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의 본질이라 함은,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가는 끝없는 방황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정처 없이 떠돌다 새로운 마을에 도착했을 때의 큰 즐거움이라고 하면 단연 식도락이다. 지역마다 고유한 특산물을 이용해 만든 향토 요리를 맛보고 향취를 느끼며 그 경험을 세상에 알리는 것은 모험가의 신성한 의무와도 같다.
그러한 사명을 가슴에 품고 이번에 들르게 된 곳은 식당과 여관을 함께 운영하는 평범한 인상의 가게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1층에 자리한 다소 시끌벅적한 주방과 식당이 나를 반겼다. 모험가 무리를 비롯해 다양한 인간군상이 한데 모여 술과 흥에 취해 있었다. 그 기분 좋은 소란을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관찰하고 싶어 구석 근처의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급사를 불러 대표 메뉴가 무엇인지 물었다. 이 시기에는 지역 특산물인 토마토를 베이스로 근처에서 쉽게 잡히는 혼래빗을 훈연한 구이 요리를 추천한다기에 그것으로 주문하고 방을 예약해 달라고 한 다음, 천천히 주위를 둘러봤다. 마침 눈에 띄는, 아니, 표현을 조금 정정해야겠다. 표현이 다소 이상하지만 오히려 눈에 띄지 않는 실루엣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바로 맞은 편 테이블의 자리에서 검은 후드를 푹 눌러쓴 채 앉아 있는 작은 체구의 사람이었다. 후드 밖으로 살짝 흘러나온 긴 은발이나 망토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복장으로 미루어 볼 때 여성, 아마도 젊거나 어린 소녀일 것이다.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분위기를 두르고 있음에도 그녀는 이런 환경이 익숙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식기와 요리는 두 사람 몫. 동행하는 보호자가 있다면 납득은 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보호자는 잠시 자리를 비운 모양이다.
그럼에도 주변의 시선은 수상할 정도로 그녀에게 향하지 않고 있었다. 모종의 인식 저해 마법 같은 걸 사용하고 있는 걸까. 사연이 있어 보이는 인물에게는 아무래도 관심이 끌리게 된다. 여러 나라와 지역의 맛을 알리는 것만큼이나, 사람들의 희노애락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것 역시 모험가의 중요한 의무라고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상대의 방어는 제법 두터워 보인다. 구석 자리에서 인식 저해 마법을 구사하면서까지 조용히 앉아 있는 상대에게 대뜸 다가가 말을 건네는 방식은 필시 경계를 사게 될 터이다.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 잠시 고민에 빠져 있노라니 의도치 않은 형태로 사건이 일어나게 됐다. 술에 취해 돌아다니던 모험가 무리 중 한 파티가 우연히 구석 쪽으로 다가온 것이다.
"여~ 꼬맹아. 여기는 어른들 노는 곳이거든? 해 지기 전에 집에 들어가야지 늦게까지 이런 데 있으면 못쓴다! 아니면... 오빠들 같은 멋진 남자랑 놀고 싶어서 일부러 끼 부리고 있는 건가? 크하하하!"
"어린 것이 벌써부터 밝히기는... 크크..."
아니나 다를까 모험가들이 소녀를 두고서 희롱하기 시작했다. 소녀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그저 가만히 앉아 있었다. 다만, 그들이 두려워서 움직이지 못 하는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저년 왜 재미 없게 아무 반응도 없냐. 설마 귀머거리는 아닐 테고... 야, 야. 일단 저년 후드좀 벗겨 봐라."
"형님, 급하긴 급한가 보오? 형님은 좀 더 빵빵한 언니야가 취향 아니셨소?"
"야, 이 새끼야. 이번에 원정 퀘스트 다녀오느라 2달이나 참았는데 이걸 참냐? 저년 후드 아래 하관 보라고. 딱 봐도 미인상이잖아."
"크크... 확실히 그렇긴 하오. 그럼 자, 일단 후드부터 벗기고 나머지는 방으로 가서 찬찬히... 응?!"
모험가들 중 막내로 보이는 사내가 소녀의 후드를 잡아 뒤로 제낀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하마터면 손에 들고 있던 물잔을 떨어트릴 뻔했다.
맨얼굴을 드러낸 소녀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10대 중후반으로나 보일 법한 앳된 얼굴에 차가우면서도 고혹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맑은 폭포수처럼 흘러 떨어진 긴 은발은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머리카락에 부드럽게 감싸인 얼굴은 희고, 날카롭지만 나른한 눈매 안에 자리한 눈동자는 대조적으로 붉게 빛났다. 세로로 찢어진 듯한, 상위포식자의 그것과도 같은 동공은 그녀가 인간이 아닌 마족이라는 것을 암시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미모에 잠시 얼이 빠진 모험가들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저들끼리의 즐거운 대화를 이어갔다.
