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한 그대로 가져왔어요
나는 AGI에 의해서 세상이 풍요롭기를 원해.
세상을 보면 두가지를 느껴.
하나는 끝없는 경쟁이야. 목적은? 생존이지.
인류는 문명을 일구어냈지만, 약육강식. 자연으로부터의 생존이 모든 생명체의 첫번째 목적이 되는 근본적인 시스템은 해결하지 못했어.
사람은 선택을 통해 성장해. 실수할 수 있겠지.
인간은 욕망이 있고, 누군가는 뒤틀려있고, 고장나있어. 선천적으로 악하거나 이기적인 사람들도 있겠지.
인간의 존엄성은 사회가 지켜주지못한다면 야생에 노출되어있는것과 같아.
그런데 사람이 시스템의 일부를 담당하는 한 사회는 강한 취약점을 유지하게 돼.
예를 들어 우리가 위험한 상황에서 경찰을 불렀을 때 책임감이 부족한 사람이 온다면?
우리를 위협으로부터 충분히 보호할 능력이나 의지가 부족한 사람이 온다면?
이게 아니더라도.
이미 사회적인 사건들은 너무나 일상적인 영역에서, 일반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을 경유해서 사람들의 생존영역을 영구적으로 파괴하고 있어.
사람이 사회의 역할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나야한다고 말하는건 아니야. AI를 100% 신뢰하는건 위험하다고 보거든.
대신 권력과 권한, 기능과 구조를 완전하게 재구성해야한다고 생각해.
권력자-AI-국민 사이에서 서로를 감시할 수 있는 투명한 구조를 만들고, 모든 것이 기록되어야 해.
이제는 국민들도 적정한 선에서 AI가 중재를 해준다면 직접적으로 사회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부분들이 생기겠지.
국가 시스템이 훌륭한 편인 한국에서도 많은 사회적인 문제들이 발생하는데 세계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어떨까.
실수를 하더라도 정말로 역할에 대한 의지와 자격이 충분한 사람들이 권한을 행사해야 AI가 가져다줄 수 있는 디스토피아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둘 수 있겠지.
지금의 국가 시스템이 유지되어왔던 이유는 국민이 국가에 맡긴 신뢰라는 담보를 권력자들이 가져다 쓰고있었기 때문이야.
국민들은 이미 충분히 분노하는 동시에 어쩔 수 없이 가만있는 상황인데
상황을 해결할 도구와 트리거가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회는 언제나 충분한 계기와 가능성만 보인다면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변화를 가져왔어.
다만, 새로운 사회가 가져올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신중한 고민의 시간을 충분히 거쳐야 하겠지.
특이점이 온다면, 특이점 이후의 세계를 준비해야할 필요성이 있다고 봐.
성선설, 성악설이 해당되는 사람이 없는건 아니겠지만
인간은 구조에 의해 지배당하는 생물이라고 생각해.
인간은 개념과 언어, 법칙, 도구와 상호작용하는 생물이잖아?
우리가 디지털 기기를 쓰는 순간, 인터넷을 사용하는 순간 이러한 구조가 가져다주는 어떠한 흐름의 영향을 모두가 겪고 있다고 봐.
누군가는 더 선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더 악할 수도 있어.
그 자체로도 잘못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사회적 구조를 바꾸기 이전에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거지.
이것은 AI나 로봇이 다가올때 우리가 만들게될 시스템이 해당되고,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구조도 해당이 되는거지.
인터넷 공간이 성별이나 나이로 구분해서 혐오하는게 처음부터 아예 없었던건 아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심해졌다고 봐.
물론 원인이 다른 곳에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현상만 놓고 본다면 인터넷이 가진 여러가지 속성.. 예를 들면 익명성이나 평면성에 의해서 사회가 점점 악영향을 받는 구조가 아닌가 싶어.
AI가 들어서고나서 사람들이 만든 컨텐츠가 쉽게 밀려나고 있잖아?
이게 평면성의 특징이라고 생각해. 1mm 높이의 거대한 그릇에서는 바닷물과 물 한방울의 높이가 동일한거지.
