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고개를 숙인 수호자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튕겼다고 병신아, 몇번을 말해야 알아듣냐 새대가리 새끼가"
하얀 인형은 온갖 불쾌함을 담아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수호자를 몰아붙였다. 그의 약한 모습을 보다 못한 은둔자는 결국 대신 입을 열었다.
"매번 튕기는건... 너무 이상하잖아요... 그냥 조금 신경 써달라는게... 읏!"
"씨발!!! 지랄!! 또 지랄!! 존나하네 아니라고오!!! 니가, 니가 봤니?"
항상 조용하고 졸린듯 나긋나긋하던 은둔자의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하얀 인형은 그녀의 말이 제대로 끝나기도 전에 원탁을 쾅쾅 두드리며 윽박을 질러댔다. 작은 몸뚱이가 장신 두명을 몰아붙이는 소란스런 현장에 조용히 빠져있던 무녀는 상황을 진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그만, 그만! 너무 과하잖아, 좋게 좋게 해결했으면 좋겠어 우린 동료니까."
하얀 인형의 역정은 무녀의 말에 순순히 수그러드는 듯했다. 그러나 몹시 짜증이 난다는 티는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수호자가 건드려서는 안 되는 민감한 부분을 자극한 것처럼 예민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그녀가 다른 이들과 다투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지독하게 화를 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복수자가 아니라고 하니까 오늘은 그냥 넘어가는게 어떨까?"
무녀는 수호자와 은둔자를 바라보며 상황을 빨리 정리하려는 듯이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눈가가 촉촉하게 젖은 수호자의 모습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던 은둔자는 처음으로 용기를 내, 무녀에게 잘못된 점을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용감한 행동은 곧 등장한 무뢰한의 호탕한 웃음소리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아니, 그냥 신경 좀 써달라고 한게...!"
"크하하하!! 다들 어디 갔었나 했더니 여기에 모여 있었구만, 다 같이 출격하려는 건가?"
무뢰한은 분위기를 몰랐다.
원탁에 들어서자마자 고개숙인 수호자의 어깨를 툭툭 치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자네는 왜 이리 죽상인가? 으하하하!!! 알겠구만!!! 그 마음 안다네!! 너무 상심하지 말게!! 원탁이 자꾸 말썽이던데, 다들 연결이 불안정 해서 시작부터 사라져버리는게 하루이틀도 아니지 않은가!! 이번엔 그대도 연결이 끊어져 버렸나보군!! 가슴 피게나!!! 나도 그것 때문에 혼자서 열심히..."
"푸하하핫!!!"
무뢰한의 이야기를 듣던 하얀 인형은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전 까지만 해도 버럭 화를 내며 윽박을 지르던 소녀는 어디로 갔는지, 그녀는 배를 단단히 움켜쥐고 원탁 위를 쾅쾅 내리치며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수호자는 무뢰한을 올려다보며 그게 아니라는듯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연결이 불안정하다고!!! 이 녀석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거야??? 바보!!! 진짜 바보네!!!"
"복수자, 그만해"
하얀 인형은 무녀의 그만하라는 말에도 개의치 않고 웃는것을 멈추지 않았다. 무뢰한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곧 이어지는 하얀 인형의 조롱섞인 웃음소리와 함께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뭐래! 자기도 그랬으면서, 탈주 한거라고 바보!! 너 같은거랑 누가 같이하고 싶겠냐?? 매칭돌려서 솔플하는건 너 밖에 없을걸!!!"
"야, 다프네!"
"윽...!"
무녀가 화난듯 하얀 인형의 본명을 불렀다. 그러자 그녀는 몸을 움찔하며 웃는 것을 멈추고 무녀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무녀가 그녀를 꾸짖으려는 듯 무언가 말을 꺼내려 했지만, 무뢰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
"괜찮네."
짧은 침묵이 뒤따랐다. 무뢰한은 조용히 두 손으로 원탁을 짚었다.
