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으로 살자를 비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여기는 고정관념이 있다.
하지만 살자란 행위 자체에 비합리성이란 없다.
살자하는 사람에 따라 합리적인 판단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을뿐.
살자 삼제(triad)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고는 "미래에 대한 부정적 예견"인데
이 예견이 극단적으로 부정편향(negatively biased)된 것이 아니고
미래가 부정적일 가능성이 실제로 높다면,
살자를 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임.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한 사람이 그동안 살아온 궤적과 패턴이 있고 그 패턴이 생기는 원인은 크게 뇌와 환경에 있는데
보통 1) 환경이 바뀌어질 가능성이 적고 2) 뇌의 회로구조(즉, 그 사람의 본성)가 바뀔 가능성은 더 적다.

따라서 앞으로도 그렇게 살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이 난 상황에서도 "아주 작지만 당장은 보이지 않는 길이 어딘가에 존재할 것이다"라고 자위하면서 억지로 살아간다면 그것은 상당히 비합리적인 결정이다.
생존에 대한 과도한 집착, 강박적 사고/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다.

언젠간 "내 뜻을 이룰 길이 나타날 거야!" 라고 무작정 근거없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다가
계속 고통받고 삶이 망가지고 대인관계 파탄난 상태로 90년을 더 살게 되어도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다. 그저 본인만 90년동안 고통스럽게 살다 죽을뿐.

그러니까 남들이 뭐라고 하든,
미래가 부정적인데 계속 살아있다면 본인이 생에서 겪게 될 고통의 총량은 살아있는 동안 계속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살자를 하면
그냥 "생에 느낄 고통의 총량"은 거기서 끝난다.
고통을 느끼는 신경회로는 죽은 이후부터 더 이상 활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더 살아봤자 "내가 삶의 고통을 견딜 수 있을 정도의 행복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면

그냥 당신의 삶은 존나게 고통스러울 것이고
나는 책임져주지 않을 것인데

그럼에도 살아가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라 믿는다면
본인이 알아서 하라고.


결국 중요한 건 당신의 미래가 어떠할 것이고, 그 미래를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임.
감당할 수 있겠다 싶은 결론이 났으면 계속 살아도 무방할 가능성이 높고,
감당할 수 없겠다 싶은 결론이 났으면 계속 살았다간 본인만 고통받고 본인만 좃되는 거지.

아무도 책임 안 져줌.
다 자기만 행복하면 그만인 세상이다.
정신 똑띠 차리고



살자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중인 사람들이라면
두 가지만 명심하자.


1. 자신의 미래에 생의 고통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행복이 주어질지 말지 최대한 신빙성 있고 타당성 있는 분석을 하고(이것이 당신의 살자 근거가 될 거니까)

2. 예견된 미래를 감당 못할 거 같으면 생을 정리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더 살았다가 고통 받아도 아무도 책임 안 져줌.

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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