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쓰는 이유 (2)

 

 데이나는 자신이 누워있음을 알 수 있었다. 머리에는 부드러우며 따뜻한 무언가가 받쳐져 있었고 몸에도 무언가가 덮여 있었는데 몸에 닿는 느낌상 담요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주변의 공기 역시 서늘하고 날카로운 바람이 아니라 신체를 안정시키는 온기가 주를 이뤘다. 숨 막히는 상황을 너무나 갑작스럽게 마주한 후였기에 데이나는 조금 더 이 고요와 평안에 어리광부리고 싶었다. 하지만 영문도 모른 채 가만히 누워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쩌면 지금 자신은 화형당하고 있거나 무수한 시체들 사이에 압사당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나름 합리적인 걱정을 하며 데이나는 눈을 떴다. 하지만 그 예상은 꽤나 좋은 쪽으로 빗나갔다.

 

 “일어나셨네요? 괜찮으세요?”

 

 눈은 뜬 데이나가 제일 처음 마주한 것은 자신을 불사르는 화염도 숨 막히게 하는 시체 더미도 아닌 아직 앳된 티가 많이 나는 소녀의 얼굴이었다. 심지어 지금까지 편안하게 머리를 대고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소녀의 두 다리였다. 잠깐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던 데이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전신에서 느껴지는 욱신거림 덕분에 실패하고 말았다. 어쩌면 그편이 더 나았을 것이 만약 데이나가 몸을 일으키는 걸 성공했다면 높은 확률로 자신을 내려다본 소녀와 충돌했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지켜본 소녀는 조심스럽게 데이나의 목을 쿠션으로 옮겨주었다.

 

 “안심하세요. 여긴 안전해요. 지금은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말을 마친 소녀는 무언가를 가지러 다른 방으로 걸어 나갔다.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데이나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정리하기 위해 조금 전의 일을 떠올렸다.



 


 데이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자신의 입에서 나올 줄 알았던 비명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콰직


 도끼를 치켜들던 남자의 머리가 한순간에 터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머리 안에 든 뇌수와 두개골, 완전히 부서지지 않은 뇌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쏟아졌다.

 

 “뭐, 뭐ㅇ”

 

 당황하여 뒤를 돌아본 남자가 급하게 쇠스랑을 휘둘렀지만, 그 역시 괴상한 소리를 내며 분수의 동상 부분으로 날아갔다. 말라버린 분수에 붉은 액체가 천천히 담기기 시작할 무렵 데이나의 주변은 완전히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데이나는 주위의 눈치를 보며 다친 몸을 다시 이끌었다. 의도치 않게 자신을 살려준 이는 덩치가 다른 사람의 두 배는 될법한 거인이었다.

 

 “아…아아아아아!”

 

 거인은 여타 야남 사람들이 그렇듯 정신에 문제가 있어 보였다. 붕대로 얼굴의 반을 덮은 채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괴성과 신음뿐이었다. 그 덩치만큼이나 힘도 대단했다. 그의 오른손에 들린 벽돌이 휘둘러 질 때마다 데이나를 죽이려 했던 이들이 지푸라기처럼 날아가거나, 육편이 되어 바닥에 나뒹굴었다. 어느새 데이나의 주변에 남은 이는 총을 든 사내 한 명이었다.

 

 “이익, 오지 마! 이 모자란 놈 같으니. 고작 문밖으로 내쫓았다고 이런 짓을 해. 살려준 걸 감사하지는 못할망정 이 더러운 짐승 같으니라고!”

 

말이 끝나자마자 사내는 손에 있는 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격발음이 광장에 크게 울렸지만 사내가 기대한 비명은 나지 않았다. 가슴 중앙에 총알이 명중한 거인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다시 쏘려는 사내의 얼굴을 벽돌로 몇 번이고 내리쳤다.