사람들이 썰을 올리면 주작이네 아니네 하잖아.
디씨를 본다면, 근첩이네 아니네 하는거랑 비슷한거지.
인터넷 공간에서 필요한건 크게 두가지야.
익명성이 없어야한다는건 아니야. 다만, 익명성을 대체할만한 무언가가 필요해.
예를 들면 계정에 어떠한 경제적 가치나, 점수가 쌓인다면 어떨까? 그 계정이 사라졌을때 타격이 크지 않을까? 사람들은 조심하지 않을까? 하는거지.
다른 하나는 입체성이야.
아직까지의 대부분의 인터넷은 평면이야. 오직 텍스트와 게시물만 있지.
이곳은 개성이 없어. 나와 네가 없기에 관계도 없고, 세상이 존재하지 않지.
게시물은 영구적으로 남아서 인터넷을 떠돌지만, 현실에서는 목소리를 통하기에 전파력이 그렇게 높지 않아. 목소리가 기록되는것도 아니고.
소수에 의한 악영향이 그렇게 큰 편이 아니지.
이게 메타버스가 필요한 이유야.
그리고 메타버스에 대해 이러한 관점이 있어.
AI가 나에게 모든걸 맞춰주는 흥미로운 세상은 분명 재미는 있겠지만, AI가 나에게 WWE를 걸어주는거랑 실제 사람과 랭크전에서 UFC를 하는거랑 어떤게 더 재미있을까?
소드아트온라인에서도 결국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잖아.
과연 가상현실에서 내가 위대한 자가 된다고해도, 한계가 있는거지.
세계의 지능은 작가의 지능을 넘어설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잖아.
우리가 위대한 존재가 된다해도 AI가 괴리감에 맞춰주려면 일본의 이세계물이 되어버리지? 뭐든지 대단해~가 되는거니까.
물론, 게임도 다양한 장르가 있고, 소설이나 영화도 마찬가지잖아?
메타버스도 마찬가지야. 모든 종류의 작품들은 이야기로 이루어진 세계이지. 현실도 그중 하나이고.
다만 소설, 영화, 웹툰, 게임, 현실의 구조가 다른거야. 일종의 구조적 장르라고 볼 수 있겠지.
그러니 메타버스라는 구조적 장르안에서 세계마다의 방향성이 다르겠지? 가벼운 세계가 있으면, 무거운 세계가 있고, 그 세계를 플레이하는 이유가 있을거란 말이지.
그러면, 현실의 인류가 언젠가 풍요로움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를 보자.
인간이 더이상 생존을 위해서 살아가야할 필요가 없기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아실현을 위해 살아가게 되겠지.
현실에서도 인간의 자아실현을 위해 직업이 있겠지만, 아무리 AGI가 풍요롭다고 하더라도 법칙적으로는 유한한게 현실의 속성이야.
가상현실은 이 부분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거고.
그런데, 우리를 위해서 맞춰주는 AI로 가득한 세계가 우리에게 즐거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롤에 비유해서, 자신과 똑같은 실력의 사람하고 붙는거랑, 똑같은 실력의 AI하고 붙는거랑 뭐가 재미있을까?
나는 이게 메타버스의 본질이자 핵심이라고 보거든.
우리가 아름다운 세계, 엄청난 세계를 가상현실에서 본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돌아갈 집은 결국 현실인거지.
인간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깨어있는 시간의 최소 40% 이상은 현실에서 시간을 보내야한다고 봐.
그런데 현실은, 가상현실처럼 초월성이 없잖아.
이 세계는 우리가 삶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게 우리 스스로에게 완전한 존재성을 부여해주지만, 현실이 할 수 있는게 있고 할 수 없는게 있지.
그러면 우리가 현실에서 생물체로서 존재하면서, 초월성을 가지는 두번째 현실을 만들 수도 있겠지.
나는 메타버스의 다른 핵심을 이렇게 봐.
하나는, 플레이어가 선택하지 않으면 메타버스는 존재할 수 없다는 거야.
