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동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있다면 분명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본래 그 실체가 보잘것없는 것이거나, 누구도 그 내용을 감당할 수 없는 것 이거나. 지금까지 내가 마주한 비밀들은 모두 전자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무언가 내 심장을 쥐어오는 것만 같은 조급함이 점점 심해진다. 이 무자비한 나날의 끝에서 내가 마주할 것은……아니, 마주해야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을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L.W-
<아무도 발견할 수 없는 어느 수기>
이끌린다. 이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단어에는 수많은 대상이 포함될 것이다. 꽃의 꿀을 모으러 가는 나비나 벌, 사랑에 빠진 연인 사이, 순간의 행운에 배팅하는 도박사. 그리고 덫을 알지 못한 채 다가오는 사냥감에도. 하지만 이 모든 예시를 합친 것보다 적절한 예시는 단지 밤거리를 걷는 한 사람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자는 머리에 검은 후드를 깊게 눌러 쓴 채로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두 눈에 담긴 것은 불안과 공포였으며 언뜻 보이는 얼굴에 흐르는 것은 차갑게 식어버린 땀이었다. 그자는 마치 도시 전체가 자신을 집어삼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도 하는 듯, 병든 시궁쥐의 발걸음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고, 굳게 잠긴 문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광소에 비틀거렸으며, 어두운 거리를 가로지르는 비명에 주저앉아 울먹였다.
그자가 걷는 곳은 고도 야남. 이 신비하면서도 흉물스러운 도시에 또 하나의 영혼이 이끌려왔다. 스스로의 운명이 어떠한 곳으로 나아갈지, 무언가에 얽매일지, 무엇을 걸고 무엇을 얻을지. 사냥당할지, 사냥할지. 아무것도 모른 채.
몇 번이나 헤매고 헤매어 이방인은 오래된 건물에 도착했다. 건물의 외관에는 음침함이 가득 맴돌았지만, 이방인은 개의치 않고 입구에 들어섰다.
“……… 계십니까?”
묘비가 들어선 정원에 오직 목소리와 문을 두들기는 노크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벌레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곳에 자신만이 존재한다는 압박감과 고립감에도 이방인은 발걸음을 돌릴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린 끝에 굳게 닫힌 문이 열렸다. 그리고
“누구신가?”
문을 열고 나온 이에게 실례임에도 이방인은 그 모습을 본 순간 몸을 흠칫 떨었다.
“누구신가? 왜 이런 야심한 밤에 이 늙은이를 찾아왔나?”
자신을 늙은이라 지칭한 노인은 다리에 문제가 있는지 아니면 나이 때문인지는 불명이었으나 휠체어를 타고 있었고 챙이 위로 휜 실크 햇을 쓰고 있었다. 덕분에 그의 긴 앞머리에 눈이 완전히 가려져 제대로 얼굴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방인이 놀란 데에는 그 음산한 옷차림이나 휠체어도 이유가 되지 않았다. 가장 경악할 만한 것은 바로
“피.”
“ㄴ, 네?”
“자네 상처를 입었나? 피가 나고 있네만?”
“아, 아니 이건. 그저 쓸린 것뿐 입니다.”
“그런가.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게. 손님을 세워 두는 것도 예의는 아니니.”
말을 마치고 익숙한 듯 빠르게 휠체어를 미는 노인의 등에 이방인의 흔들리는 두 눈동자가 떨어질 줄을 몰랐다. 너무나도 진한 피 냄새가 노인의 몸에 배어 있었다. 거리를 지나면서 맡았던 옅은 혈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했다. 노인의 몸에는 각혈했거나. 다친 흔적이 없었다. 즉, 그는 피 냄새가 몸에 완전히 밸 정도의, 다친 이방인의 피 냄새를 단숨에 알아챌 정도로 피에 익숙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안한 마음을 다잡고 이방인은 어두운 집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이것 말곤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불안하면서도 그의 발은 멈추지 않았다.
