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원초의 밤에게 승리한 것이다.


사내는 자신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일격들로부터 사내를 지켜온 고향의 방패도,

그의 손발이 되어 주었던 갈고리도,

강력한 적들을 쓰러뜨려 온 폭발 쐐기도,

셀 수 없이 많은 적을 쓰러뜨린 피 바랜 칼도,


그리고 여동생과의 추억이 담긴 귀고리도


전부 망가지고 부숴졌다.


사내는 품속에서 고동치는 은 물방울을 조용히 들어 보인다.


'이제 만날 일은 없어'


나지막이 생각하고는, 그는 왕의 시체 곁으로 다가갔다.


망설임은 없었다. 은 물방울은 주저없이 사내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시야가 흐려지고 거동이 어려웠다.


사내는 비틀거리며 왕의 시체 앞으로 걸어갔다.


사내는 마지막으로 떠올렸다.


고향의 기분좋은 바람을.

친절한 하인 인형을.

냉철한 암살자를.

호쾌한 해적을.

정의로운 익인 기사를.

까칠한 인형 여인을.

지혜로운 마녀를.

과묵한 갈대의 검사를.


그리고 하나뿐인 여동생을.


사내의 마지막 말이 여동생에게 전해질 일은 없었다.


이윽고 새로운 밤의 왕이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