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안경을 쓰는 이유(1)


 우중충하기만 했던 오후 하늘은 야남에 사냥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완전한 모습을 점차 드러냈다. 여기저기에서 올라오는 불씨가 공중에 휘날렸고 야수 사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불길이 일면서 검은 연기가 주홍빛 하늘을 더럽혔다.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에게 늦은 오후는 하루의 남은 일과를 점검하거나 해가 태양이 노을로 변하는 과정에 껴있는 시간일 뿐이다. 하지만 피에 완전히 찌든 야남에선 오후는 그저 밤이 오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새어 나온 흥분과 광기가 활보하는 시간이었다. 아직 야남에 이성과 숭고함이 남아있을 당시에는 이러한 일탈은 금방 진압되었다. 하지만 이젠 그들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함께 편승하고 무고한 희생자를 내기에 정신이 없었다.


 “하아, 하아, 하아.”


그리고 그 희생자의 목록은 현재진행형으로 갱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고한 희생자 대열에 합류한 이는 자신의 은발이 거칠게 휘날리는 것도 무시한 채 그저 젖먹던 힘까지 달렸다. 그 배후에서 사냥꾼들이 외치는 무수한 외침들이 서로서로 부딪쳐 주위를 울렸다.


 “잡아라!” “저 녀석은 괴물이 틀림없어.” “잡아서 산 채로 불태우자!” “이건 다 네 잘못이야!” “사라져. 사라져!”

 

 그들은 하나같이 손에 무기와 횃불을 들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이 무엇이고, 뭐가 올바른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그저 빨리 사냥감이 찢기는 것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난 듯 보였다. 이 모든 것이 그들에겐 그저 사냥이었다.
 




 데이나가 눈을 뜨고 맨 처음 느낀 감정은 당혹감이었다. 분명 자신은 엄청난 열로 인해 괴로워했고 느닷없이 나타난 정체불명의 괴물에게 물린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도 불구하고 몸에는 어떠한 이상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나마 알아챈 변화라면 치료받기 전에는 목까지 왔던 머리카락이 등에 닿을 정도로 자라나 있다는 것 정도였다. 데이나는 자신이 겪었던 이루 말할 수 없는 끔찍한 경험의 결과가 단순히 머리카락 증가의 산물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있는 거라곤 심증뿐이었고 자신의 신체는 알 수 없는 활기까지 느껴졌기에 데이나는 자신이 받은 시술이 사실은 발모제의 실험이었는지 고민해야만 했다.


 시간의 낭비라 생각이 든 데이나는 지나치게 고요한 방안을 빠르게 살피다 자신이 일어난 수술대 옆에 배치된 탁상에 무언가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조심스럽게 집어 든 물건은 먼지가 쌓인 채 무언가 적혀있는 수기였다. 데이나는 수기를 빠르게 살폈다. 어쩌면 이 모든 상황에 대한 부가 설명이 있을지 몰랐기에 더욱 꼼꼼하게 살폈다. 하지만 쓰여있는 거라곤 문장 한 줄 뿐이었고, 그것마저 데이나의 의문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창백한 피’를 구하라. 사냥을 완수하기 위해               

 

 허탈함을 숨기지 못한 채 데이나는 눈썹을 찡그렸다. 하지만 혹시 다른 의미나 암호가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는 미련 때문인지 주머니에 수기를 잘 접어 넣었다. 수기로 인해 실망한 데이나는 이번에는 시술을 시도한 노인을 찾자 생각했다. 그라면 도대체 창백한 피가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데이나는 빠르게 자신이 내려온 계단으로 다시 올라가려 했지만, 반대 방향에서 무언가 끈적이는 것들이 뒤섞이는 듯한 소리가 데이나의 귀를 자극했다. 소리가 난 방향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자 그곳에도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다. 소리의 진원지는 한층 아래에서 들려온 것이었다. 데이나는 자신의 도움 없이 어떻게 휠체어에 탄 노인이 이 긴 계단을 내려갔는지를 의아해하다가 노인이 걷지 못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나이 때문에 휠체어를 타는 걸 수도 있다 여기고는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데이나가 계단을 내려갈수록 소리는 좀 더 명확하게 들려왔고 명확하게 들릴수록 데이나의 표정 역시 점점 굳어갔다. 마지막 단을 내려오고 여러 대의 수술대가 늘어선 방에 들어서자 소리의 원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르르르, 으르르르르.”

