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욱.
살을 찢는 피륙음.
한 자루의 대검이 누군가의 가슴에 박혔다.
그 누군가는 무릎을 꿇고, 천천히, 흰 입자가 되어 사라져갔다.
마치 장작이 제 몸을 잃고 잿더미가 되어가듯. 불의 시대를 풍미하던 왕은 최후를 맞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입에 붙은 한 구절을 읊었다.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
어쩌면 추악한 농지거리와 같았다. 걸어온 이들의 육신은 그 무엇도 되지 못했다.
이 장작의 왕 조차, 다 타지 못해 재조차 되지 못하고, 그저 소울 덩어리로 변했을 뿐이었다.
그들의 죽음에 무슨 의미가 있었단 말인가?
나는 그의 최후를 지켜보았다.
동시에 내 안에 들어온 그를 통해, 나는 그의 과거를 들여다보았다.
…그래, 당신은 그런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군. 난 그제서야 그윈이라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동굴은 어두웠다.
그러나 하나의 불씨가, 고즈넉하게 동굴을 밝히고 있었다.
잿더미로 가득 찬 이 곳이, 오히려 어느 곳보다 편안한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화톳불로 나아갔다.
지나쳐가는 나의 기억, 그리고 수많은 다른 이들의 기억.
이젠 없는 이들의 기억들. 그리고 추억.
모두가 사라져 없는 지금, 이젠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
나는 가만히 곱씹어 보았다.
나는 그것이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그들을 기억하기에, 내가 남아있었기에.
그런데 아무도 나를 기억해줄 자가 없는 지금, 내가 가진 기억은 무슨 의미란 말인가.
이젠 아무것도 바꿀 수가 없었다.
손에는 지워지지 않는 지긋지긋한 핏물이 흘렀다.
이 세상에 정녕 아무것도 없다면, 내가 더 이상 존재할 이유는 없겠지.
화륵,
손에는 화톳불의 불이 옮겨 붙는다.
한 때, 손에 가득 찼던 주술의 불꽃과는 다른, 따스한 불꽃. 그러나 그만큼 탐욕스러운 불꽃.
손의 불은 팔로, 몸으로, 다리로…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그 불은 내 몸을 살라먹으며, 활활 타올랐다. 어느새 화로 전체가 불로 뒤덮여있었다. 사방이 붉은 기운으로 가득 찼다. 어딘가, 계승의 종이 울린 듯 했다. 종소리 두 개가 교차하며, 팍. 눈이 타 녹았다.
.
.
.
눈을 떴을 때는 잿빛으로 가득 찬 음울한 하늘이었다. 언제나 봐왔던, 죽어버린 하늘.
왜, 나는, 아직 살아있는가.
이대로 눈을 감고 다시 안식에 들고 싶었지만, 정신은 너무나도 또렷했다.
나는 탄식했다. 결국 그윈처럼 되어버린 건가. 나도 그처럼 다 타지 못해, 망자가 되어버린 건가.
이제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나는 내 육신을 바라보았다.
상의는 넝마조각. 들고 있는건 부러진 직검. 붉고 쭈글쭈글한 피부.
그러니까…
영락없는 망자였다.
뭐?
분명 나는 은기사 갑옷을 입고 있었을 텐데.
난 그제서야 주위를 인식할 수 있었다.
나는 침음성을 흘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계승의 제사장.”
영락없는 망자의 모습이었다.
나는 패닉 상태가 되어 내가 가지고 있었던 것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몇 천만에 가깝던 소울은 하나도 없었다. 몸에 넘치던 힘은 형편없이 떨어졌다. 고작해야 마법 하나 기억해서 쓸 정도.
하지만 물건들은… 다행히 무한의 상자에 잘 잠들어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소울로 만든 무기, 방어구는 여지없이 없었다. 어쩌면, 소울을 태우는 화로였기 때문에, 소울과 관련된 모든 것이 불타 없어진 것이 아닐까, 추측해볼 뿐이었다.
그런데. 그러면 뭐하나. 내 세상은 끝났는데.
나는 계승의 제사장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계단 아래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저 아래 불 꺼진 화톳불과, 마음이 꺾인 전사…. 마음이 꺾인 전사?
분명 그는 나를 보고 용기를 내어 불가능한 도전을 했다가… 망자가 되어버린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의 이름. 그의 이름이 무엇이었지?
