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나 가문의 전성기를 이끈 무장>
1541년
* 가독을 이음
1521년, +아이즈+에서 아시나 가문 15대 당주 아시나 모리키요의 아들로 태어났다.
1541년, 가독을 상속.
- 이때부터 본격적인 영토 확장에 나섰다.
1543년, 오누마 군의 야마우치 가문을 격파하고, 나가누마 가문의 미나미 아이즈 군을 제외한 아이즈 일원을 장악.
1547년
* 다테 가문의 내분에서 모리우지가 밀었던 다테 하루무네가 이김
1542년, 야마노우치 가문을 쳐서 아이즈로 세력을 확대.
- 다테 가문의 내분인 덴분의 난에서는 당초에는 장인 다네무네의 편을 들었다.
1547년, 같은 다네무네 파 다무라 다카아키와 충돌, 하루무네파로 돌아섰다.
- 이것이 결정적인 요인이 되어, 덴분의 난은 하루무네의 승리로 끝났다.
1566년
* 영토 확장
1550년, 본격적으로 나카도오리 지방으로 진출.
- 다무라 다카아키와 싸웠다.
- 다카아키의 맹우 +히타치의 사타케 가문의 방해로 진출이 순조롭지 못했다.
-사타케 가문의 적 호조 우지야스와 다케다 신겐과 동맹을 맺고, 사타케 가문에 대항.
- 내정면에서는 야나다씨를 상인 관리인으로 기용하는 것으로 유통 지배의 강화를 꾀하였다.
1555년, 모리우지는 시라카와의 고미네 요시치카에게 딸을 시집 보내 시라카와 가문과의 동맹관계를 도모.
- 당시 시라카와 가문은 사다케 가문과 맞서 싸우는 중이었기 때문에, 시라카와 역시 사다케 가문과 전투에 벌어야 했다.
1559년, 아다치 군 니혼마쓰하테케야마 가문과 이와세 군의 니카이도 가문을 굴복시켰고,
1561년, 서형 우지카타의 모반을 진압했다.
- 모리우지는 가독을 적남 모리오키에게 물려 주고 오누마 군 이와자키 성으로 은거,
- 삭발하여 시시사이라는 법명을 얻었다.
- 그러나 은거 후에도 정치적, 군사적 실권을 장악하고 계속 가문을 통제했다.
1563년, 스카가와성 성주 니카이도 모리요시를 공격하여 +이와세 군으로 진격.
- 모리요시는 다테 하루무네의 장녀와 결혼했기 때문에,
- 다테 가문의 군이 니카이도 가문을 구원하기 위해 몇번에 걸쳐 히바라로 공격해 들어왔으나,
- 이와야마 성 성주 아나자와 노부노리가 이를 격퇴했다.
1566년, 니카이도 모리요시가 적남 모리타카를 인질로 보내고 항복,
- 모리오키의 정실로 하루무네의 4녀 히코히메를 맞이하는 조건으로 아시나, 다테 연합군과 화의를 맺었다.
1574년
* 가독 상속 문제로 가문이 가세가 기울었다.
1574년, 다테 사네모토와 함께 다무라 가문 휘아의 하타케야마 요시쿠니와 오우치 요시쓰나를 격파하고,
- 다무라 기요아키를 종속시켰다.
- 6월, 가독을 이은 아들 모리오키가 29세의 젊은 나이로 급사하고 말았다.
- 모리오카가 유일한 아들이었던 데다, 모리오키 역시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 인질로 삼고 있던 니카이도 모리요시의 아들 모리타카를 모리오키의 미망인(다테 하루무네의 딸)과 결혼시켜
- 아시나 가문의 가독을 잇게 하고, 모리우지가 후견인으로서 정무를 집행했다.
1575년, 모리우지는 사위 유키 요시치카를 지원하여 시라카와 유키 가문의 가독 상속문제에 개입,
1578년, 우에스기 겐신의 사후 일어난 우에스기 가게카쓰와 우에스기 가케토라 간의 분쟁에 개입,
- 하지만, 니카이도 가문 출신의 당주 모리타카에게 반발하는 중신들과의 불화와
- 긴 기간에 걸친 다무라, 사타케 와의 항쟁에 따른 전비의 부족 등
- 모리우지 만년에는 이미 아시나 가문은 서서히 전성기의 힘을 상실하게 되었다.
1580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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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역사랑 관계없다고 미야자키가 말했는데 개솔
진짜랑 상관없지 븅시나 괴물 같은게 어찌 나오냐 아시나국 따온거 맞아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