 

 먹이를 뜯으며 거친 숨소리를 내는 검은 야수가 있었다. 입이 여닫힐 때마다 먹이의 살과 내장이 날카로운 이빨에 갈려 나갔다. 야수의 아래에 있는 희생자의 얼굴을 확인한 데이나는 경악했다. 목의 절반이 강제로 찢어진 채 내장을 파먹히고 있는 대상은 다름 아닌 자신에게 수상한 시술을 한 노인이었다. 뱃속에서 올라오려는 구토를 최대한 억누른 채 데이나는 진정하기 위해 최대한 애썼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흔들리는 다리와 손가락을 구부리는 것도 힘들 정도로 저리는 손은 데이나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진정해. 냉정해져. 상황을 파악해. 겁먹지 마. 내 허벅지를 문 녀석이 더 무섭게 생겼잖아? 저건 그냥 큰 개일 뿐이야. 어떻게 해야 하지. 싸워야 하나? 마땅한 무기도 없이

뭘 할 수 있겠어. 숨어 있어? 지금이야 피 냄새 때문에 괜찮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내 냄새를 맡을 거야. 거기다 이곳에는 옆 건물에는 다른 환자도 있었잖아. 나만 도망갈 순 없어. 그럼 역시’

 

데이나는 천천히 괴물 뒤의 통로를 응시했다. 다행히 통로를 완전히 막고 있지 않아서 한 사람이 빠져나가기에는 충분한 틈이 남아있었다. 현재 데이나가 가장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는 것은 탈출이었다. 녀석의 팔다리는 지나치게 길어서 네발로 뛰기에는 다소 부적합한 구조였다. 자신이 들키지 않고 통로를 통과하여 전력으로 뛴다면 그리 금방 잡히지는 않을 것이라. 데이나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데이나는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네발로 좌측 수술대 사이로 기어갔다. 팔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오래된 바닥이 조금씩 삐걱이는 소리가 났지만, 그때마다 데이나는 움찔거리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다행히 야수는 식사에 열중하느라 아직까진 데이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여러 번의 고비 끝에 데이나는 통로의 바로 옆 수술대까지 올 수 있었다. 데이나는 엎드린 자세를 풀고 한쪽 무릎을 세운 채 기회를 엿봤다. 가장 적절한 때가 아닌 이상 야수에게 새로운 먹잇감만 던져주는 꼴이었다. 신체가 뻣뻣해지는 걸 막기 위해 양다리에 적당히 힘을 준 상태로 야수가 먹이를 뜯기 위해 고개를 숙인 순간, 데이나는 즉시 앞으로 뛰어나갔다. 데이나가 뛰쳐나가자 반 박자 정도 늦게 야수가 움직였다.

 

 “크라아아아아!”


데이나의 준비는 최선이라 할 수 있었다. 자신의 장점을 파악하고 상대의 약점을 관찰하면서 최대한 효율적인 움직임을 취했다. 하지만 데이나가 고려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분명 야수의 팔다리는 길고 인간과 같은 구조로 돼 있어서 사족보행을 한 채로 직선으로 달려나가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은 그만큼 공격이 닿는 범위가 더 길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는 확실히 데이나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길었다.
야수는 데이나를 포착한 동시에 여타 맹수보다 훨씬 큰 손톱을 지닌 왼팔을 매섭게 휘둘렀다. 만약 데이나에게 닿는다면 즉시 그 연약한 뼈와 살을 분리할 수 있는 일격이었다.


 “찌익.”


가죽이 찢어지는 소리와 거의 동시에 무언가가 바닥에 떨어져 부딪치는 소리가 퍼졌다. 야수는 흥분했는지 더욱 거칠게 다리를 팔을 휘둘렀고 그때마다 무언가가 튀는 소리가 방안을 채웠다.

 
 

데이나는… 그저 달렸다. 자신의 목이 화끈거리는 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데이나는 달리고 또 달렸다.


찢겨나간 것은 데이나가 쓰고 있는 후드의 모자 부분이었다. 데이나는 목 뒤에 미세한 상처만을 입은 채 열린 현관을 지나 대문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흡, 하아, 하아, 하아, 하아”

 

 데이나는 거리에 나오자마자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폐는 끝없이 팽창하고 수축하기를 반복했으며 긴장이 풀린 몸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나와 쌀쌀한 공기와 맞물려 흔들거리는 몸을 더 싸늘하게 식혀갔다. 아직도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괴롭게 내뱉는 숨만이 자신이 살아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기라도 한 듯 거친 호흡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데이나는 천천히 호흡을 정돈했다. 엉망으로 헝클어진 은발을 놔두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다리를 다그쳐 닫힌 대로로 나아갔다. 하지만 대로의 문은 굳게 잠겨 열리지 않았다. 그때 데이나의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데이나의 왼편에서 나타난 남자는 오른손에 횃불을 들고 왼손에는 도끼를 들고 있었다. 어째서 이런 차림을 한 이가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는지 의아했지만, 사태의 심각성 때문에 일단은 넘어가기로 했다. 데이나는 다급히 도움을 요청했다.

