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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방 안에는 희미한 형광등 불빛이 내려앉아 있었다. 벽에는 오래된 메이플스토리 포스터와 워해머 전사의 그림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세상과의 연결은 끊어진 듯, 유일하게 살아 움직이는 건 그의 손끝뿐이었다.

윤태호, 34세.
사람들은 그를 ‘조용한 남자’라 불렀다. 회사에서도, 동호회에서도, 심지어 가족들 사이에서도 그는 늘 배경처럼 존재했다. 하지만 이 좁은 방 안에서는 세상의 주인공이었다.

그의 눈은 두꺼운 렌즈 너머로 미세한 갑옷의 틈새를 따라 움직였다. 워해머의 카오스 워리어, 지난주부터 칠하던 피규어였다. 어제까지는 단순히 붓질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그는 이 전사에게 이름을 붙여주었다. “모르딘”, 오랜 전쟁의 끝에 홀로 살아남은 전사.

“이제 넌 완성이다.”
그가 중얼거리자 방 안의 공기가 묘하게 진동했다. 플라스틱 피규어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붉게 반짝였다.

윤태호는 잠시 손을 멈췄다. 분명 착각이겠지. 하지만 곧 다시 붓을 들어 검은 망토를 덧칠했다. 손끝이 떨렸다. 순간 붓이 그의 손가락에 닿아 피 한 방울이 떨어졌다. 피가 피규어의 칼날 끝에 닿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탁자 위의 전사 피규어가 스스로 몸을 일으켰다. 눈동자는 생명을 얻은 듯 빛났고, 윤태호는 넋을 잃은 채 바라봤다.

“주인님…”
피규어의 입에서 쇳소리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날 밤, 윤태호의 집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단지 다음 날 아침, 책상 위엔 붓 하나와 피로 얼룩진 워해머 전사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벽에 붙은 메이플스토리 포스터 속 슬라임이, 마치 미소 짓는 듯 보였다.