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산 전체에 을씨년스런 분위기가 느껴지는 아침이 밝았다. 새벽부터 구름이 끼더니 가랑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진 내부 집합 장소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초점 없는 공허한 눈으로 먹


구름 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비로 인해 물을 먹은 바닥은 진흙이 되었고 찬바람이 불 때면 여기저기서 잔기침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다들 목이 빠져라 새로운 명령을 기다리고 있

는 중이다.


 곧 이어 앞의 나무 강단을 밟고 올라온 사내가 보였다. 귀족 옷차림을 하고 금발의 머리를 한 그는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크게 외쳤다.


“나는 로데일 귀족 연합 소속 사자(使者)이다. 이번 전쟁과 관련해 열린 로데일 긴급 귀족회에서 결의된 내용을 가지고 왔다. 로데일 토벌대에 걸린 기대가 크니, 모두들 귀담아듣도록!”


귀족회 사자 라는 말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모든 이목이 일제히 앞의 사내에게 집중됐다.


“현재 화산관에 집합한 모든 군대는 로데일 귀족회의 명령을 따르라!


화산관 반란의 주동자 라이커드는 한때 우리 로데일의 유능한 법무관으로서 하늘에선 이름을 모르는 자 없고 땅에서는 우러러보지 않는 자 없이 바르고 올곧은 성품을 유지하였다. 


허나 지금의 그는 차마 눈 뜨고 볼 수조차 없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전령을 보내 좋게 해결하려한 우리의 성의를 무시한 것도 모자라 작은 황금나무의 축복 마저도 짓밟아 버렸다.


야만인과 다름이 없는데다 흉폭하고 포악하기까지 하며 감히 로데일의 힘을 우습게 보았다.


이런 그를 어찌 라이커드라 부르겠는가. 로데일 시민들 마음속의 그는 이미 없어진지 오래다.


더 이상 그의 오만방자함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기에 로데일 토벌대에게 명하노라.




현시점부터 반란의 주동자 라이커드의 신변을 확보하여 로데일로 연행하여라.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죽여도 좋다! 단, 눈동자(미친불 감염 여부 확인)와 머리만은 꼭 보존하도록!”


사자는 잠시 헛기침을 해 목을 가다듬고는 두 눈을 부릅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전쟁의 피난처로 도읍의 성벽 대신 화산관을 택한 사람들은 아직까지 그 생사를 알 수 없다!


황금의 축복이 내려진 육체는 엄연히 우리 로데일의 소유, 그들을 수호하는 것 또한 로데일 군의 숙명. 그 축복을 거두어가는 것은 황금나무의 권리이다. 그대들은 화산관에 억울하게

억류된 황금나무의 시민들을 구출하고 보호하라!”




“그놈들도 황금나무를 태웠으면 어쩔거냐?”


사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제 그 기분나쁜 남자의 소리가 들려왔다. 


병사들이 갑자기 수근대기 시작했다. 예상밖의 일인지 사자는 크게 당황하여 당당하던 기색은 잊은 채 상황을 마무리하고자 급히 강단에서 내려왔지만 병사들의 불만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춥고 습기찬 아침부터 아무말 없이 서있던 그들은 당장이라도 앞의 나무강단에 올라와 모든것을 때려 부술 작정이었다.


그때, 한 명의 로데일 기사가 그들앞에 섰다.


“모두 주목! 적진을 앞에 두고 이게 무엇하는 짓인지 참으로 한심하다! 우리의 상대는 뱀이다,


뱀은 사냥감의 약점을 순식간에 덮쳐버려 흔적도 없이 삼켜버린다.


우리는 사냥감이 아니라 사냥꾼으로 이곳에 왔다. 지금 같이 서로 의심하고 불신이 생겨


황금나무에 대한 믿음이 깨지는 순간 그들의 아가리 위에서 놀아나는 꼴과 다름이 없다.”


그의 우렁찬 목소리에 잠시 소란이 멈췄다.


