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휘어진 칼날을 타고 검은 피가 흘러내렸다.
알바는 무너지는 간수의 몸뚱이를 걷어차고 거친 숨을 골랐다. 아마 이 녀석이 마지막일 것이다. 그는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열쇠를 찾아 시체의 주머니를 열심히 뒤졌지만, 운이 없었다. 지금까지 구한 유일한 열쇠라고는 재리가 주운 조그만 것 하나 뿐이었고, 그것조차도 맞는 문이 없었다. 알바는 문을 열심히 따고 있는 재리를 불렀다.
"어이."
재리는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터덜터덜 걸어왔다. "오면서 감옥에 있는 문이란 문은 다 해봤잖아. 뭐가 문제지? 여기 열쇠가 아닌가?"
알바는 대답없이 무라쿠모를 재리에게 건넸다. 재리는 투덜거리면서도 칼을 받아 그의 등에 묶어주었다. 처음 만났을때부터 지금까지, 한 치의 흔들림없이 자신을 무시하는 알바가 한편으로는 대단했지만 한편으론 한 대 후려치고 싶은 마음이 역력했다.
알바가 막다른 길에 있는 철창으로 걸어갔다. 수색하지 않은 마지막 감방이었다. 다른 감방들과 비해서 별 차이는 없어보였지만, 알바는 이 감방 하나에 자신의 희망을 모두 걸었다.
이 곳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
알바는 천천히 감방의 창살 안을 살펴보았다. 어두컴컴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있는 것 같았다. 알바는 재리를 불렀다. 곧 재리가 뒤따라와 문에 열쇠를 꽂아보았지만, 곧바로 고개를 저으며 열쇠를 빼냈다. 알바는 한숨을 푹 쉬고는 주먹으로 창살을 세게 두어번 쳤다.
어둠 속에서 움직임이 보였다. 잠깐이었지만, 분명했다. 어둠 속의 형체는 온통 검은 옷으로 몸을 친친 감은 채 알바와 재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적어도 그런 것 같았다. 머리에 큰 삼각모를 쓴 탓에 시선의 방향은 불분명했다. 알바는 힘들게 입을 열었다. "당신이 심연의 딸이오?"
"...귀공은 누구지? 녀석들과 한 패는 아닌 것 같은데."
어둠속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놀랍게도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노파의 목소리를 예상했던 알바는 약간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 재리가 재빨리 공백을 메웠다.
"저희는 저 멀리 드랭 지방에서 온 마법사예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서 이 먼 길을..."
재리의 말을 끊고 어둠 속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낮으면서도 콧소리가 섞인, 나름 매혹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불길한 웃음이었다.
"내가 누군지 알고도 내 도움이 필요하다니, 귀공은 참 특이한 사람이구나. 내가 아는 오직 한 가지는 어둠의 마술. 귀공을 만족시킬만한 것은 없네."
잠깐 침묵이 흘렀다. 간수의 발자국소리마저 끊긴 탓에 그 정적은 더 고요하게 느껴졌다. 가만히 있다보면 간수들이 다시 살아나는 소리마저 들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사이를 타고 흐르는 것은 긴장감과, 이 모든 여행이 그저 헛된 것이었는지 자문하며 느끼는 고통이었다.
알바가 갑자기 철창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뒤이어 재리도 영문을 모른채 따라앉았다. 자리에 앉으니 삼각모에 가렸던 여인의 눈빛이 어둠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것이 보였다. 이들이 무슨 짓을 할 지 궁금해하는 눈빛이었다. 알바가 기대에 호응해 입을 열었다.
"나는 드랭 지방에서 성녀의 호위 임무를 맡은 기사였다. 불사의 저주에 걸린 불쌍한 녀석이었지. 치료법따위는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우린 최선을 다했다."
"아... 그럼 귀공이 그 방랑기사인가? 노래에 나오는?"
알바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속 눈빛이 재리에게로 향했다. "그럼 귀공이 기사를 유혹했다는 그 검은 마녀겠구나."
재리가 고개를 살짝 끄덕여 인사를 했다. 알바는 계속 말을 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성녀가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게 눈에 보였다. 그렇게 매달리던 자기네 신 이름도 잊어버리고, 결국엔 나나 재리까지 잊어버리더군. 그러다가 결국 어느 순간, 기억도 하지 못하는 사람인 나를 보고 애원했다. 죽여달라고."
알바가 허리춤에 달린 단검을 살짝 꺼내보였다. 칼날 시작부분까지 검붉은 자국이 남아있었다.
"점점 이성을 잃고 우리를 공격하더군. 그나마 남아있는 이성으로 자기를 죽여달라고, 위험하니까 피하라고 하면서도 지금까지 보지 못한 강력한 위력의 대뇌창을 연신 던지고 압도적인 위력의 포스를 사용했네. 차마 칼로 벨 수는 없어서..."
