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이대로 할게."


[System : 즐거운 플레이가 되시길..]


사무적이지만, 어딘가 상냥함이 묻어나는 목소리를 끝으로 나를 중심으로한 차원이 조각 조각 무너지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초기 캐릭터 설정 공간을 벗어나, 실제 게임 환경으로 들어가는 것이겠지.

이윽고, 무너지는 공간의 파편 사이로 주위 풍경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와.. 시바.. 진짜 지리긴 한다."


티없이 맑은 하늘, 그 사이를 유유자적히 떠다니는 새하얀 구름들, 그 아래 펼쳐진 세상 끝까지 닿을만한 푸르른 초원.

사이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내 뺨을 간지린다.


 "촉각 수준 진짜 미쳤네.. 현실이랑 다를게 없어."


괜시리 나는 주먹을 쥐었다 펴보며, 손의 감각을 느껴본다.

내 눈에 보이는 이 손이 현실의 내몸처럼 움직여지는 감각에 전율을 느꼈다.

그렇게 주위 풍경과 내 손을 번갈아 보며 감상에 빠져 있을 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켜욧! 비켜욧!!!"


 "무슨...?"


뒤를 돌아보자, 내가 있는 곳을 향해 빗자루를 탄 한 여성이 노란 금발을 휘날리며 빠른 속도로 날라오고 있었다.


 "비켜요옷------!"


 "아니! 시박!!"


나는 재빨리 몸을 틀어 오른쪽으로 피하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와 나의 생각이 같았던 걸까.

빗자루의 머리 또한 오른쪽을 향하고 있었다.


 "아앜!! 시..ㅂ"


-쾅!



무자비한 충격음과 함께 무면허 마녀와 나는 뒤엉켜 두바퀴를 굴러갔다.

아니 시바, 통각 감소 절반 적용 맞냐? 존나 아프네..

급하게 빗자루가 옆으로 틀으면서 감속했기에 망정이지, 그대로 머리에 찍혔으면

바로 지옥스테이지 구경갈뻔 했다.


 "으에엑... 죽는 줄 알았네."


아니 진짜 죽을 뻔 했다. 왼쪽 상단에 보이는 HP가 바닥나기 직전이었으니.

나는 몸을 일으켜 이 시바 무자비한 무면허 라이더의 면상을 확인하였다.


 "...진짜 다들 커마에 공을 들였구만?"


칙칙한 흙색 마법사 로브 위 반짝거리는 금발, 백옥같이 새하얀 피부, 

완벽하게 조형한듯한 얼굴을 한 여성이 푸른 잔디 밭 위에 쓰러져 있었다.


 "나도 커마좀 열심히 할걸 그랬나.."


아니, 그래도 근육남캐 전사의 로망을 버릴 순 없다. 

누가 도대체 남캐를 게이같다고 놀리는가. 

이 시바, 요즘 것들은 낭만이 없어요.

옛날 와우 시절 호드 감성 어디갔냐고.


 "저기요. 저기 좀 일어나 보세요."


아직도 스턴에 걸려있는 그녀를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합의금 두둑히 타먹어야지.


 "저기. 정신좀 차려보세요."

 "느..느엑..?"


괴상한 소리를 내며 정신을 차린 그녀는

눈을 꿈벅꿈벅 뜨면서 나를 바라봤다.


 "안돼욧!! 싫어욧!! 하지말아요!!!!!!!"


이런 시발.


 "아니! 아니! 내가 뭐 그쪽을 어떻게-"


 "꺄아악!! AI경찰 어딨어!! 성추행이야!!!!!!"


똥밟았다. 시발거.




***




 "죄송합니다.."


여차저차 진정한 그녀는 전후 상황이 기억났는지,

무릎꿇고 나에게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아니, 저 접속 첫날에 지옥갈뻔 했다니까요?"


 "...죄송합니다. 입이 두개라도 할말이 없습니닷.."


 "됐구.. 포션값이나 조금 주세요. 그러면."


 "아하하.. 그게.."


 "...?"


 "마녀 클래스 전직하느라, 돈을 다써버려서... 헤헤.."


 아니 시발, 진짜 존나 억울하다.

 무지성 무면허 무개념 왕초보 라이더한테 치인거야?


 "......."


 "..혹시 오늘 처음 접속하신거 맞죠?"


 "..아 네. 뭐 그렇죠.."


 "그럼 그 대신.. 제가 책임지고 이 헨더월드! 가르쳐 드릴까요?"

 가상현실 플랫폼 기반의 판타지 MMORPG 핸더월드.

 그 무엇이든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이 게임을 가르쳐 준다?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누군가 이끌어 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메리트가 있다.


 "아뇨. 괜찮습니다. 제발 사양하겠습니다."


 근데 그 이끌어 줄 사람이 딱봐도 무지성 마녀라면?

 시발이다.


 "아! 왜요! 제가 초보같아서 이래보이는 거죠?"


 아니, 그것도 있지만, 포션값도 없는 플레이어를 누가 믿냐고..


 "아니 저 랭킹 꽤 높아요? 제가 원래 마법사 플레이어가 아니라서 그런거지-"


 "그러면, 저는 가보겠습니다. 저희 다시는 보지 말죠."


 "아악! 왜 이 엄청난 호의를 무시하지?" 


그렇게 길을 나서는 내 뒤로, 금발의 아가씨가 빗자루를 들고 총총 따라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