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하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은 항상 따로 있어.
-서머셋 모옴-
내 이름은 '김완'
평범한 대학교 4학년생이자, 특슬람이다.
가을의 향기가 슬슬 코끝에 맴돌기
시작하는 화창한 어느 일요일 오후,
그날 따라 한가해진 나는 VR 겜방이나
들릴까하여 우리 대학 앞의 거리를 걷던 와중
저 건너편에서 어디서 많이 본 여자가
눈에 띄는 것이다.
그야, 당연히 많이 봤겠지.
왜냐면 저거 아무리 봐도 내 여자친구 같거든.
그런데... 쟤 분명 오늘 아버지 가게일 도와야 되서
바쁘다고 나한테 말했단 말이지?
그리고 왜 다른 남자와 다정하게 팔짱 끼고 거니는 걸까?
이, 이게뭐노.
히토미도 아니고 NTR 전개는 좀...
1년 반 정도 사귄 여자친구.
아무리 요즘 부쩍 자주 싸우고 연락도 뜸하고,
나를 대하는 태도가 왠지 냉랭한것이 쎄하다곤
생각했지만 설마 그래도 저렇게 대놓고 바람을 필까?
그냥 매우 닮은 사람이겠지...
나름 행복회로를 최대한 돌리려고 해보는데,
그와 동시에
'아니 씨발 뭔 놈의 신호가 이리 개 ㅈ같이 길어!!'
똥 마려운 개새끼마냥 아득바득 이를 갈며 욕하고
시각장애인용 버튼까지 이유없이 마구 눌러대면서
신호등이 빨리 바뀌기를 학수고대하는 나였다.
파란불이 들어오자마자 나는 그 둘이
있는 곳으로 우다닥 전력 질주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 둘과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나의 의심은 점차 확신으로 바뀌어간다.
자세히 보니까 내 여자친구가 맞는 거지.
이런 씨부럴!
내가 야마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있는 상태로
그 둘의 길을 똬! 하고 가로막아버리니까
당연히 여친은 화들짝 놀라고
눈에 동공 지진이 일어난다.
"아...."
"야 조혜수...너 뭐냐? 니 양다리였냐?"
그러자 옆에 있던 남자 놈이
"뭐야? 아는 사람이야?"
라며 내 여자친구한테 묻는다.
"..."
자, 사면초가에 몰려버린 내 여자친구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은?!
"당신 누구예요?"
..역시 그렇게 나왔군.
그러면서 그녀는 팔짱 낀 남자를 재촉하는 것이었다.
"오해하지마 자기야!! 나 이런 사람 진짜 몰라!! 정신이 이상한가 봐. 빨리 가자!!"
내가 그때
"어딜가!"
하면서 붙잡으려고 하는데
"저기요, 제 여자친구가 무서워하잖아요."
"그 쪽 여자 친구요? 하하 진짜 존나 재밌는 분이네. 야, 조혜수 너 그렇게 시치미 뚝 뗄거야?"
"저는 그쪽 모른다고 했잖아요!"
"아 그러셔. 근데 네 손에 들고 있는 쌰넬가방은 나를 안다고 말하는데? 어디 생이별한 영수증과 한번 재회시켜줘?!"
노이로제 걸릴 정도로 하도 졸라대서
내가 생일 선물이랍시고 몇달전에
알바로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사준 명품 가방.
뻔뻔하게 그걸 들고 와서 이 짓거리를 하고 있네.
"자, 자기야 빨리 가자니까!"
그녀도 그 부분을 지적당한 건 곤란했는지,
옆에 있는 남자의 팔을 끌어 그 자리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려고 한다.
"아직 얘기 안 끝났어!!"
나는 그녀에게 타박타박 다가가는데.
"이제 슬슬 그만하시죠? 계속 그러면 경찰 불러요?"
그 남자가 내 앞을 가로막는다.
그리고 벙쪄있는 나를 두고 내 여친의
어깨를 감싸고 지나가려는 것이었다.
나는 아주 시발 그냥 미치고 열불 올라서
맘 같아서는 그 자리를 공중제비 500바퀴는 돌며
휘젓고 싶지만
딱 봐도 여기서 경찰 뜨면 진술에 있어서
내가 불리할 게 뻔하고
도저히 이 이상 얘를 붙잡고 늘어지는 건
내 알량한 자존심이 허락을 안 해서.
"하.. 그래 이 년아 잘 먹고 잘살아라.
사람 잘못 본 날 탓해야지 누굴 탓하겠냐.
지금이라도 네 본성을 깨닫게 돼서 다행이다!"
이렇게 말하고 남자애한텐 삿대질하면서
"그쪽도 조심해요 언젠간 크게 데일 날 올테 니까. 반품은 안 받아."
