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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사풍후의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 편 정밀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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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초고왕(近肖古王)註 001은 비류왕(比流王)의 둘째 아들이다. 몸 생김새가 기이하고 컸으며 원대한 식견이 있었다. 계왕(契王)이 돌아가시자 왕위를 이었다.註 002
近肖古王, 比流王第二子也. 體貌竒偉, 有逺識. 契王薨, 繼位.]_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 편 챕터 1

근+초고
초고에 가까운 자.

초고 2세...,

마치 람세스 1세,2세 느낌 난다...,

초고 2세 그러니까 근초고는 비류왕의 둘째 아들이다....,

몸과 생김새가 기이하고 컸다.

부여인이 키가 큰데. (삼국지 동이전 부여 )
생김새가 기이하다...북방 만주 땅 부여족 출신인가보군.

원대한 식견이 있었다.
마한인은 보는 식견이 짧은데.
만주의 부여족이라서 멀리 내다보는 식견이 있었나보군.

그러면 비류왕의 둘째 아들이란 소리도 그다지 깊이 있게
취급할 것은..,

비류는 성씨가 '우'씨인데.
근초고는 중국 기록 진서 간문제기에 성씨가 '여'씨 즉
부여씨이고 이름은 '구'로 나온다.

근초고는 비류의 아들일수가 없다....

그러고보니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 편은 근초고의
성씨와 이름이 안 적혀있군?
그냥 '근초고'라고만 적는군.

근초고가 비류왕의 둘째 아들이라면 왜 비류가 죽고나서 '계'가 왕이 되었는가.
근초고가 왕 자리 뺏긴거라면 어려서 그랬다던지 뭐
그런 이유가 사반왕이나 아신왕처럼 적혀있어야 할텐데
그런 소리도 없고...,

[계왕이 즉위하다 ( 344년 10월(음) )

계왕(契王)註 001은 분서왕(汾西王)의 맏아들이다. 타고난 자질이 강직하고 용감하며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였다. 처음이 분서왕이 돌아가셨을 때 계왕이 어려서 왕위에 오르지 못했으며, 비류왕(比流王)이 재위 41년(344)에 돌아가시자 왕위에 올랐다.
契王, 汾西王之長子也. 天資剛勇, 善騎射. 初汾西之薨也, 契王㓜不得立, 比流王在位四十一年薨, 即位.校勘 001]
_삼국사기 백제본기 계왕 편

분서왕... 고이 계통의 왕...
고이왕도 성씨가 '우'씨다...

[분서왕이 즉위하다 ( 298년 09월(음) )

분서왕(汾西王)註 001은 책계왕(責稽王)의 맏아들로서, 어리지만 총명하고 어질며 거동과 모습이 영특하고 빼어나므로 왕이 사랑하여 곁을 떠나지 못하게 하였다. 왕이 돌아가시자 이어서 왕위에 올랐다.
汾西王, 責稽王長子, 㓜而聦惠, 儀表英挺, 王愛之不離左右. 及王薨, 繼而即位.]_삼국사기 백제본기 분서왕 편

[분서왕이 자객에게 살해되다 ( 304년 10월(음) )

〔7년(304)〕 겨울 10월에 왕이 낙랑태수가 보낸 자객에게 해를 입어 돌아가셨다.
冬十月, 王爲樂浪大校勘 001守所遣刺客賊害薨.]

분서는 낙랑태수가 보낸 자객에게 해를 입어 돌아갔다...

그 유명한 황창랑 설화...
분서가 미소년 황창랑의 검무를 보고 허허 껄껄하다가
칼 맞고 죽었다는거....

근데 분서가 백제의 왕이 맞긴 한걸까..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초고 편을 보면 근초고 때부터야
백제는 처음으로 나라의 일을 문자로 기록하기 시작했고
근초고 전엔 그런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럼 근초고 이전의 백제 왕들은 다 뭘까?
가공 캐릭터란 말인가 ...,
그럴린 없을 것 같고...

그렇다면.. 마한계 소국 백제의 인근에 있던 여러 나라들의
전설적인 유명한 왕들을 그냥 하나로 쭈루룩 배열해
묶은 것인가...

혹시 분서왕은 마한계 소국 '신분고'국의 왕을 말하는 것일까...

[낙랑의 서쪽 현을 기습하여 점령하다 ( 304년 02월(음) )

7년(304)註 001 봄 2월에 몰래 군사를 보내 낙랑(樂浪)의 서쪽 현(縣)을 습격하여 빼앗았다.註 002
(七年, 春二月, 潛師襲取樂浪西縣.)]_삼국사기 > 백제본기 제2 > 분서왕(汾西王) > 편

분서왕은 낙랑군이랑 사이가 매우 매우 안 좋았다.

삼국지 동이전 마한 편... 서기 3세기 중반 마한의 신분고국의
신지는  엉터리 통역과 진한 8국에 편중된 이상한 위나라식 군현 통치에 열받아서 위나라의 낙랑군 대방군과 대판 싸워서 대방태수 궁준을 전사시킨 적이 있다...
이로 인해 위나라는 남옥저로 도망친 고구려 동천왕을
추격하다가 동천왕에게 오히려 세 방향으로
구려의 반격을 당해  힉 하고 도망친다.
관구검은 동천왕을 추격해오다가 낙랑 방면으로 퇴각하고 만다.

그러면 서기 3세기 중반의 백제 왕 '고이'는 뭘까..
가공 인물인가...
그럴린 없을거 같다...

고대 중국 기록 '북사 백제전'...
백제 국호의 기원은 100개 가문이 바다를 건너서
나라를 세웠기 때문이다....
요동태수 공손도의 사위인 부여 왕자 '구태(=구이)'가 대방 땅에
백제를 건국했다...

중국 삼국지 시대 중국 대륙의 혼란에
하남성,산동성의 100가지 가문이 배 타고
나 살려하며 공손씨가 다스리는 낙랑군에
귀부하고,
공손씨는 낙랑군의 흩어진 유민들과
산동 쪽에서 온 한나라 귀족들을 끌어모으고
부여 왕자 구태를 불러서 대방군을 세우게했는데.
구태가 그 대방군의 위세로 온조계인지 초고계인지
마한의 소국 백제를 정복해서 거기에
풍납토성을 세운건가...

서기 238년 공손연이 사마중달에게 쳐맞고
멸망하자
그러다가 요동태수 공손씨의 사위인 부여의 왕자 '구태(=구이=고이)'는 풍납토성에서 숨 죽이고 흐느끼며
후주룩거리며 울다가 ...
낙랑군 대방군이 마한계 신분고국이랑 싸울 때
야호 하고
공손씨 잔당을 데리고 마한의 목지국을 기습하여 몰락시키고
위만조선 때의 진국을 다시 부활시키고 진왕을 칭하고
목지국을 부 도읍으로 삼고 진짜 도읍은
부여의 시조 고리국을 딴 마한의 고리국으로 삼은걸까..

비류왕은 마한계 소국 비리국의 '신지'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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