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에게 리셋을 맡긴 뒤 페페는 잠깐 레이스가 시작하기 전에 있던 광장으로 돌아와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초반에는 많은 포인트를 얻을 수 있기에 우승을 노린다면, 최대한 간결하면서도 의뢰주가 만족할 만한 방식을 찾는게 관건이다.
페페 또한 루다에겐 우승보단 다른 이를 돕고 싶단 마음이 크다고 했지만, 우승에 욕심이 없는 것도 아니였다.
"페페..?너도 참가했구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고등학교를 다니던 무렵 같이 어울려 다니던 '모리'가 있었다. 보아하니 레이스에 참가한 모양이다. 범용 인공지능이 초지능으로 변화하면서 하루마다 엄청난 과학적 진보를 일으켜 교육기관이라는것은 과거의 산물이 되었고, 사람들은 전뇌화를 통해 정보를 다운로드&업로드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정부 또한 교육기관의 필요가 전무하단 사실을 인정했고, 내가 고등학교 3학년으로 올라가는 해 전국의 모든 학교는 문을 닫아 학생이라는 개념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워낙 저출산이 심했던 탓에 학급의 인원이 20명 채 되지않아 만났던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나도 그에게 인사로 반가움을 비췄다.
"이야 오랜만이다. 너도 참가했는지는 몰랐네. 잘 지내?"
"잘 지내지, 완몰가에 들어가면 NPC가 떠받들어주지, 나오면 AI가 떠받들어주지~ 어라 이거 어느 쪽이든 AI가 떠받들어주는건가? 하하"
"전뇌화를 해도 사람 참 안변하는 법이네, 그런데 벌써 의뢰 하나를 끝내고 온 거야? 꽤 빠르잖아"
디멘션 워커들의 닉네임 옆에 붙어있는 퀘스트 포인트 합계가 <900>이 되어있는 것을 통해 그가 이미 퀘스트 하나를 끝내고 온 것은 자명해 보였다.
"뭐 그렇지..900 포인트나 받긴 했는데 별로 한 건 없지만 말이지, 그런데 무슨 일이야? 퀘스트를 끝내서 광장에 온건 아닌거 같은데"
"그게..쉬운 퀘스트인줄 알았는데, 많이 꼬여있길래 말이지"
나는 자초지종을 모리에게 설명해줬다. 모리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어렵다는 듯이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에...그거 해결이 되는거야? 그정도면 설정 건드는 게 아닌 이상 NPC한테 호감을 얻을거 같진 않은데.."
"후...모르겠다 일단 게스트 플레이어로 참가해서 어떻게 관계가 나빠졌던건지 조사부터 하려고, 슬슬 시간이네, 기회가 되면 또 보자"
페페는 유리에게 맡겨둔 월드타임 리셋이 끝나간다는 메세지를 받고 커넥트를 준비했다.
간만에 만난 동창이지만 지금 당장은 디멘션 워커로서의 의뢰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가벼운 작별인사로 배웅했다.
어차피 당분간은 자주 볼 거 같고
"그래, 열심히 해라. 나도 빨리 다른 의뢰 해결하러 가볼께 서로 화이팅 하자고!"
나는 굳이 뒤돌아보진 않고 엄지만 척 세워 보인 채 자리를 떠났다.
돌아온 유리의 세계는 봄방학을 마친 신 학기의 무렵이였다. 만약 특이점이 오지 않았다면 나도 이런 생활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떨어지는 벚꽃 잎을 잡아서 바라보면서 아날로그의 감성에 잠깐 빠져들었다. 벚꽃잎은 이렇게 생겼던가?
최근 전혀 밖에 나가질 않았었네. 현실은 지금 봄일까? 어쩌면 가을일지도..아차.. 이럴 때가 아니란걸 금방 깨닫고 좌표계로 유리의 위치를 확인한다.
그렇게 멀진 않은 곳에 위치해 있는것을 확인했다. 아마 지금쯤 등교를 준비하는 중이겠지. 시간을 확인해보니 조금 풍경을 즐겨도 늦지 않을 시간이였기에
지리도 익힐겸 익숙치 않은 유리의 세계를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허억........허억......아니..무슨...오르막이 이렇게 많아?"