쿨찐 냄새 풀풀 나는 대사들을 연이어서 내뱉은 뒤에
나는 도망치듯 그 자리에서 벗어나 버렸다.
멘탈이 처참히 개박살이 나버린 나는 서러움과
비참함에 짓이겨 이미 눈에 뵈는게 없어져 있었고
투당당당 편의점으로 벅차고 들어가
길다란 맥주캔 10개를 통째로 결제한 뒤
알바생이 채 봉투에 담아주기도 전에
그것들을 그대로 손으로 들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BGM]
그리고 향한 것은 땅거미가 내려앉은 근처의 공원 벤치.
거기에 앉아서 나는 "씨발 씨발 개 같은 년" 이라고
욕지거리를 해대며 꿀꺽꿀꺽 맥주를 쳐마시기 시작했다.
그 후로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해는 이미 완전히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 지 오래.
자그맣게 뜬 초승달이 우슴푸레한 빛으로
겨우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고 있을 즈음.
자박자박.
흙과 풀이 밟혀 번지는 발소리.
누군가가 내쪽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느정도 거리가 근접해졌을때,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저기요···거기 제 자리인데."
"..."
아오 이런 개 싸바라유발하라이!!
오늘만큼은 아무도 안건드렸으면 좋겠는데!!
이젠 웬 거지 같은 게 와서 공공기물을 전세 낸 것 마냥
우기고 있으니 울화통이 치밀어 오른다.
나한테 말 건 사람을 얼핏 흘겨보자,
어둡고 후드까지 뒤집어써서 모습이
잘 안 보이는데 굴곡이 있는 체격이랑
목소리를 들어 보니 여성이라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오묘하다고도 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나는 그런 것보다는 내 찌질 타임을 방해받은 것에
대한 짜증만을 느낀다.
그러나 그것을 표출할 기력까지는 역시
없다 보니 나는 그냥 말없이 일어나서 가려고 했다.
'어디 술집이라도 가자.'
그렇게 생각하던 중.
"거기 계셔도 돼요! 대신 저도 좀 앉을게요."
...뭐, 안 가도 되면 나야 좋지.
자리 옮기는것도 오질나게 귀찮고.
나한테서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고 그 여자가
앉았고 나도 다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하아."
"에휴"
"씹..."
"하.."
"에라이..."
"씁..."
"니미럴"
"에효."
"아오"
"하아.."
당장 아름다운 자태로 한강에 다이빙해도
이상하지 않은 놈 마냥 혼자 한숨 뻑뻑
내쉬는 내가 측은해 보였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그 강박적인 수준으로
주기적인 효과음이 신경에 거슬렸던 것 뿐일까.
"...저기, 무슨 힘든 일 있어요?"
"뭐. 그렇죠."
"그렇구나."
또 얼마 지나서는 다시 고개를 내 쪽으로 향하더니
"저기 그..."
"뭐요?"
"저도 한 캔 해도 될까요?"
아니 시벌 젊은 거 같은데 왜 벌써부터...
아 그래 어차피 나도 다 못 마실 것 같으니까
복지 차원으로 한 캔 떤져준다.
"저..."
"네?"
'아 이번엔 또 뭐야.'
미간을 찌푸리고 심드렁하게 대꾸한다.
그러자 그녀는 바닥에 흩어져 있는
맥주들을 힐끗 보더니.
"야사히가 더 좋은데..."
"하..까다로우시네요?"
얻어먹는 주제에 뭘 고르냐는 속마음이
그대로 내포되어있는 듯한 어조가
그녀에게도 확실히 전해졌는지.
"헤헤 죄송해요."
어색한 웃음을 흘리는것이었다.
어쨌든 나는 챵따오를 다시 바닥에다 두고
야사히로 바꿔서 그녀에게 다시 건네줬다.
그리고 30분 후.
"그래서 내가요. 예? 씨팔. 잘해줬건만. 통수나 씨게 치고 말이죠?"
"못됐네요 진짜. 듣는 제가 더 화가 나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제기랄 사람 보는 눈이 더럽게 없어요 내가.."
"에이, 그건 그쪽 잘못이 아니죠!"
"그런가요..."
"그나저나 그 남자는 그걸 보고도 이상하다고 생각 안 했을까요?!"
"아, 그러고 보니 갸가 뭐라 했는지 알아요?"
"뭐라 했는데요?"
"제 여자친구가~무쩌워 하잖아유~계속 그라믄~ 짜바리들 부릅니다~~?"
나는 혀를 꼬고 우스꽝스럽게 그 남자를 흉내 내본다.
"우와...정말 모르고 그러는 거면 멍청한 거고, 알고 그러는 거면 저세상급 뻔뻔함이네요."
"멋있죠 아주. 시벌 내가 다 반하는 줄 알았습니다.."
"끼리끼리 만나는 거죠 뭐."