"와하하하! 형님, 이거 완전 물건 아니오? 이년이 마족 주제에 감히 인간님들의 영역 한가운데서 버젓이 앉아 밥을 먹으려 들어?! 오빠들이 말이야, 무려 골드 등급 모험가거든? 당장이라도 목을 그냥 확...! 쳐 버릴 수도 있지만 오늘은 원정 퀘스트에서 돌아온 즐거운 날이니 특별히 넘어가 주겠다, 이거야. 물론, 이 멋진 오빠들과 하룻밤 재미있게 놀아 준다는 조건으로 말이지!"
"미색을 보아하니 서큐버스나 그 아종 같은데 남자를 기쁘게 하는 방법은 당연히 알고 있겠지? 하하하하!"
잠시 고민이 들었다. 약자를 보호하고 정의를 지키는 것은 모험가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나 그 대상이 인간이 아닌 마족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플래티넘 등급 모험가인 나와 저들의 실력을 비교하면 승패는 굳이 고려할 사항조차 아니지만, 여기서 나서는 것은 내게 있어 오히려 명분 없는 싸움. 나서야 할까? 아니면 좀 더 상태를 지켜볼까?
"어이, 그쪽에 혼자 앉아 있는 형씨! 구경 났소?! 아니면 눈 반짝이는 거 보니까 그쪽도 관심 있나 본데... 뭐, 우리가 꼬셨으니 맨입으로는 안 되고 오늘 저녁 술값을 전부 계산해 주면 생각은 해 보겠소! 하하하!"
여전히 표정 변화가 없는 소녀의 기색을 살피면 긴장 같은 것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겠지. 나는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나는 관여할 생각이 없으니 재미들 보시오."
"흥, 고자 같은 놈..."
소녀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고, 모험가들의 희롱은 점점 수위를 올려 갔다. 마침내 막내 모험가가 소녀의 손목을 거칠게 붙잡은 찰나, 식당 뒷문 쪽에서 강대한 마나의 기운을 내뿜으며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놀랍게도 은발 소녀와 그다지 나이 차이가 나 보이지 않는 소녀였다. 따스해 보이는 금발의 포니테일은 마나의 흐름을 받아 살며시 흩날리고, 두 눈동자는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은발 소녀와 묘한 조화를 이루는 외모에서, 은발 소녀의 동행이 그녀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금발 소녀는 바로 보기에도 화가 난 표정이었지만 걸어오는 보폭이 흔들리지 않고 일정했다. 허리 왼쪽에 매인 검의 장식이 규칙적으로 흔들렸다. 앳된 외모와 달리 상당한 내공을 쌓은 모양이다. 금발 소녀는 모험가들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곧장 은발 소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지도 않은 채 은발 소녀의 손목을 붙잡은 모험가 사내의 팔을 움켜쥐었다.
"끄아아아악!"
거한이라고 불려도 손색 없을 모험가 사내가 가녀린 소녀의 손아귀에 팔을 잡힌 것만으로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금발 소녀가 말했다.
"언니! 또 후드 벗은 거예요?! 인식 저해 풀리면 피곤해지니까 주의좀 하라고 했잖아요!"
은발 소녀가 처음으로 표정을 바꾸며 입을 열었다. 표정을 지으니 무표정일 때와는 또 다르게 그 나잇대에 어울리는 귀여운 느낌이 가미되었다.
"음...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이분들이 멋대로?"
"내가 못 살아~ 저도 몰라요. 언니가 저보다 훨씬 강하니까 언니가 직접 해결하세요."
"그치만 나는 우리 '소드마스터' 님의 활약을 눈앞에서 직관하고 싶은걸. 게다가 내가 마법을 쓰다가 살짝 삐끗하기라도 하면 마을 전체가 사라질지도 모르잖아."
"흐, 흥. 그렇게 아부해도 안 해 줄 거거든요. 언니가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할 리도 없고."
그러자 은발 소녀가 금발 소녀의 귀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무어라 속삭였다. 금발 소녀는 얼굴을 조금 붉히더니 '어쩔 수 없네요'라고 말하며 모험가들의 앞에 대치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전원 탈의하고, 그... 그랜절? 을 올리면 없던 일로 해 주겠다."
