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뢰한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움직일 수 없었다.

학자가 먼저 기대왔기 때문이다.

전장에서는 누구보다 냉정한 남자였다.

칼날이 목을 스쳐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인간.

그런데 지금은 어깨에 닿은 무게 하나에 심장이 이상하게 뛰고 있었다.

학자는 눈을 감고 있었다.

잠든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계산도.

분석도.

앞으로 마주할 전투도.

모두 잠시 잊고 싶었다.

무뢰한의 체온이 느껴졌다.

뜨겁고 거친 체온.

언제나 가장 앞에서 싸우는 사람의 온기.

"이거."

무뢰한이 낮게 말했다.

"내가 꿈꾸는 건가."

학자가 눈을 뜨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시끄럽네."

"그럼 현실이군."

"실망했나?"

"반대지."

무뢰한이 웃었다.

낮고 짧은 웃음이었다.

그 진동이 어깨를 통해 전해졌다.

학자는 괜히 얼굴을 찌푸렸다.

이 인간은 가끔 너무 솔직했다.

그래서 더 상대하기 어려웠다.

모닥불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불씨가 타닥거리며 튀었다.

밤은 깊었다.

하지만 둘 다 잠들지 못했다.

침묵이 이어졌다.

불편하지 않은 침묵.

오히려 익숙한 침묵.

수많은 밤 동안 함께 지켜 온 시간이었다.

그러다 무뢰한이 문득 입을 열었다.

"기억나나."

"뭘."

"처음 만났을 때."

학자는 피식 웃었다.

잊을 수가 없었다.

당시의 무뢰한은 지금보다도 훨씬 난폭했다.

해적단에서조차 감당하기 어렵다고 손을 놓은 인간.

전투 방식은 엉망이었다.

상처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후퇴도 몰랐다.

처음 봤을 때 학자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오래 못 살겠군.

분명 몇 달 안에 죽을 거라고.

그런데.

"안 죽었군."

학자가 중얼거렸다.

무뢰한이 웃었다.

"실망했나?"

"조금."

"거짓말."

"그래. 거짓말이네."

학자는 순순히 인정했다.

예전 같았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이었다.

무뢰한도 그걸 알았다.

그래서 더 기분이 좋았다.

그는 천천히 시선을 하늘로 올렸다.

폐허가 된 천장의 틈 사이로 별빛이 보였다.

아주 희미하게.

밤의 왕이 세상을 뒤덮은 뒤에도 별은 사라지지 않았다.

"있잖아."

무뢰한이 말했다.

"응."

"전부 끝나면."

학자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둘 다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밤의 왕을 쓰러뜨리고.

끝없는 전쟁을 끝내고.

더 이상 검을 들지 않아도 되는 날.

그날이 온다면.

"뭘 할 생각이지?"

학자는 잠시 생각했다.

놀랍게도 대답은 금방 나왔다.

예전 같았으면 연구를 말했을 것이다.

새로운 마법.

잃어버린 지식.

고대의 기록.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모르겠네."

학자가 말했다.

"다만."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덧붙였다.

"자네가 있는 곳으로 가겠지."

무뢰한의 숨이 멎었다.

정말 잠깐.

전장의 함성보다도 강하게 심장이 뛰었다.

학자는 그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알고도 모른 척한 것일지 몰랐다.

무뢰한은 천천히 웃었다.

이번에는 장난기 없는 웃음이었다.

"그럼 다행이군."

"뭐가."

"나도 같은 생각이라."

학자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단순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좋았다.

말을 돌리지 않는다.

숨기지도 않는다.

마음을 정하면 그대로 행동한다.

그 점이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

좋아하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멀리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끝없는 밤 너머에서 들려오는 불길한 소리였다.

둘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짧았던 평온이 끝나고 있었다.

마지막 싸움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학자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무뢰한도 따라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의 온기가 아쉽게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이상하게 불안하지는 않았다.

예전과는 달랐다.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둘은 같은 곳을 보고 있다는 것을.

무뢰한이 거대한 무기를 집어 들었다.

학자는 지팡이를 쥐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서로를 바라봤다.

짧은 시선.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가세."

학자가 말했다.

무뢰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끝내러."

두 사람은 나란히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번에도 무뢰한은 앞에 섰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랐다.

그의 손이 뒤로 뻗어 있었다.

학자는 잠시 그 손을 바라보다가 작게 웃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그 손을 잡았다.

무뢰한의 손이 단단하게 맞잡아 왔다.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어둠은 여전히 깊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더 이상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서로가 곁에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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