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추천)

https://www.youtube.com/watch?v=hcPXok-Pemg


나는 오늘도 지난날의 너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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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의 즐거웠던 기억은 아련한 추억이 되고, 그런 추억들은 가슴에 쌓여 서글픈 미련으로 남는다.

결국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기 마련.


그러한 회의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떨치지 못한 미련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그냥 무심결이었을까.

이런 잡생각도 아스라이 사라질 즈음이었다.







눈을 뜨자 흐릿한 시야 사이로 하얀색의 낡은 디지털 벽시계와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바닥에 뒹군 채로 나를 맞이했다.


‘그러니까, 그게 어디 있더라….’


분명 이쯤 어딘가에 있을 텐데.

침대에 누운 채로 팔을 이리저리 뻗자, 손끝 사이로 익숙한 무테 안경과 스마트폰이 집힌다.


“와…, 이렇게 보니까 나도 참 잘생겼었네.”


안경을 쓰고 핸드폰 카메라로 잠시 얼굴을 확인했다.

어색하지만 나름 꾸민 듯 안 꾸민 듯한 가르마 머리, 동그란 안경 밑으로 보이는 풋풋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오던 찰나,


“이건….”


핸드폰에서 울리는 묵직한 진동과 통화 알림.

발신자의 이름을 확인한 뒤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 야, 이시우! 아직도 집에 있는 거야?


“…다은아.”


- 벌써 너네 집 앞이야, 아직까지 뭘 그리 꾸물대는 거야?


액정에 비친 날짜를 슬쩍 확인한다. 3월 20일 토요일…. 오늘 약속이 있었나?

미묘하게 화난 듯 앙칼지지만, 어딘가 걱정되는 듯한 말투. 그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넌지시 웃으며 대답했다.


“하핫…, 어제 좀 무리해서 피곤했나 봐. 바로 나갈게!”


- 뭐? 그럼 아무 이유 없이 늦었다는…


“얼굴 보고 얘기하자, 지금 내려갈게!”


현관에 대충 걸려있던 베이지색 코트를 걸친 뒤, 계단으로 내려가자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그녀가 뚱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야, 너 지금 늦은 주제에 전화도 막 끊고….”


“다은아…!”







손을 잡아 품 안에 쏙 들어오는 그녀를 꼬옥 안아 들자 볼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릿결과 코끝을 스치는 희미한 복숭아향 샴푸 향기.


“야…, 이시우…, 너 이게 무슨….”


당황한 듯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를 천천히 놓아주자, 말을 더듬거리는 그녀에게 나는 생긋 웃으며 말했다.


“보고 싶었어,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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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오늘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


“아니, 그게….”


“평소에는 한 번도 안 늦던 애가 갑자기 전화도 안 받고 잠수를 타지 않나, 뜬금없이 내려와서는 이상한 짓거리를 하지 않나!”


그리고 갑자기 껴안지 않나… 라며 중얼거리고는 혼자 고개를 푹 숙이는 다은이를 보며 미묘한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도 너무 보고 싶어서 그랬는걸.”


멋쩍게 웃는 나를 보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던 그녀는 이내 손을 내 얼굴로 가져대고는,


“아! 그만, 아프다고!”


“너 누구야, 솔직히 말해. 이시우 아니지.”


볼을 사정없이 꼬집었다.

그것보다, 정말로 아픈데.


“나 맞다고! 아, 진짜 아파 다은아!”


“진짜 수상한데, 내가 아는 시우가 이럴 리가 없잖아.”


“가짜였으면 그때 술 엄청 먹고는 전화로 울면서 고백했던 걸 알 리가 없…, 아, 아!”


체- 라고 말하며 손을 뗀 뒤 팔짱을 끼고는 조용히 어깨에 기대어오는 그녀의 모습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말없이 서로의 온기를 느끼기를 몇 분이나 되었을까.



[ 이번 역은 OO역, OO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



찰나와도 같던 짧은 시간이 지나고, 지하철에서 내려 역사 앞에 서자 따스한 공기가 느껴졌다.


“뭐야, 같이 가. 센스 없기는.”


“어…? 내가 너무 빨리 걸었나?”