  퍽 퍽퍽퍽퍽 퍽


 두 번째 타격에서 이미 목숨을 잃은 사내의 시체는 다른 이들과 똑같이 흩어져 광장을 붉게 물들였다. 데이나는 그 장면을 보지도 않은 채 최대한 빨리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자신의 벽돌이 내리찍을 새로운 대상을 찾았다는 듯이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발소리가 커질수록 심장 역시 빠르게 요동쳤다. 거인이 바로 뒤에 있다고 생각한 순간 데이나는 순간적으로 무언가가 도약하는 소리를 듣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힘을 발휘해서 몸을 날렸다. 떠오른 몸이 거칠게 바닥에 닿은 동시에 조금 전까지 데이나가 있었던 자리로 거대한 몸집이 떨어져 내렸다. 만약 조금이라도 피하는 것이 늦었다면, 지금쯤 쓰러진 이들과 같이 바닥을 물들이고 있었을 것이다. 데이나는 절망이 깃든 눈으로 거인의 등을 응시했다. 하지만 거인이 다시 앞으로 돌아서자 다른 것이 깃들기 시작했다.

 

 ‘저 사람도 멀쩡하지는 않아. 특히 가슴의 상처는 더욱.’

 

 그 판단은 정확한 것이었다. 아무리 거인이 엄청난 힘과 강철같은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해도 상대는 이성을 잃은 채, 무기를 휘두르는 무리였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 거인의 몸 이곳저곳에는 크고 작은 상처들이 가득했다. 데이나가 주목한 곳은 중앙에 난 작은, 아니 평범한 사람의 기준으로는 큰 구멍이 파인 상처였다. 그 역시 인간이었기에 근거리에서 발사된 총알에 완전히 무사할 수는 없었다.

 

 ‘………도망은 무리야. 평소의 상태라면 상관없겠지만. 도움을 구하는 것도 기대할 수 없겠지. 오히려 더 위험해지겠지.’


데이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에게 남은 선택, 완벽하게 지금 상황을 타개하면서 조금이라도 살 확률이 있는 선택이 무엇인지.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자신이 부정하리라 여겼던 선택을, 데이나는 해야만 했다.

 

 ‘저 사람을………죽여야 해.’


 절망이 들어온 자리에 무엇인가 다른 것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두려움보다 날카롭고, 슬픔보다 가벼웠으며 절망보다 추한 것이었다. 머리로는 정체조차 알 수 없었지만, 몸은 이미 그것을 이해하고 필요한 준비를 갖춰 나갔다. 눈은 필요한 것을 찾으면서 상대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상처를 입었던 다리와 어깨는 빠르게 통증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기묘한 열기가 차올랐다. 이윽고 열기는 전신으로 뻗어가며 데이나의 딱딱하게 굳은 근육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데이나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적과 마주했다.

 

 “아~아, 으아아아아아아~!”

 

 거인이 오른손의 벽돌을 위협적으로 휘두르며 다가오자 데이나는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몸을 날렸다. 거인은 계속해서 뒤로 물러서는 목표물을 쫓아 계속해서 공격했다. 계속해서 이동하는 둘은 곧 서로가 처음으로 마주친 곳에 도달했다. 데이나는 계속해서 피하며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 자신이 판단했을 때 그 순간 말고는 노릴 기회가 없었다. 어찌보면 인내의 싸움이라 할 수 있었다.

 

 “우아아아아아~아!”

 

