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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A75Bhbhm0Os














‘길버트, 어찌하여 그 불길한 곳으로 떠나는 것이냐?’

그가 야남으로 향할 거라 말했을 때, 그의 아버지를 제외한 모두가 그의 여행길을 축복해줬다. 사람들의 말은 순풍이 되어 그의 등을 떠밀었다. 치기로 가득했던 청년은, 그렇게 이방의 도시로 향하는 마차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진정으로 옳았던 것은 한때 늙은이의 노파심이라 여겼던 아비의 호소였다.

“콜록, 콜록.”

떠오르는 옛 기억을 떨쳐버리고자, 길버트는 기침을 삼키고 몸을 일으켜 창 밖을 바라보았다. 삼림처럼 늘어진 첨탑의 그림자 사이로 하늘이 호박석처럼 빛났다. 황혼, 낮의 끄트머리였다.

밖을 바라본 건 상념을 끊으려함이었으나, 길버트는 오히려 그 황혼에서 오랜 추억을 떠올렸다. 노을빛으로 물드는 강, 자신을 반겨주는 동생의 목소리와 그 너머에서 코를 간지럽히는 스튜의 향기... 이맘때가 되면, 그는 지평선 너머로 가라앉는 햇빛의 온기를 느끼며 식사를 했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식사 시간이 된지는 이미 한 달이 넘어갔었다.

이제 길버트는 확언할 수 있었다. 이곳의 시간은 헝클어졌다. 어느 때인가부터 야남의 태양은 저 탑 꼭대기에 걸린 채 내려오지 않았고, 시계침은 여섯시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길버트 또한, 그 뒤틀림에 묶인 신세였다. 마지막 밀알이 그의 입 안으로 들어간 지 이주일이 지났음에도 그는 더 이상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다.

이건 꿈이다.

이따위 일이 현실일 리가 없다. 푹 자고 눈을 뜨면 기다렸다는 듯 날이 밝아 있을 것이다. 길버트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턱 밑까지 이불을 끌어올려도 그가 꿈에서 깨는 일은 없었다.

길버트는 문득 밤이 그리워졌다. 야남의 시민들은 밤을 저주했지만, 그는 밤을, 그리고 밤의 어둠이 이 악몽을 덧칠하기를 기다렸다.

“어-이, 거기 누구 없어-?”

탕탕탕.

누군가 창문 바깥을 두드렸다. 억센 주먹이 내는 충격으로 유리창이 떨렸다. 불청객의 방문으로 놀란 길버트가 욕설을 내뱉었다.

“어떤 미친 놈이 이 시간에...!”

길버트가 한걸음에 창문으로 다가갔다. 금기를 어긴 자에게 훈계를 할 생각을 가지고서.

“아, 나왔다.”

낯선 복장을 한 낯선 남자. 검은 후드가 석양빛을 가렸다. 거센 억양과 이방의 복식. 그리고 철창 너머로 보이는 커다란 톱. 길버트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피 냄새.

“음... 아-아. 거슬렸나? 어쩌다 묻어서 말이야...”

후드가 벗겨지며 그의 머리카락이 요동쳤고, 젖은 머리카락 끝으로 피가 방울방울 떨어졌다. 창백한 피부에 묻은 피는 무희처럼 춤을 췄다. 길버트는 입술을 살며시 깨물었다.

“아... 당신은 사냥꾼이군요.”

길버트의 눈이 눈앞의 사내를 흝어내렸다. 이방의 옷은 사냥꾼답지 않았으나, 옷 위에 뿌려진 피가 사냥꾼임을 증명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 근처 사람도 아닌 것 같고.”

“젠장, 너도 그 말이야? 이 동네 사람들은 외지인 타령만 하네.”

길버트는 그의 말에서 의아함을 느꼈다. 이 동네 사람들?

“당신, 설마 다른 집에도 이런 식으로 문을 두드렸습니까?”

  사냥꾼은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런데 쌍욕밖에 안 돌아오더라고.”

  미친 놈. 길버트는 그렇게 말하려다 바로 코앞에 사냥꾼이 있음을 상기하고 말을 억눌렀다.

‘사냥의 밤이 시작되는데 그 따위 짓거리를 하다니.’

그렇게 피칠갑을 한 채로, 금기를 저질러 놓고 좋은 반응을 기대한 건가? 문득 어처구니가 없어진 길버트가 말했다. 목소리에 비아냥을 담아서.

“뭐, 그래도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겠군요... 이 야남은 특별한 방법으로 손님을 환영해주니까요.”

“환영...? 흐하하하, 그래. 아주 제대로 대접받았지.”

사냥꾼은 무엇이 그리 웃긴지 길버트의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떨며 박장대소했다.

“이 좆같은 동네가 어떻게 날 맞이해줬는지 넌 상상도 못할 거야.”

사냥꾼은 그렇게 말해놓고는 다시 목소리를 높혀 웃었다. 길버트는 그 모습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사냥꾼 중 제정신인 사람 드문 거야 익히 알려진 바이지만, 이건 그저 광인에 지나지 않은가. 길버트가 그런 시선을 담아 사냥꾼을 내려보고 있을 때, 사냥꾼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아, 미안. 수술받고 나서부터 좀... 이런 식이더라고.”

사냥꾼이 머쓱해진 듯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이런, 분위기가 많이 어색해졌는걸.”

수초간, 둘 사이의 말이 끊겼다. 갑작스런 침묵.

“...길버트입니다.”

“오, 그래. 길버트. 멋진 이름이야. 내 이름은 말이지.”

거기까지 말해놓고서 사냥꾼이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는 혀로 입을 쓸며 머뭇거리다가, 마침내 신경질을 내며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하, 씨발. 기억이 안 난다.”

“네?”

