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를 보고 오시면 더욱 좋습니다.
07. 판타지 세계의 구원자가 되었습니다.
마치 신과도 같다,
모두가 남자를 처음 보았을 때 느낀 감정이었다.
군살 없는 깔끔한 검격 하나하나에 마치 풍선이 터지듯 마수들이 터져나갔다.
하나, 둘…, 숫자를 셀 겨를도 없이 수십의 마물들이 그대로 허물어지고 마지막으로 목책 밖에 서있던 것은 우두머리였던 검은 빛의 늑대뿐이었다.
자신의 일족이 전부 죽어버린 것을 원망하는 것처럼 크게 울부짖었다, 다이어 울프는 고개를 들어 크게 울부짖었다. 이내 녀석의 커다란 동공이 그를 응시한다.
남자 역시도 고개를 들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이내 서로를 바라보기를 몇 초. 남자는 일순 검의 그립을 고쳐잡은 뒤 자세를 숙였다.
그리고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 크아아아아!
“저렇게 큰 마수를 단 한검에, 어떻게….”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
하지만 결과는 누구라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뻔했다, 두 발로 땅 위에 서 있는 것은 남자뿐이었으니.
“마을을 구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으리! 신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다!”
“감, 감사합니다!!”
마을을 구원해 낸 영웅은 뒤를 돌아 우리를 한번 뒤돌아보더니 스윽 손을 들었다.
수선한 지 꽤 되어 보이는 구멍이 난 망토, 가벼운 가죽 레더 상의와 질겨 보이는 바지.
기껏 해봐야 신출내기 모험가 또는 인근에 볼일이 있어서 내려온 것 같은 가벼운 옷차림이었다.
“이봐, 여분의 무기나 장구류가 있나. 가벼운 단검 정도여도 상관 없어.”
“지금 바쁜 거 안 보여요? 당신은 누군데… 꺄아악!”
처음 그를 보았을 때 소녀가 들었던 대답이었다.
그 당시에는 험악한 얼굴에 비명을 질러 보이는 추태를 보이기도 했지만…, 결과론적으로 말하면 정말 좋았던 선택이었던 것 같다고 소녀는 생각했다.
“이봐요 당신, 그… 용병인가요?”
“그렇다면?”
소녀는 남자의 손목을 잡고 온갖 무구가 잔뜩 들어가 있는 무기점으로 이끌었다. 그리고는 팔짱을 낀 채로 자랑스럽게 말했다.
“휴우. 뭐든 상관없어요. 알테어 무기점의 예비 주인으로써 아무거나 집으셔도 뭐라고 하지 않을 테니, 마을을 지키는 것을 도와주세요!”
바닥에 질질 끌리는 커다란 대장장이용 앞치마의 어두운 색과는 별개로 때타지 않은 하얀 색의 평상복이 돋보였다.
믿을 수 없는 호의를 보이는 꼬마 사장님에게 감동해서였을까, 아니면 그냥 즉흥적인 변심이었을까. 남자는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은 채로 진열대의 무구를 뒤적거렸다.
“그건 베아트 산 합금이 많이 들어간 건데…, 아, 그건 아빠가 일주일 동안이나 담금질 한 건데…!”
본인 딴에는 혼자 들리지 않게 중얼거렸다고 생각했겠지만, 아쉽게도 남자는 귀가 꽤 밝은 편이었다.
남자가 무심하게 소녀를 바라보자, 소녀는 남자의 시선을 피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윤기가 흐르는 갈색의 머릿결 사이로 젖살이 빠지지 않은 뽀얀 볼이 툭 튀어나왔다.
영락없이 아직은 앳된 티를 많이 벗지 못한 어린아이의 모습이다.
남자는 피식 웃으며 나직하게 소녀에게 말했다.
“나는 상관없으니까 제일 값싼 거로 줘.”
“앗 그렇다면! 근데…, 그러면 마물이랑 싸울 때 다칠 수도 있잖아요.”
“괜찮아, 저깟 마수 따위.”
“그래도 다치는 건 싫으니까 제일 좋은 걸로 줄게요!”
얼마간 이리저리 진열대를 돌아다니던 소녀는 마침내 만족스러운 물건을 찾았는지 은은하게 빛나는 장검을 두 손으로 꺼내 남자에게 건넸다.