센스 없다고? 무슨 뜻이지?

아, 그랬지 참.







조용히 꼼지락거리는 다은이의 예쁜 손을 잡았다.

꽤나 만족스러운 듯 잡은 손을 조심스레 쓰다듬는 그녀.


“거리가 꽤 되네. 여기서 벚꽃축제 하는 곳까지 말이야.”


“다리 아프겠다. 힘들면 말해, 조금 쉬어 가도 괜찮으니까.”


“그러게 왜 택시는 안 잡아서…, 됐다. 천천히 걸어가면 되겠지 뭐.”


“그래도 이렇게 아무 걱정 없이 얘기한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참 나…. 어제도 그렇게 전화로 새벽까지 떠들었으면서. 그건 걱정 있게 얘기한 거야?”


“아하하…. 그랬었지…, 참.”


분명 그랬었지.

아무 걱정 없이, 고민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있던 시절.


“그것보다, 어제 얘기했던 건 어떻게 된 거야? 마저 말해봐.”


“응?”


“시우 네가 괜찮은 여행 장소 찾아봤다면서? 이번 여름에는 어디로 갈지 말이야.”


“아, 일본…?”


그 외에 평범한 연인들끼리 할 법한 시시콜콜한 얘기.

누구 친구가 어쨌다든지, 어디에 유명한 맛집이 있다든지 하는 별 의미 없는 얘기만 쌓여갔다.

이야기는 계속 흘러 결국 망고빙수가 얼마나 맛있는지에 대한 영양가 없는 대화가 이어질 즈음엔, 문득 해맑게 웃고 있는 나에게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아무튼 망고빙수가 제일 맛있다니까! 언제까지 팥빙수인데?”


이렇게 행복하게 웃었던 적이 얼마만인지.

몇 달? 아니, 몇 년?


“어…, 그 정도로 망고빙수가 싫은…거야?”


순간 굳어버린 내 표정을 보곤 당황한 것처럼 보이는 다은이에게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인다.


“아니, 그런 게 아니고. 하하….”


“아냐…. 생각해보니 팥빙수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내 말에 동조하는 그녀의 모습.

쟤 팥빙수 되게 싫어하는데. 그렇게까지 신경 쓰였나?


“그것보다, 저기 아냐?”


“어, 맞는 것 같은데?”


드디어 도착했네.

봄을 알리듯, 나무마다 벚꽃들이 아스라이 휘날렸다.

분홍빛의 시야 사이로 이미 한 자리 차지한 북적거리는 사람들과 맛있는 냄새를 풍겨오는 푸드 트럭들.

무심코 코트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자 정사각형의 딱딱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오늘이 그 날이었나.’


아무렴 어떤가. 지금 눈앞에 닥친 상황부터 해결하고 봐야지.


“시우야, 여기 봐봐. 너무 예쁘다, 사진 찍어줘!”


“잠깐만 기다려봐, 찍는다. 하나, 둘….”



“에이, 뭐야. 진짜 못 찍네.”


“아무리 사진기사가 실력이 좋아도 원판이 예쁘지 않으면… 컥.”


“뭐래, 진짜…. 여기 붙어, 이 몸이 보여줄 테니까.”


내 쪽을 끌어당기고는 브이자를 그리며 셀카를 찍는 그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 사진을 찍으며 걷기를 얼마간, 문득 배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에 나는 일부러 과도하게 연기하듯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꽃놀이에 먹을 게 빠져서는 쓰겠어요, 여왕님?”


“음. 너무나도 맞는 말이군. 당장 맛있는 음식이 있는 쪽으로 안내하도록.”


“본부대로 합죠, 폐하. 닭꼬치와 캔맥주 괜찮겠습니까?”


“아니, 짐은 큐브 스테이크가 좋을 것 같다만.”


“쳇, 먹지 말던가. 먼저 간다.”


“아, 뭐야! 같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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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

차가운 캔맥주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


“크으. 맥주는 항상 최고라니까.”


“큐브 스테이크였으면 더 최고였을 텐데.”


“푸드트럭 닭꼬치가 얼마나 맛있는데.”