 계속해서 평행선을 달리는 상황에 인내심이 바닥난 쪽은 거인이었다. 거인은 거대한 상체를 구부리고 그 탄력을 이용해 데이나 쪽으로 뛰어들었다. 데이나가 가까스로 피한 공격이었다. 이는 꽤나 날카로운 판단이었다. 날아드는 거리를 제대로 읽기 어려워 회피하기에도 힘들었다. 한 가지 단점이라면, 데이나의 노림수 역시 바로 그 공격이었다는 것이다. 데이나는 거인이 날아들자 재빨리 앞쪽으로 지면을 굴렀다. 방금 전까지 상대를 마주 보고 발의 움직임만으로 피하는 것이 아닌 완전히 몸을 지면에 닿게 하는 구르기였다. 덕분에 공격을 완벽히 피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바닥에 놓여있는 무기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노림수는 아니었다. 오히려 무기 회수는 부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우어? 어어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거인이 바닥에 넘어졌다. 거인 착지하는 바닥에 흥건하게 찬 핏물과 여러 종류의 액체, 기름기 있는 잔여물들이 거인의 발바닥을 미끄러지게 만든 것이다. 거인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순간, 데이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재빨리 자신이 선택한 무기인 총을 거인의 상처에 찔러넣었다. 마치 고무를 헤집는 감촉을 지나 부드러운 부분에 도달하자 오른손으로 잡은 방아쇠를 당겼다.

 

 탕!

 

 냉정한 총성이 울려 퍼지고 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뒤를 이었다. 한참이 지나도 둘 중 움직이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승자는 명확했다. 승자는 데이나였다. 하지만 그곳에 패자는 없었다. 오로지 사망자만이 있을 뿐이었다. 승자는 말없이 일어나 몇 걸음 뒷걸음치다 엉덩방아를 찍었다. 주변의 핏물이 바지와 소매에 퍼져갔다. 승자는 끝없이 떨리는 온몸을 진정시키려 노력했지만, 아까의 기세는 어디 갔는지 몸은 다시 상처와 통증을 토해내며 떨림을 멈추지 않았다. 총신과 방아쇠에 있던 두 손이 자연스럽게 머리를 감싸 쥐었다. 열 손가락이 핏빛으로 물든 은발 속으로 파고들었다.

 

 “웁, 우우욱”


 승자는 그 자리에서 연신 헛구역질을 해댔다. 나오는 것이 없음에도 헛구역질은 멈추지 않았다. 숨이 막힐 것 같은 괴로움에 승자는 눈물 콧물을 쏟으며 괴로워했다. 하지만 아무리 괴로워해도 무언가를 뱉어내려고 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데이나는 승자(살인자)였다.



 분명 데이나의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자신이 어떤 경위로 이 소녀의 집에 오게 되었는지를 알 수 없었다. 동시에 자신이 저지른 일이 떠오르면서 데이나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있었다. 순간 소녀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소녀의 손에는 깨끗한 천과 붕대, 따뜻한 물이 담긴 대야를 가져왔다.

 

 “붕대를 새로 갈아야 할 것 같아서요. 하는 김에 몸도 씻겨드릴게요. 주무시는 동안에 땀을 많이 흘리셔서 불편하시죠.”

 

 “아니야. 나에게…… 다가오지 마.”

 

 “네? 갑자기 왜”

 

 “됐으니까. 살펴준 건 고맙지만 난, 난 가봐야겠… 윽”

 

 다시 급하게 몸을 움직이려 한 탓인지 욱신거림이 서서히 통증으로 변해갔다. 그럼에도 데이나는 멈추지 않았다. 보다 못한 소녀가 제지하기 위해 다가왔다.

 

 “거봐요. 무리하시니까. 그렇잖아요. 하다못해 붕대라도”

 

 “오지 마!”

 

 자신의 몸에 손을 대려 한 소녀에게 데이나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거부당한 것이 나름 충격이었는지 살짝 놀란 눈으로 데이나를 응시했다.

 

 “나는…… 나는 살인자야. 이렇게 가까이할 사람이 못 돼.”