나는 듣지 못했다. 아니, 못했을 것이다. 그는 제멋대로 내 사명을 비웃다가, 어느 순간 작은 론도 유적의 망자가 되어 내게 나타났으니까. 결국 그의 소울을 통해 그가 겪었던 내적 갈등, 고민, 끔찍한 자기 비하와 자기 합리화를 알게 되었지만…. 역시나 그의 이름은 없었다. 아마 그 조차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남을 깎아 내렸다. 경멸이라는 껍질에 연약한 자신의 마음을 숨긴 채. 불쌍한 사람.
나는 그를 통해 무언가를 알 수 있었다.
‘과거로 돌아왔다.’
그 말은 즉슨.
‘끊어졌던 인연을 다시 만들 수 있다.’
그 순간, 하늘에서 까마귀, ‘스너글리’가 누군가를 붙잡고 날아왔다.
그러고선 그 누군가를 제사장에 떨구고 날아갔다.
그러니까 이건….
이 세계에는 내가 주인공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세계는 내 세계가 아니었다.
떨어진 누군가, 쉽게 말하자면, ‘선택받은 불사자’는 마음이 꺾은 전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용은 대충 짐작이 갔다. 불사자의 사명에 대해 말하고, 이것저것 설명해주겠지.
불사자는 나름 진지하게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다가 이곳저곳 구경하고 다녔다.
좀 움츠러든 모습이 있었는데, 아마 북방의 수용소의 데몬을 만나고 왔기 때문이라고 가정했다.
뭐, 그 데몬을 뚫을 정도라면 어느 정도 정신력이 있을 터.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화로가 불타오를 때 망자는 어떻게 될까?
다크링이 사라지고 안식을 얻을까?
소울과 다크 소울은 반비례 관계. 불이 커지면 커질수록, 다크 소울은 작아지고, 결국 다크링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썩은 시체인 망자들은 어떻게 되는 것이지?그들은 안식이라는 이름의 죽음을 얻을 것이다. 지금의 나와 같은 망자들이.
그럴 수 없다. 안식을 갈구하던 이전과 달랐다.
이제야 인연을 다시 찾을 기회가 왔는데.
내가 꿨던 꿈을 다시 꿀 수 있고, 후회해왔던 세월을 청산할 수 있는데.
이제야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는데….
눈물이 나오려했다.
그러나 망자는 눈물을 흘리지 못했다.
망자는 생각했다.
죽여야 한다. 저 불사자를.
저 불사자가 사명을 마치지 못하도록, 마음을 꺾어야한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내가 과거에 저질렀던 모든 죄악을, 다시 청산하기 위해!
저 저주받은 불사자가 내 모든 것을 망쳐놓기 전에!
“큭...크크….”
사실 알고 있었다. 내가 저지른 죄악을 저 자에게 멋대로 투영하고 덮어씌운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자기 합리화인가. 그는 여기 온 이상 아무것도 모른 채, 수없이 많은 생명을 학살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의 정체를 깨닫고, 나처럼 좌절하고, 아파하고, 미안해할 것이 분명했다.
또 그가 나와 같은 길을 걸어야한다는 것인가?
상념 중에 묘지 쪽으로 향하는 불사자.
일말의 비명소리와 함께 미친 듯이 화톳불 쪽으로 도망쳐온다.
풋, 웃음이 새어나왔다.
나도 뭣 모르고 연약해 보이는 해골에게 덤볐다가 호되게 당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죽여도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압권이었다.
문득 그를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길에 있을 시련을 조금 덜어줄 수 있다면….
그가 모르고 만들어나갈 죄악에 슬퍼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는 예전의 나를 보는 듯 했다.
내가 얼마나 온기를 갈구 했던가? 나는 끝없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것이 나 자신이 될 지라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렇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기에. 나는 그저 누군가 나와 같이 걸어주기를 바랬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는 만들어나갈 수 있었을 인연들을 무심코 모두 걷어차고, 또 어렵사리 만든 인연들은 망자가 되어 내게 나타났다. 어떤 인연은 다른 인연을 죽이기까지 해서 사람에 대한 불신까지 얻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철저히 혼자였고, 혼자 살아왔다.
나는 어느새 그에게 내 모습을 투영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도움 받지 못했기에, 그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던 걸 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저 순백지에 무슨 그림을 그릴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 그림은 보기만 해도 고통스러웠다. 붓을 빙자한 칼날이 캔버스를 잔혹하게 찢어댔고ㅡ 남은 것은 지워지지 않을 선명한 상흔뿐이었다.
…그는 나처럼 되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내 삶이 존재했다.
