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나게도 화톳불이 나를 놀리듯 오늘따라 유난히 밝은 빛을 일렁인다.

배가 찢어질 듯이 아팠다. 분명 몇 시간 전에 끓여 마신 녹색 풀 꽃잎 차가 문제였을 것이다. 옛 왕도에서 주워들은 잡지식으로 시험삼아 마셔 본 것이지만,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몇 분 동안이나 배를 부여잡고 엎어져 있었다. 재의 귀인은 어떻게 이런 걸 생으로 씹어먹고 다니는지도 문득 궁금해졌으나 그리 길게 머릿속에 남아있진 않았다. 만약 성공적으로 완성했다면 재의 귀인과 평범한 티타임을 나눌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도 했으나 이 개인 취향이 확연하게 담긴 망상도 복통에 밀려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마지막으로 거울을 본 적이 언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만약 지금 거울을 본다면 분명 끔찍한 몰골일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똥이 몸 밖으로 뛰쳐나오려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재의 귀인이 찾아온다면 분명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것이다. 신에게 빌었다. 제발 이 상황이 잘 해결되기를. 그런데 생각해보니 불의 시대의 신들은 대부분 죽지 않았었나?

뚜벅뚜벅.

잡생각을 하던 도중, 누군가가 계단을 내려왔다. 재의 귀인일 것이다. 황급히 옷을 고쳐 입고 평소처럼 있으려 노력했다. 재의 귀인이 걸어오는 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제사장에 크게 울려퍼진다. 재의 귀인이 내 앞에 오자마자 갑옷 옆의 작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꺼내든 것은 암술서. 이래뵈도 오랜 세월을 살아온 실력있는 암술사라고 자부할 수 있는 나지만, 여기 적혀 있는 것은 모두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학구열이 불타올랐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어도 벌떡 일어나서 재의 귀인을 능청스럽게 껴안았을 테지만, 유감스럽게도 나에겐 학구열론 해결하지 못한 복통이 남아있었다.

애써 웃으며 암술서를 받아들었다. 절대로 흔들려선 안된다. 항문에 힘을 집중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어색하게 웃으며 부자연스럽게 암술서의 페이지를 넘기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본다면 분명 비웃었을 것이다. 재의 귀인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려나. 고작 제자 하나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이상하다. 아니, 아니지. 본래 마법의 스승이란 것은 가족처럼 친근하지만 위엄있고 엄격해야 한다. 재의 귀인의 스승 노릇을 하면서 쌓은 이미지를 한순간에 무너트릴 순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배는 점점 더 아파오며 꾸륵거리는 소리를 높여왔다. 오랜 세월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아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내 몸의 신진대사가 이렇게나 활발했었나 의문이 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재의 귀인은 내 가르침을 기다리고 있다. 이 처음 보는 암술에 집중하려면 일단 이 배를 잠시 동안만이라도 진정시켜야 했다. 방귀만이라도 몸 밖으로 내보내고 싶었다. 소리를 내는 것은 부끄러웠기에, 본능적으로 엉덩이를 한쪽으로 들어 몰래 해소하려 했다.

그것이 오산이었다.

뿌득. 뿌드득.

\"....?!\"

누가 들어도 방귀소리는 아니고, 좀 더한 것이 몸 밖으로 나온 소리가 들렸다. 치마폭에 싸여 사타구니 쪽은 볼 수 없었지만, 뜨뜻미지근한 것이 분명 엉덩이에 깔려 있었다. 그것이 평범한 방귀소리만 났으면 어떻게든 웃어넘길 수 있었으나, 질척거리는 소리에 냄새까지 지독한 탓에 숨길 수 없었다. 순간 사고가 정지되었으나,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 타개책을 생각하려 했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재의 귀인의 머리엔 표정을 알 수 없게 하는 기사의 투구가 씌워져 있었으나, 왜인지 모르게 그의 몸짓과 분위기로 표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아니, 귀공, 그런 것이 아니라...\"

이렇게 되면 스승이라는 위엄은커녕 더러운 똥싸개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탓에 말이 앞섰다.

\"귀공이 생각하는 것이 뭔지는 알겠으나...그, 그게 사정이 있어서...\"

말이 머릿속에서 생각하는대로 나오지 않는다, 사랑하는 제자를 놓치기 싫어 횡설수설 변명을 늘어놓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급기야는 눈에서 눈물까지 나오려 했다. 차라리 죽고 싶었으나 불사자라 죽지도 못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갑작스런 침묵.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제사장의 사람들도 어렴풋이 눈치는 챈 듯 하다만, 그 어느 누구도, 재의 귀인을 빼고 여길 똑바로 쳐다보는 이가 없었다. 그것이 오히려 더 나를 부끄럽게 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일은 더욱 참혹했다.

어떻게든 이 일을 해결하려 한 건지, 그냥 본능적인 것이었던 건지는 몰라도. 일단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제사장 근처에 호숫가가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뛰쳐나가 이 더러운 것들을 씻어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돌아오고 싶었다. 이젠 체면이고 뭐고 상관 없었다. 이 상황을 해결해야 했다.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너무 긴장했던 탓일까, 너무 오랜 시간 앉아만 있었을 탓일까. 순간 하반신의 힘이 풀렸다. 당황한 나는 어떻게든 이 이상 더러운 꼴 만은 보여주지 않으려 힘을 줬지만, 오히려 역효과였다.

앞으로 쓰러지며 재의 귀인의 어깨를 잡아 어떻게든 앞으로 고꾸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서 있으려 배와 다리에 힘을 주는 동시에, 항문의 힘이 풀렸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언제나 항상 불길한 예감은 적중한다.

