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편 환경 다 어려워 낙담하는 너희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면 좋겠어서 글을 남겨본다.


올해 스물 여섯살 되었는데,
내게는 5살 차이나는 남동생 하나 있어.

남동생 하나뿐이란 얘기는 부모님은
일찍이 돌아가셨음을 뜻해

나 6살 되던 2000년에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급작스레 주무시다 세상을 떠나시고,

그 뒤로 어머니는 두 아들 키워본다고
식당 일을 전전하시다 건강이 나빠져서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때가 2010년이니 내가 중학교 2학년즈음인거같에

어머니 살아계실 때에
용돈도 없고 가방이나 옷은 이웃집 빌리고
영구임대 아파트 살아서 환경도 안좋아
사춘기와 겹쳐서 삐딱선을 많이 탔었다.

가정환경 어려움을 탓하며 절도도하고, 경찰서도 다녀오고
그러니 힘드셨던 엄마 가슴에 대못만 박았으니
지금도 늘 후회스러워.

지금도 마음이 너머 무거워 엄마 기일에도 추도 하나
읊조리지 못하고 있는 불효자식이야..

엄마 돌아가셨을 때 아빠쪽 친가는 찾아오지도 않았고,
어머니 외가는 돈 한푼 안내주어 납골도 못했다
엄마 유골은 다른 분들하고 섞여 이제는 없어.


그렇게 어머니 하늘나라 가시고,
나와 동생은 충주에 있는 아동복지시설에 맡겨졌어
거기서 정말 죽을만치 힘들었다.

복지시설은 보통 선량한 애들보다는
각자의 이유로 여러 불량아들이 많아.
애들이 늘 사고치는 덕에 통제와 감시는
정말 심했고..

농사를 통한 자립형을 지향하기 때문인지
놀토고 주말이고 평일이고.. 학교끝나면 바로
복귀해서 곡괭이 낫들고 밭 일구고 농약치는
노동의 연속이었어

구석진 위치에 있어서 학교는 걸어가면
1시간씩 걸렸고, 버스는 배차간격이 넓어
놓치거나 끊겨 도보로 통학하기 일수였다.
두툼한 외투나 변변찮은 옷도 없어서
늘 교복으로만 더위와 추위를 견디며
오고다녔어..

여러 폭력으로부터 동생도 지켜야했고
동생은 여기서 하도 나 몰래 맞거나
욕듣다보니 스트레스가 극심했는지
틱 장애도 생겼었다.

우여곡절 많았지만, 난 중학교 3학년 즈음부터
공부에 대한 열망이 들었어. 수학과 영어는
기초가 없어 따라가기 어려웠고

흥미있고 자신있는 암기과목인
사회 도덕 국어 등 할 수 있는만치 열심히 했다.

덕분에 고교때 반장도 해보고, 가장 저렴한
취미인 도서대출로 책을 달달 달고산터라
글짓기도 꽤나하게되어 상장타가며
삶이 조금은 즐거워진거같아.

늘 돈이 없어 반장이여도 햄버거 하나 못돌리는
부끄러움도 많았으나 참 열심히살려 노력했어

18세 되었을 때는 정서상 쓰레기같은 복지시설을
벗어나고자 시청에 무작정 찾아가 아동청소년
담당 공무원분께 사정을 설명했고..

더 나은 시립(불교쪽)시설로 옮겨서 난 고3
잘 마쳤고, 틱장애 있던 동생도 차차 병환이
나아졌어.

아직도 가슴아프게 말할 때 티가 좀 나는데..
그래도 엄마아빠 얼굴도 모르는데 건강하게 잘 커주어
늘 고마워


고교 졸업하고 지원금 500만 원 받은거로
청주에 원룸월세 구했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주택정책이든 근로장려금이든 등등 신청할 생각을
못했어.

최저시급대로 받으면 월 100만원 정도 수령하는
PC방, 편의점, 카페 등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로
입에 풀칠했다. 도저히 자취하니까 월세 식비로
나가니 모을 수가 없어서

두어달은 야간 PC방 알바하고, 쪽잠자고
낮에 카페 아르바이트로 200벌어 반절 저축했다가
몸 상태 안좋아져서 정말 죽겠다싶어가 그만뒀어.

늘 편의점 도시락으로 전전하다
어느날은 너무 삶이 힘든게 복받쳐 올라오더라..

편의점 전자렌지에 돌린 음식 냄새만 맡아도
토나올 것 같고 샌드위치나 김밥으로 떼우는 것도
한 두번이지


그때는 정말 만원짜리 불고기 백반 같은건
월급 날에나 기분 상 먹을 수 있었어...

그러다 군 입대할 시기가 점점 다가오면서
부사관을 정말 많이 고민했어. 결국 안정적으로
살려면 군인밖에 길이 없겠구나 싶었고,
부사관학교 수개월 훈련 마치고, 병과 교육기관 등
좋은 성적으로 상장받아 잘 임관해서 임무수행한다.

임관하고 2년간 철원에서 직무 숙달하고,
사실상 장교라인이 공석이거나 단기 자원이라
일 제대로 안하는 사람들이 앉아가지고..
옆 부사관 분하고 둘이 야근을 밥먹듯하며 업무했어

그러다 조금 더 남쪽 부대로 옮길 기회가 와서
지원하여 바꿨고, 대학에 대한 열망이 있어서

지금은 서울로 장기렌트해서 1시간 30분~ 차타며
학교다니고있다. 일하고 장거리 통학하여
공부하는게 정말 쉽진 않아서 1학기에 코피
두세번은 나고, 만성 피로로 영양제 달고살지만

그래도 희망을 바라보는 것이 어느덧 동생은
시설 잘 퇴소하고, 정부에서 6년간 좋진 않지만
그래도 살 수 있는 집 마련해주어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문대 다니고있다는 것이
큰 힘이 된다.

나는 공단, 공기업을 일단 목표로 열심히 살고있어..
올해 2월에는 한국사도 땄고, 월급받고 여러
대학생 신분으로 대외활동도 최선을 다해보고 있어
영어도 자격증도 학점도 해야할 것이 많지만
천천히 다 이루어내보려고..

시험기간에는 휴가내어 카페에 앉아 공부하며..
살고는 있는데 늘 벅차고 힘들 때가 많지만
그래도 열심히 사는데에 희망이 있지 않겠는가하고

현재도 휴가를 시험공부로 다 써가며 집에 와

이 글을 적어본다.

삶이 정말 어렵고 지치더라도
포기하지않고.. 눈물은 흘릴지언정
희망은 놓지 않았으면해.

부사관 4년여간 대학이니 동생 통신비나 용돈이니
생각지도 못한 옛날 엄마 카드빚이 수백만 원 쌓여서
납부하는 등등 지출해서 결국 2500여만 원만
모아놓은 것이 전부야. 누가 보면 더 모은다는데
비웃을지 모르지만 악착같이 모았다..

그래도 자기계발하며 열심히 살고있어.
전역하여 나가서 살려고 국민임대도 잘 신청해서
준비는 했고..

너희들에게 번듯하게 성공한 스토리를 들려주진
못해 미안하다. 그래도 부모님 다 잃고
강제 농사에 얼차려, 폭력에 휘둘리면서도
책하나만은 끝까지 붙들고, 동생 보호하는
형이라는 무게로 살아온 것과..

군인이라는 워라밸 악조건 속에서도
어찌어찌 길을 찾아 수시전형을 통해 대학다니는 것처럼
너희들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잘 이겨내어 멋진 사람이
된다면 정말 좋겠다. 모두들 진심으로 잘 나아가는
청사진이 펼쳐지길 바래 응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