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테는 오랜만에 맑은 햇살 아래 거리를 걸었다. 잿빛 병원복 대신 제법 깔끔한 캐주얼 차림이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위축된 어깨는 숨길 수 없었다. 5년. 정신병원에 갇혀 지낸 세월이 벌써 그렇게 되었다. 서른아홉, 한창일 나이에 부모님의 노후 자금만 축내는 신세라니. 결혼은커녕 번듯한 직장조차 꿈꿀 수 없는 현실은 그를 짓눌렀다.
그는 잠시 벤치에 앉아 휴대폰을 꺼냈다. 접속한 커뮤니티에는 그가 며칠 전 쓴 글이 아직 위에 떠 있었다.
씁쓸한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포립. 그의 학창 시절 전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픽셀로 이루어진 가상 공간에서 그는 ‘레테’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그때의 그는 병약하지도, 초라하지도 않았다. 수많은 친구들과 어울리고, 심지어 여자친구까지 있었던 시절. 순수했고,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았던 그때는 이제 희미한 꿈처럼 느껴졌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낯선 거리는 활기찼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문득, 저 멀리서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키가 훌쩍 크고 다부진 체격. 깔끔한 수트 차림에 명품 시계가 손목에서 번쩍였다. 옆에는 우아한 옷차림의 여인이 팔짱을 끼고 있었고, 그 뒤로는 명랑하게 웃는 아이 둘이 총총걸음으로 따라오고 있었다.
레테는 걸음을 멈췄다. 왠지 모르게 시선이 떼어지지 않았다. 그 남자는 뒤를 돌아 아이들에게 무언가 말을 건넸고, 그 순간 남자의 옆모습이 온전히 드러났다.
"지훈…?"
레테의 입에서 저절로 작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분명했다. 포립에서 '카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했던 친구, 박지훈이었다. 학창 시절 내내 그의 옆자리를 지키며 함께 포립에 열광했던 지훈이. 그는 레테의 기억 속, 여전히 앳된 얼굴의 소년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앞에 선 지훈은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었다. 여유로운 미소와 자신감 넘치는 태도는 그가 얼마나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를 웅변하는 듯했다. 명품으로 휘감은 그의 가족은 마치 화보 속 한 장면 같았다.
지훈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레테의 가슴을 쿵 하고 내려앉게 만들었다. 한때 가장 가깝게 지냈던 친구. 함께 밤새도록 포립에서 웃고 떠들었던 그 친구는, 이제 너무나도 멀리 가버린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는 행복해 보였고, 완벽해 보였다.
반면, 레테는 어떠한가. 정신병원에서 나와 잠시 맛보는 자유. 부모님께 죄책감만 안겨드리는 삶. 미래 없는 현실. 과거의 순수했던 시절에 갇혀 허우적대는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찬란한 현재를 살고 있는 지훈의 모습은 레테의 심장에 칼날처럼 박혔다.
현타. 그 단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절망감이 밀려왔다. 그때 그 시절, 포립 속에서 함께 웃었던 두 소년의 현재는 이렇게나 극명하게 갈려 있었다. 레테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점점 멀어지는 지훈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의 시야가 흐려지는 것 같았다. 눈물이 고이는 걸 애써 참으며, 레테는 다시금 자신이 갇혀 있는 회색빛 병원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포립의 잔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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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웃 터졌다 개욱기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