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꺾여버린 황금나무 아래에
· 꺾여버린 황금나무 아래에 1~2장


3장

갤미어는 원래부터 소문이 좋지 않았다. 라이커드가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소식이 있고 난 


뒤로 더더욱. 하루아침에 마을 하나가 통째로 사라진다던가 식인을 하는 무녀가 산다던가 몸은 


뱀인데 사람처럼 팔다리가 달려있다는 정체불명의 생물들이 있다는 소식을 심심찮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황금나무의 저주라는 것이다. 소문으로 떠도는 얘기라 그것이 진실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이미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는 이가 없다.


 아침에 대장기가 부러졌다는 소식은 다들 호탕하게 웃고 넘어갔지만 속은 모두 불안해하고 있다.


그야 갤미어에는 더이상 황금나무의 가호가 전해지지 않는 데다 우리를 지켜줄 유일한 작은 황금나무마저 적들의 손에 무참히 스러졌기 때문이다.


늘 황금색이던 땅은 이제 화산재가 흩날리는 검은 땅이 되어 이 밑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유일하게 의지할 곳이라곤 전우들뿐이다.


이참에 새로운 질서를 인정하고 서로 모른척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레아 루카리아와의 전쟁도 그렇게 끝을 맺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황금나무를 태웠다. 신성한 규율을 모독한 것과 다름이 없다.


이상한 생각 따위 하지 말자. 상대는 야만인들이다.


정찰병들이 돌아온 것은 그날 늦은 오후가 되어서였다. 하루 종일 고된 행군으로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은 황금나무를 향한 신앙심보다 먹고 마시고 쉬고 싶다는 본능이 더 앞섰다.


그런 이들에게 선발대가 가지고 온 소식은 한 줄기 빛과도 같았다.


곧이어 정지 명령이 떨어졌고 상관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서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


보고 있었다. 그들의 손짓 한 번에 기마병 여럿이 종대의 앞뒤로 분주히 움직이더니 금방 나팔을 꺼내 들고는 힘차게


불었다. 오늘 밤은 이곳에 진을 치라는 의미였다.


4.


 “리안, 아까 정찰대 소식 들었나? 괴물이라도 본 듯한 얼굴로 돌아왔다고 하던데”


천막 치는 것을 돕다가 우연히 칼슨이 나와 같은 도읍 하층 출신인 것을 알고 빠르게 친해졌다.


그가 내 옆에 앉아 따듯한 차를 건네줬다. 좋은 향기를 품고 있었다.


“마셔, 페퍼민트 차야. 하루종일 걸었으니 너 같은 절름발이가 마시면 다리의 피로가 풀리겠지.”


“감사합니다. 거기에 대해선 아직 들어보지 못했어요.”


나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있는 찻 잔에 가볍게 입술을 갖다대었다. 유황 냄새로 꽉 찬 가슴에 간만에 상쾌한 향을 밀어넣으니 눈이 번쩍 뜨이고 온 몸의 감각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칼

슨은 정말 친절한 사람이다.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태연하게 차 한잔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얼마되지 않을 것이다.


“움직이는 커다란 소녀 인형을 봤다나. 미리 갔던 선발대는 모조리 죽어있었다더라. 오면서 무언갈 줏어왔다고 하던데…생긴 것이 마치 커다란 항아리 같더라고.”


전투를 앞두고 좋지 않은 얘기를 꺼내서 미안했는지 칼슨은 금방 대화 주제를 바꿨다.


“그러고보니, 홀어머니를 모시고 산다 그랬지? 보나마나 새 집이 필요해서 여기로 왔겠네.”


나는 차를 마시다 말고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는 입가의 큰 수염을 씰룩이며 말을 이어갔다. 


“내 쪽도 똑같아. 가족이 있거든. 집사람과 아이들 모두 갑자기 불어난 사람들덕에 하루 아침에 거리로 나앉게 생겼어. 힘 없는 내가 무얼 할 수 있겠나. 모든걸 포기하려던 찰나 다행히

도 이번 전쟁에서 공을 세우면 새로운 거주지를 마련해준다니 얼른 지원했지.


그런데, 내 나이가 이래서야 밥값은 할지 모르겠네. 차라리 이 몸뚱이가 화살받이 라도 좋으니 도움이 된다면 좋겠지만.”


쓴 웃음을 짓는 그의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피워놓은 모닥불이 꺼져가자 나는 장작을 더 던져넣었다. 붉은 군대와의 싸움이 끝난지도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다. 내가 원정에 참여하

기 위해 집을 떠날 무렵에도 도시는 아직 혼란속에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토록 많은 병력을 쏟아넣어야 했을까. 작은 황금나무는 이미 꺾여버렸고 우리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런말씀 마세요. 칼슨씨도 가족 곁으로 돌아가야죠. 저도 그럴거에요.”


고심이 깊어져 그의 하소연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눈과 입이 따로 노는 대답을 하며 머릿속으로는 깊은 고심에 빠졌다.


“갑자기 이런말 해서 미안하지만 리안, 너도 황금나무의 저주를 믿냐.”


대뜸 그가 뜻밖의 주제를 꺼냈다. 칼슨의 표정이 매우 어두웠다.


“아까 보급부대 쪽에서 사람 몇 명이 들것에 실려나가는 것을 봤는데. 뭐가 그리 급한지 얼굴들만 죄다 가려놔서는…하얀 천이 시뻘겋게 물들었던 것만 보였어.”


그는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하였다. 우리 사이에선 깊은 침묵이 흘렀다. 


상대가 인간이 아닌 무언가 라는 것은 다음날 알게 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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