 

 “도와주세요. 지금 진료소 건물에 늑대가 아니, 늑대인간? …… 어쨌든 괴물이 들어와 있어요. 다른 환자들도 있어서 빨리 어떻게 하지 않으면”

 

 하지만 데이나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으아아악!”

 

 느닷없이 남자가 왼손의 도끼를 횡으로 휘두른 것이다. 데이나는 자신도 놀랄 만큼의 반사신경으로 도끼를 피할 수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기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당황스러움과 분노가 섞인 목소리로 데이나가 따져 들었다.

 

“무, 무슨 짓이에요. 제정신이세요?”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으아아아! 오지마. 사라져. 사라져!”


 남자는 더욱 흉포하게 다가오며 도끼와 횃불을 휘둘렀다. 데이나는 다시 한번 피하려 했지만, 뒤쪽에 거치된 커다란 레버에 그만 발이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덕분에 도끼는 레버에 튕겨 요란한 소리를 냈다. 데이난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남자가 넘어진 자신을 향해 도끼를 들어 올리는 순간 위쪽에서 들린 요란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남자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도끼를 내려치려 했지만, 행동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 끄아아악!”


 남자의 위에서 난 소리는 고정된 철제 사다리가 내려오는 소리였다. 남자가 행한 공격이 데이나가 걸린 레버에 적중한 순간 레버가 작동되면서 위로 올려 고정된 사다리가 원래대로 내려오게 된 것이다. 빠르게 내려온 사다리는 횃불을 든 남자의 오른 어깨를 가격했다. 그렇게 높은 곳에서 내려오진 않았지만 워낙에 무거웠던지라 어깨를 부수고 공격의 맥을 끊기엔 충분했다. 기적처럼 찾아온 기회에 감사하며 데이나는 황급히 몸을 일으켜 내려온 사다리를 빠르게 타고 올라갔다. 사다리의 중간에서 데이나는 힐끔 아래를 내려봤다. 다행히 남자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다시 사다리를 올라가려는 찰나 온 거리에 끔찍한 소리가 울렸다.


 “끼야아아아아악!”


 그것은 비명 같기도 했고, 습기 찬 창문을 송곳으로 긋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있었다. 절대 인간이 낼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소리를 듣는 순간 온몸의 소름이 돋아 하마터면 손을 놓칠 뻔했다. 다시 평정을 유지하려 노력했지만, 그 소리는 머릿속에서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가까스로 사다리를 다 올라온 데이나의 눈에 보이는 것은 대로의 것과 같은 굳게 닫힌 철문과 불이 켜져 있는 집이었다.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라 여기고 데이나는 조용히 집을 지나가려 했다. 이미 사람에게 한번 습격을 당한 영향으로 경계심이 높아져 있었다. 하지만 집안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먼저 발길을 붙잡았다.


 “아, 당신은 사냥꾼이군요.”


  데이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것이 현재 취할 수 있는 처세였다. 동시에 이자도 언제 돌변하지 않을지 생각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목소리의 주인인 듯한 그림자가 창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림자의 형상으로 보아 집안의 사람은 지금 앉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근처 사람도 아닌 것 같고.”


 “……… 당신은 누구죠?”


자신이 생각해도 너무 퉁명스러운 목소리였지만 집안의 사내는 개의치 않은 듯 대답을 했다.


 “전 길버트입니다. 역시 외지인이죠.”  


 대답하는 목소리에는 이상할 정도로 힘이 담겨 있지 않았다. 마치 임종을 기다리는 사람과도 같은 태도가 엿보였다. 길버트는 오랜만의 대화인 듯 나름 쾌활하게 대화를 이어나가려 했지만, 거기에도 원인 모를 체념이 숨어 있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겠지요. 야남은…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손님을 맞이하니까요.” 


 “환영? 당신에겐 도끼로 내려찍는 것도 환영인가요? 제가 다음에 도끼를 얻으면 꼭 정중하게 환영해드리죠.”