“뭐어, 나름 나쁘지 않네.”







문득 그녀의 머리에 벚꽃잎이 내려앉았다.


맥주로 인해 옅게 올라온 홍조와 대비되는 분홍빛 벚꽃잎. 그리고 방긋 웃는 그녀의 얼굴.

숨이 멎을 정도로 아름다운 그 모습에, 나는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좋다. 이렇게 너랑 있는 게.”


“응….”


“뭐야, 반했냐? 새삼스럽기는.”


“그런 것 같아….”



아까보다 조금 더 올라오는 그녀의 홍조.

그 모습에 마침내 결심이 들었다.

다시 한번, 고백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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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항상 그렇듯 빠르게 흘러가고, 느지막한 오후를 지나 어느덧 해가 질 무렵에는 으레 그렇듯이 축제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되기 마련이었다.

야시장의 들뜬 분위기와 설렘을 잔뜩 머금은 서늘한 바람.


“오늘 게스트로 누구 온대?”


“뭐? VTS? 걔네가 온다고?”


그리고 웅성대는 사람들.

가로등에 불이 켜지고, 공연장에도 뜨거운 열기가 차오른다.

한때 유명했던,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가수들이 스테이지에 들어섰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xx시 벚꽃축제는 잘 즐기고 계신가요? ”


- 네-!!!


“이번에는 저희가 야심차게 준비한 새로 나온 곡을 들리려 하는데요. 모두 잘 들어 주실 거죠?”


- 꺄아아아-!


- VTS!! VTS!!


“하지만 그 전에! 저희가 깜짝 이벤트로 준비한 것이 있는데요. 사전에 신청하신 분 들 중, 추첨으로 이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프러포즈를 도와드리려고 합니다!”


- 와아아아-!


사회자가 몇 명의 이름을 부르곤, 스테이지에서 마이크를 건네주었다.


“예지야, 우리 집에서… 라면 먹고 갈래?”


- 와-! 먹어줘!


감미로운 노래를 들으며, 관객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손을 잡으며 내려오는 커플들.

많은 커플들이 이어지고, 마침내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


“네, 오늘의 마지막 신청자네요. S시에서 오신 이시우님, 앞으로 나와주세요!”


“뭐야, 너 이런 거 신청했어?”


당황한 듯한 다은이의 떨리는 목소리.

나는 고개를 조용히 끄덕이고는 그녀의 손을 잡고 무대 앞으로 이끌었다.


“잠깐만… 이런 거 조금 부끄럽단 말이야…!”


멈칫하는 다은이를 바라보았다.

땅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 그것을 바라보는 많은 시선들.


“이시우님? 이 자리에 안 계신 건가요?”


“다은아, 올라가자. 할 얘기가 있어.”


“아 진짜….”


“여기 있어요! 여기요!”


부끄러워하는 다은이의 손을 잡고 스테이지로 향했다.

손을 위로 흔들자, 나를 발견한 사회자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 조금 먼 자리에서 오셔서 늦은 것 같습니다. 하하.”


사회자는 가까이 와서는 마이크를 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차피 마지막 차례니, 조금 여유롭게 하셔도 될 것 같아요. 화이팅입니다!”



사회자에게 마이크를 넘겨받는다. 붉다 못해 터져버릴 것 같은 그녀의 얼굴.

아. 하고 마이크 테스트를 하자 웅성거리던 소리가 정적으로 뒤덮인다.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제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 앞에 서 있습니다.”


“많이 투닥거리기도 했고…, 마냥 싸우기도 했지만.”



땅바닥만 바라보던 그녀가 천천히 얼굴을 들어 나를 마주보았다.

투명한 눈동자 위로 수없이 많은 감정들이 엿보인다.



“그래도… 저에게 있어 너무나도 과분하고 사랑스러운 사람입니다.”



다은이에게 한 발짝 걸어간다.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나에게 과분했던 사람.

주머니에서 반지함을 꺼내 무릎을 꿇는다.



“다은아, 나와 평생…, 영원히…….”



영원히 함께 해 줄래? 라고 말해야 하는데.


바보같이 목이 막힌 듯, 말문이 트이지 않았다.

