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없었다.


눈을 떴음에도 눈을 감은 것만 같은 칠흑.


모든 빛을 가로막는 그 장애물들이 무엇인지, 남자는 보지 않고서도 알 수 있었다.


얼굴에 맞닿는 끈적하고 불쾌한 액체의 질감.


사방팔방에서 진동하는 죽음의 냄새.


그것들은 한데 모여 단 한 가지의 결론만을 도출했다.


남자는 그 결론을 필사적으로 부정하며, 격통으로 움직이길 거부하는 몸을 억지로 움직였다.


어둠 속에서 발버둥치며, 단 한 줄기라도 괜찮으니 빛이 자신을 비추길 갈망했다.


나아가고,


또 나아가고,


심연에서 빛을 찾기 위해 발악했다.


그리고 마침내 온 몸을 압박하던 장애물들의 감촉이 사라졌을 때,


빛 따윈 없었다.


심연보다도 더 어둡고 순수한 흑색으로 물든 밤하늘이 그 남자가 처음으로 본 것이었다.


그리고, 슬픔의 눈물인지, 조소의 눈물인지 알 수 없는 빗방울만이 하염없이 떨어졌다.


달빛은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몸이 해방되었을 때,


남자는 자신이 부정하던 결론과 마주했다.


찬란하던 왕국의 모습은 없었다.


오로지 한때 인간이었던 고깃덩이들만이 산을 이뤄 왕국이었던 것을 대신했다.


남자가 태어나고, 자라며, 지금까지의 모든 기억을 새겨 왔던 그의 고향은 이제 없었다.


영웅을 상대로 그 누구도 당해내지 못하였다.


기사.


가족도, 동료들도, 섬기던 왕도, 자신의 조국도, 그 무엇도 지키지 못한 버러지가 기사라니.


몸 안 쪽에서부터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요동쳤다.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를 묻는 대답 없는 질문이 끝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남자에게는 참조차 거짓으로 느껴질 정도로 순수한 본심만이 남았다.


이 세상이 모든 것을 빼앗아 갔으니,


이번엔 세상으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아 주겠다고.


폭우가 쏟아지는 한밤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