 이미 데이나에게 야남은 과하다 못해 넘칠만한 환영 인사를 해왔다. 너무 황송해서 다시는 찾아오고 싶지 않을 만큼의 환영을. 자신이 한 농담이 먹히지 않아 멋쩍은 듯 길버트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뭐, 제가 삻다고 거절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지만… 그래도 돕고 싶군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요.”


 말이 끊어진 창문 너머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가벼운 잔기침이 아닌 보다 무거운 것이 섞인 기침이었다. 데이나는 경계를 조금 누그러뜨렸다. 그래도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온 첫 사람이니 자신도 그에 맞춰 비아냥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럼 조언을 구하고 싶네요. 지금 전 정말 당황스럽기만 하거든요.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건지.”


 하지만 막상 길버트에게서 나온 말도 데이나를 당황케 하기엔 충분했다.


 “이 마을은 저주받았어요. 이유가 뭐라 할지라도 탈출 계획을 세워야 해요. 이 장소에서 찾은 것은 득보다 해가 많으니까요… 콜록콜록”


 아직 자신이 원하는 답도 얻지 못했는데 대뜸 떠나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픈 이에게 화내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데이나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길버트에게 궁금증을 질문했다.


 “‘창백한 피’라고 불리는 게 뭔지 혹시 아시나요?”


  “‘창백한 피’라 하셨나요?”

 

 길버트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흐음… 들어본 적 없는데요. 피에 관심이 있다면, 치유 교단을 들러 보시죠.”


 “치유 교단이요?”


 데이나는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드디어 자신이 찾는 것에 대한 단서를 찾은 것이다. 길버트 역시 드디어 도움을 준 것 같아 기뻤는지 목소리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갔다.


 “치유 교단에는 피의 목회에 대해 온갖 지식이 있고, 모든 종류의 피를 지니고 있다고 하니까요.”


 “어디에 가면 치유 교단과 만날 수 있죠?”


 “야남 동쪽 계곡을 지나면 치유 교단이 위치한 마을이 나와요. 성당 구역이라고 불리죠. 그 성당 구역 깊은 곳에는 구 대성당이 있고요. … 치유 교단이 소유한 특별한 피가 나오는 곳이라죠. 적어도 소문으로는요…”


 길게 말을한 영향인지 길버트는 다시 연신 기침을 했다. 그런 그를 약간은 걱정하는 동시에 데이나는 의지를 불태웠다. 소문이라도 상관없었다. 자신에게 새겨진 저주의 고리를 풀기 위해서라면 아무리 터무니없는 단서라도 가치가 있었다. 기침을 멈춘 길버트가 힘겹게 이야기를 마저 꺼냈다.


“야남 사람들은 외지인과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죠. 사람들은 보통 그 장소 근처에 다가가게 해주지 않지만… 오늘 밤은 사냥이 시작되니까, 좋은 기회에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제가 지금 당장 보답할 게 없지만,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길버트는 연신 기침을 해대면서도 개의치 않는다는 듯 입을 막지 않은 손을 흔드는 몸짓을 취했다. 자신이 있으면 다시 말을 할 것 같아 데이나는 인사를 마치고 빠르게 집에서 멀어졌다. 오른쪽의 계단으로 내려오자 큼지막한 다리가 보였고 건너편에는 각종 잡동사니 더미와 우측에 난 길이 보였다. 데이나는 또 누군가 덤벼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다행히 큰 위험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다리를 건너자마자 자신이 너무 안일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아!”


 “이런, 젠장.”
 
 데이나가 우측의 길로 나아가려 하자마자 나무관에 가려져 보지 못한 사내가 상자들을 부수며 큼지막한 식칼을 휘둘렀다. 이젠 하다 하다 매복을 하냐며, 욕지거리를 뱉으며 재빨리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하지만 너무 크게 물러선 나머지 데이나는 철창이 없는 곳에서 균형을 잃어 떨어지고 말았다. 다행히 중간에 툭 튀어나온 구조물에 착지할 수 있었지만, 아래에도 식칼을 든 사람이 있었다. 다행히 데이나를 눈치챈 것 같진 않았지만, 위쪽의 사내가 알리기에는 시간문제였다. 하는 수 없이 조심스럽게 뛰어내린 데이나는 앞쪽에 있는 계단으로 단숨에 달려갔다. 사내가 데이나를 발견했지만 몇 박자 늦은 상태였다.
거리에도 커틀러스, 쇠스랑, 나무 방패 등 다양한 무기와 횃불을 지닌 이들이 득실거렸다. 데이나의 동작이 생각보다 날렵하지 않고 몸을 숨길 수 있는 잡동사니나 망가진

마차가 그대로 있지 않았다면 아무리 데이나라도 힘들었을 것이다. 걸어가는 이들의 보폭에 맞추어 조심스럽게 걸어가면서도 공기는 점점 무언가가 타는 메케한 냄새로 가득 메워졌다. 숨을 쉬기 힘든 지경까지 가서야 데이나는 악취의 원인을 볼 수 있었다.