“내가 지금 기억을 잃어버려서 말야. 아, 젠장. 어쩐담... 음... 그냥 사냥꾼 씨라고 불러. 어차피 이 근처에 이 짓거리 하는 사람 나뿐이니까.”

그 말을 듣고 길버트가 놀란 것은 사냥꾼이 다짜고짜 자신이 기억을 잃었노라 밝혔기 때문도, 그의 태도가 초면부터 몹시 무례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사냥꾼이 당신밖에 없다니요?”

“응? 대충 둘러 봤는데 여기에 나밖에 없던 걸.”

사냥꾼은 오히려 의아하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길버트의 경악에 비할 순 없었다. 사냥의 밤이 시작되는데 사냥꾼이 없다니?

‘개스코인 신부는?’

세상 끝자락 야남에서 나는 특산물은 둘 뿐이었다. 야수, 그리고 사냥꾼. 사냥 장 루드비히의 인솔 아래 첫 사냥의 밤이 시작된 이래로, 수많은 사냥꾼들이 도시 곳곳을 순찰해갔다. 치유 교단이 시가지와 성당구역을, 리그(League)가 저 불길한 숲에서, 처형단은 강 너머의 폐성을.

그리고 이곳 시가지 주거 구역을 담당하는 건, 교단의 개스코인 신부와 헨릭이었다. 오 년 동안 이곳을 지킨 노련한 사냥꾼들.

‘아무도 없다고?’

“어이. 내 말 안 들려?”

사냥꾼의 말은 칼이 되어 길버트의 엉킨 생각을 끊어냈다. 창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길버트가 번쩍 깨어나 크게 기침을 했다.

크헙, 콜록, 끄윽. 콜록, 콜록.

“갑자기 왜 그래?”

입에서 느껴지는 싸늘함에 길버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암적색 피가 손 안에 고여 요요히 빛났다.

“아니...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냥 놀라서 그런 거에요.”

길버트는 그렇게 말했다.

“사람 놀래키고는... 그래서, 알아? 몰라?”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

“방금 말한 거 말이야.”

“아... 다른 생각을 하다 못 들어서 말이죠...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죠?”

사냥꾼이 입술 끝을 위로 말아올렸다. 그는 조끼 안으로 손을 쑤서녛다, 무엇인가를 꺼내들었다. 구겨진 종이였다.



“돌팔이에게 걸렸는지 기억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몽땅 까먹은 건 아니거든. 내 기억에 따르면 이건 분명 내 필체야.”

사냥꾼이 종이를 펼쳐 창문 앞에 가져다대었다.

「창백한 피를 구하라. 사냥을 완수하기 위해.」

“창백한 피?”

길버트는 자신도 모르게 그것을 소리내어 읽었다. 사냥꾼이 혀를 굴려 똑, 소리를 냈다.

“바로 봤어. 창백한 피...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렇게 쪽지로까지 남겨둘 정도면 존나게 중요한 걸 거 아니야. 이게 뭔지 아냐고.”

“흐음, 들어본 적 없는데요.”

“니기미.”

밑도 끝도 없이 욕을 뱉는 사냥꾼의 경박함에 길버트가 눈살을 찌푸렸다. 욕을 하지 않곤 말을 못하는 건가? 길버트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군요... 치유 교단이라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뭐니뭐니해도 모든 피의 본산지니깐요. 거기로 가보시지요.”

“치유 교단이라고? 지금 기억을 잃은게 그쪽 치료를 받다 그런 거야.”

“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습니까?”

길버트가 사냥꾼에게 그렇게 쏘아붙이자,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군... 그래서, 어디로 가면 되지?”

사냥꾼의 말에 길버트는 손을 죽 뻗어 바깥쪽을 가리켰다.

“이 도시 동쪽에는 계곡이 하나 있습니다... 네, 저쪽 말이에요. 그곳엔 대교가 있습니다. 거길 넘어가면 성당 구역이 있고, 그 마을 중앙의 광장 너머에는 대성당이 있죠.”

“거기로 가면 된다고?”

“교단 의료인들의 행렬은 그곳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치유 교단의 본산이니, 창백한 피라는게 있다면 아마 그곳에 있겠지요.”

“좋아. 거기로 가면 되겠네. 참 고마우이. 다음에 보자고.”

사냥꾼은 벽에 기대어 놓은 톱을 집어 들고는 몸을 돌렸다. 길버트는 지나칠 정도로 담백한 태도를 보이는 사냥꾼을 불러 세웠다.

“잠깐만요. 부탁이 있습니다.”

“뭔데?”

“성당에 가는 길에 다른 사냥꾼을 보신다면, 잠깐 이 구역을 점검해달라고 하실 수 있겠습니까? 대교 쪽이면 아마 디트리히나 캐서린을 만나실텐데, 그들에게 길버트의 부탁이라고 전해주십시오.”

“그 정도야 물론 들어줄 수 있지.”

문제될 것 없다는 사냥꾼의 말에 길버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기다리고 있으면 누군가 오리라. 그는 자신을 구해주거나, 하다못해 야수 쫒는 향이라도 보급해줄 것이다. 마음이 조금 편해진 길버트는 사냥꾼에게 조언 하나를 더 해주기로 마음 먹었다,

“오늘은 사냥의 밤이니 좀 느슨하겠지만, 그래도 검문을 조심하십시오. 제 경험에 따르면 야남은 외지인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검문이라니.”

사냥꾼이 피식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 그가 톱 자루 끝에 있는 레버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쇠가 비틀려 마찰하는 소리와 함께 톱이 아가리를 벌렸다. 톱의 날은 거칠었고, 이빨 사이로는 짓이겨진 살점이 묻어있었다.

“난 그런 거 신경 안 써.”


위에 있는 그림 보고 써봄... 다음화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