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하루도 빠짐이 없었다. 약900시간잠을깨 컴퓨터를 켠후 로그인 버튼을 누르는 손엔 망설임이 없었고,메뉴 음악은 마치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자연스러웠다.기존왕의 강화 영원한 밤의왕 출시.그 이름만으로도 심장이 먼저 반응하던 시절.승패는 중요하지 않았다.한 판이 끝나면 다음 판이 이미 시작되어 있었고,시간은 늘 모자랐다.그런데 오늘은 달랐다.대학종강이후 DLC가 나왔다는 소식에“이제 다시 폼 좀 올려볼까”가볍게 웃으며 게임을 켰다.혼자서 열 판 .완벽한 솔클.큰 실수도 없고, 손도 굳지 않았다.그런데도아무것도 남지 않았다.예전처럼 손에 땀이 차지도 않았고,클리어 화면은 그냥 화면일 뿐이었다.칭찬도, 환호도, 스스로에게 건네던 작은 자랑도어디에도 없었다.
‘재미가 없는 건가?’아니, 그보다 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재미가 사라진게 아니라내가 이미 그 시간을 다 써버린 건 아닐까.
그 게임이 변한 게 아니라그 안에서 설레던 내가이미 어제에 남겨진 건 아닐까.
예전엔“조금만 더”가 밤을 새웠고,오늘은“이쯤이면 됐다”가 전원을 끈다.
모니터는 여전히 빛나는데마음은 따라오지 않는다.
엔딩 크레딧도 없고,작별 인사도 없었다.그저 조용히 알게 될 뿐이다.
어떤 즐거움은다시 돌아오는 게 아니라그때 완성되어버린다는 걸.
그래서 슬프다.망한 것도 아니고, 질린 것도 아닌데다시는 처음처럼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오늘의 승리는 깔끔했고패배도 없었지만왠지 모르게가장 큰 한 판을 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