 ‘세상에…… 저게 대체’


 넓은 도로의 중앙에는 나무 기둥에 밑에 장작을 쌓은 화형이 진행 중이었다. 하나 매달린 것은 결코 사람 따위가 아니었다. 하반신은 완전히 떨어져 장작더미와 함께 불타고 있었지만, 비교적 뚜렷하게 볼 수 있는 상반신은 데이나가 마주쳤던 검은 괴물과 같은 구조였다. 하지만 둘이 결코 같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눈앞에서 불타고 있는 괴물은 적어도 마차 하나를 합친 것과 같은 크기를 자랑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 크기의 괴물과 마차 한 대 크기의 괴물 데이나는 이 두 괴물의 크기의 차이를 확인하며 자신이 저런 괴물과 마주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절로 어깨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데이나가 저지른 실수였다.


 “누구냐. 여기서 뭘 하는 거냐.”


 순간의 방심으로 어깨를 잡힌 데이나는 아차 싶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주변에서 하나둘 무기를 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 녀석 아는 사람 있어? 여기서 우릴 훔쳐보고 있었어.”


 데이나의 어깨를 단단히 잡은 채 소리치는 남성은 지금까지 완전히 미쳐버린 사람들과는 달리 어느 정도 이성을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이에 도망치기를 주저한 데이나는 빠르게 대화를 시도하려 했지만, 순식간에 가까이 다가온 사람들 사이에서 데이나의 여기저기서 경악하는 숨소리와 함께 비명과 폭언이 쏟아졌다.


 “으악! 뭐야 이 녀석. 눈이 왜 이래?” “저렇게 새빨간 눈은 처음이야.” “악마야! 악마가 틀림없어!” “야수일지도 몰라. 우리를 죽이려고 몰래 숨어든 거야.” “뭐가 됐든 죽여! 죽여야 해!” “불에 태우면 진짜 얼굴이 드러날 거야.”


모여든 군중은 점차 폭력적이고 야만적으로 변해갔다. 더 이상 말로 해결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피를 보지 않는다면 자기들끼리라도 죽일 기세였다. 데이나는 저들이 정상인지 아니면 정상인 척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이들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맨 앞의 커틀러스를 든 사내가 칼을 휘둘러왔다. 데이나는 재빨리 몸을 비틀어 자신의 어깨에 있는 사내의 팔목에 적중시켰다.


 “끄아아아아악. 팔이, 팔이!”


 뜨거운 피가 주변으로 사정없이 튀었다. 데이나 역시 상의의 왼팔 부분이 사내의 피로 물들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군중들 사이의 빈틈으로 달려나갔다. 사람들이 각자 데이나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그들이 얻은 성과라곤 데이나의 찰랑거리는 은발에 손이 닿았다는 것뿐이었다. 데이나는 즉시 왼쪽의 계단으로 올라가 전력으로 달려나갔다. 뒤에서 우르르 몰려오는 이들은 이제 단순한 군중이 아니었다. 그들은 사냥꾼이었다. 자신이 쫓는 사냥감의 피로 갈증을 해소하려는 잔인한 사냥꾼이었다. 데이나의 뒤에서 사냥꾼들의 함성이 들려왔다.


 “잡아라!” “저 녀석은 괴물이 틀림없어.” “잡아서 산 채로 불태우자!” “이건 다 네 잘못이야!” “사라져. 사라져!”


 하지만 손에 든 무기의 무게 때문인지 아니면 접은 도로를 여럿이서 뛰어간다는 환경적인 이유인지 둘 사이의 거리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벌어지고 있었다. 어느새 그들은 광장의 초입에 들어서 있었다. 데이나의 머릿속에 한동안은 이 추격전이 이어질 거라는 짐작이 떠오른 순간 귀를 때리는 총성과 함께 그 짐작은 빠르게 사라졌다.


 “커헉!”