도시의 전체적인 풍경은 산을 깎아서 층계식으로 건물을 올린것 같았다. 경사가 완곡한 부분도 있고, 비탈진 부분도 자주 있었던 탓인지, 쉽게 체력이 지쳐버렸다.
벚꽃이 만개한 언덕길을 간신히 오르고나서 허리를 펼 겸 걸어온 길을 돌아다보니 넓게 펼쳐진 쪽빛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플레이어의 성격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청량한 그 모습에 갭을 느껴 조금 웃고 말았다.
대충 지리도 익혔으니 투명<invisible> 설정과 순간이동<teleport>를 사용하여 NPC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유리의 집으로
점프한 뒤,능력을 해제하고 초인종을 누르며 유리를 불렀다.
"아, 페페씨...아니! 페...페 왔어?"
"아직 어색하지? 천천히 말 놓아도 충분하니까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돼. 등교 준비는 끝났어?"
"응, 바로 출발하면 될 거 같아..."
가방을 메고 준비가 다 됐다는 표시로 검지와 엄지로 동그라미를 만든 채 어색하게 유리는 웃어보였다. 나도 그것에 부응하듯이 동그라미를 만들어보였다.
조금 돌아다닌다고 시간을 꽤 쓴 탓인지 등교시간까지의 유예가 썩 많진않았기에 등굣길 내내 나는 유리의 등을 미는 제스쳐를 취하면서 그녀를 재촉했다.
"어...아!!어...!!!"
"빨리 안가면 지각이라니까!! 개학 첫 날부터 지각하는 플레이어는 NPC가 나쁘게 볼지도 모른다고?!"
"아니...그치만...내리막이라서 너무 빠른걸!!!"
"괜찮아~! 혹시 다쳐도 플레이어 치트로 부상 회복하면 그만이니까!!"
“그럼 다치는 순간은?!! 저기 페페씨...?!!”
나와 어깨동무를 한 유리는 내 보폭에 맞춰서 내리막을 '뛰어'내려가고 있었다. 정확히는 내가 어깨동무를 하고 있기에, 보폭에 맞추지 않으면 넘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열심히 맞춰오고 있는 것이였고 이미 스피드의 제어권을 잃어버린 유리의 눈에서는 눈물이 맺혀서 터지기 직전이였다. 이번 내리막길만 내려가면 바로 학교이기도 하고 너무 괴롭히는것도 안쓰러우니까 이정도 해두자고 생각한 뒤 속도를 줄이기 위해서 다리에 힘을 줬다.
...
...
어라...? 이거 왜 안 멈춰...?
실수다..한동안 현실에서 걸어다닐 일이 거의 없었다보니 내리막길에서 가속도가 붙는 것을 깜빡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차......하는 순간, 둔턱한 무언가가 발부리에 걸리는 느낌이 들었고 우리 둘은 문장 그대로 그 곳 위를 날았다.
"엣...?페페..?"
공중에서 눈이 마주친 유리의 표정은 무슨 상황이 일어난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고 나는 죄책감으로 그 순진무구한 눈을 피해 반대방향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 곳에는 마침 코너를 돌면서 달려오는 자전가 보이가 있었고, 내가 봤던 그 표정은 교통사고가 나기 직전의 운전자의 그것과 닮았을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내 표정은 교통사고를 당하기 직전의 보행자와 같았을 지도. 청춘 코메디인건가요? 역시 내 청춘 코메디는 잘못된걸까요?
그런 잡념을 마지막으로 ,그 내리막길에는 각기 다른 고뇌를 대변하는 3개의 비명이 벚꽃처럼 흩날렸다.
“와아아아악!!!!!!!!!”
“꺄아아악!!!!!”
“우와아아악!!!!”
첫 날, 그렇게 우리는 자전거 보이 '다온'을 만났다.
벚꽃, 학교, 친구들.. 참 좋은 소재야. 완몰가 느낌도 많이 나고 좋네 최고다 '~') b b b
발랄한 학원 청춘물 느낌 (๑╹v╹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