항문이 풀리며 치마 밑으로 똥이 흘러 쏟아져 나왔다. 몇 시간 동안이나 참고 있어서인지 물처럼 흘러내렸으며, 냄새는 말도 못할 정도로 지독했다. 무엇보다도 부끄러운 것은, 그 와중에 배변의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10초 정도가 흘렀다. 10초가 이렇게 길었던가. 다리엔 역겨운 물이 아직도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바닥엔 김을 내뿜는 갓 나온 똥들이 쏟아져 있었다. 애써 모른 척 해주던 조금 전과는 다르게 이젠 제사장의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고 있었다. 평소엔 화톳불 근처에서 떠나질 않던 화방녀까지도, 모든 이들이 나에게 시선을 쏘아댔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던 이리나까지도 냄새와 소리로 알아차린 듯 했다. 모든 이들의 동정과 역겨움의 시선이 부끄러웠다. 이제 더이상 몸을 겨눌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다리의 힘이 완전히 풀려 주저앉아 버렸다. 아끼던 옷과 엉덩이, 그리고 다리에 똥이 묻는 것은 대수롭지 않았다. 이런 지경까지 왔는데 그게 대수인가.

\"아...아아...앗...아...\"

급기야 주저앉은 상태에서 괴상한 신음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왜 서글픈지는 딱 집어서 말할 수 없으나, 일단 다른 사람이 보기엔 꼴사나울 것이라는 건 확실했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내 인생은 끝났다. 이 상태에서 죽으면 망자가 되려나.

재의 귀인이 뭐라 말하며 손짓하는 것 같았지만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나만이 이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이대로 제사장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그러던 도중, 누군가 자신을 들어 올려 안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재의 귀인이었다. 불길한 생각이 마구 들었다. 장작의 왕을 데려오랬더니 모가지만 따오는 미친놈이란 걸 들은 것도 같았다. 거칠게 포대자루를 어깨에 매듯 나를 던져올려 어깨에 짊어졌다. 그리고는 제사장 밖으로 향했다. 어깨에 배가 걸쳐져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폼이 영 이상하다. 자세를 고치려 몸을 비틀었으나 재의 귀인의 손아귀는 억셌다. 그렇게 불편한 자세는 바꾸지 못했다. 어딜 가는지도 모른다. 앞을 보려고 하면 재의 귀인의 등만 거꾸로 뒤집혀 보인다. 고개를 들면 뒤쪽으로 따라오는 화방녀가 보이나, 그 웃는 상이 마치 비웃는 듯 해서 기분이 울적하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나서, 어딘가에 거칠게 내려졌다. 호숫가였다.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재의 귀인이 내 옷을 벗겼다. 태어난 모습 그대로를 재의 귀인에게 보였다. 부끄러워할 틈도 없이 화방녀와 재의 귀인도 옷을 벗었다. 재의 귀인에게 붙잡혀 호수로 끌려가다시피 들어갔다. 거칠게 몸을 씻기는 재의 귀인. 구역질을 참으면서도 몸에 굳어버린 똥을 꼼꼼히 씻겨 주는 재의 귀인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날 붙잡고 있는 화방녀. 결국 재의 귀인이 헛구역질을 하며 잠깐 고개를 돌리고, 다시 몸을 씻기기 시작했다. 지금쯤 시녀 할머니와 대장장이 할아버지가 바닥을 치우고 있을 거라는 얘기가 오갔다. 자기 하나때문에 여러 사람이 힘들어졌다. 미안했다. 저주받은 불사 따위가 여가를 즐기려 한 탓일까.

\"귀..귀공..\"
\"닥쳐.\"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지만, 똥싸개에겐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것일까. 재의 귀인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싸늘하고 낮은 목소리로 대꾸하고, 다리에 붙은 이물질을 떼어냈다. 애초에 존댓말을 하던 사이는 아니었고, 가벼운 욕도 몇 번인가 들은 적 있었지만, 이번엔 뭔가 달랐다. 차라리 화를 크게 내거나 비꼬며 놀리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색한 침묵은 오히려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그런 와중에도 조용히 생글생글 웃는 화방녀가 보기 싫었다. 제사장에 돌아가서 어떻게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많은 일이 있었던 탓인지 눈앞이 캄캄해진다. 졸리다. 재의 귀인이 궁시렁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일어난 곳은 제사장의 화톳불 근처, 재의 귀인이 이마를 매만지고 있었다. 분명 한벌밖에 없던 옷은 완전히 더러워졌을 터인데, 다른 옷이 입혀져 있다. 몸에 조금 안 맞는 것이 재의 귀인의 옷 같다. 내가 일어난 것을 눈치챈 재의 귀인이 나를 쳐다보았다. 평소의 기사의 투구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닌 맨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확실히 나를 보는 시선은 나쁜 쪽으로 달라진 성 싶다. 우울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와중, 재의 귀인이 눈앞에 암술서를 내밀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런 똥싸개임에도 불구하고 스승으로 모시겠다니. 감동의 도가니였다.

\"귀공...\"
\"시발 읽고 해석이나 해.\"

내 감동 돌려내라 이 어리석은 제자야. 그래도 이게 어디인가. 퉁명스러운 모습은 남아 있지만 설명을 시작하자 내 말에 집중해 주는 그 모습이 좋다. 이제 위엄이나 존경같은건 상관없다. 그저 조용히 곁에 남아있게 해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화톳불의 불길이 오늘따라 밝다.  


출저: 다크소울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