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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일관성이 갖는 힘을 발견하고 인생의 이스터에그를 찾은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말그대로, 일관됨에는 마력이 있다.

예를 들어 김X수 블로그에 댓글을 달 때 나는 절대로 김충X의 대댓글에 하트(공감해요)를 박지 않는다. 대신에 내가 쓴 댓글에 스스로 자추를 박는다. 그러면 X충수는 따라서 내 댓글에 하트를 더한다. 그렇게 되면 내 댓글에만 하트가 2개씩 남아 있는 꼴이 된다.

병신같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꽤나 기이한 만족감을 준다. 방금 전에도 마찬가지로 의식은 진행되었고, 오직 내 댓글에만 하트가 두 개씩 달렸다. 일반적으로 낯설지만, 내게는 익숙한 모습.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하자고 서로 약속한 것도 아닌데도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미묘한 교감이다. 이 비밀스러운 영역에서 끄집어내 이곳에 게재한다면 말 못할 특별함을 조금 잃게 될까 두려울 정도다.

하나... 이건 꾸준글과는 조금 다르다. 뭐랄까 표현하기 어렵지만, 우직한 끈기보다는, 디자인에 가깝다. 디자인에는 종종 그 사람의 내면이 묻어나기도 한다. 어쩌면 본질보다는 브랜딩에 가깝기도 하다. 스티브 잡스가 허구한 날 까만 폴라 스웨터를 입듯이 말이다. 사람들은 불편하기까지도 한 애플의 똥고집에서 미묘한 신뢰를 느끼게 된다. 일관된 디자인의 힘이다.

프로그래밍의 린팅Linting과도 같은 맥락이다. 예시를 더 가까운 곳에서 찾아보자면, 어떤 기이한 갤러가 떠오른다. 그는 대댓글 기능이 출시되고도 몇 년째 대댓글 기능을 쓰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나는 알림도 오지 않아서 고생스레 다시 클릭해서 봐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러한 모습에서 신뢰와 만족감을 느낀다. 그 뿐일까 무조건 개추를 하나 박는 요상한 기벽까지 있다. 업데이트도 없는 일페이지에 다다닥 박힌 그의 자취를 보면 설명하기 어려운 감상을 받고는 했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덧붙여서 나는 블로그 댓글의 멘션 기능도 굳이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디씨에도 생긴 기능으로, 굳이 이 기능을 피하려고 대댓글을 누르지 않고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클릭해 답변하는 것이다. 그러면 @김충수 ~ 같은 쓸데없는 미사여구 없이, 깔끔한 댓글만 남는다. 오직 본질만이 남는다. 이 모습에서 나는 애플 제품같은 깔끔함을 느낀다. 이런 사람은 나뿐이 아니라 수두룩하다. 틀딱이니 보수니 하는 천박한 단어로 재단하고 끝날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일관됨의 힘을 느끼고 실천해오고 있는 것이다.

변화, 아름다운 단어이지만 가끔은 일관됨에서 오는 즐거움을 곱씹어 보려 한다. 사시사철 푸른 대나무와 소나무를 보고 허허거리던 조선인의 DNA가 분열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상상을 하니 괜스레 속이 불편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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