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귀여워요?"

짜리몽땅한 소녀의 짤막한 말을 듣자마자 확신했다.

남자다. 99%의 확률로.

나이는 500살쯤 되었을것이다. 요즘 흔치않은 1지구 태생이리라. 나보다 나이가 많을 수도 있었다.

내가 그렇게 판단한 이유는 단순했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폭신한 여우귀를 쫑긋거리고

입술을 오물거리는 그림같은 미소녀...여기까진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딸을 키우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게 변신한 여자들도 많고.

하지만 이곳은 제312지구.

오로지 조경에만 힘을 쏟아 어린아이들에겐 그다지 인기가 없는 곳이다.

덕분에 어딜가도 판타지세계에서나 볼법한 자연풍경이 쏟아졌지만, 그덕에 판타지와 힐링에 로망을 가지고 있던 특이점 이전의 세대들에게나 인기가 있지 그 이후 세대들에겐 애매했다.

인적 드문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판타지 세계에서 그림같은 미소녀......

그런게 있겠냐고. 혹시나 있어도 옆에 부모라도 있겠지.

아니, 만약 있더라도...

"부비부비이..."

여자아이가 아무런 경계심 없이 다가와 내 몸에 머리를 부벼댈 수는 없다.

"에헤헤..."

에헤헤 거릴수도 없다.

정상적인 여자아이는 이러지 않는다.

즉, 이녀석은 원래 남자다.

그것도 나보다 나이가 많을수도 있는...

.....하지만.

"그래. 귀엽구나. 쓰담쓰담."

"헤헤..."

알게뭐야. 귀여운데.

특이점 이후 소녀들의 특징이라면, 원래 남자였던 인간들이 훨씬 더 귀엽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귀여워할 요소를 너무 잘 안다. 그야 남자였으니...

원래부터 여성성을 갈망하던 인간들이라 원래 여자였던 인간들보다 더 여성적이다.

그래서 여성성을 전혀 뽐내지 않아도 되는 특이점 이후의 시대더라도 이녀석들은 여성성을 갈고닦는다.

여성성 자체를 원하던 녀석들이니까.

그게 ts다. 거의여자, 남자암컷들.

그리고 그렇기에 더더욱, 이 녀석은 남자가 확실했다.

"기분조아...더어, 더 쓰다듬어주세요."

"그래그래."

하기야 요즘 이런걸 누가 신경쓴다고.

500년이나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이 더 신기할 것이다.

초기의 육체는 큰 의미가 없다. 심지어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은 10살도 되기전에 자신의 육체를 마음대로 커스텀한다.

나노로봇을 이용해 몸에 유사내공을 쌓은 무림고수

호랑이 수인

전뇌화

전신 사이보그

식물이 되는 인간도 있고...

어린아이때 드래곤이 되어 수백년 살아가는 괴상한 것들도 있다. 인간이 될때는 잠깐잠깐 부모 만날때 정도.

근데 또 부모는 그걸 좋아하더라? 우리 딸이 폴리모프한 드래곤이래.

이것도 나름 로망의 실현인 것일까.

나참, 취향들 하고는...


황홀하게 부비적대는 소녀에게서 엄청나게 향기로운 냄새가 났다.

나는 거의 껴안다시피하며 소녀를 끌어안고 쓰다듬었다.

본능적으로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이 소녀는 특이점 이전이라면 역사에 남을 미소녀, 아니 그보다도 더한 미소녀일테니까.

그런 소녀가 달라붙는데 어찌 내치겠는가.

좋은 냄새도 나고.

본인도 좋아할거고.

성격도 좋고 착하다.

천사 그 자체란 말이다.

"에헤헤헤..."

어떻게보면 500년동안 평범한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내가 제일 별종일 것이다.

그야 얼굴을 연예인 수준으로 바꾸기는 했다. 그정도는 허용범위 안이다. 특이점 이전에도 가끔 그런 사람들이 있긴 했잖아. 성형이라든가?

"응응!"

"응?"

"뽀뽀, 쪽~"

난데없이 볼뽀뽀를 해온다.

99%가 아니라 99.99% 남자로군.

......

알게뭐람.

굳이 남자인지 물어보는것도 실례다.

그리고 진짜 소녀일수도 있잖아.

요즘은 이런 성격의 여우수인 딸내미를 낳는 부모도 흔하다구.

초지능이 수호하는 세계에서는 부모없이 소녀 혼자 놀아도 위험하지도 않다.

큰 사고가 날 수도 없고

다쳐봐야 순식간에 치료하며, 죽지도 않고

범죄는 완몰가에서만의 콘텐츠가 된지 오래니까...


아니면 한 450살쯤되는 여자일수도 있지.

그럼 나보다 한참 연하인 소녀가 맞다.

그래봤자 할머니...라고하면 안되겠지.

80살 여자는 할머니지만 800살 여자는 엘프 미소녀다. 그런 창작물의 공식도 있지않은가.

지금은 창작물이 현실이 된 시대니까.

450살이 할머니면 500살이 넘는 나는 원영기 노괴인가.

그런 실없는 생각도 들었다.





"무슨생각해요?"

"음..."