 순간적으로 오른 어깨를 덮친 격통에 데이나는 중심을 잃고 관과 상자가 무더기로 놓인 울타리에 쓰러졌다. 그 충격으로 나무로 된 관과 낡은 상자가 부서져 잔해가 사방에 뿌려졌다. 당장이라도 뜯어져 나갈 것만 같은 어깨의 통증이 찾아오자 데이나의 표정은 자연히 구겨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넘어진 충격으로 오른쪽 무릎에도 적잖은 충격이 가해졌다. 조금 전의 질주는 사실상 무리였다. 그럼에도 데이나는 비틀거리며 광장 중앙의 분수대로 나아갔다. 부여잡은 오른쪽 어깨에서 새어 나오는 선혈이 하얗던 천을 물들였다. 강철로 이뤄진 분수대의 벽에 기대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발버둥 쳤다. 하지만 숨이 거칠어질수록 뒤에서 달려오는 소리는 가까워져만 갔다. 최대한 힘을 내어 맞은 편까지 간신히 도달했다. 하지만 이미 사냥꾼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저기다! 저기 있어.” “죽여! 빨리 가서 죽여!” “녀석의 숨통을 끊는 건 나야!”


 후방에서 공기를 무섭게 가르는 소리가 들리자 데이나는 가까스로 구를 수 있었다. 덕분에 자신에게 날아온 쇠스랑은 피할 수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더 이상 일어설 힘도 저항할 힘도 남지 않았다. 겨우 뒤집은 몸으로 보이는 건 분수대의 사람 조각들과 삭막하기 그지없는 마른 나무들. 자신을 둘러싼 성난 사냥꾼 무리의 모습이었다. 그들의 흉포한 눈동자를 번뜩인 채 손에든 흉기를 불규칙하게 올려 들자 결국 데이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나는 말~이야. 여기에 웬 사냥꾼이 뛰어간다는 정보를 듣고 온 건데 말이지. 사냥 중에는 대교 문 잠그는 거 모르는 풋내기는 이번에 들어온 녀석뿐이라고 생각해서 코트에 불붙은 것처럼 뛰어왔는데……… 왜 네가 있냐?”  


 여러 대의 마차 잔해가 널브러져 있는 공간에서 한 신사가 이마를 손으로 집은 채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다. 신사의 손에 들린 지팡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 땅을 연신 두들겨 댔다.
신사가 서 있는 곳은 야남의 여러 시가지로 이어지는 큰 대로의 중앙이었다. 야남의 사람들은 야수 사냥의 밤 동안 안전을 위해 대교를 잠가 두기 때문에 사냥의 밤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대교에는 두 개의 숨소리가 이어졌다. 하나는 자신의 목표한 바가 이뤄지지 않아 투덜대는 신사였고 다른 하나는


 “끼야아아아악~!”


 비명인지 단말마인지 모를 괴성을 지르는 엄청난 크기의 야수였다. 신사의 앞에 있는 야수는 검은 털로 뒤덮여 있었고 두 발은 구부린 채 온전히 서 있었다. 왼팔은 오른팔의 두 배는 될 정도로 두꺼웠고 머리에는 두 개의 큰 뿔이 날카롭게 돋아났다. 야수는 노랗게 번득이는 눈을 신사에게 고정한 채 자신에게 뭐라고 계속 떠드는 인간을 죽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신사는 야수와 그 뒤 기둥에 기댄 채 사망한 시체를 보며 계속 혼잣말을 이어나갔다.


 “미치겠네. 완전 빗나간 건가? 아니지. 야! 네가 신입이냐? 아니면 저기서 영원히 안 깰 것 같이 자는 저 녀석이 신입이냐? 아니면 둘 다 아니냐? 어느 쪽ㅇ”


 야수는 신사의 말을 듣지 않고 두꺼운 왼손으로 마차의 잔해를 집어 입구 쪽으로 날렸다. 부웅 소리를 내며 마차가 요란하게 날아가더니 쿵하며 완전히 착지했다. 이것으로 신사는 퇴로가 완전히 봉쇄된 거나 다름없었다. 신사는 자신의 말이 끊긴 것이 다소 못마땅했는지 거칠게 혀를 찼다.


 “칫, 성질 한번 급하네. 어차피 살려줄 마음도 없었는데.”