나는 그림 하나를 망치고, 다른 캔버스를 꺼내든 상태였다. 선택받은 캔버스는 아니지만, 그럭저럭 그릴 수는 있는 캔버스. 그런데 이 세계의 우승자는 단 하나였다.
오로지 한 화가의 그림만 선택할 수 있었다. 나머지 화가의 그림은 모두 버려진다.
그런데 웃기는 건 선택받은 그 화가의 그림마저 불태워진다.
버려지냐, 불태워지냐. 그 차이만이 남을 뿐.
이것은 냉혹한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무엇일까?
그림을 제출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신참 화가가 붓질을 멈추게 해야 했다.
다르게 말하면, 그를 죽여야 했다.
그렇게 망자는 결정을 내렸다.
나는 이를 갈며 말했다.
“죽음을 준비해라.” (Prepare to Die)
.
.
.
쌍안경으로 지켜본 지 얼마나 지났을까.
불사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앞 계단을 넘어, 망자 병사와 마주칠 예정이겠지.
난 그사이 불사자를 방해할 방법을 찾아야했다.
붓을 쥐고 태어난 순간부터, 붓을 뺏거나 꺾을 수 없다. 캔버스나 물감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게 해야 했다.
낙사를 유발하기 좋은 물건이, 용 사냥꾼의 활. 하지만 거인 대장장이까지는 너무 멀고, 소울도 많이 든다.
통 같은 걸 가져와 굴려볼까. 그건 너무 발각이 쉽다. 소울도 없고 힘도 없어서 전면전도 무리.
차라리 암중에 아이템이라도 몰래 챙겨놓을까.
그게 좋을 것 같았다. 물감을 사용하기 전에 물감을 모두 없애놓는 것이다.
나는 이 지역에 있는 아이템들을 모두 회수하기 시작했다.
맨 앞부터, 차례차례. 맨 앞이라 소울만 온통 가득했지만, 이것만으로 성장을 매우 더디게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
불사의 도시 지하의 흑기사는 장비 빈약으로 안타깝게 뚫지 못했지만..
이 정도라면 확실히 방해할 수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화톳불이 많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
나는 잡졸에 불과하여 화톳불을 밝히지 못한다. 화톳불 전송, 강화, 망자 부활 등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제사장의 화톳불을 이용하기엔 아직은 시기상조였다. 선택받은 불사자의 눈에 띄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불사의 교구를 갈 즈음에 불사의 거리 화톳불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 불사자가….
이곳저곳 갔다 왔는데도 아직도 계승의 제사장이다.
병사 여러 명과 화염병 패턴을 뚫지 못했다는 것인가?
나는 어쩌면 불사자의 전투력을 과신했는지도 모른다.
불사자는 화톳불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마음이 꺾인 전사가 뭐라 말을 하고 있었다.
그의 성미상, 너도 나와 같은 꼴이 되었구나, 하면서 비웃은 것이 뻔했다.
그러나 그의 말 수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어딘가 딱하게 여기면서도 안타깝게 여기는 눈빛.
처음에는 사명에 도전하는 것을 비웃더니, 갑자기 왜?
그러나 난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내심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남이 해냈으면 하는, 내심 그런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불사자의 성장을 기뻐했지만 그는 그것을 차마 표현하지 못했다. 불사자가 가버린 후에야, 그는 경멸로 남을 깎아내린다는 자기 합리화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가 그것을 깨달을 때는 너무 늦은 때였다.
그가 망자가 된 것도, 나를 찾아서 네 덕분에 내가 나아갈 힘을 얻었다고, 그 성취를 행동으로 말해주려고 하다가 그리 된 것이었다. 그냥 같이 가자고, 그 한 마디만 했다면. 아니면 조금만 그가 솔직했다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불사자를 이렇게 놔두면 앞으로 진행에 차질이 있을 것이었다.
화톳불은 불사자와 화방녀만이 밝힐 수 있는데, 이렇게 엎어져있으면 언제 내가 화톳불을 써서 내 힘을 되찾을 수 있겠는가? 소울이 아무리 많아도 힘을 올리지 못한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재화다.
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함을 느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방랑자 셋을 걸치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
.
.
제사장의 화톳불은 여지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언제나 그래왔듯, 화톳불의 불사자의 고향. 그러나 영원한 고향이 될 수 없는, 그저 머무르는 곳.
나는 두려워했다. 첫 번째, 수용소의 데몬에게 온몸이 짓눌려 죽었을 때. 어쩌면 그 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데몬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어떻게든 낙하 공격으로 잡을 수 있었지만, 천운은 그 때 만이었다.
