸로도 모자라 비좁기 그지없는 데다가 육벽으로 그나마도 꽉 차버린 인형의 내부는 그녀의 자랑인 근력의 사용을 원천적으로 막아버린 듯 했다. 사지에 힘을 실을 방도가 없었다.

  거꾸로 매달린 채 욕지거리를 하며 몸을 비틀던 카냐는 문득 위(바닥)을 바라보았다. 푸쉭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 했다. 상자 속 전송 함정과 같은 냄새가 났다. 그나마 로데일로는 가겠구나 싶던 순간, 철커덩 소리가 나며 연기가 멎었다. 자세히 보니, 너무 자라난 살점들이 연기가 나올 구멍을 막아버린 듯 했다.

  "좆같은 패치 새끼, 팔다리를 잘라서 귀공자들한테 던져 버릴거야! 변소나무로 돌아가 똥덩어리로 태어나라!!!" 카냐는 또다시 속았다는 생각에 몸을 격렬하게 흔들며 저항했다.

  무위였다. 오히려 내부의 손들은 희생양을 고정시키려는 듯 그녀를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으드득-

  격통과 함께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팔과 함께 쥐어 짜이던 갈비뼈가 부하를 견디지 못한 듯 했다. 폐가 있을 곳에 무언가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 입 밖으로 빠져나오는 공기는 그르륵 소리와 함께 카냐의 코와 입에 혈액을 함께 배달했다.

  카냐는 쿨럭대며 피를 내뱉었지만, 그 이상으로 폐에서의 출혈량이 많은 듯 했다. 눈 앞이 벌겋게 물들었다. 아니, 시뻘건 육벽에 둘려쌓여 있으니 정확히는 알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뜨드득-

  끔찍한 고통은 다리에서도 이어졌다. 어느새 새로 생겨난 살점의 손들에 의해 다리에 의도되지 않은 관절들이 만들어졌고, 있던 관절들은 의도되지 않은 각도로 비틀렸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피로 이루어진 거품이 힘없이 그르륵 소리를 내며 입에서 흘러나올 뿐이었다.

  다리에서부터 누르는, 그러니까 위에서부터 압력이 가해졌다. 고통이 전해지던 목에 이번엔 고통이 직접 찾아왔다.

  우드드드득...

  목과 척추의 마디마디가 연쇄적으로 부서지며 스스로 지탱하던 기도와 식도, 내부의 장기들을 직접 도륙내기 시작했다. 심장, 대장, 췌장. 카냐의 짧은 학식으로 알고 있는 이름을 가진 것들도 아닌 것들도 평등하게 자신의 뼈에 뜯겼다.

  카냐는 죽음을 확신했다. 이 정도의 끔찍한 죽음은 처음이긴 했지만, 죽음 자체는 몇 번이고 겪었다. 정신을 차리면 이 모든 게 없었던 일이 될 것이다. 한숨 잔 것처럼 이 감각은 희미해지고, 또 헛소문을 퍼뜨린 패치를 이번에야말로 응징할 것이다.

  자비는 찾아오지 않았다.

***

  정신은 어느 때보다 맑았다. 뇌라는 게 남아있지 않을 터인데도 사고는 명료했고, 감각은 선명했다. 전부 한 덩어리가 되어버린 게 분명한 사지 역시 느끼고, 명령할 수 있었다. 기괴한 각도로 꺾여있고 움직이지도 않았지만 움직이려 한다는 느낌만은 있었다.

  물론, 고통 역시 감각이었다. 만성적으로 카냐의 감각을 과부하시키고 있는 통증은 그녀로 하여금 이성을 놓고 싶게 만들었다. 하지만 빛 바랜 자로서의 강인한 정신과 극한의 환경에서도 작동하는 전사의 정신은 그녀에게 덫으로 작동했을 뿐이다.

  주기적으로 액체가 차오르며 육벽의 손이 반죽이 된 카냐를 치대었다. 액체가 스며든 곳은 불타는 듯한 통증이 찢어진 살의 고통을 덮어썼고, 인형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그녀의 사지가 재배열되는 듯한 감각이 그녀를 괴롭혔다. 인형은 마치 무언가를 빚으려는 듯 질척해진 살의 죽을 주물러댔고, 카냐의 속절없는 정신적 발버둥을 비웃듯 한 때 그녀의 감각에 날카롭게 반응하던 조직들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고통은 점차 오래된 상처처럼 흐려져갔다. 아니, 정확히는 통증 그 자체는 변한 바가 없었지만, 카냐에게 변화가 일어난 것이었다.

  어느샌가 카냐는 스스로 진흙같은 걸 만지고 있다 느껴졌다. 다만 그건 그녀의 두 손이 아니었다.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들려오는 질척, 질척 소리에 맞춰, 그녀에게 달려있지만 제멋대로 움직이는 듯한 두 손이 자신의 몸을 만져대는 게 느껴졌다.

  시험삼아 카냐는 두 팔을 움직여보았다. 보이지는 않지만 근육과 뼈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카냐는 들리지 않는 웃음을 터뜨리며 깨달았다. 어느새 '빛 바랜 자 카냐'와 '납치하는 소냐 인형'의 구분은 의미가 없었다. 애써 반죽을 하던 두 손은 어떻게든 인간의 형상을 돌려받고 싶었던, 더 이상 인간이 아닌 것의 무의식적인 발버둥이었던 것이었다.

  깨달음이 있고 나서부터는 쉬웠다. 그녀가 잊고 있던 감각들이 차차 돌아왔다. 그녀의 '발'이 천천히 축축한 바닥을 구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팔'들이 천천히 회전하며 피를 갈망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의 '눈'은 높은 곳에서 불쌍한 어린 양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배가 아팠다. 위산이 과하게 분비된 듯 했다.

***

  사쿨은 허리를 쓰다듬으며 일어났다. 수차가 이렇게 깊은 곳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 탐험심이 넘친다는 것에 묘한 자부감이 있던 그였지만 그럼에도 이런 변수는 썩 달갑지 않았다.

  "누가 봤다면 비웃었겠어," 사쿨은 혼잣말하며 살짝 웃었다.

  순간 묘한 시선이 느껴졌다. 사쿨은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며 검을 들며 전투태세를 취했다. 그의 시선 끝에는 익숙한 실루엣이 덜컹대며 천천히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적사자성에서 보았던 소녀 인형이었다. 두 팔에 달린 무기는 달랐지만 전에 싸워본 적 있는 적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런데도 사쿨은 묘한 불쾌감이 느껴졌다. 딱딱하기 따로 없는 인형의 움직임에서 묘하게 생기가 느껴졌다. 마치 먹잇감을 찾은 맹수를 눈앞에 둔 듯 했다.

  돌연 인형이 양 팔의 톱을 땅에 박은 채 돌진해왔다. 처음부터 이렇게 나오는 건가. 경험상, 소녀 인형들은 돌진이 끝날 때 여린 속살을 드러내며 공격의 기회를 주곤 했다. 문이 열릴 때를 대비하며 사쿨은 뒷걸음을 쳤다.

  인형은 사쿨의 바로 앞에 멈춰섰다. 그는 검을  휘두를 준비를 했고, 마침내 문이 열렸다.

  사쿨이 검을 휘두를 일은 없었다.

  그의 짧은 생, 마지막으로 본 것은 고깃덩이로 이루어진 여성의 형상이 그를 환영하듯 수많은 팔들을 활짝 펼치며 덮치는 모습이었다.

  "아하핫, 기다렸다고, 얼마나 배고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