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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차가운 나라의 아가씨 Lady In Coldland
아리안델이라는 추운 나라에 어떤 아가씨가 살았습니다.
그곳은 세상과 동떨어진 다른 세상,
그림 속의 세상이었어요.
아가씨는 상냥한 어머니와 충직한 게일 할아버지와 과묵한 아리안델 신부님과 함께 교회에 살았습니다.
교회의 너머에는 마을이 있었고 거기에는 친절한 까마귀 사람들이 살았어요.
마을의 너머에는 갈 곳을 잃고 흘러들어온 사람들이 헤매고 있었고요.
바깥 세계의 불을, 차이를 모르는 아가씨에게 이 추운 나라는 평화로운 나라였고,
모두가 좋았었요.
때때로 다른 사람을 쫓아온,
불순한 미치광이가 나타나기도 하였지만
곧 이내 아리안델 신부님의 채찍과 게일 할아버지의 칼이 그들을 혼내주고 친절하게 만들었어요.
부드러운 아가씨의 어머니는 아가씨에게 그림을 가르쳤어요.
아가씨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그린 것은 당연히 아가씨가 가장 좋아하는 아가씨의 어머니였지요.
손을 모으고 조용히 아가씨에게 웃어주는 어머니.
종이에 뭔가를 적고있는 어머니.
촛불을 들고 불을 바라보는 어머니.
액자 속에 그려진 전설의 기사를 가만히 내려다보는 어머니.
그림을 그리는 종종 조용히 게일 할아버지가 나타나,
캔버스나 붓, 물감 같은 도구를 건내주고 다시 조용히 떠나갔지요.
그림을 그리기 전에 아가씨의 어머니는 아가씨에게 어느 말을 거듭 강조하였습니다.
[불을 모르는 자는, 세계를 그릴 수 없으며
불에 이끌리는 자는, 세계를 그릴 자격이 없다]
아가씨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언젠가 이 세계가 썩어갈 때
불로서 세계를 태우고 새로운 세계를 그리기 위한 연습이었던 것이랍니다.
아가씨와 아가씨의 어머니가 그림을 그리는 곳의 한 켠에는
아가씨가 그림을 그린 캔버스보다 훨씬 큰 캔버스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아가씨가 아리안델 다음의 회화 세계를 그려낼 바탕이었죠.
교회의 다락방, 그 화실에서 계속되던 금발의 어머니와 은발의 아가씨의 회화는,
어머니가 쓰러져 죽음을 맞이하고도 계속되었습니다.
어느날 검은 까마귀의 가면을 쓰고 칼을 든 여자가 나타나고,
매우 어둡고 무거운 무언가를 짊어진 듯한 그녀가 아가씨의 어머니와 만나고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신부님은 교회 지하에 아가씨의 어머니의 인형을 만들고 조용히 그것에 기도를 드렸어요.
아가씨의 어머니가 죽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신부님은 아가씨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않았지만
때때로 옆에서 함께 기도하여도 그녀를 내치지는 않았지요.
그리고 어머니의 바램을 이어서
이제는 없는 어머니를 계속해서 다시 그려나가던 아가씨의 평화로운 나날.
갑작스럽게 울린 종소리가 그 끝을 고하지 않았더라면 계속 되었을텐데...
종소리가 울리고 그 어두운 여자가 다시 나타났어요.
가면도 칼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라는 걸 아리안델 사람들을 알 수 있었지요.
그녀는 이전의 무거운 무언가를 잃고 그 대신
어딘가 덧없는, 허무한 무언가를 품은 채 아리안델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몇몇 아리안델 사람들은 그녀를 두려워했어요.
오래 전부터 전해진 두명의 재 중 하나가 나타났다고.
그것은 회화의 세계가 끝날 징조라고.
그녀의 거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어둡고 덧없는 색의 사람, 프리데는 교회에 머물며 아리안델 신부님을 일을 거들었습니다.
신부님과 함께 마을의 작은 교회로 내려가 예배를 드리는 일을 거들더니
이윽고 그녀는 아리안델의 수녀님이 되었지요.
그렇게 밖에서 온 수녀님도 이 차갑고 사냥한 세상을 좋아하게 되었어요.
