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를 내 맘대로 지어낸 부분이 많으니 미리 양해를 구하겠음



----------------------------



 론돌의 흑교회의 장송자로서, 빌헬름은 맡은 바 임무에 유능하고, 충실했다.


장송자의 임무라 함은, 요컨대 이성을 잃은, 또는 잃을 징후를 보이는 망자를


처리하는 것이다. 빌헬름은 그야말로 박정하게 모든 임무를 풀어나갔다.


실낱같은 징조를 보인 지어미를 그 지아비의 눈앞에서 참살하고, 불사의 저주에 걸리지


않아 속절없이 가버린 혈육을 묻을 유예를 비는 자는 말대꾸 한 마디 없이 베었다.


말주변이 좋은 사람도 아니었으니, 자연히, 장송자이자 기사는 망자들 사이에서도


꺼림받는 이였다.



 찬탈의 사명을 지고 떠났던 주인, 엘프리데가 불꺼진 재가 되어 돌아오자


기사는 이전처럼 주인을 수행했다. 재가 된 엘프리데는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흑교회의 수장으로서의 직무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생각에 빠져있는 듯,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이 보였다. 화목했던 자매간에 불화가 생겨난 것 역시


기사를 걱정케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빌헬름을 괴롭힌 것은, 기사는 돌아온 주인이


이따끔씩 짓는 표정을 그 어디의 그 누구에게서도 본 적이 없었다. 고뇌? 회한?


그가 아는 어떤 말로도 얕고 부족해서, 비슷하게라도 표현해낼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엘프리데는 빌헬름이 짐작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무언가의 이유로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빌헬름은 스스로의 말주변이 썩 좋지 못함에 별 불만을 품은 적이 없었다. 임무를


수행하는 방식 때문에라도 다른 망자들과 친근해질 생각은 일찌감치 버렸고, 서투른


말솜씨가 주종간에 문제를 야기한 적도 없었기에,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주인은


기사를 더욱 신뢰하고 아꼈으니까. 허나 엘프리데를 모신 이래 처음으로, 빌헬름은


자신의 부족함을 비통스러워했다.



 예정보다 빠르게 장송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빌헬름에게 그림자가 의문의 보고서를


건넸다. 주인을 섬기는 종으로서 그 됨됨이 상 주인에게 이것저것 번거롭게 묻지 않는


기사를 주인도 미덥게 여겨 감추는 바 없이 지내왔던 터다. 어떤 일이기에 자신에게


마저 은밀히 하는 것인지, 모시지 못한 동안 주인은 대체 어떤 일을 겪었기에


이렇게까지 변모했는지. 기사는 미망에 빠졌다.



 의심을 사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그림자를 치하하고 돌아선 후, 한순간이나마 봉인을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버린 스스로를 책망하며 기사는 주인의 집무실로 향했다.


애써 마음을 비우려 하며 발걸음을 옮기던 빌헬름은 복도를 울리는 고성에 잠시 걸음을


멈춰세웠다.



 너무 잦아서 이제는 익숙해져버린 자매간의 언쟁이겠거니 하고 별다른 생각 없이 멈춰


서서 기다리던 빌헬름을, 생소한 말들이 그 귀를 기울이게 했다. 다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배신이니 비겁자니 하는, 기사의 주인에게 어울리지 않는 몇마디가 귀를 통해


들어와 마음을 찔러댔다. 별안간 소란이 끊기고, 정적이 기사의 마음을 내리눌렀다.


문득 날아든 예감에 다급하게 복도를 돌아서 몸을 숨기자마자 쿵하는 소리와 함께


엘프리데의 지친 목소리가 들렸다.


-나를 그냥 내버려 두렴. 마음에 담아 두지 말고, 너희들이 이전부터 그래왔듯이.


기사는 마침내 주인의 비밀을 들춰볼 마음을 먹었다.



 보고서는 교황을 자칭한 자, 설리번을 조사한 것이었다. 정확하게는,


설리번의 출신 배경에 대해서였다. 아리안델이라는 회화세계 출신이라.


그래서 그 자를 쓰러뜨리는데 출신 배경같은 쓸모 없는 지식이 왜 필요한가.


설마 그럴 리가 없다. 기사는 보고서를 일단 숨겨두었다.



 본의 아니게 자매간의 언쟁을 몇번 더 듣고, 이런저런 단서를 나름대로 연결하고


추론한 빌헬름은 상황이 어떻게 흘러갔고, 흘러가고 있는지 이제는 알 것만 같았다.


불이 꺼지는 과정에서 무엇을 경험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기사의 주인은


불의 찬탈을 포기하고 억지로라도 시대를 이어갈 심산인듯 하다. 당연하게도


그 자매들은 이 돌변을, 배신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재가 되어 지쳐버린


주인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듯 했다.



 감춰두었던 보고서를 갖고 주인을 찾아간 기사를 엘프리데는 담담하게 맞이했다.


