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현
뜨겁다. 오직 그것만이 알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팔에서 출발해서 다리, 발끝에서 정수리까지, 미지의 열기는 데이나의 바깥을 완전히 뒤덮었다. 전신을 수백 개의 촛불로 지지는 것 같은 고통이 엄습해왔지만 데이나의 의식은 끊기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생생하게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
끔찍한 고통에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목에서는 작은 신음조차 새어 나오지 않았다. 데이나는 지금 자신이 짊어진 짐에도 나아갈 사명에도 생각을 뻗지 못하였다. 오직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이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마음속으로 계속해서 되 내었다. 하지만 데이나의 애원이 무색하게도 진정한 고통이 그 그림자를 서서히 드리우고 있었다.
“………!”
끊임없이 겉을 맴돌던 열기가 점차 안으로 파고들어 오기 시작했다. 마치 송곳으로 신체에 구멍을 내어 그 사이로 쇳물을 쏟아내는 느낌이었다. 데이나는 이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어떠한 말도 상상할 수 없었다. 그저 끓어오르는 열기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고통 속에서 처음으로 데이나는 의식을 자각했다. 의식을 놓은 와중에도 고통은 몸과 정신을 완전히 갉아먹었다. 데이나는 완전히 한계에 다다랐다. 이렇게 잠시나마 정신을 차린 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저건……뭐지?’
이미 제대로 분간하지도 못하는 시야에 그나마 제대로 보인 것은 붉은 점이었다. 데이나의 왼편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붉은 점은 시야가 명확하게 잡힐수록 점점 그 크기를 늘려가더니 이윽고 작은 웅덩이와 같은 형상을 취하였다. 그리고 웅덩이에서 무언가가 질척대는 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걸쭉하고 끈적해졌다.
“크르르르르르르”
그것은 붉은 피로 물든 괴물이었다. 붉은 웅덩이에서 솓아난 것은 늑대와 비슷한 얼굴을 가진 괴물이었다. 발과 발톱은 일반적인 늑대보다 훨씬 컸지만, 그 위의 다리는 더 가늘고 길었다. 골반이나 어깨 역시 사족보행을 하는 동물이라기엔 너비가 너무 넓었다. 마치 억지로 그렇게 변한 것 같은 기형적인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발을 뗄 때마다 온몸에선 부서진 살점과 피가 낭자하였다. 복부는 무슨 이유인지 열려있어 내용물이 흉하게 얽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괴물은 고통스러운 움직임으로 점점 데이나가 누운 수술대로 다가왔다. 한 발짝 두 발짝 내딛는 소리가 가까워질 때까지도 데이나는 기묘하면서도 몽환적인 무력감에 사로잡혀있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아. 이건 대체 뭐지?’
괴물은 데이나의 하반신으로 점점 다가갔다. 괴물은 천천히 간을 보듯 왼쪽 다리를 살피다가 난폭하게 그 날카로운 이빨을 허벅지에 박아넣었다. 괴물은 마치 당장이라도 왼쪽 다리를 몸에서 떼어낼 것처럼 거칠게 턱을 조였다. 하지만 괴물은 얼어붙기라도 했는지 동작을 멈추고 집중이라도 하는 것처럼 신경을 곤두세웠다.
‘아파해야 하는데. 어째서’
이상하게도 데이나 역시 고통을 느껴야만 하는 상황에서 전혀 다른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제일 처음 느껴지는 것은 무게감. 주위의 모든 풍경이 위로 솟아오르는 듯한 착각이었다. 그렇게 데이나의 의식이 어디론가 끌려가는 것처럼 끝없이 가라앉고 있었다.
‘안 돼. 정신을 놓으면’
두 번째로 찾아온 것은 영문을 알 수 없는 충동이었다. 당장 무엇이라도 찢어발기고 싶다는 충동이 데이나의 뇌를 점점 장악해갔다. 뼈를 부수고, 근육을 자르고, 목덜미를 물어뜯고 싶다는 끝을 모르는 야만성이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영혼을 심해에 가두고 다른 이가 육체를 차지하려 하는 것만 같았다.
