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에서의 끔찍한 사건 이후, 대한민국은 문자 그대로 발칵 뒤집혔다. 초기에는 단순 강력 사건으로 보도되었으나, 사상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수십 명의 노인이 현장에서 즉사하거나 병원으로 옮겨진 뒤 사망했고, 생존자들 역시 뇌출혈, 급성 심근경색 후유증, 극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식물인간 상태 혹은 단기 기억상실 등 영구적인 손상을 입었다. 노랑을 체포하고 이송하는 과정까지의 사망자와 중상자를 합하면 세 자릿수에 육박했다.
정부는 긴급 대책 회의를 열었고, 국회에서는 연일 격론이 벌어졌다. '괴물 발가락 테러', '비살상 대량살상 행위' 등 온갖 자극적인 용어가 난무했다. 결국, 사회 전체에 극도의 공포와 불안을 야기하고 특정 집단(노인층 혹은 태극기 집회 참가자)을 대상으로 한 공격이라는 점, 그리고 그 방식의 엽기성과 파급력을 고려하여, 정부는 노랑의 행위를 '신종 사회교란 테러'로 규정하는 특별법을 긴급 통과시켰다. '노랑'은 대한민국 1호 '신체병기 테러리스트'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사건 현장에 최초 출동했던 경찰관들과 구급대원들, 그리고 이후 노랑을 연행하고 조사했던 수사관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후유증에 시달렸다. 수십 년간 강력계에서 뒹굴며 온갖 끔찍한 살인 현장과 부패한 시신을 다뤄왔던 베테랑 형사들조차 노랑의 발가락을 직접 목격하거나, 혹은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 접한 이후 극심한 공황 증세를 보였다.
* 경찰 트라우마 센터는 연일 만원이었다. 한 중년의 형사는 상담 중 갑자기 자신의 발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내 발이… 내 발이 변하고 있어! 그놈처럼…!" 그는 자신의 멀쩡한 발을 보며 극도의 공포감에 휩싸여 발작을 일으켰다.
* 또 다른 젊은 여경은 사건 이후 폐쇄된 공간에 들어가지 못했다. 어두운 신발장이나 양말 속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호흡곤란을 겪었다. 그녀는 노랑의 발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악몽을 매일 밤 꾸었다.
* 한 고참 수사관은 조사실에서 노랑과 마주 앉아 그의 발을 직접 본 이후,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실어증 증세까지 보였다. 그는 책상 밑을 수시로 확인하며 무언가가 자신의 발목을 잡으러 올 것이라는 망상에 시달렸다. 심지어 동료 경찰관의 맨발을 우연히 보고는 기겁하며 총에 손을 가져가는 돌발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가 속출하자 경찰청은 '노랑 사건 관련 심리 지원 특별팀'을 꾸렸지만, 그들조차 간접적인 정보 노출만으로 불안감을 호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노랑의 발은 단순한 신체 일부가 아닌,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저주받은 상징'처럼 여겨졌다.
노랑은 국가지정 특수 격리 시설, 외부와는 완전히 차단된 지하 벙커와도 같은 곳에 수감되었다. 그를 관리하는 인력조차 특수 방호복과 심리안정제를 복용한 채, 제한된 시간 동안만 접촉이 허용되었다. 그의 발은 항상 특수 제작된 합금 구속구로 덮여 있었으며, 그의 모든 움직임은 수십 대의 CCTV로 감시되었다.
정신과 의사들과 프로파일러들이 그를 분석하려 했지만, 노랑은 대부분 침묵했다. 간혹 입을 열 때는 이전과 같은 냉소와 경멸이 담긴 짧은 말뿐이었다.
"내 발이 그렇게 대단해? 니들 머릿속이 더 괴물 같은 거 아니고?"
그는 자신이 일으킨 엄청난 파장과 공포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혹은 이 모든 상황을 즐기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시간을 보냈다. 때때로 그는 자신의 발을 덮은 구속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곤 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의 일부이자 강력한 무기인 '그것'과 조용히 교감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노랑 사건 이후 대한민국 사회는 '발가락 포비아'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극심한 변화를 겪었다.
* 공공장소에서 맨발을 드러내는 것이 금기시되었고, 양말과 신발 관련 산업이 때아닌 특수를 누렸다. 발가락 양말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 정치인들은 '제2의 노랑 방지법'을 경쟁적으로 발의했고, 일각에서는 모든 국민의 발을 정기적으로 검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 노랑의 발 모양을 흉내 낸 그림이나 영상이 다크웹을 통해 유포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사이버 테러로 번지기도 했고, 이를 접한 사람들이 공황발작을 일으키는 사건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 사이비 종교 집단에서는 노랑을 '묵시록의 사자' 혹은 '심판자'로 칭하며 추앙하는 움직임까지 나타나 정부를 긴장시켰다.
노랑 한 명의 발가락이 만들어낸 공포는 한 국가의 일상과 시스템, 그리고 인간의 정신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었다. 국가는 전례 없는 방식으로 '테러'와 싸워야 했고, 그 대상은 너무나 기괴하고 원초적이어서 기존의 어떤 대응 매뉴얼도 무용지물이었다. 세상은 이제 노랑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고, 그 경계에는 끔찍하게 뒤틀린 발가락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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