“자, 그럼. 다시 묻도록 하지 이곳에 왜 왔는가?”
마땅히 앉을 곳이 없어 수술대로 보이는 여러 판 중 하나에 걸터앉은 이방인은 선뜻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이 노인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마치 자신을 시험하려는 것 마냥, 질문을 해왔다. 과연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거짓을 말해야 하나? 살짝 떠봐야 하나? 너무나도 수상한데 정말 내가 잘 찾아온 것일까? 수십 가지 생각들이 생겨나다 사라졌다.
꽤 오랫동안 이방인은 침묵을 유지했다. 그럼에도 노인은 그저 묵묵히 기다리기만 할 뿐이었다. 이미 돌이킬 수는 없었다. 더 이상의 물러설 곳은 없었다. 이방인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 야수병을 치료하러 왔습니다.”
자신이 결정을 내리고 대답을 한 찰나의 순간 이방인은 확실하게 보았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저 소름 끼치는 노인의 얼굴에 더더욱 소름 끼치는 미소가 걸리는 것을.
“자네도 잘 알다시피 야수병은 완치가 매우 힘드네. 이 도시 전체가 오랫동안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말이야.”
노인이 지었던 미소가 계속해서 마음에 걸린 이방인은 그가 꺼내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움찔거릴 것 같은 자신의 몸을 다잡았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이 모두 헛수고로 끝나지는 않았지. 우리가 여전히 야수병에 저항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증거가 아니겠나. 자네도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온 경우겠지?”
“…… 그렇습니다.”
“그래그래. 자네 같은 이들을 대부분의 사람은 욕할지도 모르지. 단순한 풍문에 목숨을 내던지는 얼간이 같은 이들이라고 말아야. 하지만 우리는…… 적어도 나는 다르다네. 오히려 감탄스럽기까지 하지. 용감하고 과감한 이들이라고 말이야.”
말은 그렇게 해도 웃음이 나올 것 같은 얼굴을 하는 것으로 봐선 노인 역시 그들을 우습게 여기는 듯 했다. 아니면 이방인의 행동이 정말로 그를 즐겁게 하는 걸지도 몰랐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나? 기분 나쁘게 여기지는 말아주게. 단지 자네가 어디까지 알고 왔는지에 따라 자네의 선택지가 늘어날 수 있으니 말이야.”
“그러시죠.”
이미 각오를 다진 그였기에 이방인의 입에선 선뜻 수락이 나왔다. 이에 노인은 거리낌 없이 질문했다.
“자네가 결심을 한 계기를 묻고 싶군. 치료제가 있다거나, 탁월한 의사가 있다거나 뭐 그런 거 말이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거짓말은 삼가는 걸 추천하지.”
언뜻 친절한 고견으로 보이는 협박이 가해지자 이방인은 살짝 불쾌한 듯 입술을 짓씹었다. 노인의 말에 마치 자신이 한 다짐은 쓸모없는 것 같이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에 반발심이라도 가진 것인지 이방인의 대답은 조금 전처럼 망설임이 깃들지 않았다.
“‘창백한 피’. 그것이 야수병을 치료할 열쇠라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치료제인지 아니면 어떤 인물을 가리키는 은어인지는 모릅니다. 단지 야수병을 치료받았다고 주장하는 이가 한 말이기에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 흐흐흐흐흐흐흐흐.”