그랜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금발 소녀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 보였다.
"야, 이 새끼야! 계집애 손아귀에좀 잡힌 걸로 언제까지 엄살 부리고 있어! 그리고 새로 온 꼬맹아~ 이쪽이야말로 방금 우리 막내한테 손쓴 거 없던 일로 해 줄 테니 얌전히 느그 언니 넘겨라."
"아니면 너도 같이 오고 싶은 거냐? 크크크... 형님, 보니까 저년 그래도 가슴은 은발년보다 큰데 어떻소?"
"마! 여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모르냐?! 두 년 다 잡아다 내 앞에 무릎 꿇려."
"좋소. 저 당당한 표정이 침대에서는 어떻게 바뀔지 기대되는구만. 크하하... 커흑?!"
애석하게도 모험가 사내의 호탕한 웃음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 했다. 금발 소녀가 눈으로 쫓기도 어려운 속도로 상대의 품 속에 달려들어 명치에 주먹을 꽂은 것이다. 사내는 입에 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그 뒤로 대여섯 명은 되는 거구의 사내들이 쓰러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후, 금발 소녀는 모험가 사내들의 얼굴에 찬물을 끼얹어 강제로 깨우고 그랜절? 이라는 복종의 예법을 시켰다. 거구의 사내들이 나란히 팔꿈치로 물구나무를 선 채 허리를 꼿꼿이 펴고 머리를 땅에 박은 모습은 그 자체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보는 방향은 등 쪽이었기에 그들의 자랑스러운 물건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은 점은 천만 다행이었다.
그건 그렇고, 비록 추하고 우스운 꼴로 당했지만 골드 등급 모험가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들을 떼로, 순식간에, 다른 테이블을 더럽히지도 않고, 아마도 자신의 주무기인 검조차 뽑지 않고 제압한다는 것은 나로서도 불가능에 가까운 경지다. 은발 소녀가 흘린 '소드마스터'라는 단어가 허세가 아니라면, 오늘은 제법 귀한 구경을 한 셈이다. 거기다 '소드마스터보다 강한 마족 언니'라... 이번 사건도 식전 애피타이저로서는 차고 넘쳤지만 아무래도 이것이 이야기의 끝은 아닐 모양이다. 오히려 어떤 거대한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듯한 파란의 예감이 들었다.
나는 주방으로 향해 주문했던 음식과 술을 미리 예약한 내 방으로 가져다 줄 것을 요청하며, 두 소녀의 저녁 식사값도 내 앞으로 달아 놓도록 일러 두고 계단을 올랐다.
오늘은 긴 밤이 될 것 같다.
참고로 화자인 모험가는 지나가는 NPC1이자 설명역
완몰가 본인은 은발 소녀(마왕)이고 금발 소녀(용사)는 NPC지만 동료이자 연인으로 특별히 설정함
모험가 어깨형들은 알몸 그랜절을 하다가 새로운 취향에 눈을 떠서 노출이 많은 옷을 입고 금발 소녀를 추종하게 되고 후반부에는 나름 멋진 장면도 있을 예정
오 오랜만에 장문 망상인네 개추 후 감상
취향대로 끄적이니까 너무 재밌다 저 설정대로 빨리 완몰가 하고 싶어 죽겠음
와... 근데 잘 쓰기는 진짜 잘썼다... 혹시 웹소설 연재함?
좋게 봐 줘서 ㄳ 관심 있어서 작법서 읽거나 작법 공부좀 한 적은 있는데 연재한 적은 없음...
필력머임 웹소설 보는줄ㄷㄷㄷㄷㄷ 완갤의 보배다
정말고마 워요
아니 근데 ㄹㅇ 진지하게 술술 잘 읽힘 나도 이렇게 잘쓰고싶다ㅠ
오 시점이 npc 였네 ㅋㅋ 나름 반전
원래는 완몰가 내 캐릭터를 NPC 시점에서 보면 어떻게 느껴질까에서 시작한 건데 의도치 않은 반전 요소가 됐네
양판소가 ㄹㅇ 적당히 즐기기엔 좋을듯
소설로 읽을 때는 작품성 있으면 좋지만 내가 주인공 된다면 양판소가 최고지
잼있겠다 길게 써봐 그리고 나중에 완몰가에서 내가 함 해봐야지 빨리 완몰가가 나와야 하는데
대강 스토리라인 머릿속에 있긴 한데 길게 쓸 자신은 없음 ㅋㅋ 나중에 심심할 때 설정 같은 거나 조금씩 풀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