 

두 손에는 여전히 거인의 부드러운 안쪽에 총알을 박아넣은 촉감이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그 순간 데이나는 그의 눈에서 절망을 몰아낸 감정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분명 목숨을 건 사투였지만 자신의 손으로 상대를 죽였을 때 심장에서 피가 순환하는 것처럼 전신을 감싸 안은 감정은 해냈다는 성취감. 끝을 모르는 환희. 그리고 더 많은 피를 보고 싶다는 살의였다. 무엇보다


  ‘아… 아파……’


 자신의 손에 명에 생명을 잃은 거인이 마지막으로 뱉은 말은 저주의 말도 분노의 함성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말이었다. 그저 아프다고 하나 보이는 눈동자에서 눈물을 흘렸다. 데이나는 그 장면이 잊히지 않았다. 자신은 이러한 존재를 죽여놓고 슬퍼하긴커녕 외려 더 많은 살육을 원한 것이다. 자신이 더 많은 살인을 원한다는 걸, 살인의 순간에 끝 모를 쾌락을 맛봤다는 것을 알았기에 데이나는 그 자리에서 밀려오는 혐오감에 못 이겨 구역질을 해댔다.

 

 “그러니까 날 그냥 놔둬. 더 이상 나한테 다가오지 마. 부탁이야.”

 

 말하는 도중에도 데이나의 눈에는 서서히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째서 이런 일들을 겪어야만 하는지, 자신은 그저 야수병이라는 빌어먹을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왔을 뿐이었다. 어째서 이렇게 어린 소녀에게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러야 하는가. 한계까지 내몰린 정신이 급격하게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비참한 자신의 처지에 져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삼켰다. 여기서 울어버리면 참을 수 없을 것 같기에 필사적으로 참았다. 하지만 그런 오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괜찮아요. 당신은 괴물이 아니에요. 전 알 수 있어요.”


 소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데이나에게 다가와 작은 두 팔로 떨리는 몸을 감싸줬다. 그 목소리에는 조금 전에 보인 추태에 가까운 모습에도 여전히 처음과 같은 친절이 뭍어나왔다.

 

 “그거 아세요? 당신이 누워있을 때, 전 확실히 들었어요.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며 괴로워하는 당신의 모습이. 이렇게 괴로워하고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습은 결코 괴물이 보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에요.”

 

 “아니야. 아니야. 나는……”

 

 데이나는 계속해서 부정하려 했다. 자신에게 오는 따뜻함을 밀어내려 노력했다. 자신이 이런 말을 들을 자격이 없다고 속으로 끊임없이 되새겼지만, 그럼에도 몸은 그 따스함을 거부하지 못했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몰라도 여기 뭐라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제가 끝까지 옆에 있을게요. 그러니까 힘들면 울어도 돼요.”

 

 “으, 으으으. 흐아아아앙”


자신보다 어린 소녀의 말에 데이나는 부끄러움과 죄책감을 모두 잊고 그저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소녀는 그저 조용히 흐느끼는 등을 두드려주었다. 마치 고해성사를 청하는 죄인과 성자의 모습과도 비슷했다. 멀리서 보면 어른이 추태를 부린다고 어린아이가 어른을 놀린다고 손가락질할 수도 있는 장면이었지만 소녀의 말대로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두 사람뿐이었다.



 한참을 운 데이나는 몰려오는 부끄러움에 치료를 사양하려 했지만, 소녀는 인상과는 다르게 의외로 지긋한 구석이 있었다. 아직 몸이 완전한 상태가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데이나는 소녀에게 몸을 맡겼다. 소녀는 데이나의 몸을 일으켜 오른 어깨에 감긴 붕대를 풀었다. 그 솜씨는 상당히 능숙해 여러 번 해본 솜씨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붕대가 모두 풀리자 소녀는 천에 물을 묻혀 데이나의 등을 씻기 시작했다. 상처 부위에 물이 닿지 않도록 주의하는 섬세한 손길에 감탄하던 데이나에게 느닷없는 질문이 들려왔다.


 “어디서 오셨나요? 이 근처의 옷차림은 아닌 것 같은데. 굉장히 먼 곳인가요?”

 

 “응? 아니, 그게”

 

 데이나는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이상하게 당황했다. 이것은 부끄러움도 있었지만 다른 감정도 섞여 있었다. 분명 지극히 평범한 내용인데도 지금의 데이나에겐 너무나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미 자신에겐 평범한 일상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순간 눈에 보일 정도로 기운이 빠졌다. 다행히 소녀는 이를 다른 방향으로 해석한 것 같았다.