 신사는 천천히 지팡이를 어깨에 걸치며 나아갔다. 마치 산책이라도 하는 것 마냥 가벼운 발놀림이었다. 반대로 야수는 째지는 괴성을 지른 채 거칠게 바닥을 치며 전진해 갔다. 야수가 나아갈 때마다 바닥에 쓰인 타일이 깨지며 주위로 흩어졌다. 신사가 자신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선 것을 확인하자 야수는 재빠르게 오른손에 주먹을 쥔 채 휘둘렀다. 야수는 보이는 것보다 훨씬 재빨랐다. 단순히 힘만 엄청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신사는 더욱 재빨랐다.
신사는 거대한 야수를 정면으로 응시한 채 옆으로 비스듬히 피했다. 그 움직임에는 군더더기가 존재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그림과 같은 움직임이었다.
신사는 야수의 오른쪽 발목을 겨냥하고 순식간에 지팡이를 찔러넣었다. 적중한 부위에서 야수의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전에 진료소에서 야수를 처리할 때보다는 더 적은 힘이 실렸기에 그리 큰 충격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신사는 주저하지 않고 계속해서 야수의 빈틈을 파고들어 허벅지, 종아리, 발목 등에 찌르기 공격을 사정없이 가했다. 신사의 공격은 하는 족족 모두 야수에게 적중하였고 반대로 야수의 공격은 사내의 옷조차 스치지 못했다.


 “끼야아아아아오오오오!”


 명백히 자신보다 약자인 인간에게 계속 공격당하는 것이 어지간히도 분했는지 야수는 분노의 괴성을 지르고 재빠르게 뒤로 물러나 거대한 왼팔로 신사를 내리쳤다. 하지만 되려 상처를 입은 것은 공격한 왼팔이었다. 야수가 내려치는 순간 신사는 빠르게 방향을 바꾸고 바로 역습의 준비를 했다. 크기만큼 회수가 느린 왼팔을 찌르기가 아닌 날카로운 지팡이 몸체 날로 베는 공격을 가한 것이다. 순식간에 세 번이나 베어진 야수의 왼팔에서는 피가 터져 나왔다. 야수는 움츠러든 채로 자신의 왼팔을 살폈다.


 “왜 그래? 자랑하는 무기가 상해서 속상하나? 걱정 마. 곧 다른 곳도 너덜너덜하게 될 테니까. 난 공평한 사람이라고.”
 
 말은 그렇게 해도 신사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그 순간 야수는 확실히 이해했다. 이 인간은 결코 방심하거나 자신을 얕보지 않는다. 저렇게 떠들어대도 저 눈에는 자신을 잡아 죽이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다. 진정한 사냥꾼이다. 야수의 눈에 한순간 두려움의 빛이 감돌았다. 피에 취해 오로지 본능과 야성만이 남아있는 야수가 공포를 느낀 것이다. 야수는 수세에 몰리듯 자신이 집어던진 마차 쪽으로 뒷걸음질 쳤다. 신사는 그저 지긋이 따라갔다.
야수는 허세를 부리듯 다시 한번 왼손을 크게 휘둘렀다. 이번에도 같은 방식으로 신사가 미리 자리를 잡았다. 왼손이 땅에 박히고 공격을 가하려는 순간 신사는 뭔가 다르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파악했다. 하지만 이미 뒤로 빠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그리고


 쾅!


 폭발이 일어난 듯한 충격파가 신사를 덮쳤다. 조금 전보다 깊게 박힌 왼팔을 온 힘을 다해 빼낸 것이다. 순식간에 바닥을 이루던 돌들이 순식간에 산탄이 되어 신사의 전신으로 총알처럼 날아갔다. 신사 역시 최대한 웅크리며 급소를 피하려 했지만 워낙에 광범위한 공경이었기에 모조리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신사는 피를 흩뿌리며 순식간에 대교의 반대편까지 날아갔다. 야수는 이를 보고 승리의 예감을 느꼈다.
사냥감이 사냥꾼을 이기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간단하다. 사냥감이 덫을 놓으면 된다. 사냥꾼이 아무런 의심을 할 수 없는 기묘한 덫을. 결과적으로 자신은 승자가 되었다. 이제 자신은 승자의 권리를 누리면 그만이었다. 취한 사냥감을 먹어치우는 것으로.

 야수가 여유롭게 대교의 끝, 본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곤 먼지가 앉은 실크햇과 닳은 코트를 입은 채 대로에 누워있는 패자를 집어 들었다. 야수가 여유롭게 포식을 하려 몸을 입 근처로 가져간 순간


 “! 끼아아아악!”