뼈가 부숴지고, 살이 찢기는 경험은 두 번 다시 경험하기 싫은 종류의 것이었다.
사실 저 앞의 망자 병사들이 두렵진 않았다. 데몬에 비하면 아주 쉬운 적수였으니까.
그러나 나는 그 뒤의 것이 무서웠다.
여기를 뚫으면, 또 어디로? 난 어디까지 이 고독한 여행을 해야 하나.
두 종을 울리기 위한 여정은 너무나도 멀어보였다.
마음 꺾인 전사에게 물어봤는데, 불사의 교구까지 가는 데만 해도 며칠은 잡고 가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빈정거리는 말투였지만, 너무 기분이 울적해서 반응하기도 싫었다.
나는 그에게 같이 갈 생각이 없느냐고 물어보았지만, 마음 꺾인 전사는 고개를 내저었다.
두려움도 두려움이었지만, 외로움도 컸다. 나와 같은 처지에 처한 사람… 아니 이건 너무 이기적인 생각인가.
문득 나는 누군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그는 어느새 내 앞에 걸터앉아 있었다.
“당신은… 누구시죠?”
망자가 되어서 그런지, 거칠고 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차피 피차 망자였으니 상관이 없으려나.
그는 내 눈동자를 응시했다. 나 역시 후드 너머로 보이는 그의 눈동자를 응시했다.
그 깊고 어두운 눈. 그의 눈에 담고 있는 감정은 굉장히 다양했다.
미안함. 슬픔. 분노. 안타까움. 시기심. 자책감. 망설임.
나는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조차 가늠하기 힘들었다.
그는 말없이 물건들을 꺼냈다.
주먹만한 소울 수십 개. 신성력이 느껴지는 아스토라 직검과 은기사의 방패. 그것을 바닥에 두고 일어섰다.
그러고선 짐짓 차갑게 말했다.
“나아가라.”
그가 등을 보이고 걸어간다. 나는 오스카가 떠올랐다. 그도 그렇게 이야기 했었다. 그는 에스트 병을 넘겨주고ㅡ 그러고선 가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감사 인사도 하지 못한 채, 그것이 지금까지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인연이었다. 나는 그것이 반복될까 두려워, 나는 무심코 벌떡 일어나 그에게 몇 걸음 걸어갔다.
그리고 그에게 소리쳤다.
“자, 잠시만요!”
그는 멈칫, 하고 걸음을 멈춘다.
“이름이 뭔가요!”
그는 가만히 서서 침묵을 유지하다가 뒤돌아서 말했다. 그 역시 망자였는지, 탁한 목소리였다.
“네 이름은 무엇이지?”
질문을 질문으로 대답한 격이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헤수스. 헤수스에요.”
이는 오스카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오스카는 이 이름의 뜻처럼 살아가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무슨 뜻인가요?
그가 내게 답했다. 위대한 구원자. 자신을 바쳐 만인을 구한 자. 기꺼이 십자가에 매달린 자….
나는 그에게 물었다. 제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그는 재차 답했다. 사명을 이루어라. 그 끝에 달할 때, 너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헤수스. 헤수스라…. 망자는 그 이름 뜻에 피식 웃고선, 대답했다.
“어울리는 군…. 나는 베드로다.”
나는 그의 이름을 잊지 않으려고 반복해서 불러댔다. 베드로. 베드로. 기억했다.
“고마워요, 베드로.”
“….”
그는 아무 말 없이 계승의 제사장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그가 준 무기를 움켜쥔다.
이상하게, 금속성의 차가운 검인데도, 온기가 느껴지는 듯 했다.
.
.
.
화륵,
쨍그랑!
헤수스는 정신을 다잡고 공략에 열중하고 있었다.
계단 위에서 달려오는 병사의 검을 방패로 막아내고 직검을 내 찌른다. 몸을 틀자, 화염병이 그 사이로 지나간다.
어느새 도약 공격을 하는 도끼병의 도끼를 피해 구른다. 그리고 바로 간결한 찌르기.
검이 좋은 탓인지, 적에게 칼질 한번이면 빛이 되어 사라진다.
나머지 화염병을 던지는 병사만 남았다.
병사가 내게 화염병을 던지지만, 앞으로 굴러서 피해냈다. 그리고 이어진 찌르기.
병사는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아주 단순한 전투였다.
헤수스는 어느새 다리 근처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비룡 한 마리가 다리에 앉았다가 헤수스를 훑어본다.