 

 “죄송해요. 함부로 물으면 안 됐는데.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아, 아니야. 내가 좀 힘든 일을 많이 겪어서 그래. 괜찮아.”

 

 “그런가요. 다행이다. 아, 내 정신 좀 봐. 아직 통성명도 아직이었네요. 제 이름은 아이리스에요.”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순수함에 데이나는 마음이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덕분에 어색함이 많이 풀어져 데이나도 편안하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나는 데이냐야. 네 말대로 외지인이지. 장소는… 이곳에서 멀지는 않지만 말해도 모를 거야. 워낙에 벽지라서 자랑거리가 없거든.”


데이나가 편하게 대하자 아이리스 역시 다시 밝은 목소리로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데이나는 입에 미소가 걸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데이나는 엄청 이쁘네요. 비결이 뭐에요?” “데이나는 무슨 음식을 좋아해요?” “데이나의 눈은 어떻게 그렇게 빨개요?” “데이나는”


 “잠깐, 잠깐. 방금 뭐라고?”


  순간 데이나는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듯 급하게 말을 끊었다.


 “네? 무슨 꽃을 제일 좋아하는지”

 

 “아니. 그전에 내 눈이 빨갛다고?”
 
데이나의 물음에 약간 어이가 없었는지 아이리스의 말이 잠시 끊겼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이어졌다.

 

 “그럼요. 지금까지 데이나처럼 눈이 빨간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 아닌데?”

 

 “네?”

 

 “내 눈은 빨간색이 아니야.”

 

 “네? 하지만.”


아이리스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겠다는 듯 작은 거울을 가지고 왔다. 데이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거울을 들여다봤다.

 

 “… 말도 안 돼.”

 

 거울 속의 두 눈은 아이리스의 말대로 빨간색이었다. 하지만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았다. 두 눈은 단순한 빨간색 아니었다. 좀 더 진하고 좀 더 어두운색. 마치 막 흘러나온 피 같은 붉은색이었다. 데이나는 혼란에 빠졌다. 분명 자신이 기억하기에 자신의 두 눈은 갈색에 가까운 검은색이었다. 분명 치료를 받기 전까지도. 데이나는 한숨을 쉬며 거울을 내려놓았다. 데이나가 말이 없자 아이리스 역시 말이 없어졌다. 그저 묵묵한 치료가 이어질 뿐이었다. 치료가 끝났음에도 생각에 잠긴 데이나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아이리스는 조용히 방을 나왔다.

 

 ‘…… 모르겠어. 분명 그때의 치료가 원인인 것 같은데 무슨 이유로 이렇게 된 거지? 야수병의 영향인가? 아니며 새로운 치료의 후유증?’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자 데이나는 포기해야만 했다. 가장 유력한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의사는 야수의 먹이가 되었기에 지금 남은 거라곤 치유 교단의 단서뿐이었다. 결국엔 치유 교단뿐이었다. 한숨을 쉬며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는 데이나의 귀에 어딘가 익숙한 선율이 잔잔히 들려왔다. 마치 이끌리는 것처럼 방을 나서자 거실로 보이는 공간이 나왔다. 선율은 밖이 보이는 창문에서, 정확히는 밖을 바라보고 앉아있는 아이리스의 손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데이나의 인기척을 알아챘는지 아이리스는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오르골이 들려있었다. 하지만 데이나는 그제서야 자신이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오르골 소리였구나. 분명 기절하기 직전에 노랫소리가 들린다고 생각해서 무의식적으로…… 걸었는데.”

 

 데이나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아이리스의 두 눈동자는 다급하게 지웠지만 빨갛게 부은 두 눈이 그녀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었다. 데이나는 조심스럽게 아이리스에게 다가가 눈높이를 맞췄다.

 

 “혹시 무슨 일 있니?”