플레이어의 존재를 입체적으로 정의하지 않은 메타버스는 시작할 수 없는거지. 대부분의 메타버스들이 부딪힌 문제가 이것이 아닐까 싶고.
나는 메타버스에 일종의 이치, 그리고 메커니즘이 있다고 생각해.
두번째 현실을 원한다고 생각해보자.
현실을 어떻게 부여해야할까? 가상공간이 어떻게 하면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애초에, 진짜 현실이 되기를 바라면서 만든 메타버스가 지금까지 있기는 했나?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불가능한거 아냐?
핵심만 말할게.
메타버스의 메커니즘 : 메타버스는 플레이어의 선택을 받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연결시켜야 한다.
접속기기 - 로블록스 : 저사양 환경으로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쉽게 접속할 수 있는 메타버스 메커니즘을 최대한 활용하였다.
친화도(에너지 효율) - 인간이 가진 선호도나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질에 가까울수록 인간은 적은 에너지로 쉽게 진입하고 선택할 수 있다. 적은 에너지로 높은 보상을 받는 것의 중요성은 사람이 집에서 편하게 OTT로 영화를 보느냐, 아니면 비싼 돈 주고 힘들게 표 골라서 외출준비하고 나왔더니 영화가 마음에 들까 안들까 고민하느냐의 차이라고 보면 된다. 만약 사람들이 집에서 가상세계 여행이 쉬워진다면 비싼 돈 들여가며 해외여행 가는일이 지금처럼 많아질까?
현실의 속성을 부여하는 법 : 현실을 보면 됨. 누군가는 현실을 시뮬레이션에 비유한다. 현실은 오직 법칙만이 있으며, 자연은 생명이 가진 본질이 개체를 자발적으로 선택하여 지속성에 도달한다. 즉 현실은 시뮬레이션 + 오픈월드이다. 인간 문명으로 보면 메슬로우 욕구가 인간의 선택으로 하여금 문명을 움직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가상현실에서는 메슬로우 욕구중 정신적인 영역이 해당된다. (인정욕구, 경쟁욕구, 자아실현, 미적인 감각 등)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는 미지로 가득하다. 미지를 채우는 것은 사람들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실을 만들려면, 위와 같은 속성과 흐름을 부여하면 된다.
그런데 여기에 빠진 메커니즘이 하나 존재한다.
거대한 현실은 인류의 선택이 하나의 세계(시스템)에 연결되어 미지를 창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 게임을 할 때, 우리가 이러한 이야기 속의 세계에 몰입할 때 그 세계에 있는 것은 나 자신인가? 아니면 이야기속의 다른 주인공인가.
우리가 게임을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삶이 될수는 없다. 우리가 알고있는 현실과 다른 세계이며,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세계는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서 엇갈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의 크기에 가깝게 도달할 수 없다.
이러한 온라인 공간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보게되더라도, 우리는 이 게임 속의 이야기와 목표를 향해 흘러가므로 우리의 현실의 정체성으로 서로를 마주하는 것은 공학적으로 마찰이 존재한다.
지구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인류 전체를 아우르는 공간기억구조이다.
우리는 새로운 지리를 익히지 않아도 되며, 다른 이야기속의 존재로 서로를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한국인 A, 일본인 B가 독도에서 맞다이 까면 되는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이곳에서 우리가 소유하는 공간이란, 서로를 인간대 인간으로 바라봄으로서 마주하는 현실이다.
즉, WWE만으로 가득찬 AI가 아니라 사람대 사람으로 UFC를 계속할 수 있다.
가벼운 세계도, 무거운 세계도 필요하다. 그리고 현실을 추구하는 세계에서는 인간의 자아실현과 나아감을 위해서 무거움과 가벼움이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어야한다.
사람의 시간이, 마음이, 선택이, 에너지, 성향, 자본, 모든 것들이 새로운 세계의 법칙을 통해 흘러가며 새로운 세계의 가치로 변화하고 축적한다.
초월의 세계에서 전세계 플레이어들이 현실을 쌓아나가며 미지를 창조해나간다면 이곳은 인류의 두번째 현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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