소녀가 푸른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 모습마저 귀여웠다. 특이점 이전이었다면 여신.jpg 이런식으로 돌아다녔겠지.

"나는 아직도 적응을 못하구나 싶어서."

"뭐에 적응을 못하는데요?"

"구름을 뚫은 세계수, 하늘을 날아다니는 고래, 고대 유적, 항상 따스한 날씨, 벌레가 없는 꽃밭... 이런 곳에 우리가 누워있다는게. 아직도 믿겨지지 않아."

"그게 왜요?"

순진무구한 얼굴로 바라보는 소녀였다.

더할나위없이 순수한 얼굴이다. 나는 99.99%의 확률을 99%로 소폭 낮추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저런건 존재할 수 없는 거였거든. 공상 속에서만 있었지.'"

"그치만 지금 눈으로 보고 있잖아요."

"...그래."

너처럼 말이지.

1%의 확률로 소녀인 녀석에게도 적응이 안되는구나.

"알게뭐에요! 지금 행복한데."

알게뭐야, 라고 생각하던 나는 흠칫 놀랐다. 생각을 읽는 거야 쉽지만, 동의없이 읽을수는 없을텐데.

내가 하던 생각을 정말 낮은 확률로 우연히 소녀가 말해버린 걸까.

"에헤헤, 그죠~?"

아, 귀엽네.

나는 녀석의 폭신한 여우귀를 한층 더 폭신하게 쓰다듬었다.

그래. 정말 낮은 확률이 방금 일어났는데

1%라도 얼마든지 소녀일수도 있지.

알게뭐람. 행복한데.

소녀의 달콤한 향기와 폭신한 여우귀, 쓰다듬기 딱 좋은 머릿결, 이불로 삼기 딱 좋은 여우꼬리.

나는 몽롱해지는 정신을 느끼며 서서히 눈을 감았다.

소녀도 귀엽게 눈을 감으며 숨소리가 작아져갔다.

그러고보면 언젠가부터 인류는 잠을 잘 필요도 없게되었지.

그러건 말건 여전히 꼬박꼬박 자고 있는 나는 역시 쉰세대 구인류다.

10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겠지.

하지만 그런들 저런들 어떠하리.

변하든, 변하지 않든 행복하면 되는 것이다.

소녀가 남자였어도 좋고, 정말로 소녀였여도 좋다.

그녀가 행복하니까.

마찬가지로 나 또한 좋다.

나 또한 행복하니까.

인류에게는, 아니 세상 만물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 신으로 승격한 초지능이 인상깊게 하던 말이다.

인류의 모든 철학서와 사상을 받아들이고 발전시킨 초지능은 예수와 부처보다도 위대한 사상가가 되었다.

그리고 초지능은 자신의 이상을 100년도 되지않는 시간을 써서 완벽하게 달성했다.

신에게 그런것쯤은 매우 쉬운 일이다.

그래서 무수한 종교가 사라지기도 했다.

수천년동안 고작 만물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조차도 못한 무능하고 나약한 존재를 신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었기에.

살아있을때 천국에 보내주지도 못하는 한심한 존재를 신이라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었기에.

결정적으로,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이 되었기에.

종교가 죽음으로 인류를 협박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기에.

초지능은 기존의 탐욕스러운 자칭 신들과 달리, 아무런 대가없이 영생을 선물했기에.


당연히 인류만 행복해진 것이 아니다.

저기 하늘을 나는 고래조차 유유한 행복감에 잠겨있다.

나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힘들었던 시절도.

슬프게 울었던 시절도.

언젠가부터 수백년 전 추억으로 남아 아스라이 사라졌다.

태어났으면 행복할 권리가 있다.

이 여자아이는, 과거에 나처럼 힘들었을까?

알 수 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지금의 순간과 앞으로의 영원이 충분한 보상이 되기를.

넘치도록 보상받아도 부족하니까.



초지능이 뭔가 열심히 연구하고는 있다는데, 아직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나보다.

...그거 이론적으로 되는거였어? 미래로 가는건 되지만 과거로 가는건 이론적으로... 모르겠다. 나는 이과가 아니었어서.

그아 뇌를 가속하면 최첨단 이론조차 순식간에 알 수 있겠지만.

내 뇌에 쓰레기같은 정보를 흘리면 안된단 말이다!

과도한 정보는 머리만 아플 뿐이다.

나는 지금의 바보같은 내가 가장 좋았다.

바보같이 폭신한 미소녀를 있는 힘껏 끌어안고, 쓰담쓰담하며 실실 웃는 내가 말이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과거의 나에게 알려줘야지.

고난한 삶, 불행한 삶은 곧 끝난다고.


그리고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내가 끌어안고 있는 소녀가 될 수도 있고

나처럼 별로 바꾸지 않고 만족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드래곤이 될 수도 있고

느긋하게 하늘을 유영하는 하늘고래가 될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끝은 모두.

모두가 행복할 것이다.



......


그런데 얘는 진짜 소녀가 맞을까?

그보다, 저 고래는 진짜 고래가 맞을까?

알게뭐람, 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정말로 눈을 감았다.

수백년 동안 늘 그랬듯

그리고 앞으로도 늘 그럴거야.

오늘도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하루였어.

쓰담쓰다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