이것은 정신적인 변화에서 끝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카락과 손톱이 조금씩 자라나고 두 눈동자의 동공이 서서히 모양을 잃고 흩어지는 등, 데이나는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자신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결국 인간조차 아니게 될 것임을 데이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이대로 끝나는 건가.’
“그르르르르”
데이나의 독백을 반증하듯, 소름 끼치는 야수의 숨소리가 계속해서 방안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그르르르르”
잠시 후 그 무엇도 되돌릴 수 없는 결과가 천천히 도래하려 한 그때
“……! 크라앍아아아!”
갑자기 괴물의 숨소리가 격해지기 시작하더니 물고 있던 왼 허벅지를 황급히 뱉어냈다.
“크롸아아아아아아!”
괴물의 몸에 흩뿌려진 피에서 거센 화염이 일어나 몸을 불사르기 시작했다. 괴물은 산 채로 태워지는 고통에 몸부림을 쳤지만 그럴 때마다 화염은 더욱 거세게 괴물을 태웠다. 그렇게 괴물은 한 줌의 재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방안에는 이제 데이나 만이 홀로 누워 있었다. 하지만 괴물이 사라졌음에도 이변은 끝나지 않았다.
‘뭐지. 뭐가 나한테 떨어지는 것 같은데.’
몽롱한 의식 속에서 겨우 정신을 차린 데이나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몸 여기저기에 톡톡 소리를 내며 무언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위에서부터 떨어지는 무언가는 데이나의 몸에 떨어지자마자 물이 마른 나무 바닥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그럴수록 데이나는 편안함과 왠지 모를 꺼림칙함을 동시에 느꼈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장소는 굳게 닫힌 두 눈꺼풀뿐이었다. 이에 데이나는 본능적으로 눈을 떴다. 그 반동으로 눈꺼풀의 위의 액체는 열린 곡선을 따라 천천히 두 눈동자 안으로 들어갔다.
‘빨갛다. 이건……피?’
눈동자 속으로 정체불명의 액체가 스며들자 데이나의 시야는 붉게 물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 안에 담긴 동공이 원래의 둥근 형태를 다시 조금씩 되찾고 있었다. 이윽고 붉은 시야는 다시 평상시의 시야로 완전히 제자리를 찾았다. 그와 동시에 데이나에게 막대한 피로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던 데이나가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신체를 하얀색의 무언가가 점점 기어오르고 있는 장면뿐이었다
하수도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김이 새어 나오는 야남의 거리는 언제나 평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지금 만큼은 평화를 가장하려는 무거운 침묵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침묵에 가려진 거리의 모습은 결코 평화롭지 못했다. 바닥을 이루는 타일 하나하나에 찢긴 시체가 낭자했다. 시체로 점칠 된 야남의 거리를 한 신사가 지나치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활보했다.
“이곳은 도저히 정감이 가질 않아. 바닥은 질척대지, 길은 복잡하지, 개는 많지. 에휴, 시기를 잘못 골라도 한참 잘못 골랐군. 하필이면 ‘시작할 때’쯤 들어오다니. 덕분에 나만 고생하잖아.”
연신 푸념을 하는 신사는 반듯한 실크 햇과 목 뒤까지 깃을 세운 검은 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가 한 발짝 나아갈 때마다 오른손에 든 지팡이도 바닥과 부딪치며 한껏 크게 소리를 냈다. 마치 들으라는 것처럼 신사의 소리는 삭막한 침묵의 한 부분처럼 이어졌다. 한동안 그렇게 불협화음과 화음의 경계를 넘나들던 신사의 행진은 한 건물에서 멈춰 섰다.
