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께 읽꺼!!!!!





전투가 끝난 뒤였다.

붉게 물든 늪지 위로 밤안개가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무뢰한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금이 간 도끼를 땅에 꽂았다. 갑옷 여기저기엔 화살 자국이 남아 있었고, 옆구리에서는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신경 쓰는 성격도 아니었다.

"이봐."

"..."

"철의눈."

멀찍이 떨어져 활을 정리하던 철의눈이 고개를 들었다.

언제나처럼 무표정했다.

"왜."

"나 죽을 뻔한 거 봤는가?"

"...봤다."

"멋있지 않았는가?"

철의눈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아니."

"으하하...상처받는데."

"멍청해 보였다."

무뢰한은 크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안개 속으로 퍼졌다.

철의눈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화살촉을 정리하던 손이 화가 난 듯 조금 거칠어져 있었다.

무뢰한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이 녀석은 이상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다.

다른 동료들은 무뢰한을 보면 한숨부터 쉬었다.

돌진한다.

생각이 없다.

성능이 구리다.

자기 몸을 안 아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철의눈만은 달랐다.

그는 무뢰한을 막지 않았다.

대신 언제나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무뢰한이 돌진하면 화살을 쏘고.

무뢰한이 포위당하면 적의 눈을 꿰뚫고.

무뢰한이 쓰러질 뻔하면 가장 먼저 달려왔다.

마치.

정말 마치.

무뢰한만 보고 있는 사람처럼.

"...무뢰한."

철의눈이 말했다.

"피."

"응?"

"흐른다."

"으하하...이 정도는 괜찮다."

"안 괜찮다."

단호한 목소리.

철의눈은 성큼성큼 걸어와 무뢰한 앞에 앉았다.

그리고 허리 주머니에서 성배병을 꺼냈다.

무뢰한은 피식 웃었다.

"또 치료해 주려고?"

"..."

"혹시 나를 좋아하는가? 으하하하!"

원래라면 농담이었다.

늘 하던 장난이었다.

그런데.

철의눈의 손이 멈췄다.

정적.

밤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것 같은 침묵.

무뢰한은 웃음을 거뒀다.

"...음?"

철의눈의 귀가 빨개지고 있었다.

정말 조금.

하지만 분명히.

"이보게."

"..."

"설마."

"...시끄럽다."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

그런데 떨리고 있었다.

무뢰한은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진짜라고?

진짜였다고?

그냥 놀리려고 던진 말인데?

"너."

"말하지 마."

"아니 잠깐."

"말하지 말라고 했다."

철의눈은 고개를 숙였다.

은빛 머리카락 사이로 붉어진 귀가 보였다.

무뢰한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설의 용보다 더 위험한 존재를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왜냐하면.

귀여웠다.

엄청.

말도 안 되게.

귀여웠다.

"...으하하."

"웃지 마."

"아니."

"웃지 말라고."

"으하하하하하!!."

결국 무뢰한은 웃음을 터뜨렸다.

철의눈은 진심으로 화가 난 얼굴이 되었다.

정확히는.

화난 척이었다.

무뢰한은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지금 도망치고 싶어 한다.

창피해서.

부끄러워서.

그래서 더 괴롭히고 싶어졌다.

"언제부터였는가?"

"..."

"말해 보게."

"...모른다."

"거짓말."

철의눈이 입술을 깨물었다.

"아마."

"아마?"

"...네가 나 대신 칼을 맞았을 때."

무뢰한은 기억했다.

오래전 일이었다.

별생각 없이 몸을 던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철의눈은 그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철의눈이 낮게 말했다.

"네가 죽는 줄 알았다."

목소리가 떨렸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무뢰한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늘 차갑고 냉정한 사람.

감정을 숨기는 사람.

그런 사람이.

이렇게까지.

"...바보."

철의눈이 말했다.

"왜 그렇게 몸을 함부로 쓰는 거냐."

"그야."

"왜."

무뢰한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웃었다.

"이제는 안 그래도 될 것 같았네."

철의눈이 눈을 깜빡였다.

"뭐?"

무뢰한은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철의눈의 뺨을 감쌌다.

차가웠다.

하지만 금방 뜨거워졌다.

얼굴이 새빨개져서.

"왜..."

"나도."

무뢰한이 말했다.

"꽤 오래 좋아했던 것 같거든."

철의눈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평소라면 절대 볼 수 없는 표정.

그리고 그 순간.

무뢰한은 확신했다.

아.

망했다.

진짜 좋아한다.

엄청.

많이.

철의눈은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겨우.

정말 겨우.

"...진짜냐."

라고 물었다.

그 목소리가 너무 간절해서.

무뢰한은 웃으며 이마를 맞댔다.

"진짜."

철의눈은 숨을 멈췄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무뢰한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도망가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처럼.

밤안개가 두 사람을 감쌌다.

멀리서 축복의 빛이 흔들렸다.

세상은 여전히 잔혹했다.

괴물은 넘쳐났고.

내일도 목숨을 걸어야 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철의눈의 세계에는 무뢰한밖에 없었고.

무뢰한의 세계에도 철의눈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장의사가 좋아할 법한,

전장 한가운데서 겨우 이어진

질척질척하고 진득한 첫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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