"끼리끼리...어 잠깐 그거 나도 포함되는 거 아닙니까?!"
"음...헤어졌으니까 노카운트?"
"...지금이라도 저런 돈 먹는 하마를 방생하게되서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나."
"네, 그런 포지티브 마인드 아주 좋아요!"
"포지티브라..하하"
복잡미묘한 심정으로 그 말을 곱씹고 있을 때.
"그리고요..."
"네?"
그녀는 별이 듬성듬성 박힌 칠흑 같은 밤하늘로
고개를 향하며 어딘가 쓸쓸한듯한,
그러면서도 동시에 상냥한 울림을 머금고 말한다.
"저는 그쪽이 그 여자한텐 아깝다고 생각해요."
"...내가요?"
"네."
"왜요?"
"그, 그야..."
나의 되물음에 당황하는 그녀.
아니..그렇게 뭔가 있는 것처럼 분위기 잡아놓고
말문이 막히는 건 좀 그렇지 않냐?
그 정도로 내 장점을 발견하기 힘든 건가.
뭔가 슬프네.
"처음 본 사람한테 맥주도 나눠줄 정도로 상냥하잖아요?! 그것도 야사히를!"
"...그래도 이유를 하나 찾아내서 다행이네요. 감동했습니다 아주."
"후후 농담이고, 딱 보면 알아요. 그쪽은 더 좋은 사람에게 어울려요."
"허허 딱보면 안다니 대단하시네. 어때 내 머릿속에 마구니가 들었는지도 좀 봐줘요~"
"음..."
"..."
"저 마구니를 때려죽여라!"
둘은 동시에 웃음을 뿜는다.
이렇게 어느새 나는 그녀와 속 터놓고
대화화면서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취기가담긴 푸념을 하고 있었고.
내 이야기를 다 받아주면서 같이 맞장구
쳐주는게 기분이 나쁘지 않기도 해서,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러자 어느덧 태양의 머리끝이 삐죽이고,
그 빛이 느적느적 세상에 흘러들어오기 시작하는
시간대가 되어버린것이다.
"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그러게요..."
"그쪽도 피곤하실 테고, 저도 그럼 이제 슬슬 들어가 볼게요."
"아...그래요."
"집 방향은 어느 쪽이에요?"
"아, 전 이쪽이요."
"반대구나. 뭐, 어쨌든 오늘 제 푸념 들어줘서 되게 고맙네요."
"아니에요~맥줏값은 해야죠."
"예~ 그럼 조심히 잘 들어가요."
그런데 내가 뒤돌아서 걸음을 떼려던 차,
뒤에서 그녀가 다시 나를 부른다.
"저기요."
"네?"
"저 항상 주말 그 시간대에 요 벤치로 오거든요."
"그래요?"
"그러니까 혹시 다음 주에도 심심해지면 맥주 들고 와요. 제가 그러면 또 말동무가 되어드리죠~!"
'하긴 뭐, 그녀와 대화하다 보니까 제법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으니 그것도 나쁘진 않으려나.'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였다.
갑작스레 불어오는 강한 바람에
그녀의 후드가 벗겨진다.
그리고 때마침 떠오른 아침 해가
그녀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었는데...
어...
어어..?
와...
와.....씹
취기가 한 순간에 확
날아가버릴 정도로
존.나.게 이쁜것이다. .
'레알이냐...'
볕을 받아 찰랑거리는 아름다운 금발.
반짝이는 보석과도 같은 피부.
오밀조밀 정돈된 흡사 인형과도 같은 이목구비.
그리고 눈에 젖어 들어갈 정도의 생동한 청색의 홍채.
마치 명화에서 튀어나온 듯, 흠결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소스라치도록 아름다운 그 외모를 보면서 나는
입을 벌리고 감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역시 그건 좀...그런가요?"
내가 대답이 없는게 거부의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무지 풀이 죽은듯한 얼굴이 된다.
"네...네? 아 네 올게요. 와야죠."
"아 진짜요?!!"
"네..."
순간 정신줄 놓고 얼떨결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해버렸다.
그랬더니 그 여자도 다시 기분이 좋아졌는지
뒤돌아서 흥얼거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총총
집으로 향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마치 전기에 감전된듯,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질 못했다 .
-2화에서 계속-
'0')!! 고퀄리티 완문학 개추
재미있는 거시다 ^0^
ㄹㅇ 차이고 금방 다른 사람이랑 사귈정도로 엄청난 얼굴을 갖고싶다
마자 ㅋㅋ 공백기 같은거 가질 틈도 없을정도로 잘생기면 좋겠단거심
^0^)잘됐다는 거시다!
재밌게 잘읽었음 개추
나도 저런 운명적인 만남을 해보고싶다 ㄹㅇ.....
ㅎㅎ ㄹㅇ루 운명적인 만남 너무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