"단검으로 찔렀구나." 어둠 속의 목소리가 실망했다는 듯 말했다. 알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장쪽을 찌르고 죽을때까지 계속 붙들고 있었던 것 뿐이야. 고맙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네. 불사라서 다시 되살아났겠지만, 그것까지 생각할 정신머리는 없었네. 세레타를 제외하더라도 거긴 위험한 곳이어서 빨리 벗어나야 했었으니까. 그 이후로 나는 기사 직위를 버리고, 갑옷을 던져버렸네. 그때서야 알았네. 나에게도 다크링이 생겼다는 걸 말이야."
알바는 한숨을 쉬었다. "무덤덤했네. 이렇게 된 이상 그저 그녀 옆에서 썩어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그 때 재리가 내게 말했네. 어둠의 마법이라면 죽은 자를 살리고, 저주를 푸는 방법이 있을 거라고 말이야. 그래서 한동안 암술을 아는 사람이다 싶으면 싹 다 찾아다녔네. 하지만 워낙 금기시되는 것이라 쉽게 찾을 수 없었지. 그 때... 당신에 대한 소문을 들었네. 자랑스럽게 엄청난 암술을 쓰고 다니던, 자칭 심연의 딸, 카를라."
알바가 카를라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비록 투구때문에 직접 시선이 닿지는 않았지만, 카를라는 그에게서 갈망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 금기를 찾아서 온 세상을 떠돌만큼 강력한 갈망이.
인간성의 본성은 집착과 갈망이라더니, 딱 맞는 말이었다. 카를라는 미소를 지었다.
"안타깝게도, 귀공이 찾는 암술은 존재하지 않네. 그런 게 존재한다면 내가 감옥에 갇히진 않았겠지."
알바는 한숨을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결국... 다 헛고생이었구만."
"...하지만." 카를라가 돌아서는 알바를 불러세웠다. "저 멀리, 세상의 끝에, 인간들을 위한 도시가 있어. 먼 옛날 태양빛의 왕이 고룡전쟁 이후 인간들에게 하사한 땅, 고리의 도시."
"고리의 도시..." 알바가 기억에 새기는 듯 되뇌었다. 재리가 대신 물었다. "거기에 뭐가 있길래 그러죠?"
"귀공이 원하는 것. 보면 바로 알거야."
알바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다 무언가 갑자기 생각난 듯, 그는 주머니에서 납석을 꺼냈다. 그리고 창살 안쪽에 사인을 그었다.
"만일, 목숨이 위험하다면 나를 부르시오. 열쇠가 없어 꺼내주지는 못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게 유일하오."
카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알바와 재리는 카를라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카를라는 삼각모를 고쳐썼다. 고리의 도시까지 가는 법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심지어 카를라 자신조차도 몰랐다. 하지만 알바라면 어떻게든 그 곳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정도 갈망이라면 세상이 끝나도 살아남아 성녀의 치료법을 찾아다니리라.
하지만 그런 것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기에, 카를라의 눈에는 정말 아름다웠다.
알바가 이루실에서 나오는 이유를 프롬뇌 졸라게 굴리다보니까 나온 소설임
원래 알바 스토리 첨부터 고리도시까지 쭉 쓰고싶었는데 퓰리처때문에 초반만 썼던거 급하게 중간부분 구상해서 써봄
비틱이라 씹진지빨고 쓴 건 미안하게 생각한다
EDIT : 다른 퓰리처 글과 통일하기 위해 제목 퓰리처 대괄호로 바꾸고, 열화와 같은 성원에 그1윈 태양빛의 왕으로 수정
기대된다 추
존내 잘 썼네 - dc App
알바 제리 추
그1윈
그1윈
결말 생각하면 너무 슬픈데
문학인데도 그1윈이라 쓰는게 너무 웃긴데 ㅋㅋㅋ
금지언데 어쩔수 있나 ㅋㅋㅋ
오 소설 첨으로 끝까지 다읽음ㅋㅋㅋㅋㅋ - +(๑òωó๑)+
ㄱ위 ㅡㄴ
이건 두 줄이라 쪼끔
그냥 1편 오프닝 시네마틱에 나오는 태양빛의 왕 정도로 부르지 그1윈이라 적어놓으니까 진지하게 보다가 뻘하게 터지네 ㅋㅋㅋㅋㅋ
갑자기 그1윈 ㅋㅋㅋㅋㅋ
잘 읽다가 그1윈에서 흐름 끊김 ㅠ
그1윈에서 흐름 딱 끊겨버리네ㅋㅋㅋㅋ - dc App
그러나 그 창, 그 끔찍한 창이 알바의 가슴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