“여기도 언제나 바뀌지를 않네. 똑같은 문에 똑같은 비석… 아니지. 비석은 숫자라도 늘어나니까 그렇다 치고, 아무튼 똑같은………… 문.”
신사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푸념을 멈추고 천천히 지팡이의 끝을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숨소리 하나 나지 않는 움직임으로 천천히 열린 철문과 정원을 지나 열린 현관문으로 문으로 들어갔다. 신사는 이미 문에서부터 무언가가 잘못된 것을 알아차렸다. 평소의 이 건물은 환자와 ‘지원자’를 위해 항상 문을 열어 놓지만, 이때쯤에는 안전을 위해 모두 닫는다. 물론 밖에서 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신사가 도착했을 때는 바깥문과 현관문이 모두 열려있었다.
또한 정원에 발을 들이자마자 신사는 정확하게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코는 오래돼서 완전히 눌러앉은 피의 냄새와 쏟아져 나와 여전히 뜨끈한 피의 냄새를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신사가 감지한 것은 후자의 경우였다. 즉, 누군가의 피가 아주 거하게 쏟아진 것이다. 그것이 자의인지 타의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정신 나간 도시에서 한가하게 원흉이나 동기 따위를 묻는 머저리는 아무도 없었다.
“……………”
신사는 계속해서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계단이 낡을 대로 낡아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법도 한데도 계단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계단 아래 드러난 조금 더 큰 방에서도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지만, 신사의 몸짓은 여전히 은밀하고 세심했다. 벽을 등지고 천천히 이동했고 곧 문제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다른 방으로 향하는 문 앞에서 검은 털의 늑대, 신사가 야수라고 부르는 괴물이 한창 때늦은 식사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물론 메뉴는 여전히 따뜻한 열기를 가진 인간이었다.
모든 것을 파악한 신사는 주위에 다른 이의 유무를 확인한 뒤 즉시 행동에 옮겼다. 야수의 뒤쪽으로 작은 나무 파편 하나를 집어던진 것이다. 빠르게 날아간 파편은 여러 대로 나열된 수술대에 부딪쳐 요란한 소리를 냈다.
“……? 크르르르”
야수는 느닷없이 뒤에서 들린 소리에 식사를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이후 소리가 난 쪽으로 조심스럽게 몸을 돌리기 시작했다. 신사는 그저 기다렸다. 야수가 완전히 등을 드러내기를 숨죽여 기다렸다. 이윽고 야수가 완전히 등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자 신사는 순식간에 움직였다.
“…! 크와와와앙!”
자신의 배후에서 낯선 기척이 나타나자 황급히 돌아서려 했지만, 주위의 수술대가 야수의 긴 팔다리에 엉켜 매끄러운 움직임을 지연했다. 신사는 오른손에 쥔 지팡이를 전력으로 야수의 후방에 찔러넣었다. 그 빠르기는 설령 수술대가 없었다 하더라도 야수가 완전히 피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빠르고 날카롭고 무엇보다 정확했다. 신사가 내지른 지팡이는 섬뜩한 소리를 내며 야수의 골반을 뚫고 들어갔다. 야수는 격통에 몸부림쳤지만 꽂힌 지팡이 때문에 크게 움직일 수 없었다.
“항상 생각하는 건데. 네 녀석 무리의 신체는 정말 불편한 구조야. 팔다리가 길어서 뒷걸음치기에는 능숙해도 방향전환에는 걸리적거리잖아? 이럴 바엔 차라리 밖에 있는 개들이 더 위협적이란 말이지. 때로 덤벼들고, 더 빠르고.”
신사는 자신의 공격이 이뤄낸 성과에 만족한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신랄하게 야수의 신체구조를 평가했다. 이미 지성도 의지도 본능에 먹힌 대상에게 부드럽게 설명하는 모습은 사뭇 친절하기까지 했다.
“자, 잡담은 이쯤하고 빨리 끝내지. 나도 그리 한가하진 않으니까.”
