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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부드럽게 두드리는 소리가 학자의 얕은 잠을 깨웠다. 슬슬 밥때가 되었으리라, 그는 등을 기대던 구석에서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몸을 반쯤 일으켰을 때 미간을 찌푸리는 통증이 학자를 덮쳤다. 소리 없는 탄식과 함께 입이 떡 벌어지는 통증이었다. 다리를 쭉 뻗고 누웠어야 했는데, 생각 없이 오랫동안 쪼그리고 앉아 있던 탓에 몸이 뻣뻣해진 것이었다.



학자는 저리고 따가운 다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벽을 짚었다. 작은 고통에 조용히 몸부림치고 있으려니 굳게 닫혀있던 문이 천천히 열렸다.



"학자님, 어디 불편한 곳은 없으신가요?"



문을 열고 모습을 보인 것은 장의사였다. 그녀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학자는 독방에 갇혀 있는 이 순간과 모든 것이 불편했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밥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는 실망감만큼은 감출 수 없었다.



"...배가... 고파요... 밥은 어디에..."



장의사는 평화로운 표정으로 싱긋 웃었다. 그리고 배가 고픈 학자의 상태는 안중에도 없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말을 내뱉었다.



"오늘은 굶으셔야 해요. 복수자님이 학자님 몫까지 다 먹어버렸어요."


"으에...? ...그게 무슨...? 왜...?"


"저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 남은 것들은 복수자님이 다 먹어버렸다고 인형 씨가 말씀하셨는걸요."



학자는 허탈한 표정을 짓고서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장의사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정말 상태를 보러 왔을 뿐, 학자가 기대하는 다른 목적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듯했다. 학자는 그녀가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한때는 서로 돕던 사이였는데 이런 취급이라니, 큰 배신감을 느끼고 말았다.



"죄송해요. 그럼 이만, 저는 돌아가 볼게요. 그래두 내일까지 조금만 더 힘내주세요."



장의사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싱긋 미소지어 보이더니 문을 닫고 떠나가 버렸다. 바깥에서 문이 잠기는 소리가 들리자 학자는 천천히 무너져내려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뭐라도 먹고 싶었는데. 아니, 뭐라도 먹어야만 했다. 그는 이틀 동안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 연구에 몰두하느라 끼니를 거르고 있던 때에 하필이면 독방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것은 지난날 발생한 사건 때문이었다.
집행자의 신체 변화 능력에 흥미를 느꼈던 학자는 연구를 위해 그를 예배당으로 데려와 자세히 조사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자료를 만들고 기록하며 집행자의 신체를 구석구석 살피는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터지고 말았다. 집행자의 몸에 손을 댄 것이 문제는 아니었다.



집행자는 학자의 불쾌한 신체 접촉과 시선에 대해선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간지럽다는 듯이 거친 숨을 내쉬며 즐겁다고 실실 웃기까지도 했다. 그러나 한참 측정과 조사를 이어가던 중 그는 표정을 굳히더니 학자를 매섭게 노려보기 시작했다.



학자의 테이블에 놓인 책에서 삐져나온 종이 한 장 때문이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학자의 손에 치인 책 더미가 무너지면서 그 사이에 끼어있던 서류들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종이 한 장이 공중에 펄럭이며 집행자의 발치에 떨어지고 말았다.



집행자는 허리를 숙여 종이를 주웠다. 처음엔 그냥 학자에게 돌려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 종이의 내용은 그 마음을 싹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 종이에는 복수자의 일상생활 루틴과 배변 기록, 생활 습관 등이 시간대별로 자세히 기술되어 있었다. 그리고 특정 구간마다 밑줄 친 부분에는 학자의 스스럼없는 생각과 추측이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다. 상스러운 말들과 함께 복수자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한 그것은 집행자의 심기를 건드려 화를 부르고 말았다.



그는 버럭 화를 내며 학자를 밀쳐내더니 종이를 챙겨 들고 어디론가 향했다. 레이디와 추적자가 떠들고 있는 원탁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학자는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그를 뒤따라갔지만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하필이면 원탁에는 무뢰한을 제외한 모두가 모여 있었다.



그 이후로는 더 이상 말도 필요 없었다. 모두가 학자를 경멸하는 듯한 눈치였다. 즉결심판으로 학자는 독방에 갇히게 되었다. 3일의 독방 감금과 1달 동안 출격 금지라고 했다. 게다가 연구 기록을 몰수해서 부적절한 내용을 모조리 파기하기로 했다.



내용 검토는 당연하게도 레이디의 주도하에 은둔자와 복수자가 맡았다. 내용을 검토하며 추가적인 처벌이 내려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학자는 문제의 종이를 받아들고 표정을 구기던 복수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불쾌한 티를 팍팍 내며 화를 내던 평소와는 달리,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그게 그럴 정도인가..."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다시 구석으로 기어가 등을 기댔다. 쓸쓸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연구에 몰두하느라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것에는 익숙했지만, 이곳에는 친구가 되어줄 펜과 종이조차 없었다.
학자는 갑자기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자신에 대한 처벌이 과하다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문 앞으로 기어가 문틈에 대고 힘껏 소리치기 시작했다.



"내가 뭘 잘못 했냐고!!! 젠자아아앙!!!"



대답은 없었다. 친절한 장의사 말고는 그를 찾아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떠나간 자리에 대답해 줄 이가 있을 리 만무했다. 학자는 다시 소리를 질렀다.



"아아아악!!! 풀어줘!!! 풀어달라고!!! 배가 고파 미치겠다고...!!! 내보내주세요... 제바아알... 아아아악!!! 화장실도... 가고 싶어요... 잘못해씁니다... 용서해주세요..."



그의 분노 섞인 목소리는 점차 흐느낌과 절규로 변하더니 마지막엔 간절한 부탁과 뉘우침으로 변했다. 그러나 곧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얼굴을 문에다 갖다 붙이고 마구 비비더니 또다시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아!!! 똥 마렵다고!!!! 똥!! 싼다!!! 진짜로 싼다!!! 아무도 없냐고오오오!!! 젠자아아앙!!! 한계다!!!!"


"소용없나... 크윽... 썅...!!! 요즘 젊은 것들은...!! 웃어른 공경할 줄도 모르고...!!! 등신들이 아무리 공정에 목숨건다지만 이새끼들아...!! 싸가지도 없이...!! 일부로 그런 것도 아닌데...!!!!"



학자는 문을 쿵쿵 두드리며 분노를 표출했다. 그러나 그는 겉모습만 늙었지, 나이로 치자면 추적자보다도 어릴 수도 있는 자신이 이런 말을 내뱉고 있다는 모순적인 사실을 자각했다.
학자는 자괴감을 느끼며 바닥에 몸을 웅크렸다.



"복수자는 사람도 아닌데...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그럴 수도 있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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