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창작이란 길에서 한 번 도망쳤던 사람이야.

도망치기 전의 나는, 모든 사람은 훌륭한 문학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

지금은... 여전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조금 달라.

누구나 문학을 누릴 수 있고, 작가가 될 수 있지만 '직업으로써' 문학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생각했기에 창작이란 길에서 도망친 거니까.




그렇게 한 번 도망치고 나니 그쪽을 다시 바라보기만 하는 것도 엄청난 고통이더라.

마치 한낮의 태양을 바라보는 것처럼 시야에만 들어와도 못 견디고 시선을 돌려버렸어.

글을 쓰기는커녕 읽는 것조차 힘들었지.

심리 상담을 할 때 일기를 쓰라 했는데, 차마 글을 쓸 수가 없다고 하니까 그럼 나중에 하자고 할 정도로.




근데 참 웃긴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태양에 닿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더라.

어느 정도 마음이 치유되니까 다시 책을 찾게 되더라고.

그렇게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든 문장들을 베껴 적는 게 내 마음을 다시 고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

그러다 보니 다시 글도 쓰고 싶어져서 다시 처음부터 글쓰기 연습을 시작했지.

그렇게 연습한 덕분에 이제는 가벼운 시나 소설 정도는 다시 쓸 수 있게 되었고.




하지만, 여전히 장편만큼은 못 쓰겠더라.

장편을 쓰려면 필연적으로 주인공들에게 시련을 줘야 하는데, 그 시련을 줄 수가 없었어.

그들이 괴로워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 역시 괴로워졌으니까.

소위 말하는 과몰입이지.




그래도 여전히 나는 막연하게 장편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해.

왜냐하면, 장편을 쓰는 것은 그 질과 상관없이 실력 향상을 가져오는데, 그 연장선에서 '장편을 쓰면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거든.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지만.

진짜로 장편을 쓰고 나면 모든 미련을 털고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야.




그래서 이번 문학대회를 일종의 징검다리로 삼기로 했어.

2만 자는 그렇게 긴 분량이 아니지만, 내가 지금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분량보다는 많으니까.

그리고 일부러 무거운 주제를 잡고 시작부터 주인공을 괴롭게 만들었지.

그 때문에 묘사 한 줄, 대사 하나를 쓰는 것도 정말 힘들었어.

어떤 날은 컴퓨터 앞에 몇 시간을 앉아 있으면서도 한 글자도 쓰지 못했지.

하지만 어떻게든 글을 완성했고, 그렇게 탄생한 게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야.




그렇게 글을 다 쓰고 나니까, 정말 후련하더라.

감정도 엄청나게 고양되어서 '이 글을 썼으니 나는 더이상 여한이 없다!'라는 생각까지 했어.

확실하게 그 글은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글이었거든.

그리고 그걸 문학대회에 내려고 봤더니... 이런, 분량 제한에 걸리고 말았네.

사실은 분량 제한에 걸린 게 아니라, 내가 공지를 잘못 이해해서 그런 거였지만.




아무튼 선택을 해야 했어.

글을 잘라내고 대회에 낼 것인가, 아니면 그냥 이 글을 내지 않을 것인가.

난 후자를 택했지.

그만큼 그 글에 내 영혼의 일부를 담았고, 글을 완성한 순간 내가 또 한 걸음 나아갔다는 걸 스스로 느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글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었어.

그래서 그냥 예술의 밤에 그 작품을 내버렸지.




그런데, 다시 올라온 공지를 보니까 작품이 조건에 충족되더라?

아차 싶었지만 어쩌겠어? 이미 글을 올려버렸는데.

마침 자신감도 차올랐겠다, '그냥 새로 하나 쓰지, 뭐.' 이런 심정으로 다른 글을 썼어.

그렇게 네 개의 작품을 더 썼고 그중에서 적당한 작품을 하나 올렸지.

적당히 쓴 만큼, 적당히 1차에서 탈락해버렸지만.




작품을 잘못 낸 것에 미련이 오래 남는 것도 이 이유인 거 같아.

아닌 척 하려 했는데 도저히 안 되더라고.

특히 이번 심사평을 보니 내가 적당히 쓴 글을 올린 게 미안할 정도로 다들 글을 진지하게 읽고 심사해준 게 보여서 더욱 아쉬웠어.

원래 내려고 했던 작품을 냈으면 더 좋은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고.

하지만 무엇보다, 모든 심사평이 정말로 고마웠어.

이 세상 모든 사람은 훌륭한 문학가라는 예전의 내 믿음을 증명해주는 것 같았거든.

그래서 부끄럽게도 심사평을 보면서 조금 울었어.




이런 이유 때문에 이번 문학 대회는 나에게 정말 뜻깊은 경험이었어.

만약에 문학 대회가 아니었다면 나는 또다시 글쓰기를 포기했을지도 몰라.

문학 대회와는 별개로 현실에서 다른 문제들이 생기는 바람에 다시 우울해졌었거든.

물론, 글을 하나 썼다고 내 마음이 완전히 고쳐진 건 아니어서 지금도 가끔씩 부정적인 생각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긴 해.

하지만 지금 내 주변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고, 그렇기에 언젠가는 이 우울한 감정을 떨쳐낼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정말 많지만, 이만 줄일게.

두서없는 글 읽어줘서 정말 고맙고 항상 행복하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