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게임 갤러리에서 '하늘색'이라는 닉네임은 늘 뜨거운 감자였다. 그의 주된 레퍼토리는 언제나 자신의 빛나는 대학교 학점 자랑이었다. A+의 향연, 수석의 영광... 숫자로 사람들을 찍어 누르며 그는 마치 세상의 정상에 선 듯 굴었다. 현실의 늘색이는 160cm의 왜소한 체구였지만, 키만큼 높은 자존심으로 온라인 세상에서는 거인 행세를 했다. 사람들은 속으로 '자존심만 센 난쟁이'라며 혀를 찼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에게서 정치인 박정희와 비슷한 기운을 느낀다는 해괴한 생각마저 품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눈에 띄게 갤러리 접속이 뜸해졌다. 중소기업에 취직했다는 소식이 간간히 들려왔다. 그는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번듯한 대기업에 멋지게 입성하여, 금의환향하듯 갤러리에 복귀해 다시 한번 자신의 성공을 만천하에 과시할 꿈을 꾸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대기업의 문턱은 높았고, 중소기업 생활은 답답했다. 꿈은 점점 멀어지고, 결국 그는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백수가 되었다. 학점으로 쌓아 올린 모래성은 속절없이 무너지는 듯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늘색이는 뜻밖의 선택을 하게 된다. 동춘서커스단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가장 큰 콤플렉스였던 160cm의 키를 이용해 '난쟁이 단원'으로 면접을 보고 입단하게 되었다.

높은 학점으로 거인인 척 사람들을 굽어보던 '하늘색'이, 이제는 정말 '난쟁이'가 되어 서커스 무대의 조명 아래 서게 된 것이다. 학점과 자존심으로 쌓아 올렸던 그의 성은 허무하게 무너지고,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신체적 특징으로 새로운 삶의 막을 올렸다. 고전게임 갤러리에는 더 이상 '하늘색'의 학점 자랑이 들려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