 

 “………”

 

아이리스는 조개처럼 입을 다물었다. 데이나는 이런 표정을 잘 알았다. 억지로 다문 두 입, 마주치지 않으려는 두 눈. 이건 혼자 남겨진 아이의 표정이었다. 그것도 아주 곤란한. 데이나는 다시 조용히 물었다. 이 소녀에게는 너무 큰 도움을 받았다. 이 은혜를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었기에 무엇보다도 이 작은 소녀가 자신을 의지해주었으면 했기 때문에 최대한 어른스럽게 말을 걸었다.


  “고민이 있으면 상담해주지 않을래? 비록 이렇게 한심한 어른이지만 최대한 너의 고민을 들어주고 싶어. 안 되겠니?”


그제서야 아이리스는 눈을 마주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들려온 목소리는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엄마가 돌아오지 않으세요. 아빠를 데려오기 위해서 나가셨는데. 평소라면 두 분이 벌써 돌아오셔야 하거든요.”


아이리스가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데이나는 최대한 의연한 척 듣기 위해 노력했다.


  “아빠는 훌륭한 사냥꾼이에요. 그래서 사냥의 밤이 되면 나가시는데 요즘엔 엄마랑 같이 나가서 데려오는 일이 많았어요. 엄마는 아빠가 많이 힘들어서 배웅하는 거라고 하셨지만 사냥할 때의 아빠는 솔직히 다른 사람 같아요. 그래서 항상 이 오르골을 가지고 갔어요. 이 음악을 들으면 원래대로 돌아오시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너무 오르골을 두고 가셨어요.”

 

 아이리스의 눈에는 다시금 투명한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눈물은 볼 아래로 조금씩 흐르기 시작했다. 한 방울, 두 방울 흐르던 눈물은 그 수를 더해가고 있었다. 그럴수록 아이리스의 말에도 불안과 초조함이 드러났다.

 

 “아빠가 많이 다치셔서 못 돌아오시면 어떡하죠? 엄마랑 같이 치료해드려야 하는데.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너무 걱정돼요. 만약, 만약에 두 분이”

 

 “괜찮아.”

 

 데이나는 이어지려는 말을 막기 위해 다급하게 위로했다. 입으로 내는 말은 생각 이상으로 많은 파급력을 지닌다. 아무리 작은 예상이나 불안도 입으로 내는 순간 그 무게가 불어나고 만다. 또한 아이의 입으로 그 이상의 말은 너무나 가혹했다.

 

 “내가… 갈게. 내가 반드시 두 분 다 무사히 데려올게. 약속해.”

 

 “하지만 데이나는 지금 많이 아프잖아요. 함부로 움직이면 안 돼는데.”

 

 믿음이 가지 않는 건지 진짜로 걱정을 하는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 아이리스는 난색을 표했다. 하지만 데이나는 굴하지 않았다.
 
 “걱정 마. 지금 이렇게 멀쩡하게 돌아다니잖아. 이렇게 보여도 강철 체력이라고. 그러니까 여기서 기다려 줄래? 반드시 돌아올게.”   


 무책임한 약속이었다. 자신은 야남의 거리를 지나가기만 해도 죽을 뻔했다. 제대로 된 지식도 실력도 없이 그저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말에도 아이는 안심한 듯 데이나의 품에 안겨서 조용한 눈물을 흘렸다. 그것이 현재 유일하게 표현할 수 있는 고마움이었다. 혼자 남겨진 자신에게 찾아온 희망에 최대한의 감사함과 간절함을 담아 안겼다. 데이나는 자신은 이런 아이에게 자신이 어리광을 부렸다는 것에 부끄러워졌다. 이 소녀도 이렇게나 여리고 힘든데 자신은 어른이면서 도움만 받았다. 그렇기에 반드시 해낸다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



 “아버지가 어디로 가셨다고?”

 

 몸 상태를 점검하면서 데이나는 필요한 정보를 물었다. 아이리스도 자세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오에돈 지하묘지’라는 곳이에요. 대교가 잠긴 지금에는 성당 구역으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라 그곳에 일이 많을 거라고 했어요.”
 