“이미 돌아선 이들도 외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도 한때 찬란한 황금나무의 시민들이었고


우리의 임무는 그들을 수호하는 것이다. 앞에는 전우의 방패가 있고 뒤로는 눈부신 가호가 있다. 무엇이두려운가. 로데일 군의 가장 첫 순위는 황금나무 시민들의 안전이다! ”




상황은 순식간에 반전되었다. 환호성과 동시에 비에 적셔진 병사들의 금빛 로브는 더욱 빛나며 황금색 물결을 자아내었다. 풀 한 포기조차 없는 못난 산에 메아리가 울릴 정도의 큰 함


성이 겔미어를 뒤덮었다. 나는 쥐고있던 창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소리질렀다. 반드시 라이커드의 목을 가져오겠노라고.




6.

하루종일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가파른 산길을 올라가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코 끝은 오랜 유황냄새로 이미 시척지근해져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거기, 빨리 움직여!”


소리치는 기사 뒤에 대검을 짊어진 시종이 보였다. 기사는 당장이라도 앞선 병사들에게종주먹을 들이댈 것 같았다.


안그래도 무거운 갑옷 때문인지 별안간 애꿎은 그의 시종에게 화풀이를 하였고 그럴때마다 시종은 작은 몸집을 더욱 굽히고 낮추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나는 그럴수록 더욱 힘을 내어 엄한 곳에 불똥이 튀지 않도록 노력했다. 오래전부터 황금나무의 들판에 나가 로어 채집으로 생계를 연명하던 어머니를 떠올리면 이제와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모두 정지!”

 갑자기 행군이 멈추었다. 아무래도 앞서간 정찰병이 돌아온 듯 싶었다. 그러나 무엇인가가 이상했다. 다음명령이 바로 떨어지지 않고 한참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올 것이 왔다.


“전투 대형으로 모여! 적들이 코 앞에 있다!”

  동시에 행렬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헸다. 온 몸에 식은 땀이 흐르고 주변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굳어있었다.


“사람 잡아먹는 괴물이다!!!”

 그 말과 동시에 앞을 쳐다보자, 처음보는 이상한 생김새의 커다란 기계장치가 눈에 들어왔다.


얼굴은 소녀의 것과 동시에 양 팔에는 큰 도끼날과 수레바퀴를 가진 그것은 무참하게 황금나무의 군대를 찢어발기고 있었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사람들은 순식간에 전의를 상실한 채 우후죽순 흩어지기 시작했다.




진열이 무너지자 선봉에 서있던 기사들 역시 사기가 꺾였는지 사람들 사이로 도망치기 바빴다.


그나마 용기있던 자들은 그들이 가진 무기로 반격을 시도했으나 무쇠덩어리로 만들어진 그 기계장치에 흠집하나 내질 못한채로 처참히 깔려죽거나 먹혀 없어졌다.


이미 아수라장이 된 전장은 순식간에도축장으로 변하여 비명이 난무하는 끔찍하게 변했다.


나 또한 이렇게 끝나려나 생각하는찰나 고막을 터질듯한 소리와 함께 그 인형들중 하나에 큰 구멍이 생겼다.


소리의 근원지를 보니 크나큰 항아리를 들고있는 남자가 보였다.


칼슨이었다.


“물러서! 저 녀석들 약접을 찾았으니 조금만 버텨!”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서둘러 그 대포로 보이는 항아리에 볼트를 장전하기 시작했다. 난 도망치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그에게 곧장 다가갔다.


“죽기전에 도망쳐요! 이 싸움은 가망이 없어요!”


난 필사적으로 그에게 소리쳤으나 칼슨은 들은 채도 하지 않았고 묵묵히 항아리에 볼트를 쑤셔넣었다. 다시 한 번 굉음이 나고 인형 한 대가 쓰러졌다.         


“한 번 뿐인 이 목숨, 황금나무와 내 가족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내어줄 수 있어. 리안 자네야말로 지켜야 할 사람이 있지 않은가. 어서 도망쳐! 여기는 내가 맡으마 그리고 내 가족들을 잘부탁하네.”


 그 말은 끝으로 칼슨은 더이상 볼 수 없었다. 인파에 뒤섞여 내려오는 동안 그 굉음을 내는 항아리는두어번 큰 신음을 내뱉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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