"나도 알고 있다네... 내가 쓸모 없다는건, 기동성도 나쁘고 화력도 약해. 그렇다고 보조능력이 좋은것도 아니지, 난 그저 과거의 망령에 불과할 뿐이야."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무뢰한은 푹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네, 줄곧 폐를 끼쳤어."
"무뢰한... 괜찮다면 시간대를 옮겨서 우리랑 같이..."
"아닐세, 마음은 고맙지만 더 이상 짐을 지게 할 수는 없어."
그는 고개를 저으며 수호자의 말을 거절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 복수자가 먼저 자리를 비웠다. 결국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어물쩡 넘어가게 되었다. 무녀도 그를 위로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뢰한은 은둔자와 수호자의 격려를 위로삼아 멋쩍게 웃어보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시간이 흘러 해변가. 무뢰한은 먼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떼우고 있었다. 오늘따라 유독 파도소리가 작게 들리던 때에 그의 곁에 추적자가 다가왔다.
"무뢰한."
"하하, 그대인가. 어쩐 일인가!"
추적자는 그의 곁에 걸터앉아 조용히, 함께 먼 바다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건..."
"동생이랑... 화해했거든. 그동안 엄청 가지고 싶어 했던 거라 선물해주려고 했는데, 괜찮다고 마음만 받겠다고 해서 말이야. 이젠 당신한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하지만 난..."
"괜찮아...! 할 수 있어...!! 그리고 레이디가 전해달래. 미안하다고 말이야. 직접 말하라고 하려고 했는데... 미안, 내가 대신 사과할께. 그래도 이걸로 그녀의 사과를 대신하면 안될까?"
무뢰한은 추적자가 준 선물을 제대로 받아들고서 잠시 조용히 그것을 쳐다보고 있었다.
"크하하하!! 뭘, 그럴 수도 있지!!!"
호탕하게 웃는 무뢰한을 따라 추적자도 웃었다.
그리고 그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고마워, 다신 그런 일이 없도록 나도 노력할게. 아, 나중에 학자님을 만나면 혹시 전해줄 수 있을까? 장의사가 다시 돌아와도 된다고 말이야. 지금은 자리에 없으시더라고, 나도 눈치껏 조심했어야 했는데... 그녀가 그렇게 된 건 내 잘못이야. 학자님한테도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데..."
"알겠네, 이따가 근처를 지나며 들리도록 하지."
"고마워! 그럼 나중에 보자고 나는 레이디가 나가자고 졸라서 말이야."
추적자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며 자리를 떠나갔다. 무뢰한은 그런 그의 말에 마음이 한층 누그러지는 듯했다.
원탁은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고민에 잠겨 있던 무뢰한은 큰 결심을 하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날 부터 무거운 바윗돌을 들어 매치는 훈련 대신 허수아비를 향해 쉭쉭 소리가 날 정도로 주먹을 휘두르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날이 갈수록 훈련장엔 그의 쉭쉭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두고 보게나, 모두들."
무뢰한의 각오가 눈에 서렸다.
그는 매일같이 빠짐없이 훈련장을 찾았다. 홀로 출격을 반복하는 날에도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추적자가 건네준 소중한 선물을 손에서 놓지 않은 채 사력을 다했다. 강해지기 위해, 남는 시간이 생길 때마다 항아리 상인에게 향하며 쉴 때에도 훈련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드디어 완성했다."
무뢰한, 그는 다시 하늘을 날았다.
동료들과 함께 푸른 영혼 매를 타고서.
결의를 다졌다.
추적자가 선물한 카리아의 휘석 지팡이를 품에 안고서.
"보게나 모두들...!! 나도 이제 어엿한 아군이 되었네...!!!"
-완-
제목만 보고 탈주에 관대해지기로 했다
추적자 이 미친새끼
무뢰한 장래희망 마술사
왜 정상적임
무뢰한 이 미친새끼
하얀 인형이라길래 하인 인형이 왜 저러나 했다
ㅋㅋㅋㅋㅋㅋㅋ
러브돌이미친년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