우연인지 필연인지 데이나의 목적인 치유 교단으로 가는 길과도 이어져 있었다. 기묘한 불안을 느끼며 데이나는 다시 물었다.

 

 “그곳으로 갈려면 대교 쪽의 통로에서 빠지고 수로를 지나가야 한댔지?”


하지만 아이리스는 수상하다고 할 수도 있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평소대로라면 그렇죠.”

 

 “그게 무슨 소리야?”

 

 데이나의 물음에도 아이리스는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은 채 잠시 현관에서 사라졌다. 시간이 지나도 아이리스가 나오지 않아 데이나가 이상하게 생각할 무렵 갑자기 집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밖으로 뛰어나온 데이나가 보게 된 것은 집의 우측 통로를 반대쪽에서 잠그고 있던 철문이 끼기긱 소리를 내며 열리는 장면이었다. 느닷없이 철문이 열린 이유는 다름 아닌 아이리스에게 있었다. 어떻게 넘어갔는지 문의 반대편에서 철문 잠금장치의 레버를 당긴 것이었다. 힘들었는지 헉헉대고 있는 아이리스에게 데이나가 빠르게 다가갔다.

 

 “아이리스! 이게 대체”

 

 데이나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헉, 헉. 대, 대단하죠. 부모님 몰래 집 밖으로 나오는 방법이 있거든요. 평소에는 절대로 열어주면 안 돼지만…… 지금은 비상사태잖아요. 용서해 주실 거에요……… 아마.”


혀를 빼꼼 내밀려 개구쟁이처럼 웃는 아이리스를 보며 데이나는 좋아해야 할지 혼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알았어. 그럼 이쪽으로 가면 길이 더 빠르다는 거지?”


 데이나는 문 너머의 놓인 사다리를 응시하며 물었다. 아래에서 소리가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가 있었지만 다행히 올라오는 기색은 없었다.


 “네. 아래의 다리를 지나 오른쪽에 보이는 사다리로 내려가면 바로 수로가 보이거든요. 거기에서 계속 안쪽으로 가면 다시 올라가는 사다리가 보여요. 올라가면 다시 넓은 다리가 나오는데 그곳을 건너 왼쪽으로 올라가면 바로 나와요.”


데이나는 아이리스가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알고 있는지 내심 궁금했지만, 일단은 넘어갔다. 말 그대로 한시가 급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아이리스는 마지막으로 집에 들어가 무언가 잔뜩 들린 가방을 들고 나왔다.


 “혹시 몰라서 가져왔어요. 아빠가 쓰시던 물건들이 들어있어요. 특히 수혈액은 주사기가 깨지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 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데. 정말 이 혈액을 쓰면 상처가 아무는 거니?”


 미심쩍다는 표정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수혈은 단지 피를 많이 흘리는 사람에게 하는 의료행위지 모든 상처에 듣는 만능 치료가 아니었다. 최소한 데이나가 알기로는 그랬다.

 

“져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야남에선 다들 그렇게 생각해요. 사실 아빠가 쓰는 장면을 보기 전까진 의심했어요. 하지만 보세요. 데이나의 어깨도 많이 좋아졌잖아요.”


 확실히 그랬다. 뚫린 어깨도 일어났을 때는 약간 뻐근한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었다. 이 역시 수혈액을 사용한 영향이라고 했다. 다리는 이미 달릴 수 있을 정도로 회복한 상태였다. 일단은 의료의 도시이니 이런 신기한 것이 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다고 넘어갔다. 데이나 스스로는 몰랐지만 이미 이러한 비현실에 차차 익숙해져 갔다.
데이나가 사다리를 내려가기 직전 잊어버릴 뻔했다는 듯 다급하게 아이리스에게 물었다.

 

 “부모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니? 알아야 찾기 수월할 것 같아서.”

 

 “당연하죠. 엄마는 비올라라고 하고”

 

 아이리스는 용기를 내는 것처럼 더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빠 이름은 개스코인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