신사는 지팡이를 찔렀을 때와 거의 비슷한 속도로 지팡이를 거둬들였다. 하지만 그것이 야수를 위한 자비가 되지는 않았다. 신사는 자신의 오른손의 지팡이를 왼손으로 바꿔 쥐고 빈 오른손을 주먹을 쥔 채 조금 전 야수의 몸에 난 새로운 구멍에 사정없이 쑤셔박았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기괴한 소리가 주변을 채워나갔다. 골반의 파괴로 몸부림치던 야수는 자신의 몸속을 신사의 손이 거칠게 들어오자 완전히 혀를 빼고 주저앉았다. 신사의 손은 거침없이 들어가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잡아 찢었다. 잠시 후 신사가 오른손을 거칠게 잡아 빼자 야수는 피를 분수처럼 뿜으며 완전히 나동그라졌다. 붉게 물든 손에는 커다란 갈비뼈 하나가 쥐여 있었다. 야수의 눈에서 빠르게 생기가 빠져나가 이윽고 야수는 완전히 침묵한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사는 눈을 빛내며 널브러진 야수의 시체를 한참 동안 노려보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신사는 긴장을 풀었다. 이후 신사는 지팡이를 다시 오른손에 쥔 채로 방을 나가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건 그렇고.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추억 회상도 할 겸 왔더니 노인네는 먹혀있고. 이제 우리도 얼마 안 남았는데 아예 늘지도 않겠군. 저 노인네가 그나마 정상적인 편이었는데.”
신사는 샹들리에가 걸린 계단을 다급하게 지나 원래의 목적지라 할 만한 방에 도착했다. 하지만 방에 들어선 순간 신사는 다시 한번 놀라야만 했다.
“뭐야. 아무도 없어?”
신사는 연신 방안을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방 안에는 수술대 한 대와 거치대 한 대 그리고 여러 잡동사니뿐이었다. 그가 찾는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신사는 잠시 고민하더니 다시 돌아온 길을 되돌아보았다. 하지만 거기에도 신사가 예상한 답은 존재하지 않았다. 신사는 방 안으로 들어서서 맞은편에 또 다른 문으로 걸어가 노크를 했다.
“선생님. 계십니까? 선생님.”
“……… 누구신가요?”
곧이어 예상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신사는 일단 안심했다. 적어도 자신이 생각한 다른 가설이 맞을 수도 있다 여겼기 때문이리라. 신사는 진정하고 정중하면서도 짐짓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접니다. 선생님. 벌써 이 멋진 목소리를 잊으신 겁니까? 이거 섭섭한데요.”
“후우, 당신이군요. 어떻게 잊겠습니까. 야남에서 당신 같은 사람은 아마 절대 찾기 어려울 거에요.”
평소라면 조금 더 장난을 이어나갔겠지만, 신사는 다시 진지한 태도로 문 너머의 여성에게 물었다.
“선생님. 혹시 그쪽에 지금 보호하고 있는 사람 중에 오늘 들어온 이가 있습니까? 있다면 불러 주십시오. 잠시 확인해야 할 게 있어서 말입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물론 그쪽으론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그녀의 성격상 자신과 같은 부류의 인간은 결코 좋게 보지 않을 것을 알기에, 신사는 최대한 조심히 말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신사의 믿음을 배신하는 것이었다.
“아니요. 오늘 들어온 사람은 없어요. 딱히 그런 예정이 잡혀있지도 않습니다.”
“그…… 렇습니까? 혹시 어, 그러니까. 벌써 묻으셨나요?”
신사는 왜인지 밀려오는 아쉬움을 숨기며 최대한 담담하게 대답했다. 세상일이 모두 뜻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라는 건 그 스스로가 더 잘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여
성의 대답은 예상을 빗나간 것이었다.
“무슨 소린가요? 저는 마지막 왕진을 나갔다가 이제 막 돌아온 길입니다. 어르신께서 또 무슨 짓을 저지르셨나요?”