 달랐다. 냄새가 완전히 달랐다. 멀리서는 몰랐지만, 코 근처에서 냄새를 맡았을 때 야수는 확실히 눈치챘다. 이 녀석은 두 번째 녀석 오기 전에 해치운 녀석이라는 것을. 사냥꾼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녀석은


 “저런. 아무거나 주워 먹으면 안 되지.”


 자신의 바로 아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야수는 즉시 뒷걸음질 치려고 했다. 하지만 아래에서 들려온 촤라락 소리가 들려오자 되려 자신의 상체가 바닥과 점점 가까워지기만 할 뿐이었다. 야수는 요란하게 앞으로 넘어졌다. 야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 굴욕적으로 엎드려야 하는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야수는 말을 듣지 않는 하체를 살폈다. 야수의 다리와 허벅지에는 마치 무언가가 지나간 듯한 상처가 나이었고 이전 찌르기 공격을 당했던 발목은 상처가 심하게 벌어져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야수임에도 불구하고 당황한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구겨진 야수의 얼굴로 천천히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헝클어진 검은 머리를 다시 넘기며, 좀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지팡이를 역수로 쥔 채, 왼손에는 작은 단총을 들고 있는 사내를 야수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신기하지? 우리가 쓰는 무기는 장치 무기라고 해서 한 무기에 두 가지 모습이 있거든. 내가 들고 있는 건 칼날 지팡이라고 평소에는 그냥 날이 달린 지팡이지만 이렇게”


 신사가 손을 빠르게 휘두르자 그에 화답하듯 촤르륵 소리가 뒤를 이었다. 칼날 지팡이는 마치 교활한 독사처럼 그 하나하나가 비늘로 이루어진 몸으로 야수의 왼팔을 훑고 지나갔다. 지나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베인 상처가 생겼으며 지팡이 상태에서 낸 상처와는 깊이가 남달랐다. 야수는 결렬한 통증에 왼손을 빼내려 했지만, 신사는 더욱 날카롭게 공격을 이어나갔다. 이윽고 야수의 왼팔 역시 움직임을 멈췄다.


 “길어지면서 휘어지거든. 네놈들의 두꺼운 가죽을 발라내기엔 이만한 게 없지. 너무 좀스러워서 취향은 아니지만. 어쩌겠어. 지금은 이것밖에 없는데.”


 야수는 다시 차오르는 공포에 괴성을 지르며 멀쩡한 오른팔을 내질렀지만 사내가 왼손에 든 총을 발사하자 오른손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멈췄다. 신사는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거는 뭐 특별한 장치가 있는 게 아니라 총알 때문이야. 이 총알에는 우리 피가 들어있거든. 너희들의 신체에 우리의 피가 되게 안 맞는지 제대로 한 번 맞으면 다들 저려서 맥을 못 추더라. 뭐 제대로 맞았을 때 얘기지만.”


 야수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다가오는 사냥꾼의 모습을 무력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사냥꾼이 말 그대로 코앞에 서자 야수는 마지막 발악이라는 듯 가증스러운 사냥꾼을 삼키려 들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사냥꾼의 손이 더 빨랐다. 야수가 파악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왼쪽 눈이 마지막으로 사냥꾼의 오른 주먹을 비췄다는 것뿐이었다.


 “끼야야야야야!”


야수의 안구가 있던 자리에 팔을 박아넣은 채 사냥꾼은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자신의 몸에 묻어오는 온갖 액체에도 상관없다는 듯이 정확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내가 봤을 때 넌 신입이 아니야. 그런 능구렁이 같은 방식은 진짜 사냥을 해 본 놈들만 알 수 있거든. 그러니 넌 아직 순진해 빠진 신입이 될 수 없어.”


오른손에 힘을 더 세게 쥐어가며 야수가 떨어뜨린 시체를 보면서도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저 녀석이 신입일까? 아니. 녀석은 뒤에 올 녀석을 위해 아주 귀중한 물건을 다섯 개나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었어. 덕분에 나도 살았고. 거기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몸을 써서 다른 사냥꾼을 도왔잖아. 그러니 저 녀석은 얼빠진 신입이 아니야. 위대한 사냥꾼이지.”


 이미 야수의 머리 안에는 제대로 형상을 갖추고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사냥꾼은 마지막으로 오른손에 힘을 주며 있는 힘껏 뽑아냈다. 그 반동으로 야수는, 아니 야수였던 것의 머리는 뒤로 온갖 액체를 쏟아내며 뒤로 밀려났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이 대교 위에 남아있는 것은 오직 사냥꾼뿐이었다. 사냥감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 우리 신입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