“사실 제일 깊숙한 곳에 있던 건데, 아빠가 이 검은 자기 역작이라고 했어요! 믿어도 좋을 거예요!”
방실거리며 웃는 소녀의 모습에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흠칫 놀라 손을 떼었다.
“…그래. 고맙다.”
그 모습을 바라본 소녀는 잠깐 의구심이 들었지만, 아무래도 좋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마을을 지켜주세요. 용병 아저씨.”
“그래. 더는 누군가 다치지 않도록.”
여기까지가 소녀의 기억이었다.
남자는 정말로 마을을 구원해 낸 것이다. 기적적으로 어느 누군가도 크게 다치지 않았다.
“오오, 영웅이시어!”
작은 산간 도시, 알테어의 촌장은 자신들의 마을을 지켜낸 구원자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젊은이에게 고개를 숙이는 지긋한 노인의 모습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꽤 어색한 광경이었겠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렇게 느낄 만한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저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해야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덕분에 여기 있는 모두가 구원받을 수 있었지요. 대표자로써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빠르게 자리를 마련할 테니 저희 집으로 모시겠습니다.”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다른 여정이 촉박하기에.”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실례지만 어떤 용무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가시는 길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로마리아의 대신전을 들리려고 합니다.”
이곳 산간 도시 알테어와는 너무나도 먼 거리였기에 촌장이 딱히 할 일은 없었을 테였다.
촌장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는 와중, 누군가 남자에게 달려왔다.
“아저씨!”
꼬마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돌진한 소녀는 이내 남자의 등을 껴안았다.
“고마워요! 마을을 지켜 줘서!”
남자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소녀를 응시했다.
“그래, 꼬마야.”
“…꼬마 아니거든요. 제 이름은 루시에요!”
“루시…. 좋은 이름이네. 덕분에 마을을 지킬 수 있었어. 고맙다.”
남자는 웃으며 루시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투박하고 따듯했다. 루시가 느낀 감정이었다.
“아저씨는 마을의 영웅이에요. 영웅!”
그 순간, 투박한 손이 멈칫거렸다.
“나는 그런 대단한 사람이 아니란다. 그저 회개하는 사람일 뿐이지.”
웃어 보였지만, 순간 표정이 서글퍼 보였다는 것을 루시가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큭큭, 그게 뭐에요, 아저씨. 표정 되게 웃겨 보여요.”
“자, 여기. 돌려줄게. 나는 조금 바쁜 사람이라.”
남자는 허리춤에 찬 장검을 꺼내 루시에게 건넸다.
“그럼 이만. 더는 이런 불행한 습격이 없길 바랍니다.”
남자는 이내 뒤돌아서 마을 외곽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북적거리던 인파는 이내 갈라져 길을 만들어내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당신의 선행을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용사님! 부디 앞으로의 여정이 평안하시기를!”
“잘 가요, 아저씨! 다음에 또 봐요!”
녀석은 알까. 남자는 누군가를 죽이던 더러운 암살자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남자가 죽여버렸던 소년도 아마 루시와 비슷한 나이였을 것이다.
- 살려주세요, 제발!
아직도 울부짖으며 살려달라고 말했던 녀석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좋지 않은 기억은 수시로 감정을 좀먹는다. 지금도 그랬다. 눈앞에 피투성이가 된 소년의 환영이 머물고 있지 않은가.
실이 끊어져 버린 목각인형처럼 기괴한 움직임을 하며 남자에게 다가와 말하는 듯 하다.
- 나는 너 때문에 죽었어, 그깟 영웅놀이로 죄가 씻길 수 있을 것 같아?
남자는 주먹을 꽉 쥐었다.
“씨발. 그렇다고 주저앉을 수도 없잖아.”
뒤를 바라보자,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며 웃어 보이는 루시의 모습이 보였다.
기껏해야 데이터 쪼가리라고, 철저히 허구라고 누군가 손가락질한다 해도 느낄 수 있다.
내가 누군가를 구원했다.
그것은 텅 빈 마음 속을 채워주는, 존재 여부를 떠나서의 형언할 수 없는 만족감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다시 고개를 돌리자, 피투성이의 환영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후…. 로마리아가 동쪽 방향이었나.”
발길이 따라가는 대로 누군가를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는 계속해서 속죄할 것이다.
이것이 비록 게임이라 할지라도.
-fin-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슬슬 와서 더 써주라..
웹소설 쓰러간거 아님? - dc 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