울컥하고 감정이 복받친다.


어서 말을 끝내야 하는데. 시야가 흐려진다.


웅성거리는 관중들의 소리.

그리고 그걸 멍하니 바라보는 그녀.

사회자에게 무언가 말하더니 마이크를 건네받는다.



“너, 오늘 좀 이상해.”


나를 응시하면서 나긋하게 말하는 그녀.


“평소같이 얼빠지지도 않고, 혼자 멍하니 딴생각이나 하지 않나. 지금은 또 앞에서 질질 짜질 않나.”


가냘픈 손으로 내 어깨를 잡아 일으켜 세운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술기운에 고백한다고 하지 말고…, 확실하게 얘기해.”


보석함에서 반지를 꺼내 손가락에 끼우는 그녀의 모습.


“정말로…, 나랑 평생 함께하고 싶은 거야…?”


애틋하면서도 진지한 그녀의 표정.

나는 지금까지 뭘 고민하고 있었던 건가.


“평생, 어디에 있던지, 너와 모든 것을 함께하고 싶어.”


“그렇게 말하면 조금 더 멋있었을 거 아냐…, 바보야.”



울먹이던 그녀가 순간 내 앞으로 돌진했다.

입술에 느껴지는 달콤하고 따스한 감각. 그녀를 더욱 세게 껴안았다.




- 와아아!! 멋있다!!



폭발적인 관중들의 함성.


“정말 아름답네요. 마지막 커플들을 축하해드리는 의미로 저희도 연주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신나는 밴드 음악의 선율이 흐르고, 주변에는 흥겨운 함성이 울려 퍼졌다.


문득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자, 펑 하고 우리를 축복해주는 것 같은 색색깔의 아름다운 불꽃놀이들.


그리고, 그 광경을 함께 바라보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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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ystem : Memory Recorder의 플레이리스트를 종료합니다. ]



무겁고 딱딱한 기계음이 들림과 동시에 눈에 보인 것은 내 방의 풍경이었다.


흐릿한 시야 사이로 보였던 낡은 디지털 벽시계 대신 홀로그램 홈시어터가.


땅바닥을 수놓았던 자질구레한 물건들 대신, 조그만 청소 로봇이.


팔을 천천히 휘젓자, 전용 AI 로봇이 나를 반겼다.


- 주인님의 동생분께서 음성 메시지를 남기셨습니다.


“…틀어줘.”


- 오빠, 밥은 잘 먹고 있는 거야? 연락이 안 돼서….

그… 새언니 일은 조금 안타깝지만, 그래도 빨리 기운 차려서 얼른 일어났으면 좋겠어.

벌써 몇 달이 지났잖아…. 저녁에 다시 전화할게, 힘내.


크흣…, 흐윽…, 다은아….”


- 주인님, 유효한 감정의 변화가 탐지되었습니다. 심신의 안정을 권합니다.


순간은 찰나이지만, 가슴에 쌓인 감정은 영원했다.

영원히, 함께 한다고 그랬는데.

약속했는데.


- 안정을 취하기가 어려운 경우, 심신 안정제를 권장합니다.


“그딴 걸로 안정이 될 리가 없잖아….”


이대로 멍하니 있을 수 없었다.

다은이가 저 멀리서 혼자 있잖아.


“시리, 메모리 레코더 다시 부팅해줘.”


- 외람된 말씀이지만, 모든 날짜의 기억을 재생하였습니다. 중복된 기억도 괜찮겠습니까?


“상관없어.”


- Accept. 가장 오래된 순으로 재배열합니다.






가상현실 접속기에 불이 들어오고, 부팅음이 귀를 간지럽혔다.


다시 그 자리에 누워 접속기를 장착한다.

눈을 감으면 다시 그녀의 옆에 있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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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ystem : Memory Recorder를 실행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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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의 즐거웠던 기억은 아련한 추억이 되고, 그런 추억들은 가슴에 쌓여 서글픈 미련으로 남는다. 결국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기 마련.


하지만, 지난날의 약속은 없어지지 않는다.

평생 영원히 함께하겠다던 그 약속.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지난날의 너를 그리워한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