이방인의 대답이 만족할 만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너무나도 어이없는 것이었는지 노인은 드디어 참아왔던 웃음을 뱉어냈다. 그의 웃음소리는 마른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건조하지만 동시에 사람을 소름 돋게 하는 광기가 묻어나왔다. 한동안 노인의 웃음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노인은 이방인을 뒤로하고 낡아빠진 선반에서 이것저것 뒤지기 시작했다. 이방인은 자신이 느끼는 불안감이 앞으로 자신에게 닥칠 일의 예견 때문인지 아니면 노인이 도중에 흘리는 기분 나쁜 웃음 때문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노인은 준비가 끝났는지 천천히 휠체어를 돌리며 다가왔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평범한 카테터(주입용 관)와 약간 기묘한 느낌의 혈액이 담긴 병이었다. 더 끔찍한 것을 생각한 이방인은 적잖이 놀랐다. 팔을 걷어 올리고 자신이 앉아 있던 수술대에 몸을 누이면서 이방인은 내심 자신이 너무 과대한 망상을 한 건 아닌지, 자신이 지금 제정신인지 잠깐 의심이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노인은 바늘을 꽂으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아, 그래… 창백한 피…. 그래, 아주 잘 찾아왔어. 야남은 피의 목회의 고향. 자네는 그 비밀을 풀어헤치기만 하면 되네,”
한바탕 웃은 후, 갑작스럽게 바뀐 노인의 분위기 때문인지 이방인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비단 공포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었다. 이전과 확연하게 달라진 노인의 태도가 분명 무언가가 있다는 묘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계기 또한 되었기 때문이다. 이방인은 그저 침묵한 채 노인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런데, 자네 같은 외지인은 어디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노인은 말을 이어나가면서 점점 이방인에게 접근하였다. 그가 다가올수록 그에게서 풍기는 혈향은 더 짙어지기만 했고 일어나 있을 때 보이지 않던 그의 얼굴이 좀 더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간단해. 야남의 피를 조금 가져가면 되는 거야…”
노인의 백발에 가려진 두 눈동자에는 기묘한 열기와 형용할 수 없는 광기가 소용돌이치며 이방인의 얼굴을 두 눈동자에 잡아내고 놓아주지 않을 것만 같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질문을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노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전에 계약을 하도록 하지…”
말을 마친 노인은 누운 이방인에게 한 장의 계약서를 내밀었다. 계약서에는 자신이 시술을 동의한다는 내용과 서명란 외에도 기입할 항목이 하나 존재했다. 자신이 지원하게 된 경위를 간략하게 쓰는 칸이 있었다. 의료 동의서에 이러한 항목이 있는지 의아했지만, 이방인은 묵묵히 펜을 놀렸다.
‘귀족 가문의 후예였지만 야수병을 일족에게 숨기고 치료하기 위해 지원.’
자신이 썼음에도 살짝 어이없음을 느낀 채 이방인은 서명란으로 펜을 향했다. 이곳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 순간,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 지금까지의 삶은 완전히 흔적조차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압박감이 전신을 압박해 왔다. 하지만 이방인은 손을 움직였다.
서명: 데이나 아쥬토르
깔끔한 필적으로 서명이 끝나자 노인은 계약서를 받아들고 어디서 꺼냈는지 알 수 없는 양초의 촛농과 인장으로 봉인을 끝마쳤다.
“좋아. 서명과 봉인이 끝났군. 그럼 수혈을 시작하지. 아, 걱정하지 말게. 모든 일이… 그저 나쁜 꿈으로만 느껴질 거야…”
노인은 카테터 중간의 마개를 풀었다. 기묘한 느낌의 혈액이 관을 타고 내려와 팔을 통해 몸 안으로 흘러들어온 순간, 데이나는 참을 수 없는 현기증과 구토감을 느꼈다. 어떻게든 다잡은 의식이 알아챈 것은 아까와는 비교도 안 되는 광기를 내뿜는 노인의 웃음소리뿐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점점 감기는 눈꺼풀에 어떻게든 힘을 주려 애쓰던 데이나는 이 모든 일이 말 그대로 한낱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헛된 바람을 가진 채 의식을 잃었다.
*조아라에서 동일한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xargon 이라 합니다. 프롬갤에 올려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아 이리 올리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점이 많으니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괘념치 말고 말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제미가 잇내요
후속작이씀?? - dc App
네. 현재는 12화까지 있습니다. 근데 이걸 어떻게 올려야 하나 고민이 되서 일단은 하나만 올린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