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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자마자 죽임 -> 이거 낙태를 닮았는데 


어느 날 낙태에 대해 엄청 생각해보고 결론지은 적 있음. 나는 낙태 찬성임


그니까 도덕적으로는 지당히 지탄받겠지만, 여전히 존재해야 하며 불법이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정도임


몇년 전 메모를 보면 꿀벌과 양봉업자에 비유했는데 오늘 또 생각났음




양봉 유튜브를 보면서 약간 위선적이다고 생각했다. 말로는 꿀벌아 미안해 하며 꿀벌을 굉장히 위하는 척 하는데, 하는 짓은 고생고생해 모은 꿀을 주기적으로 털어가는 모순적인 모습이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일종의 이미지 메이킹이라고 생각했다. 마찬가지의 불편함을 느낄 다수의 시청자를 위해서 친화적인 모습을 구축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영상을 계속 보다 보면 또 생각이 달라졌다. 양봉업자가 꿀벌을 위하는 면이 여럿 있었다. 꿀을 모으기 힘든 시기에는 설탕으로 사양을 한다거나, 겨울을 나기 위해 어느 정도 꿀을 남겨놓는다거나. 애초에 집을 제공하는 것도 어찌보면 도움이다. 물론 꿀을 채취하기 쉽도록 함이고, 맘대로 지은 집은 처분해버린다든지 여러 가혹한 행위가 더 많다. 결국 꿀벌은 가축화된 곤충이니까, 인간이 가축을 봤을 때 느끼는 측은함인 거다. 

하지만 사피엔스에서 봤듯이, 가축화가 진정 비참한 패배일 뿐인가는 또 다르다. 종의 번성은 곧 생물로서의 최종목적이란 시선에서는 전 세계에서 번성한 벼와 밀은 압도적인 승리자다. 이런 시선의 전환은 한편으로 수많은 생물을 가축화한 인간을 정당화하는 인간 중심적인 면이 있는 것도 같으나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이다. 애초에 진딧물을 가축화한 개미처럼 가축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자연은 두렵도록 냉막하고 무관심하기에 그 어떤 상상의 괴물보다 무섭다.

그러나 개인주의를 적용해본다면 역시나 가혹하다. 허나 양봉 유튜브에서는 그마저도 다른 시선을 제공한다. 벌이라는 사회성 곤충은, 그 개개체 하나하나를 생명으로 보기보다 하나의 군집을 생명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매우 재미있는 견해다. 예를 들어 근래 많이 알려진 ‘여왕벌’의 진실이 있다. 여왕벌이나 여왕개미는 사실 생산 역할일 뿐 알 낳는 기능이 떨어지거나 하면 처분당하거나 한다는 반전이다. 먹이를 구해오는 노역 계급과 문을 지키는 병정 계급과 마찬가지라는 거다. 이는 여왕이라는 언어에 경도되어 여왕이 가장 대단하고 없으면 안 되는 최고의 콘트롤타워여야 한다는 ‘인간중심적’인 사고에 또다시 파란을 준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로 하는 ‘공감’이란 행위는 결국 지나치게 인간다운 사고란 거다. 

그렇다면 같은 사회성 동물인 ‘인간’은? 거기까지 사고가 도달했을 때 나는 재미있는 우화를 떠올리게 되었다. 벌은 살아남기 위해 꿀을 저장하고, 양봉가는 돈을 벌기 위해 꿀을 어느 정도 갈취한다. 그리고 양봉가는 살아남기 위해 은행 따위에 돈을 꿀처럼 저장한다. 그렇다면, 은행의 뚜껑을 따서, 이놈이 어느 정도 꿀을 모아놓았나 열어보는 양봉가의 양봉가는 없을까? 여러 가지가 혹시나 하며 스쳐간다. 가장 확연히 떠오른 것은 국가였다. 국가가 기능하기 위해 ‘겨울을 보낼 수 있을 만큼 적당히’ 돈을 채밀해 가는 것이다. 조금 아나키스트 같은 비유지만, 마음에 든다. 여기에서 나는 벌을 갈취하는 것이 이미 선악의 판단에서 멀어졌음을 자각했다. 이건 답이 없는 문제였다. 문제라기보다는, 음, 이건 현상이다.




애초에 살인과 유사하거나 더 심하다고 여겨지는 일들이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라는 비관적인 뷰라서 그런 건지도 모름.


여기에 조금 불교적인 맛을 끼얹으면 누구보다 빠르게 윤회로 접어들었을 뿐이며, 어차피 모든 고통이란 생각 즉 번뇌에서 오기에 병아리의 작고 덜 발달된 뇌로는 고생없이 떠난 호상이리라는 결론임. 


사실 병아리 갈갈이가 낙태랑 연결되는 알레고리가 떠올라서 맘에 들어서 쓴 글인데, 원래는 낙태를 x개월 이상은 안된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음. 근데 병아리 갈갈이 정도는 상관없지 라는 생각이랑 충돌해 버린거임. 병아리 갈갈이가 이겼음. 인간이 뭐가 특별하냐. 인간도 죽으면 흙이랑 단일화할 뿐이다. 지구라는 초지능군체와 하나가 되는 거다. 사람이 죽음을 많이 생각하면 이렇게 미쳐버린다.


하지만 지구라는 초지능군체도 스케일이 작은 생각에 불과하다. 지구가 아니라 우주에 편입된다고 봐야 한다. 아니 이미 우주의 일부일 뿐이다. 메모에 적었듯 나는 무관심한 우주가 무섭다. 신이 인간을 위하고 인간을 만들고 어쩌고 하는 것들도 지극히 '인간다운' 생각이라고 생각한다. 코스믹 호러 애니메이션에서 좆만한 인간을 발견하고 달려오는 지구만한 생명체를 보면 가소롭다. 관심보다 무관심이 더 우주적으로 무섭기 때문이다. 


양봉가의 양봉가가 있으니, 신의 신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끝이 없다. 그러므로 사실 가장 마음에 드는 정답을 찾아낸 쪽은 역시나 불교다. 삶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이데올로기는 어쩌면 전 우주에 들리도록 소리치는 듯 광오한 선언 같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