헤수스는 얼어있었다. 비룡은 관심 없다는 듯 다시 날아간다.
헤수스가 막힌 곳은 바로 불사의 도시 화톳불 앞.
병사 3명과 석궁병 1명 때문에 제대로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병사 셋의 연환 공격을 신경써야함은 물론이요, 그 사각을 파고드는 화살 또한 주의해야했다.
이 화살은 동료 개념도 없는지, 가끔 자기편을 쏘기도 했지만, 뛰어난 솜씨를 가졌는지, 대부분은 그를 향해 날아왔다. 그는 그곳에서 몇 번 막혔다.
그 다음날도 그 지점에서 분투 중이었다.
나는 지켜보면서 답답함을 느꼈다. 내가 할 때에는 한 명씩 끌어서 화살 사거리 밖에서 싸웠는데, 저 불사자는 왜 굳이 전면전을 한단 말인가. 무기가 좋아서일까, 더 많은 시련을 겪지 못해서 일까. 이래서는 끝이 없다. 나는 화톳불이 있는 건물에서 화염구를 시전 했다.
화륵, 왼손에서 불꽃이 커지더니, 쾅! 궁병의 온몸을 덮친다. 석궁병은 어느새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다.
헤수스가 주술을 눈치 챈 것은 막 2번 째 병사를 죽이던 참이었다.
헤수스는 재빨리 병사의 목에서 직검을 뽑고 다른 병사의 공격을 방패로 막아냈다. 탱!
그러고선 한 바퀴 돌아 그 원심력으로 직검을 휘둘렀다.
소울로 강화된 육체는 어렵지 않게 병사의 머리와 몸을 토막 쳤다.
헤수스는 쉴 새 없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베드로, 그가 나를 도운 것일까?
왼쪽의 건물에는 화톳불과 나무 통 몇 개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재빠르게 로건의 지팡이를 들어 발각을 대비해 준비해둔 의태를 마친 상태였다.
의태는 참고로 그 지역의 사물로 모습을 바꾸는 마술이었다.
아무튼 꼴이 좀 웃기긴 했지만, 다행이 그를 속일 수 있었다.
헤수스는 그러든 말든 허공에 외쳤다.
크게 외치면 어떻게든 들리리라 생각한 것일까.
“베드로. 왜 숨어서 날 도와주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마워요!”
빌어먹을. 그 반대다. 내가 널 도와주는 건 널 더 잘 죽이기 위해서란 말이다.
약해지면 안 된다. 나는 살기 위해 너를 죽여야 한다.
그것은 명확하다. 나는 다시금 내 목적을 상기하면서, 가슴 속에 날카로운 비수를 벼렸다.
내가 왜 저 불사자를 도와준 거지? 어쩌면 그냥 가만히 놔뒀으면 되었을 것인데.
그 처연한 모습 때문에 나도 모르게 너무 많은 것을 해줬다.
이제는 다르다. 죽일 것이다. 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다시 재기하지 못하도록, 몇 번이고 죽여줄 것이다.
헤수스는 인간성 두 개를 써서 하나는 망자에서 부활을, 하나는 화톳불을 키우는 데 썼다. 에스트가 10병이 되었겠지.
그러자 망자여서 알 수 없었던 성별이 이제는 확연히 보였다.
그러니까…
“여…자라고?”
“엣?”
헤수스가 화들짝 놀라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구에요! 베드로! 당신이에요?”
나는 나 스스로의 실수를 책망했다. 생각을 말로 꺼내버리다니. 내가 미쳤지.
나는 의태 상태로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인간 상태의 그녀는 하얀색의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커다란 푸른 눈, 매끈한 흰 피부, 가느다란 턱선. 그녀는 미인의 기준을 충족하고 있었다.
거기에 성직자 옷 때문인지는 몰라도 풍겨 나오는 일종의 신성한 오라는 성녀라 해도 의심하지 못 할 수준이리라.
…물론 망자가 되면 끝이지만. 솔직히 불사자에게 성별이 의미가 있나? 망자 형태가 되면 무엇이 되었든 똑같은 것을.
헤수스는 방 이곳저곳을 헤집으며 나를 찾아댔다. 하지만 의태라는 마법을 모르는 이상, 나를 찾기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씩씩 대더니 말했다.
“좋아요. 당신이 그렇게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이라면, 내가 꼭 찾아 줄 테니까!”
“….”
나는 그저 침묵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이제 화톳불을 쓸 수 있게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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횽 왜 아무 말도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