불쾌감이 드러난 목소리에서는 거짓을 읽을 순 없었다. 더욱이 문 앞의 여성이 이런 일로 거짓을 말할 사람이 아니라는 건 신사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네? 혹시 오늘 이곳에 발을 들이신 적은……”
“없어요. 아시잖아요. 어르신의 ‘치료’는 제게 있어선 너무……… 아닙니다.”
신사는 잠시 자신의 상황을 정리하는 듯했다. 자신의 예상이 번번이 빗나가면서 지금 그의 머릿속에서는 다양한 가능성이 맴돌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오늘 이곳으로 들어왔다고 했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 죽었다면 시체가 남아있어야 하는데. 저 야수가 다 먹어치웠나? 아니 그렇기엔 피의 양으로 보나 살점의 양으로 보나 너무 적어. 혹시 저 야수가? 아니야. 그랬다면 영감이 저렇게 당했을 리가 없지. 몇 번이나 해왔으니 실패한 놈의 상태를 모를 리도 없을 거고. 애초에 저 야수는 밖에서 침입했다. 그렇다면……… 잠깐 방금 선생님이 뭐라고.’
“선생님. 혹시 왕진을 나가실 때 노인네한테 진료소를 맡기셨나요?”
“…… 네. 오늘은 모두 급히 떠나거나, 사정이 생기거나, ……참여하기 위해서 자리를 비웠습니다. 아무리 제가 못마땅하게 여긴다고 해도 환자를 놔두고 갈 수는 없으니까요. 어르신의 실력은 확실하시니 잠깐 부탁드렸습니다.”
여성은 자신이 조금 전에 노인의 흉을 본 것 때문인지 조금 어색하게 대답했지만, 신사에겐 충분한 대답이었다.
‘이제야 알겠군. 그 영감. 저쪽을 신경 쓰느라. 단속을 소홀히 했군. 이번에 온 녀석도 뒷문으로 온 게 아니라 정문으로 들어온 거야. 평소라면 선생님이 계셨겠지만 오늘은 노인네가 마중 나왔겠지.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신사의 말대로 만약 노인이 평소와 같이 뒷문으로 손님을 맞았다면 문이 열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시술자의 시체가 없다는 것은 하나를 뜻했다. 지금 그는 야남의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신사와 문 너머의 여성이 그토록 꺼려하는 야남만의 광기 섞인 역사. ‘야수 사냥의 밤’이 시작된 거리를. 신사는 허탈하게 웃으며 문 너머의 여인에게 인사를 했다.
“번거롭게 해서 죄송했습니다. 선생님. 한시가 급해서 이만 물러나야 할 것 같습니다. 부디 선생님께서도 보증하시길.”
신사가 급하게 돌아서는 순간, 문 너머에서 여성이 다급하게 신사를 불러세웠다. 신사가 다시 돌아보자 여성은 문에 난 작은 구멍으로 노란 액체가 담긴 투명한 병을 내밀었다. 언뜻 보기에 알기 힘들지만, 그것은 수혈액이었다. 특히나 신사와 같은 일을 하는 이들에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도움이었다.
“곤란한 상황인 것 같아서. 무사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히 쓰겠습니다. 그럼.”
신사는 다시금 정중하게 인사를 한 후, 재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빠르게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밖으로 나오는 순간, 들려오는 수차례의 종소리와 살과 가죽이 불타는 냄새, 자연스럽게 풍겨오는 피의 냄새가 신사를 반겼다. 그래. 언제나와 같이
“사냥의 시간인가.”
신사는 한 번 심호흡을 깊게 한 후, 사냥이 시작된 시가지를 향해 달려나갔다.
* 일단은 하루에 하나씩 올려 보고 속도가 조아라 쪽과 같아지면 그 때부턴 자유 연재가 되겠네요.
느그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