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나 어렸을 적 부터 수억원의 빚이 있었는데

그 돈 때문에 너무나도 힘든 기억이 많다.

초등학교때도 맨날 의류수거함에서 몰래 꺼내온 해진 옷만 입고 다니고

샴푸 살 돈도 없어서 항상 비누로만 감고 다니니까 머릿결도 아주 거칠었다.

그래서 내 별명은 고등학생때까지도 들개였는데

학교의 아이들은 내가 지나갈 때 마다 "저기 들개새끼 지나간다" 라며 놀리곤 했다.

아이들은 놀리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까지는 언어적인 폭력만이 이루어졌다면

중학교에 입학하고 부터는 사춘기가 시작된 아이들의 원초적 본능으로 서열이 나뉘었고

그 서열에서 가장 최하위의 등급을 차지하게 된건 바로 나, 들개였다.

신체적인 성장이 이루어지고부터, 나는 소위 양아치라고 불리는 아이들에게 저항할 수 없었다.

내가 영양분이 많은 음식을 먹지 못해서 였을까, 그때까지도 나의 키는 140cm대에 불과했다.

반에서 가장 작은 여자아이보다 작은 나.

그런 작은 아이를 괴롭히는 것은 160cm, 170cm가 넘는 또래의 아이들에게는 손쉬운 일 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나를 타겟으로 삼아 급식으로 나오는 매일우유를 던져대는 놀이였고

두번째는 학교의 교목이라 여기저기 심어져있던 은행나무의 냄새나는 열매를 억지로 입에 쑤셔넣는 것이었다.

그들의 폭력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나의 정신은 칠판에 갈려나가는 분필처럼 점점 깎여나갔다.

몸에 난 상처는 나을 새도 없이 새로운 상처가 뒤덮이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 글을 읽고있는 당신은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해결할 수 있었잖아? 라는 의문을 가질수도 있겠지만

어머니가 알게 된다면 그녀가 맨몸으로 짊어 진 선인장에 가시가 늘어날 뿐이었고

아버지라는 사람은 해결해줄 능력도, 의지도 없는 사람이었으며

교사들조차 나를 보면 길가의 돌맹이를 바라보듯 했기에

나는 도와주는 이 하나 없이 나홀로 묵묵히 버텨내는 수 밖에 없었다.

매일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샤워를 하며 검붉게 굳은 피딱지와 곪아터져서 흐르는 고름을 씻어내었다.

그러다보면 밀려오는 자괴감과 거울에 비친 내 비루하고 한심한 모습에 현실이란 너무나도 잔혹한 것임을 불과 14살의 나이에 깨달았다.

내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고난을 주는 것일까?

이 고난의 끝에는 행복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 시절의 나는 그럴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십자가를 매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던 예수처럼 그저 고통만을 받다가 죽거나

운이 좋다면 석 달 동안 걸식을 하다 돼지고기를 먹고 식중독으로 죽은 부처처럼 단 한번의 달콤함을 맛보고 죽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내 인생은 드라마에서 나오던 재벌2세의 화려한 삶이 아닌

길거리의 부랑자가 맨발로 밟고 지나간 보도블럭처럼 검고 더러운 삶이었으니

희망이란 마음 속을 벅벅 긁어 밑바닥을 훑어봐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단 두개 뿐이었다.

인내 혹은 포기.

매일마다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 것을 고민한 나는

노트 두권을 가득 채워 일곱가지의 자살 계획을 만들었다.

그 중 하나는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으로 떠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죽는 것이었다.

하지만 용돈이라곤 백원도 받지 못하던 나는 버스를 탈 돈 조차 없었고

계획을 실행시키려 준비물을 모으기 시작했다.

체육 시간에 배가 아프다는 핑계로 교실로 돌아가 반 아이들의 지갑에 손을 대어

6천원이라는 거금을 손에 쥐고는 곧바로 학교의 철창을 뛰어넘어 버스를 탔다.

체육복을 입은 중학생이 수업을 받을 시간에 버스를 타자 의아하게 여긴 버스기사 아저씨는 내게 "얘, 너 어디로 가니?" 라고 물었다.

나는 능청스럽게 "체육시간에 써야하는 줄넘기를 두고 왔다" 라고 거짓말을 했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곧 관심이 떨어졌는지 나를 태우고서는 종점까지 내달렸다.

잘 알지도 못하는 버스들을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닌지 5시간 쯤 지나고서야 나는 산을 끼고 있는 한 마을에 도착했는데, 이름이 개야리 였다.

그곳에서 자살을 위한 도구를 찾아다니다가, 문득 어느 민가의 마당에 빨랫줄에 걸려 말라가는 빨래들을 보았다.

나는 몰래 들어가 빨래들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매듭을 풀어 5m 정도 길이의 노끈을 손에 쥐고선 누군가 볼 새라 산이 보이는 방향으로 뛰고, 또 뛰었다.

산 입구의 표지판에는 종자산 정상. 1.5km 라고 적혀있었다.

중턱에 이르를때 즈음 나는 등산로에서 빠져나와 숲 속으로 들어갔는데

한참 동안 걷다보니 곧 큰 나무들 사이에 작은 개울이 흐르는 곳이 나왔다.

나는 더 이상 걸어다닐 체력도, 기운도 없었기 때문에 그곳을 내 묫자리로 정하고는 주위의 바윗돌을 밟고 나무에 기어올라 끈을 매달았다.

굵은 나뭇가지에 앉아 묶어놓은 끈을 목에 씌우고 내가 개울으로 떨어지기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상황이었는데

문득 울음이 나왔다.

내가 죽으면 내게 가해지는 폭력은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잔혹한 폭력 보다도 견디기 힘들었던 건 내가 죽고나서 흘릴 어머니의 눈물이었다.

그것을 생각하니, 나는 내 마음대로 죽을 수조차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죽을 용기조차 없었던 사람인 것이었다.

터벅터벅 산에서 내려와 빨랫줄을 다시 가져다 두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처음 보는 길에 주변에 사람도 없어 물어볼 수도 없었기에

이 길에 맞겠거니 하고서는 그저 걷기만 했다.

하지만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머리위에 올라도 눈에 익은 길은 들어오지 않았고

나는 산 아래에 덩그러니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자고있던 나를 한 할머니가 나를 일으켜 깨우더니 "너 집이 어디니? 왜 여기에서 자고 있니?" 라고 물었다.

내가 버스를 잘못 타서 길을 잃었다. 라고 대답하자 할머니는 경찰에게 연락해서 나를 대려가도록 했다.

그렇게 경찰차를 타고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내가 자살을 결심하고서 하루 하고도 4시간이 지났을때였다.

나는 집으로 돌아온 뒤 자살계획을 빼곡히 적어두었던 노트를 불태웠다.

내게 남은 선택지는 인내 뿐이었기에.



지금은 성인이 되어서 나름 직장이 있는 삶을 살고있지만

아직도 어릴적의 기억은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 철없는 아이들의 장난이었을지라도

그로인해 상처받은 내 마음은 누가 이해해 줄 수 있을까.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남들처럼만이라도 평범하게 행복하고 싶다.

아직까지도 회색빛이 가시지 않은 내 삶에 마지막으로 손에 쥔 희망은 오직 완몰가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