자신의 진정한 고향이라 생각할만큼.
어떤 아리안델 사람들을 그녀를 숭배하게 되었어요.
수녀복을 입은 어둡고 덧없는 프리데 수녀님은,
전해지는 이야기 속의 여신님들을 닮았기에.
아가씨는 프리데 수녀님과도 이야기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것에 계속 몰두하였어요.
어머니를. 계속해서 어머니만을.
그리고 게일 할아버지만이 계속 아가씨의 곁에 머물러 주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또다른 방문자가 교회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프리데 수녀님을 쫓아온 기사였습니다.
갸냘픈 체구와 달리 무겁고 단단한 그는 물러서지 않은 채, 다시 수녀님의 기사가 되었습니다.
인정받지 못한 채로.
그것도 아가씨와 상관없는 이야기였습니다.
아가씨에겐 그림과 그림을 그려야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였으니까요.
다만 때때로 손이 멈출 때에 게일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만큼은 아가씨도 귀를 기울였습니다.
불과 어둠의 이야기.
이제는 없는 신들과 사람들의 이야기.
언젠가 나타나 아가씨에게 불을 보여줄 재의 이야기...
그리고 똑같은 초상화를 다시 그려나가기를 수십 차례 반복된 어느 때에,
멸망의 징조가 나타났습니다.
세상이 부패하며 큰 벌레가 나타나고, 까마귀 사람들이 병들어갔습니다.
거대한 그릇, 뱀이 남긴 그릇 속에서 불이 일렁였습니다.
하지만 아직 두번째 재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가씨는 큰 캔버스를 사용할 준비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필요한 것은
불이 무엇인지 아가씨가 알 수 있게 해줄만큼 불을 더 강하게 해줄 두번째의 재,
그리고 물감의 안료가 될 어둠의 소울을 품은 자의 피였습니다.
하지만 아가씨는 결국 큰 캔버스에 밑그림조차 그리지 못하였습니다.
프리데 수녀님 때문이었습니다.
수녀님은 이 세계를 잃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바깥 세상에서 쫓겨나고 도망쳐온 이들이 사라지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평화가 계속되기를 원하였습니다.
아가씨를 교회에서 끌어낼려는 프리데 수녀님을 게일 할아버지가 막아섰지만,
그 상대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게일 할아버지는 무수한 침입자들을 혼내준 분이었지만,
프리데 수녀님은 그보다 더 강하고 빠른 사람이었습니다.
아리안델 신부님이 방관하는 가운데,
아가씨는 수녀님과 수녀님을 따르는 기사에 의해 새로운 집으로 끌려갔습니다.
쓰러진 게일 할아버지가 그들에게 손을 뻗었지만 이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아가씨는 끌려가면서도 계속 뒤를 돌아보았지만,
게일 할아버지는 결국 일어서지 못하였습니다.
까마귀 사람들의 묘비에 둘러쌓인 새로운 집.
눈이 내리는 산길과 이어진 그 곳은 책이 많은 방, 까마귀 마을의 서고였습니다.
머리가 부서진 누군가의 석상들을 지나쳐,
2층에 갇혀지는 아가씨에게 수녀님은 책을 권하였습니다.
위대한 신들의 옛 이야기와
하얀 용에서 시작되어 사람들이 파헤쳐나간 지식을.
그것을 배울 것을 수녀님은 원하였습니다.
그것은 아가씨의 어머니가 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가씨에겐 더 이상 캔버스도 붓도 물감도 없었습니다.
몇권째의 책을 읽고 바닥에 내던졌을까,
아가씨는 바람과 눈이 휘날리는 밖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아가씨는 자신이 그림을 그려야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림의 바탕이 되어줄 캔버스가 없고,
그림을 나타내게 할 붓이 없고,
그림에 색을 줄 물감이 없더라도.
그래서 아가씨는 큰 테이블 위에 올라가,
맨손으로 텅 빈 그림을 그려나갔습니다.
몇번이고 몇번이고 또다시.
아가씨는 화가였으니까요.
2. 재의 사람 Cinderella에서 계속
재밌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