너무 늦은게 아니냐고 농담삼아 책망할 여유마저 있었다. 엘프리데는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이토록 늦게 받을 이유가 없는 보고가 늦는 것은 달리 설명할 수


없을테니까. 떠나려는 주인을 일단 붙잡은 기사에게 엘프리데는 론돌을 떠나겠노라고


다시금 분명하게 말했고, 빌헬름은 왜 떠나려 하는지 이유를 물었다. 엘프리데는 답을


주지 않았고, 기사는 흑교회의 수장으로서의 책무, 자매들과의 인연 등 갖가지 이유를


들어 만류했다. 그러나 그 어떤 말로도 마음을 돌리지 못하자, 빌헬름의 언사가 기어코


거칠어졌다. 이윽고 사명을 버리고 도망가는 자라는 대목에 이르자, 인내심 있게


경청하던 엘프리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흉한 화상 자국이 새겨져버린 아름다웠던,


아니 아름다운 얼굴이 다시 한번 기사마저 괴롭게 했던 표정을 지었고,


-그래서 도망가는 이를 쫓아, 감춘 것을 파헤치고 정의를 뽐낼 셈입니까, 빌헬름 경.


빌헬름은 입을 다물었다.



 주인은 차고 있던 검을 풀어 기사에게 하사했다. 그리고는 후련한 듯, 아쉬운 듯 이제


그대는 날 섬길 의무가 없다고 말했다. 뒤돌아서 떠나가는 주인을 보며 짧게 생각에


잠긴 기사는, 보고서를 그 자리에 내려놓고 돌을 집어들어 그 위에 잘 올려놓은 다음,


엘프리데를 따라나섰다. 당신이 있을 곳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빌헬름은 그저 못들은체


하고 늘 수행해온 그대로 묵묵히 따라걸었다.



 아리안델 회화세계는 춥고, 썩어 문드러져가는 세계였다. 교부 아리안델은 두 재가


불을 일으킨다는 예언을 두려워했지만 엘프리데는 오래지 않아 교부와 교섭을 끝내고,


수도녀의 복식을 갖추고 스스로를 프리데라 불렀다. 빌헬름은 그런 프리데를 군말없이


따랐다. 둘은 이 춥고 썩어가는 세계를 지키기 위해 한동안 바쁘게 일했다. 우선은


거주민들과의 관계를 정립해야 했다. 불을 원하는 까마귀 인간들이 얼마간 있었으나


프리데에게 심취한 까마귀 기사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그들을 처리했다.


팔란의 멸망 후 오갈데 없어 흘러들어온 유귀들은 빌헬름과 합세하여 종을 파괴했다.


숙적인 용을 쫓다 길을 잃은 밀우드 족속에게는 감시탑 하나를 맡겼고, 유귀들과


각 지역을 분담하여 혹시 모를 일에 대비케 했다. 세계의 부패가 심해짐에 따라


계속해서 이런저런 생물들이 이 곳을 안식처로 삼았고, 프리데는 그 모두를 지켜야 할


대상으로 삼았다. 화가 소녀가 유일한 위험 요소였지만 실제로 위협이 될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기에 유폐만 해두었고, 빌헬름이 직접 감시했다. 마지막으로, 간간히 


그림자가 들어와서 회화 바깥의 소식을 전달하여서 외부의 동향도 빈틈없이 알아둘 


수 있게 하였다.



 회화세계의 질서가 나름대로 잡힌 후, 요컨대 두 주종이 여유를 갖추게 된 후, 문득


빌헬름이 프리데에게 물었다. 대체 무엇이 당신을 이렇게 바꿨는지, 어째서 론돌을


떠났는지, 다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는지 등등... 의문을 쏟아낸 빌헬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프리데는 그 모든 의문을 단 한마디로 정리했다. 그저 자신이 아는, 자신의


눈이 닿는 모든 것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라고. 얼른 이해하지 못하고 답을 곱씹어보는


빌헬름에게 프리데가 반문했다. 검을 하사하고 이걸로 이별이라 하였는데 왜 자신을


따라왔느냐고. 그러자 이번에는 빌헬름이 프리데를 한참을 바라보다가, 간신히 대답을


쥐어짜냈다. 언젠가 당신이 자매들에게 돌아가리라 믿는다고. 고개를 떨궈버린 프리데를


보는게 애달파서 견딜 수 없어진 빌헬름은 조용히 예배소 밖으로 나가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서 있었다.



 회화세계의 시간이 흘러 추위와 부패는 더욱 심해져 갔다. 빌헬름의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만 프리데가 그마저도 지키려 하여 내버려둔 역겨운 생물은 마침내 예배소의


지하실을 그 둥지로 삼았고, 감시탑을 맡은 밀우드 기사들중 동사하는 자까지 있을


정도로 이 추운 세계는 오랫동안 달콤하게 썩어가는 평온을 누렸다. 그러나 외부의


소문은 어딘가 불안한 것이었다. 어느 불꺼진 재가 심상찮은 기세로 여행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빌헬름은 진작에 종은 파괴해버려서 없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이따끔씩


예배소 밖으로 나와서 현수교 너머를 바라보는 습관이 들었다.



 한동안 눈발을 맞으며 무언가 생각에 잠겨있던 어느 날. 이만 예배소로 다시


들어가려던 빌헬름의 귀에 자신들을 받아달라며 얼마전에 찾아온 까마귀 인간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침착하게 문가의 벽에 기대선 그 앞에, 이내 한 인간이 나타났다.


잔불이 바람에 휘날리는, 재였다. 빌헬름은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호오, 귀공...



----------------------------



아 진지물은 앰병 나도 걍 야설이나 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