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한 나그네의 옷을 벗기려 바람과 태양이 싸웠다.

바람은 세차게 불어 나그네의 옷을 날리려 했지만, 그 냉기에 나그네는 옷을 여밀뿐이었다.

반대로 태양은 자신의 빛을 내리쬐어 그 온기로 나그네가 스스로 옷을 벗게 만들었다.


태양은 알고 있었을까, 목적을 위해서는 단순한 강함만이 아닌

무언가를 비추어주는 온기 또한 필요하다는 것을.

언젠가 나도 나의 태양을 찾아 온기를 받고 싶다.

그런, 동화에 감명을 받은 철없는 어린아이의 꿈이었다.


다크 링이 새겨진 불사자들은 사명을 위해 로드란으로 모인다.

사명을 지닌 여러 전사들을 만나면 나도 태양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덧없는 방어구를 모았다. 뭔가 밋밋해보여 나의 꿈이자 소망인 태양을 가슴팍에 그려넣었다.


로드란으로 와 수많은 이성을 잃은 망자들과 싸웠으나 

또한 자신의 사명을 위해 필사적으로 싸워나가는 전사들을 보았다. 

고명한 그들의 의지는 나의 태양을 향한 열정과도 같을 테지.

로드란으로 오는 불사자는 많으나 이성을 잃지 않고 나와 대화를 나눈 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나마 제정신으로 나에게 말을 건 자들도 나의 목표를 듣고선 쓴 웃음을 짓을 뿐이었다.


어느 날, 성채 가장자리에 서서 태양을 보고 있었다.

뒤에서 한 남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이성을 잃지 않고 싸워나가는 불사자일테지.

그에게도 역시 내 목표를 말해주고는 표정을 감추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실소를 예상했던 내게 그는 눈을 반짝이는 표정을 보여주었다.

왠지 감정이 북받쳐 올라, 그에게 납석을 나누어 주었다.

그가 나를 필요로 한다면 거리낌 없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와 헤어진 후 강대한 적들이 앞을 가로막았지만

나는 늘 그랬듯이 태양을 바라보며 신들의 옛 성, 아노르 론도에 도달했다.

태양빛의 왕의 성이라니, 이토록 아름다운 장소를 본 적이 있었던가.


화톳불에 앉아 쉬고 있을 적, 등 뒤에서 누군가 다가와 옆에 앉았다.

납석을 건네주었던 전사다.

거친 숨을 내쉬며 에스트를 들이키고는 몸에 박힌 파라솔을 빼내고 있었다.

그 은기사들이 쏘아대는 화살을 피해 여기까지 왔을 그가 내심 대견했다.


오랜만이군, 잘 지냈나. 혹시 나의 빛나는 사인이 보이면 주저말고 불러달라고.


그는 머쓱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대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다. 이런 나와의 대화를 꺼리지 않는 것을 보니 그대도 꽤나 괴짜인가보군.


실없는 대화를 한다. 만난지 몇 번 되지 않았으나 그와의 친근감이 느껴진다.


지쳐간다. 

태양빛의 도시인 아노르 론도에도 나의 태양은 없었다.

태양은 어디지?

곳곳이 불타는 이자리스인가? 

태양과는 상반되는 죽음의 왕의 무덤으로 가야한단 말인가?

태양을 찾기 위해 불사까지 되었는데,

나는 앞길도 못 보는 장님인건가?


침울해져 있는 나에게, 어느새 옆에 와서 앉은 전사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흐하하, 나는 사실 태양을 못 보는 바보가 아닌가?


그를 보니 모든 것이 덧없게 느껴졌기에 그저 농담을 하며 웃었다.


데몬 유적까지 왔다. 

이런 깊은 곳 까지 왔으나 나는 태양을 발견하지 못했다.


어째서? 어째서냐?

이만큼이나 찾았는데 어째서 보이질 않는 것이냐!


고개를 떨구고 한참을 생각하다가 일어서 그저 발길이 가는 대로 나아갔다.

앞에 적이 있다면, 아무 생각 없이 검을 휘둘렀다. 

그러다 빛을 보았다. 

태양인가? 드디어 내가 찾던 태양이 모습을 드러낸 것인가?

아니, 그곳에는 부글부글 끓는 시뻘건 용암이 있었을 뿐이다.


이제는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찾아서 여기까지 왔던가.

머릿속이 엉망진창이었다. 

그 자리에 주저 앉아버렸다.


내가 한 일은 모두 헛수고인가?

어쩌면 좋으냐.

태양아, 나의 태양아.


그저 엎드려 소리칠 뿐이었다.

그러다 지쳐 목소리도 나오지 않을 즈음

고개를 들어 옆을 보니 붉은 글씨로 

태양 만세

라고 적혀있었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필사적인가?

그대는 그대만의 태양에 필적할만 한 무언가를 발견한 것인가?

어쩌면 그대는, 자신의 길을 정한 것인가...?


멍하니 걸었다. 

뒤에서 누군가가 뒷통수를 후려갈겼다.

힘없이 쓰러져 고개를 떨군 자리에는 혈흔이 묻어 있었다.

혈흔이 손끝에 닿자, 눈앞에 환영이 어른거린다.


수많은 적들에 둘러싸여 끊임없이 공격을 당하면서도 그는 주저앉지 않는다.

검을 쥐고, 방패를 들며 적들을 물리치고 자신보다 훨씬 거대한 무언가를 끊임없이 굴러가며,

방패로 공격을 쳐내며 치명타를 먹인다.

그리고 마침내 큰 적이 쓰러지자,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아아, 나는 그처럼은 될 수 없지 않은가. 

나는 나의 태양도 찾지 못하는 자이지 않은가.


그러던 순간, 그는 곧게 서서 다리를 일자로 모으고 팔을 벌려 치켜든다.

그의 등은, 왜 나에게 빛나게 보이는가.

어쩌면 나의 태양은. 

태양아.




이 화톳불은 다른 곳 보다 따뜻하다.

무언가 마지막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수염이 자라있고, 보통의 사람보다 컸던 그 적은

이성을 잃은 망자였으나 무언가 위엄있어 보였다.

분명 이성을 잃기 전 위대한 무언가 였으리.

이제 내 여행에도 마침표를 찍을 때가 왔다.

이 거대한 불꽃에 몸을 맡겨, 시대를 이어가, 더 많은 자들에게 태양을 보게 해주자.


불꽃에 손을 뻗는 순간, 몸이 밝게 빛났다.

불꽃이 몸에 옮겨간건가? 

아니다.

이것은, 다른 세계에 불려갈 때...

그다! 

그 일것이다!

무언가, 확신은 없지만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대도 여기에 도달했군. 

최후의 최후에 도달해, 강적과 맞서기 전 동료를 부른다.

얼마나 태양의 빛에 걸맞는 도리인가!

다시 한번 거친 전투가 있을 것임에도 내 입가에 미소가 드리운다.

눈앞이 어두워지고 다시 밝아졌을 때, 나는 두 손을 들고 외치리.



Engage in Jolly co-op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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